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 주원, 장동건...한류 스타들은 아프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아티스트 심리 케어' 대책이 시급하다
종현, 주원, 장동건...한류 스타들은 아프다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이 아프다. 너무 많이 아프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병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정교하게 공들여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카메라 앞이나 관객이 즐비한 무대 위에 서야 하는 직업적인 이유로 아프다. 한번 아프고 마는 게 아니라 일을 할 때마다 매번 아플 수밖에 없다. 상당수가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돌발적으로 종전에 출연한 작품의 역할이나 배역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이상 증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는 악화되어 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한밤, 새벽, 때를 가리지 않고 갑자기 정신적 피폐감, 감정조절장애, 대인기피증, 대화기피증, 극도의 피로감, 무력감이 밀려드는 고통을 겪고 있다. 급기야 환청작용, 어지럼증, 우울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2017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말 못할 심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돌연 자살해 젊은 팬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충격에 빠졌다. 과거 배우 옥주현, 주원, 이성재, 윤계상, 장동건, 남궁민, 김서형 등이 아티스트들로서 겪는 심적 고통을 공개적으로 토로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가수 이상은, 배우 김혜정, 김해숙 등 경력이 출중한 분들이 잇따라 작품 몰입 전후 찾아온 내적 아픔을 언론에 고백하였다. 가수나 배우란 직업 특성과 축적한 명성을 고려할 때 이런 문제를 좀처럼 털어놓기 어려운 사람들이 큰 용기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아티스트를 위한 심리 케어 지원체계의 확립 문제는 서구 선진국과 달리 ‘문화 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 그간 정책의 사각지대였다. 활동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려진 전업 아티스트(full-time artist)만 13만 명을 돌파한 시대, 아티스트들에 관한 사회안전망, 처우, 복지 강화와 함께 강구해야할 시급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

한류의 그늘, 문화정책의 사각지대

아티스트들은 자아(self)와 별도로 다른 예술적 자아를 표현하는 직업이기에 그들이 겪는 마음의 병은 일반인들이 겪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것을 빼놓고는 대부분 작품 전후 처치(處置)나 자아전환 훈련이 잘되지 않아 겪는 것들이다. 여태까지 교육기관, 예술계 등 그 누구도 해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고, 아픔을 선뜻 고백했다가 이미지가 나빠져 생계가 끊길 수도 있어 그저 ‘말 못할 고통’으로 가슴에 담아둔 것이다. 특히 가수, 탤런트, 뮤지컬 배우, 개그맨, 무용인, 국악인처럼 연기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직업은 장기간의 격한 연습을 통해 역할 몰입(flow)과 과몰입(overflow)이 이뤄지면서 흔히 ‘빙의(possession)’라 잘못 일컬어지고 있는 ‘투사(projection, 投射)’가 나타난다. Geses(1982)에 따르면 투사는 자신이 경험한 특정 상황이나 인물이 현실에 실존하거나 현실인양 무의식적으로 믿는 현상이다.

