노회찬 속의 신영복
[노회찬 OOO를 만나다] '미완의 기록'으로 본 노회찬과 신영복 (2)
노회찬 속의 신영복

노회찬은 항상 '영감'을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등졌지만, 세상은 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노회찬재단과 함께 '노회찬 OOO를 만나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은 정치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점에서,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고 봅니다. 노회찬이 만난 사람, 노회찬의 생각, 노회찬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노회찬재단과 함께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바로보기 : 노회찬, '마음의 스승' 신영복을 만나다 (1))


노회찬 <난중일기> 속의 신영복, 그리고 글 선물

노회찬의 <난중일기>는 17대 총선 기간 중 2004년 1월 5일부터 3월 31일까지 기록한 일기다. 노회찬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졸이게 하며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새벽 2시 30분경 299명 가운데 꼴찌로 당선이 확정된다. 17대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난중일기>는 계속된다. 노회찬의 2004년 9월과 10월 <난중일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신영복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데 대한 글이 두 편 있다. 정말로 많이 아쉬웠나 보다. 찐한 아쉬움이 글에 묻어난다.

2004년 9월 12일(일) 종일 비 내리다
아침부터 마음이 허전하다.
토요일의 여러 일정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강원도 인제 미산리에 있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어제 밤은 그곳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는 <더불어 숲> 학교에서 오랜만에 신 선생님이 직접 강의하는 시간이었다.
신 선생님의 말과 글에서 깨우침을 얻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만나 얘기를 나눈 경우에도 여지없이 그러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다.
작년 가을 <더불어 숲>에서 신 선생님의 강의가 있을 때도 수강신청을 하고 회비를 송금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이라크 파병발표가 있었고 청와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이 잡혔다.
이근성 선배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연락을 하자 이 선배는 다음 강의라도 오라고 했는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004년 10월 2일 (토) 맑음 한파주의보
19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외침 아시아2004 록 콘서트>에 끝내 가지 못했다.
아시아지역 시민활동가 교육훈련비용 마련을 위한 음악회이다.
신영복, 김동춘, 한홍구, 김창남 교수 등이 윤도현, 강산에, 김C 등 가수와 함께 록을 부르는 기괴한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국감 탓이다.

2005년 2월 21일 오전 노회찬 의원실 관계자가 국회 기자회견장에 들러 '신세대 맞춤형 의정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CD' 형태의 영상 다큐멘터리 의정보고서를 기자들에게 돌린다. 이 의정보고서는 신영복이 노회찬에게 보내준 "꽃이되어바람이되어”라는 타이틀로 제작됐다. 의정보고서는 △2004국정감사, 피감기관 의정활동 평가 1위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협상 문제제기 △국가보안법 폐지 △민생 인권을 위한 입법활동 △당과 함께 대중과 함께 등 5부로 구성돼 있으며 35분 분량의 동영상이다.

2009년 9월 6일 노회찬(진보신당 대표)은 이 글씨를 액자에 담아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악법 원천무효 시민바자회' 경매물품으로 내놓는다. 노회찬은 경매 시작 전 발언에서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가져오려 하였으나 아내에 반대에 부딪쳐 두 번째로 비싼 물건을 가져 왔다고 하며 제일 비싼 것은 바로 저라고 하여 바자회를 찾은 시민들에게 웃음까지 선물한다. 이어 노회찬은 이 물품이 희망가 이상으로 팔리게 되면 을지면옥의 냉면과 빈대떡을 대접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 참고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노회찬은 평양냉면 광이다. 수도권의 소문난 평양냉면집은 거의 다 가봤을 정도이고,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옥류관 냉면이 너무 맛있어 여섯 그릇 먹고 특별방문록에 서명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최상재(전국언론노조 위원장)는 이렇게 인사한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속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언론자유를 다시 생각하고 지금 기울어져가는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정말 모두가 주인이었고 모두가 참여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바자회를 통해 6천만원이 넘는 소중한 기금이 마련됐습니다. 이 기금은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소중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신영복은 신세진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노회찬에게 글을 많이 써 주었다. 받은 글들 중에 노회찬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인 2005년 2월 15일 책과 함께 건네준 '함께맞는비'다.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에 수록된 것으로, 서화집에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갖고 있는 많은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 데서 끝나지 말고 동고동락하는 자세로 현장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의원이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신영복의 '함께맞는비'는 노회찬이 일하는 공간에서 늘 그와 함께 한다.

