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사라지자 박근혜가 소환됐다
[최창렬 칼럼] 집권세력과 국정농단 세력의 적대적 공존?
개혁이 사라지자 박근혜가 소환됐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집권은 유례없는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을 바로잡기 위한 국민 의지의 산물이었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헌 문란 행위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촛불항쟁에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통치의 객체로 전락시킨 반헌법 세력 척결이라는 당위를 뛰어넘는 시대정신이 내포되어 있었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의 모순적 관행과 부정의를 타파하라는 시민의 요구가 그것이다. 이는 사회구조 변화와 개혁을 위한 제도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적폐수사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 자체만으로도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했다. 또한 국민 중 상당수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리라는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주권의 담지자인 국민이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입법을 통한 개혁은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이전에 구성된 국회는 바뀌지 않았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치는 박근혜 이전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정치를 결정하는 변인들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하고 당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수구 기득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퇴행적 정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한국당은 경제와 민생의 침체 속에 일상으로 복귀한 유권자의 정치적 망각에 힘입어 제1야당으로서 '보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헌법절차를 거부하고 박근혜 탄핵을 반대했던 세력으로 소멸할 것처럼 보이던 한국당 지지율은 그들의 전통적 텃밭을 중심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당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던 세력으로서의 반성과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이명박과 박근혜 석방을 주장하며, 적대적 공존의 한국정치 구조에 기생하면서 정치적 몸집을 불리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에 대한 정치공세의 수위를 높이면서 압박하는 정치적 역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여당과 제1야당의 지지율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연말 연초의 각종 의혹 사건과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 등의 정치적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지지층 결집을 결과하면서 정치는 한국정치의 공식인 적대적 공존의 구도로 회귀했다.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론의 장은 사라지고, 갈등의 증폭을 통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구태의 정치 패러다임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엄연한 사법농단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더디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두드러진 정치의 사법화 현상 속에서 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비롯한 검찰개혁도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 침체 국면에서 재벌개혁은 금기처럼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수구의 반격과 중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혁실종과 한국정치의 대립적 구도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민심의 지지로 탄생한 민주당이 도덕적 당위와 정치적 명분을 잃어가면서 보수 통합의 명분으로 박근혜가 소환되고 있는 한국정치의 역설은 그 자체로 반동적이다. 개혁에 걸맞지 않는 일부 소속 의원들의 행태와 이에 대처하는 집권당의 안이한 방식은 한국당의 수구와 맞물려 개혁 자체를 실종시키고 있다. 
 
지금의 정당경쟁의 구도를 바꾸지 않으면 개혁은커녕 내년 총선이 수구의 재기를 공식화하는 정치적 면죄부가 될 수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지금의 정치프레임으로 총선에 임한다면 보수 30, 진보 30,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기계적 균형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권심판론이라는 의외의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국정농단과 헌법파괴를 단죄하는 일은 이념의 차원을 넘는 것이었다. 적대적 공존의 한국정치의 구도 속에 한국사회의 개혁 동력이 실종된다면 언제 또 대전환의 기회를 맞을 수 있겠는가. 정치복원이 아닌 퇴행적 정치의 부활은 한국정치를 불확실의 심연 속에 빠뜨리고 있다. 적대의 정당구도는 정치세력들을 양비론의 함정 속에 매몰시킴으로써 정의와 부정의의 경계를 허문다. 한국정치를 복원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여야의 갈등적 상황은 사법영역에 던져지고 있고, 사법의 신뢰는 금이 갔다.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진 상황은 사법의 정치화란 치명적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는 사법화하고 사법은 정치화하는 지금의 구도는 한국정치의 실종과 무관치 않다. 시대정신과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치열한 토론이 부재한 한국정치는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명분도 없다. 이에 대해 정치는 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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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