투사 현상 이후에는 Klein(1975)의 풀이처럼 자기한테 투사된 부분과 외부 대상을 똑같이 인식하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가 잇달아 나타난다. 작품에서 맡은 가상의 역할과 실존의 자아 간의 구분이 명확하고 정신력이 강한 배우들은 ‘역투사(backprojection) 작업, 다시 말해 이입된 캐릭터를 다른 대상에 투사해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일을 잘하면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극히 민감한 아티스트들의 특성상 대부분 그렇게 완벽한 처치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은 작품을 마친 후 장기간 몸에 밴 배역이 현실속의 자신과 같다고 착각해 그 후유증으로 인해 현실을 부정하고 무력감, 편집증적 불안, 우울증 등을 겪게 된다. 뜨겁고 환상적인 조명과 뚫어질 듯한 관객들의 시선만으로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데, 생존을 위한 극한 경쟁과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은 과부하, 체력 소진, 허탈감은 물론 이런 내적 아픔을 증폭시킨다. Paget(2002)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부담이 큰데 특수한 공연 환경은 더욱 큰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가수는 호된 연습은 물론 기분 나쁜 일을 겪어도 늘상 흥한 기분을 유지하며 각지의 무대를 돌며 완벽한 퍼포먼스를 구사해야 한다. 특히 아이돌 그룹이 겪는 인기 이면의 극한 경쟁과 빼곡한 스케줄,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어린 나이에 도무지 감당키 어려운 수준이다. TV 탤런트와 개그맨은 조급한 방송 제작 일정에 맞춰 매일 실수(NG) 없이 카메라 앵글에 쏙 빠져들어 가야 한다. 영화배우는 투자수익 확보를 위한 흥행 경쟁의 격화로 더욱 자극적으로 설정된 배역을 소화해야 한다. ‘원 테이크(one take)’로 촬영을 끝내야 하는 강박감도 크다. 연극·뮤지컬 배우는 한 배역을 1~2개월은 족히 연습하고 최장 1~2년을 같은 시간, 같은 무대 위에서, 같은 배역만 소화해야 한다. 무용수, 성악가, 국악인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그 실태는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아티스트들이 겪는 아픔은 내적 혼란이나 고통의 단계가 아닌 진짜 ‘중병(重病)’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예술계를 떠나야 한다. 그간 사례가 적지 않았듯이 드문 경우 마약, 도박, 음주사고, 폭력, 불륜 섹스 스캔들과 같은 일탈행동까지 하게 되어 자멸하고 만다. 심지어 외경스런 생명마저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않는다. ‘베르테르 효과’로 심리적 전염이 일어나 팬들을 비롯한 수용자들도 함께 우울증을 겪거나 모방 자살을 하는 병리적 현상도 피할 수 없다.

현재 실태는 "아티스트들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치부하고 방치할 단계가 아니다. 한류(韓流)로 국격을 높인 문화대국의 그늘이자 문화예술 정책의 사각지대였던 것이 분명하니 이제 ‘문화 선진국’다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술인, 예술가 단체, 국회, 문화체육관광부가 협력해 관련 법률과 제도를 그려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모든 예술가들이 보편적으로 심리 케어 서비스를 받게 해줘야 한다. 극예술 같은 장르는 출연 전후 심리 상담을 의무화해야 한다. 아티스트 상담 전문 인력을 양성해 이들이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받는 가운데 편하게 상시 이용할 수 있는 공익적 성격의 ‘아티스트심리케어센터’(가칭)를 설립해야 한다.

ⓒ연합뉴스


아티스트들이 겪는 심리적 아픔의 실태

아티스트들이 예술 활동을 하면서 겪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현재까지 대부분 드러나 있지 않다. 정말 말 못할 고민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공개했다가 명성이나 스타덤에 걸맞지 않게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이미지가 나쁜 사람으로 편견이 조장되거나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샤이니의 종현은 "이제까지 힘들었다, 나 보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앞서 가수 유니, 배우 정다빈, 이은주, 최진실 등의 죽음 역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스타가 된 가수 이상은은 인기 절정기인 1990년 TV에서 돌연 사라졌다. 그 이유가 “못해요”가 허용되지 않는 극한 경쟁과 감옥 같은 한국의 ‘스타 시스템’ 때문이었다고 무려 28년만인 2018년 11월 고백했다. 번 아웃(burn out), 과부하, 방전, 트라우마(trauma)로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상은은 해당 인터뷰에서 “인기란 바늘을 들고 있는 사람들 위에서 풍선을 타고 있는 것과 같아요. 인기의 위험한 이면(裏面)을 알고 있었어요. 자기를 지킬 수 없을 때 번 아웃이 오잖아요. 그럴 땐 떠나야 자기를 발견할 수 있죠. 어릴 때 ‘담다디 시절’과 같은 개고생을 하면 누구라도 일찌감치 철학자가 돼요.”라고 말했다.