▲ 왼쪽부터 17대 의원회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의 인터뷰 (2007.4.20.), 19대 노회찬 국회의원 지역사무실(노원구 상계동) 개소식 (2012.8.21.)


2006년 2월 14일 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름은 박지인(朴芝人). 오랫동안 노회찬과 같이 활동해 오면서 법률자문 역할을 묵묵히 해온 박갑주-김수정 변호사 부부의 아이로, 노회찬이 이름을 지었다. "섬진강 가로질러 송화강 너머까지 산과 들에 절로 나서 홀로자라는 들풀 지초(芝草)처럼 자유로이 살거라 / 초여름밤 어둠속에서 조용히 흰꽃 피우는 야생화 지초(芝草)처럼 한줄기 세상의 빛이 되거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김수정, 「[왜냐면]끝나지 않은 노회찬의 꿈」, 한겨레, 2018.12.6.). 2007년 노회찬은 아이의 돌 기념으로 부탁한,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芝蘭之香>에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선물한다.



정년퇴임 '고별 수업'과 석과불식(碩果不食):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


2006년 6월 8일. 65세 정년을 맞아 퇴임을 앞둔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가 성공회대에서 있었다. 1989년 3월 성공회대에서 첫 강의를 시작하며 장기수에서 대학교수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 신영복은 이 자리를 끝으로 17년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한다. (정년퇴임 이후 2015년까지 신영복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석좌교수를 지냈다.)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운을 뗀 이날 강의의 주제는 <주역>의 64괘 가운데 박괘(剝卦)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였다. '박(剝)'은 '떨어지다(落)' '다하다(盡)' '소멸하다(消)'라는 뜻으로, 박괘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낸다. 신영복은 "사회변화가 쉽지는 않다고 본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로 '길을 잃었을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그리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일생동안 참 멀리도 여행들을 떠나는데, 가장 먼 여행은 어디인가?" 그의 강의가 끝나자, 큰 박수 물결이 이어졌다. 강단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눈은 붉게 상기됐고 이슬이 맺혔다. 


노회찬은 신영복의 정년퇴임과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기 위해 고별강연에 참석한다. "신 교수님처럼 겉과 속, 말과 행동, 이론과 사상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평소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았고, 92년 직접 신 교수님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고 있다"며 참석 이유를 밝힌다.


2006년 8월 25일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식이 '여럿이 함께'라는 이름의 콘서트와 토크쇼로 진행되었다.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 2006.8.)도 이에 맞춰 출간된다. <신영복 함께 읽기>는 '신출귀모'(신영복 선생님의 출판을 귀하게 생각하는 모임)가 기획하고 60여명의 '여럿이 함께'가 만든 신영복의 학문읽기(1부)와 추억담(2부)을 모은 책이다. 


"신영복 선생을 거울로 삼고 닮아가려는 사람들이 만든 문집"에 노회찬은 <함께 걷는 서오릉 길>이라는 글을 싣는다. 서오릉은 1966년 어느 봄날 스물여섯 살의 청년 신영복이 오른 소풍길이고, 여기서 그는 우연히 여섯 소년을 만난다. 이때의 순수하고도 소박했던 만남과 우정을 다룬 것이 <청구회추억>이며 노회찬은 이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맺는다. "신영복 선생과 함께 걷는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같은 곳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이고 기쁨이다."


