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가 김용균이다"
[현장] 청년 비정규직 故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
2019.02.09 16:26:16
아직, "내가 김용균이다"
2019년 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250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영하 4도의 살을 에는 듯한 날씨지만, 저마다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손에 들고 광장에 차려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 시민들 맨 앞에는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그의 왼팔에는 상주 완장이 매달려 있었다. 

이날 광장에서는 '청년 비정규직 故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주최로 '청년 비정규직 故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은 김 씨의 아들 김용균 씨를 땅에 묻는 날이었다. 자식을 잃은 지 62일 만에야 겨우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영결식 이후, 고인의 시신은 고양시 벽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아직도 아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인의 시신은 차디찬 냉동고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그리고 고인이 다녔던 한국서부발전과 합의가 이뤄졌기에 장례식이 가능했다. 김 씨의 아들 김용균 씨는 지난해 12월11일 발전소 내 컨베이어 작업 중 기계장치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그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자식을 잃은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앞서 자식을 떠나보낸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오열했다. 

"아들의 죽음을 끌어안고, 동료를 살리고 그 엄마와 가족이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싸우신 어머니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들 한빛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한빛의 방문을 열다가 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 아직도 아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는 그 순간, 시간도 기억도 멈췄습니다. (아들이 죽기 전의) 과거만 자꾸 이야기합니다. 유가족은 흘러가는 시간을 죽이며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그럼에도 많은 유가족은 앞서서 길을 열었고, 사회를 변화하기 위해서 눈물은 흘리면서 울음은 삼키고 나아갔습니다. 죽은 자식을 안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자식의 빚을 갚아야 했고, 젊은이의 희망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한빚에게 가슴에 묻지 않고 함께 걸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는 이 세상은 아무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는 듯합니다. 눈을 뜨면 해야 하는 게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가 무대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무대 아래에서 바라보던 김용균 씨의 어머니도 함께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 무대에 올라 발언하는 고 김용균 씨 어머니. ⓒ프레시안(허환주)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자식은 떠났지만, 자식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자식의 사망사고 관련,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자식이 일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도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5개 발전사의 연로환경설비운전 업무를 통합한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고 해당 업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고인이 죽은 이후, 자식의 죽음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녔던 어머니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변한다 해도, 어머니에게 하나 뿐인 자식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무대에 오른 어머니는 결국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 용균아 오늘 마지막으로 너를 보내는 날이구나 이 엄마가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는 거니?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데 엄마는 어떻게 살지를 모르겠구나. 꽃다운 아까운 청춘, 가엾어라. 내 아들아, 너를 보내고 싶지 않은데, 어찌 보내야할 지 막막하구나. 언젠가 엄마 아빠가 너에게로 가게 될 때, 그때 엄마가 두 팔 벌려 너를 꼬옥 안아주고 위로해 줄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 내 아들 용균아."

백기완 "김용균을 죽은 건 돈 밖에 모르는 이들이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 변화가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상당하다. 여전히 원청은 하청 노동자의 사망 관련,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고,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젊은이들은 싼값에 하청 내지 파견직으로 고용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 사회 비정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이윤과 자본의 논리로 분쇄기에 갈아 넣었다"며 "그리고 그들의 희생으로 지탱해온 게 지금의 우리 사회"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그런 사회에 사는 우리가 '김용균'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또다른 희생이, 또다른 '김용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백기완 故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고문은 "김용균이 죽은 건, 돈이 주인이고 돈밖에 모르는 이들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땅에 묻어야 할 것은 돈 밖에 모르는 썩은 독점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 고문은 "이제부터 이 자리에 와 있는 노동자와 노동운동가, 피해 받는 민중을 위해 싸우는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썩은 독점자본주의를 뒤집어야 한다"며 "이들의 뒤를 나도 똑같이 따라 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은 어머니

김용균 씨 어머니는 12시간 맞교대로 한 달에 한 번 쉬면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렇게 지난 7년 동안 일했다. 어머니는 이날 고인을 땅에 묻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오열하는 어머니의 뒤로 보이는 교보생명 건물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글귀가 내걸려 있었다.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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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