MBC <전원일기>에서 약 20년간이나 ‘복길이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정은 <전원일기>가 끝나고 우울증을 앓았다고 종방 16년만인 2018년 6월 털어놓았다. 그는 “몰입의 단절이 공허함과 상실감으로 이어져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그림과 산악자전거를 배우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평단으로부터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배우 김해숙도 2018년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배정길 역을 맡아 촬영한 후 5~6개월간 우울증을 앓았다고 고백했다. 김해숙은 “제 나이에 그런 배역을 맡을 줄은 몰랐다.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고 영화를 보면 다시 그런 증상이 생길까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후 다른 작품을 하고도 다시 증상이 계속됐다. 여행으로 극복했지만 아직도 울컥울컥한 마음이 남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병원까지 가봤다. 너무 무기력했다. 약 복용도 권유받았다.”고 상술하였다. 실제로 그는 <허스토리> 촬영 후 곧바로 SBS <이판사판>에 출연하면서 다른 캐릭터에 몰두하려고 애썼지만 그런 증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의 고백에 앞서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2012년 <엘리자벳> 주연 당시 엘리자베스가 되살아난 듯한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쟁쟁한 배우들한테 ‘뒤처지면 어떡하지’ 하는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로 두려워 공연 전후 최면 치료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배우 이성재는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출연 후 “악역(惡役)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에 극악무도한 조폭 두목 ‘장첸’으로 나온 윤계상, 영화 <7년의 밤>에서 잔혹한 복수극을 펼치는 아버지로 열연한 장동건,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표독스런 캐릭터를 선보인 김서형, SBS 드라마 <마녀의 성>에서 대기업 회장 아들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망나니 역할을 맡은 남궁민도 악역 연기 직후 겪은 심리적 후유증을 언론에 각각 털어놓은 바 있다.

아티스트들이 겪는 이런 아픔의 단면을 파악하기 위해 필자가 3년 전 우리나라 정상급 남녀 뮤지컬 배우 22명(남여 각각 11명, 평균 연령 35.8세, 평균 공연경력 11.7년)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하여 분석한 결과도 이들의 증언과 대동소이하다. 이 연구에서 배우들은 대부분 공연 후 1개월 이상 장기간 배역 투사에 시달리며 우울증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치유도 전문가 상담은 회피한 채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기분 전환에 의존했다고 답변하였다. 공연 후에 작품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정기간 투사 때문에 실생활 부적응 현상을 경험했다는 배우가 거의 대부분(95.5%)이었다. 

후유증을 경험했다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배역 투사에 따른 실생활 부적응 현상의 정도는 보통(59.1%), 약간(22.8%), 심함(13.6%), 매우 심함(4.5%) 순으로,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투사 후유증의 지속기간은 1개월 이상(45.5%), 3~4주일 (13.7%), 1주일(13.6%), 상황에 따라 다름(9.1%), 2주일(9.1%), 3~6일(4.5%), 1~2일(4.5%) 순으로 답하여 응답자의 절반은 1개월 이상 장기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주로 아픔이 도지는 시간은 저녁(34.3%), 종일(18.7%), 새벽(15.6%), 아무 때나 돌발 (12.5%), 오후(9.4%), 아침(6.3%), 점심(3.2%), 오전 (0.0%) 순으로 답해 공연을 했던 저녁 시간이 가장 극심하였다. 

구체적으로 증상이 어떠한지 복수 응답의 누적빈도 분석 결과, 실생활에서 공연 배역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기(19.2%), 우울증(17.3%), 정신적 피폐감과 감정조절 장애(13.5%), 대인·대화 기피증(9.6%), 극도의 피로감과 무력감(7.7%), 배역과 연동된 환청 작용과 어지럼증(5.9%), 불면증(5.9%), 거식증(3.8%), 고립감·외로움(3.8%), 사람에 대한 불신·혐오(3.8%), 자책감(3.8%), 악몽(1.9%), 구토(1.9%), 심장 박동 증가와 조급증(1.9%) 순으로 나타났다. 맡은 배역의 성격을 인간의 7가지 감정으로 분류해 답하도록 한 결과 분노(31.1%), 슬픔(22.2%), 미움·질투(13.3%), 성적 욕망(8.8%), 기쁨(6.6%), 즐거움(6.6%), 기타(11.4%) 순으로 투사에 민감했다고 답했다. 