▲ 정년퇴임식에서 신영복, 노회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외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자, '신영복 문학의 백미'로 노회찬은 <청구회추억>을 꼽는다. 2008년 8월 28일 <노회찬의 난중일기>는 '청구회 추억'에 얽힌 개인적 추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8월 28일 (금) 맑음
<청구회 추억>은 이른바 <신영복 문학>의 백미이다. (…) <청구회 추억>은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 선생이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유품을 미리 정리하듯 남긴 글이다. <청구회>란 1966년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섯 명의 꼬마들과 인연을 맺으며 만든 모임 이름이며 이들과의 2년에 걸친 만남의 기록이 <청구회 추억>이다.
1992년 출소 이후 진보정당건설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늘 <청구회 추억>을 권하곤 했다. 활동가라면 특히 조직사업을 하는 활동가라면 마땅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강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1991년 월간중앙에 게재된 글의 복사본밖에 없어 마치 유인물 건네듯 이 복사본을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구미의 조근래 동지는 이 복사본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 선생을 주례로 모시고 싶다고 해서 신 선생을 모시고 구미까지 내려간 일도 있었다. 얼마 후 조근래 동지는 <청구회 추억>을 수첩만한 크기로 만든 책자를 나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 <청구회 추억>은 이렇게 돌려가며 읽혀졌다. 그 후 <엽서>가 발간되면서 육군교도소 똥종이에 쓰여진 육필원고가 영인본으로 실리고, 부록처럼 다른 책에 함께 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식힐 순 없었다.
27일 선재아트센터에서 <청구회 추억>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강당은 만원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선남선녀로 가득 찼다. (…) <청구회 추억> 출간 기념회이기도 하지만 마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고 돌이켜보면 20년을 옥중에서 보낸 신영복선생의 <바깥세상 체험 20년>도 되는 터이라 신 선생의 인사말은 그에 걸맞는 '작은 강연'이 되었다. (…) 이 날도 신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가슴에서 발(실천을 뜻한다)까지 가는 여행은 더 힘들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나? 머리에서 출발하여 귀, 눈, 혹은 입까지 와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십년 운동을 하면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맞선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지들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스스로 올바르다는 생각에 빠져 쉽게 상처를 안겨주고, 또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에서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안긴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만 바라보니 남는 것은 '상처 입은 피해자'들뿐이다.
이날 강연 중에서 신 선생은 독서란 3독이라 말하셨다. 텍스트(책의 내용)를 읽고 책쓴이를 읽고 동시에 자신을 읽는다고 해서 3독이라는 것이다. 마침 선선한 밤공기가 책읽기에 적절하다. <청구회 추억>이 우리들의 현재가 되길 바라며 3독을 권한다.

<노회찬마들연구소> 명사초청특강: "성찰과 모색"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석패한 노회찬은 11월 28일 지역 정당활동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노원구 상계동에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설립, 창립기념식을 치렀다.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 신영복은 '노회찬마들연구소' 제호를 글로 써서 선물한다. 2009년 1월 7일 신영복은 노회찬이 이사장으로 있는 <노회찬마들연구소> 명사초청특강에서 "성찰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연구소의 '명사초청특강'은 2008년 9월 7일부터 2012년 9월 26일까지 4년 동안 총 41회를 진행하면서 '지역명품특강'으로 장안의 화제를 몰고오기도 했다.



강연장인 노원역 인근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는 발 디딜 틈도 없이 500여 청중들이 빽빽이 메웠다. 여러 울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 가운데서 '물'에 대한 신영복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인간의 관계성을 가장 나타내는 것이 물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로서 배워야 합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지요. 다투지 않습니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고 큰 웅덩이를 만나면 건너뛰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넘칩니다. 이러한 물의 자기 변화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배울 점이 또 있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점입니다. 바로 하방연대(下方連帶), 낮은 곳과의 연대입니다."


