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천황'이라고, 있는 그대로 불러준다면?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 한일 관계, 보다 더 "당당하게" 풀어가려면
우리가 '천황'이라고, 있는 그대로 불러준다면?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다. 그럼에도 부침을 거듭해 온 한일 관계는 또다시 깊은 터널 속에 갇힌 채 도무지 빠져 나오질 못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과 같은 미진한 과거사 청산에서 비롯된 문제에 더해 최근에는 초계기 위협 비행 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도 등장하며 양국 관계를 더욱 경색시키고 있다.

그런데 어떤 증상이든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 증상을 야기시킨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근본 치유를 위해선 먼저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양국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악화라는 증상에만 너무 치우칠 게 아니라 그 원인들을 찾아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힘써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반복되게 하니까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는 과연 어떨까? 최근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최대 원인 중 하나로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폭주를 들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있다.

그는 집권 이래 전례 없이 노골적으로 군사력 증강을 도모해 왔다. 그러한 그에게는 북한의 도발 등이 매우 유용한 구실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북미 양국이 접촉을 시작하면서부터 북한이라는 '오리발'의 효용도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다급해진 일본의 극우 세력은 북한을 대체할 새로운 구실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일본 극우 세력은 북한과 눈길을 주고받고 있는 '얄미운 당신'인 미국을 구실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칫 잘못하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중국 또한 건드리기 쉽지 않다. 결국 남은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을 상대로 다양한 갈등을 더 유발하며 자신들의 극우 노선을 계속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반발하고 있다. 사실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일왕 사죄' 등을 쏟아내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결국 아베 세력에 휘둘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철한 일본인들에게 있어 있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이질적이고 천박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반발의 강도를 높일수록 아베 일파의 의도를 잘 모르는 일본 민심은 강한 반발이라는 표면만 보고 우리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지게 된다. 이에 쾌재를 울리는 극우 세력은 또 다른 도발 거리를 찾아 우리를 또 살살 긁는다. 이로 인해 우리가 또 쉽게 확 달아오르면, 이는 곧 아베 정권의 극우화에 효자손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격이요, 한일 관계는 그 만큼 더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고 만다.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아베 세력에 의해 이용당하는 모습을 계속 반복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들보다 더 냉철하고 스마트해져야 한다. 일본 극우파들의 전횡에 대해 그들이 움찔하며 당혹하게 하는 새로운 대응전략 등을 다양하게 구사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 극우파 세력과 결을 달리하는 일본 사회의 건전한 양식 세력들과의 보다 더 다각적이며 긴밀한 연대의 강화 등이 그 하나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아닌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극우파 좀비 정치인 세력을 일갈하고 계도하도록 이끌며 협력해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소 황당하게 들릴 듯한, 아울러 이를 듣고 또 쉽게 달아오를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본에서 "천황(天皇, 덴노)"이라 불리는 존재를 "일왕(日王)"이 아닌 일본 천황으로 호칭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한일 관계를 새롭게 다져 나가는 하나의 획기적인 모멘텀으로도 활용해 나가자는 것이다.

"일왕"을 "천황"으로 호칭해 주자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무엇보다도 우리가 21세기 중견강국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을 일왕으로 호칭하기 시작한 이면에는 불행했던 과거사 등으로부터 기인한 저들에 대한 우리의 콤플렉스와 열등감 등도 없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의 우리는 초라하고 왜소하기만 했던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졌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유독 우리에 대해 도발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 대해 과거와 같지 않은 그들의 처지"에서도 비롯된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이처럼, 최빈국 당시와는 비교조차 무색할 정도로 강성해진 우리가 아직도 과거의 그 열등감 등에 젖어 있을 이유는 없다.

다음으로, 일본에 대한 우리의 당당함의 표상이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중국의 국가주석(國家主席)이나 대만의 총통(總統), 혹은 홍콩의 행정장관(行政長官) 등에 대해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한자어와 호칭 등을 그대로 다 불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천황에 대해서만 굳이 일왕으로 격하해 부른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세 번째로, 천황이라는 세계 유일한 한자어 명사의 의미 등을 감안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호칭해 주는 것이 맞다. 천황이라는 한자어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 사람만 지칭하는 명사이다. 일본 천황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일본의 조상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부터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자랑하는 일본 신화의 유일한 계승자로서 여겨져 왔다.

또한 정치적 실권은 없더라도, 일본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상징이며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일본 사회에서 폭넓게 존경받는 유일한 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 어느 한자어로도 그 상징하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회의 역학 관계를 잘 활용하자는 의미도 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의 위상은 "내가 국가다!"라는 발언으로 "너가 루이 14세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아베 총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천황은 과거사 등에 대해서도 아베의 극우파 정권과 차원을 달리한다. 그는 그 동안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사실상의 사과를 적잖이 해왔다. 예를 들면, 1990년에는 일본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팠던 과거에 대해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며 스스로 '통석(痛惜)의 염(念)'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반성했고 1998년에는 방일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며 재차 사과하기도 했다.

2005년엔 사이판에 있는 한국인 위령탑을 찾아가 묵념하였고 2017년엔 사이타마현에 있는 고구려 신사를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재위 기간의 마지막 탄신 기자회견에서는 16분 동안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몇 번이나 울먹이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 극우 세력의 불만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해 겸허하며 진솔한 자세를 견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아베 세력은 천황이 퇴임후에 한국을 방문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지난 1월 일본의 주간지 <슈칸 겐다이>(週刊現代)에는 "아베 총리는, 아키히토 천황이 퇴임 후 상황(上皇)이 되어 그와 다른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더 많이 할까봐 걱정하고 있다.(중략) 폐하는 과거 일본의 지배지에 가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이와 관련한 심각한 우려는 폐하가 상황이 된 뒤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한일관계 속에서, 상황이 방한하여 사죄 등을 한다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 정책은 송두리째 바꿀 필요가 생긴다"고 보도했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의 극우 세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일본의 상징이요 일본 사회의 얼로서 대다수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일본 천황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 나가야 할지 어렵사리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안은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정서와 아베 정권의 저급한 행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의 공분만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파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아니 저들과 같은 단순저급한 이분법적 '이기고 지고'식 사고를 넘어 이웃나라 일본과의 건전한 상생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이라도 더 관대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민심에 정서적으로 울림이 있게 다가섬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양식에게도 힘을 더해주는 가운데 한일 관계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나가자. 해 줄 것은 겸허하게 해주고 요청할 것은 당당하게 요청하며 맞설 것은 강력하게 맞서나가자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담대한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자세를 통해 한일관계가 터널의 출구를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가 추동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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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우수근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상하이 화동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거친 뒤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미국인의 발견>, <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 <한국인 우군의 한‧일의 장벽이란 무엇인가>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