남자 배우는 자살과 살인 연기, 여자 배우는 성폭력 피해와 매춘 연기에서 각각 투사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렇게 심리적 아픔을 겪는 이유로는 장기간 일상화된 배역 과몰입(26.0%), 프로 무대에서 일하는 배우로서 공연 성공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관념(20.0%), 본래 타고난 감성적, 성격적 특징(16.0%), 자연인과 극중 배역의 정체성과 주변 상황 차이에 따른 혼란(12.0%), 장기간 준비·연습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12.0%), 작품에서 맡은 역할과 내 처지의 동일시(8.0%), 극중 맡은 역할의 특수성(6.0%) 순으로 분석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티스트들이 마음 놓고 상담할 전문가나 공간은 마땅치 않다. 국내에는 실력이 뛰어난 정신과가 즐비하지만 선뜻 내담(來談)했다가는 환자 취급을 받거나 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기피하고 있다. 심리상담센터도 좋은 곳이 많지만 일반인을 상대하는 곳이나 아티스트의 직업 특성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해결해줄 특화된 전문가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라고 여겨 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심리학은 물론 아티스트의 생리, 특성, 환경을 꿰뚫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는 전문가들이 그간 제도적으로 육성되지 않은 이유다. 드라마 테라피는 드라마 기법을 이용한 상담과 치료법이지 아티스트들이 겪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다.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에게 프라이버시 보호는 생명과 같은데, 그런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며 일반 상담자와 분리 상담을 해주는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과 법제가 필요한가

필자의 조사에서도 뮤지컬 배우들은 투사와 그 후유증 치유를 위해 정신과나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다는 대답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자신들에게 특화된 마땅한 수준 높은 상담 서비스가 없고 프라이버시 보장도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들은 동료 배우들과의 대화와 수다(20.4%), 가족 등 주변인과의 활발한 대화와 소통(16.3%), 휴식·여행·등산·운동·독서 등을 통한 힐링(healing)(14.3%), 재빨리 다른 작품 돌입하기(12.3%), 오랜 시간 혼자 조용히 보내기(8.2%), 술·담배·놀이·컴퓨터 게임 등과 같은 기호품 활용과 엔터테인먼트 활동(6.1%), 기도 등 신앙생활(6.1%),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음(6.1%),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4.1%), 영화 관람과 TV 시청 몰입(4.1%), 심리 서적의 도움(2.0) 순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답하였다. 전문적인 관리나 케어(care)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아티스트들의 연이은 공개적인 고백들과 필자의 연구 사례만 봐도 아티스트 심리 케어와 관련된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문화산업이 유망하다고 하니 준비나 대책 없이 예술계, 특히 엔터테인먼트계에 뛰어드는 10대, 20대들이 늘고 있다. 자연스레 흥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들이 구현할 스토리와 표현은 더욱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고 투자자와 감독의 요구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대책 마련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 배우의 경우만 봐도 대본과 시나리오에 나타난 악역과 그가 행하는 폭력은 더욱 잔인하고 괴기적으로 설정되고, 상대역이 겪는 피해는 더욱 처참하고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표현해야 할 페르소나(persona)는 점점 극단화되고 있다. 심지어 영화 <도가니>, <아홉 살 인생>에서처럼 실질적, 제도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보호받아야할 아역 배우들에게조차 살인, 성폭행 피해, 익사 순간의 사실적인 연기를 부과하는 일도 허다하다. 