▲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회에는 몰려든 인파로 앉을 자리가 부족해 강연중인 연단 위에 몰려 앉는 청중들도 눈에 띄었다. (사진=노회찬마들연구소)


신영복이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것처럼, 노회찬의 삶에 신영복은 큰 영향을 준다.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신영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노촌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도 적조한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문득 문득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찾아뵐 수는 없었지만 신영복에 대한 노회찬의 생각도 아마 비슷했으리라고 본다. 노회찬의 글이나 말을 보면 신영복의 향기가 스며있다. '6411번 버스'와 '투명인간' 이야기로 잘 알려진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문>(2012년 10월 21일)은 이렇게 적고 있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인민노련 사건으로 체포된 지 23년이 되는 날인 2012년 12월 24일 노회찬은 '노회찬의 여의도 이야기'에 신영복의 말을 인용해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납니다> 제목으로 이런 글을 올린다.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야심성유휘 夜深星逾輝)는 말을 기억합니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오직 한 가지 더욱 빛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약속뿐입니다. 두 달 전, 지난 10월 21일 창당대회에서 <대중적인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한 대국민 약속입니다.…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는 말은 단지 밤하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장 어두울 때 험하고 먼 길을 함께 걷고자 입당을 결심하신 모든 신입당원들께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2013년 7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자리를 물러나는 노회찬의 <퇴임사>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함께 온 분들께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 합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와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


2015년 5월 21일 진보정의당 이정미가 진행하는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라는 팟캐스트에 노회찬은 신영복과 함께 그의 인생과 새 책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 2015)에 대해 2시간여에 걸쳐 잔잔한 이야기를 나눈다. "노 의원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안 나왔을 텐데...나왔다." 사실 신영복이 나오기 쉽지 않은 자리였다. 신영복은 암 투병 중이었는데 몸이 좀 회복되기도 했고 또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낸 것이었다.

1부에서는 노회찬과 신영복의 만남과 인연, '마지막 강의'의 의미와 건강상태, 소주 '처음처럼'의 탄생, '텍스트-저자-독자'와 '머리-가슴-발'의 '서3독'(書三讀),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로서의 독서, 청구회 추억과 모순의 결집체로서의 감옥생활, 경직된 인식틀로서의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악(詩書畵樂)의 중요성, 청년시절의 꿈과 이상 및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중함 등 신영복의 삶 전반에 대한 일화를 들을 수 있다.
2부는 <담론>에 담은 신영복의 생각을 들려준다. 변방의 창조성과 역동성, '나무와 물'의 철학과 철학적 상상력, 감옥생활 20년의 교훈이자 고별수업 주제였던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엽락(葉落)-체로(體露)-분본(糞本)', <담론> 읽기의 의미 등에 대해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마무리 발언에서 노회찬은 휴머니즘과 변혁의 결합, 세상에 맞춰나가기보다는 세상을 바꿔나가는 삶으로 <담론>을 읽어낸다.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흐르며 2시간여에 걸친 이야기는 끝나며 신영복과 노회찬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난다. 다음 링크를 열면 이날 나눈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http://www.shinyoungbok.pe.kr/video/307531

(http://www.shinyoungbok.pe.kr/video/307542)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이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그러다가 얼마 전 책장을 다시 넘겼을 때 내 눈에 담긴 <담론>의 글귀다.


▲ 왼쪽부터 노회찬 신영복 이정미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2016년 1월 7일 노회찬의 병문안이 마지막이었고, 8일 후인 1월 15일 떠남과 헤어짐의 시간을 맞게 된다.

2016년 1월 18일 영결식 이후 그리움의 시간들

신영복이 세상을 떠난 뒤 3달이 채 안 된 2016년 4월 3일 일요일, 고향땅 밀양 선산에서 고인의 수목장이 조촐하게 진행된다. 좋아하는 진달래꽃도 묘목으로 표지석 주변에 빼곡하게 심어두었다고 한다.


▲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2017년, 구로구는 1주기를 맞아 신영복의 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그의 대표적 저서인 <더불어 숲>에서 착안한 '더불어 숲길'을 조성했다. '더불어 숲길'은 그가 재직했던 성공회대 뒷산인 항동 산 23-1번지 일대에 길이 480m, 폭 2m로 조성된 산책로다. 생전에 직접 쓴 서화작품 31점이 안내판 형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항동 철도길과 수목원, 구로 올레길 3코스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번쯤은 걸어봄직하다.




신영복은 떠났지만, 이후에도 계속 노회찬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알려주며 그리움을 대신한다. (※ 그러던 중에 맞이한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창원 성산에 출마한 노회찬은 3선 국회의원이 된다.)

2016년 12월 25일 트위터
신영복 선생님 덕분에 아내와 결혼한 얘기 등 얽힌 사연들을 풀었습니다. [다음스토리펀딩] 노회찬의 프로포즈,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659 여러분의 공감과 투자를 기다립니다!

2017년 1월 3일 트위터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공연 [만남] 예매중입니다. YB, 김제동, 두번째달, 김형석, 더숲트리오, 문소리, 고민정 출연. 1월 19일(목요일) 블루스퀘어.
http://mticket.interpark.com/Goods/GoodsInfo/info?GoodsCode=16015996&app_tapbar_state=fix …

2017년 1월 4일 트위터
신영복선생 1주기를 맞이하여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발표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대담집 <손잡고더불어>. 신영복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신년벽두에 읽기 적합한 내용입니다.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2017년 1월 17일 <[신영복 1주기 추모기획: 만남] 신영복의 글을 만나다 국회의원 노회찬>(https://youtu.be/_UK-uYrscb8)을 통해 노회찬은 신영복이 '정치'에 대해 말한 글을 읽는다.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유고집인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에 카네이션 꽃을 올린다.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로운 세상(平天下)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平和)란 글자 그대로 화(和)를 고르게(平) 하는 것이다. 화(和)의 의미가 쌀을 먹는 우리의 삶 그 자체라면 정치는 우리의 삶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은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짐지고 있는 고통이 무겁고 질긴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머지않아 '평화와 소통과 변화'라는 새로운 정치 전형(典型)의 창조로 꽃필 수 있기를 바란다. (…)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2017년 5월 15일 트위터
오늘은 스승의 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신덕만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스승님께 인사 올렸습니다. 영원한 스승 고 신영복 선생님께도 신간에 카네이션 꽃을 바쳤습니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1월 10일 신영복 선생 2주기 전시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0주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1월 20일까지 신영복 선생의 옥중 작품 17점을 포함한 서화, 옥중 엽서 원본 등을 전시했다. 노회찬은 이 자리에 참석해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함께 나눈다.



▲ 인사말 하는 노회찬(정의당 원내대표)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나흘 뒤인 1월 14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 노회찬은 신영복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째 되는 날을 기리는 추모식 자리에 함께 했다. 성공회대 교수밴드 <더숲트리오>(김진업, 김창남, 박경태)는 "다음 추모식에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면 좋겠다"며, 신 교수가 감옥에서부터 부르곤 했던 '시냇물'을 시민들과 함께 합창하며 추모식을 마쳤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먼 길을 떠나다

2018년 7월 18일 여야 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노회찬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신영복으로부터 받아 소장하고 있던 글 6점을 표구사에 맡긴다. 7월 22일 오후에 귀국한 노회찬은 그 다음날인 7월 23일 아침 홀연히 먼 길을 떠난다.



3년 전인 2016년 1월 18일 고 신영복 선생 영결식, 노회찬은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 선생님은 떠나시지만 내일부터 선생님을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노회찬이 신영복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것을 믿은 것처럼,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들도 노회찬을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다.
노회찬의 생환(生還)과 새로운 만남의 첫 걸음으로 오는 1월 24일(목) 저녁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창립 기념행사가 열린다. "함께가면 길이된다"는 신영복의 말처럼 이제 노회찬재단은 '아름다운 동행' 속에서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길을 함께' 떠나고자 한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나라…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마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절박한 시점에서 쓰인, 그리고 노회찬이 신영복 문학의 백미라고 꼽았던 <청구회추억>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Some day in the future, I want to take a lonely walk to Seo-O-Reung. With a bright azalea on my plastron, I want to go slowly on foot to Seo-O-Reung and slowly walk back."

'영원한 자유인'으로 '더불어 숲'의 세상을 꿈꾼 두 사람이 진달래 피는 올 봄철에 서오릉에서 만나 함께 천천히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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