대부분의 아픔은 아티스트가 투사된 역할의 굴레에서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이를 도와주는 시스템이 전혀 없기에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어떤 젊은 배우는 고통스러워 선배한테 물었더니 “쉬지 말고 오디션에 바로 도전해 전작(前作)과 다른 역할을 빨리 맡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 답해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4년 통과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는 청소년 연기자의 정신적 건강권 보호를 규정했지만 이마저 해당 조항을 구체화할 각론이나 정책이 뒤따르지 못했다. 선언적 문구였다. 성인 아티스트를 고려한 관련 규정은 아예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배우·가수의 전속계약서 표준양식에는 아티스트가 정신적 문제를 겪으면 소속사가 치료해주라는 조항을 담았지만 이는 단지 권장 사항으로, 실제로는 비용문제 등으로 이를 해결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문제제기를 계기로 먼저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조속히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그 데이터를 근거로 정부와 예술가 단체들이 국회와 협의하고 공청회를 열어 모든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공적 서비스 차원에서 전문가의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게 근거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 법제의 핵심은 아티스트의 내적 고통을 ‘정신병’으로 보지 않고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특수한 증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극예술, 무용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인들이 서비스를 받도록 하되, 특히 이런 아픔에 더 노출되기 쉬운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군은 작품 출연 전후 반드시 심리 상담을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어 정부의 지원 하에 배우단체나 직능별 예술인 협회 등이 합심해 앞에서 설명한 전문적인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아티스트심리케어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예술계 중·고교는 물론 대학의 예술분야 전공에 심리관리 관련 과목을 추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티스트심리케어센터의 운영은 민간이 맡고 그 재정은 정부가 일부 지원하고 영상물과 공연·전시 등 작품 수익금의 일부를 재원으로 적립하여 확보하는 매칭 펀드 방식도 좋을 것 같다. 케어센터를 만들 때 기본 원칙은 내담하는 아티스트들의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다. 전문지식과 상담 경험을 충분히 갖춘 상담사들을 육성해 확보하고, 케어센터 건물이나 상담 공간을 설계 단계부터 내담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게 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아티스트 전문 심리 상담사들이 육성되어 상시적으로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스타급이건 아니건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 출연한 배우 조디 포스터와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작품 출연 후 패닉에 빠져 이런 서비스를 이용한 사실을 공개했다. 1913년 설립된 미국 배우조합(Actor’s Equity)에서는 회원에게 심리 치료 등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1882년 출범한 비영리 단체 배우기금(The Actors Fund)에서는 모든 직종의 대중 예술인에게 건강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지하건데 아티스트들이 겪는 문제는 일반인들과 같은 것을 빼놓고는 대부분 직업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들이기에 이에 초점을 맞춰 법제와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유념해야 할 일이다. 원래 아티스트들은 평생 두 개 이상의 자아로 살아야 해 심리적 고통을 피할 수 없는데, 완벽한 퍼포먼스를 요구하는 치열한 문화산업 환경은 이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아픔은 예술이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데뷔한 어린 신인들은 예술이란 특수한 직업세계의 구조를 체 이해하기도 전에 극한 경쟁에 내몰려 과몰입을 함으로써 심적으로 아프고, 육체적으로 지쳐 쓰러지고, 심지어는 극단적 선택까지 행한다. 이젠 필요한 제도를 체계적으로 확립함으로써 이런 비극을 예방해야 한다.

이들의 고통은 평탄치 않은 가정사, 주변인과의 불화 등 다른 문제와 겹치면 치명적인 수준에 이른다. 노출되면 성공을 그리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아파도 어디에다 말을 할 수가 없기에, 이런 딜레마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특수한 직업적 증상을 방치하면 중병이 되어 걷잡을 수 없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문화산업이 가장 발달한데다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가장 뜨거운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 분야 주역인 아티스트들은 ‘한류’와 ‘케이컬처’란 브랜드를 일궈 국격과 긍지를 드높여줬기에 매우 고마운 존재들이다. 더욱이 세금을 내는 소중한 국민들로서 수용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제 이들에게 특화된 맞춤형 법제와 정책을 제공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간 아티스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 처우 개선, 복지 강화가 적잖이 논의되어 왔지만 많은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어 진척이 더디다. 그러나 아티스트 심리 케어 체계의 법제화는 그리 많은 에너지가 필요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결단한다면 우선 이뤄낼 수 있다. 아티스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좋은 정책이 될 것이다. 가장 최근 정부 통계인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6)에 따르면 문학, 미술, 공예, 사진, 건축, 음악, 대중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방송, 만화, 기타 등 14개 분야에서 ①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하고, ②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 수혜를 했으며, ③문화예술 관련 협회·단체의 회원인 예술인이란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핵심적인 ‘전업(專業) 아티스트’만 13만1332명에 이르니 수혜 대상도 적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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