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게임의 법칙' 재구성하려면
[정욱식 칼럼] 북한, 포괄적인 일괄타결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北美 '게임의 법칙' 재구성하려면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명(正名)'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 핵문제를 '북핵 문제'라고 부르면 한 쪽 눈으로만 문제를 보는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의 비핵화'로 부르면 정작 한반도 비핵화가 멀어지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들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 윤곽을 공개한 '비핵화 정의 문서'를 두고 '빅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렇게 명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오명(誤名)'에 해당된다. 왜 그럴까?

빅딜인가 일방적 요구인가?

'빅딜'이라는 용어가 성립하려면 양측의 요구가 통 크게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볼턴이 공개한 내용에는 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비핵화 정의 문서'에는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비롯한 핵시설의 폐기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일반적인 비핵화의 의미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상응 조치다. 볼턴은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김정은은 엄청난 경제적 미래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위치의 부동산을 얻는다는 것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추측건대, 그가 말한 "좋은 위치의 부동산"이란 트럼프가 강조한 북한의 지리경제적 위치, 즉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경제대국이나 자원부국으로 둘러싸인 위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정확한 의미를 떠나, 이건 "비핵화는 경제적 흥정물이 아니다"라는 북한의 오랜 입장과 충돌한다. 동시에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비핵화+알파(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폐기)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코 '빅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지적에 반문이 나올 수는 있다. 미국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고, 그래서 '비핵화 문서'에는 그 정의와 목표를 담은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빅딜'에는 한참 못 미친다.

'비핵화 빅딜'이 되려면 미국은 자신의 요구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 위협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내용도 담았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 사용 및 그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과 전략 자산을 한국에 배치·전개·경유하지 않겠다는 내용 정도는 포함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볼턴의 발언 속에선 이러한 내용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빅딜'이 아니라 '노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3월 1일(현지 시각)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심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모든 영변 핵시설 폐기 및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영구 중단 명문화의 상응조치로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입니다"

이는 미국은 '빅딜'을 선호하고 북한은 '스몰딜'을 선호한다는 일반적인 평가에 의문을 표하게 만든다. 북한이 현 단계에선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핵탄두 장착 미사일의 폐기 합의가 준비되지 않았던 만큼이나, 미국도 대북 안전보장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법칙' 재구성하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비핵화+알파(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폐기)'로 굳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3월 11일 네 가지 입장을 밝혔다.

첫째는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선호해온 단계적 해법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둘째는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지 아무것도 합의될 수 없다"라며 포괄적인 일괄타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비핵화 대상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핵연료 사이클의 모든 영역을 제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제거에 대해 완전하게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이러한 협상을 위한 "외교의 문은 열려 있다"며, 비핵화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2021년 1월)에 달성하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목표 실현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볼턴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불안감을 표하던 참모들을 "걱정하지 말라. 협상은 붕괴될 것이다"라며 안심시켰다는 3월 2일 자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마음에 걸린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19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를 붕괴시킨 주역 가운데 한명이었다. 당시 그는 "우라늄 농축 문제는 제네바 합의를 깨부술 수 있는 해머"라고 말했었다. 또한 지난해까진 그가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되었다가 올해 들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미국 언론들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비핵화 자체도 대단히 힘든 과제이다. 그런데 미국은 설상가상으로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얹고 있다. 재래식 군사력이 갈수록 노후화되고 있는 북한에겐 사실상의 무장 해제 요구로 비춰질 법한 요구이다.

더구나 생화학무기의 확인·검증·폐기는 대단히 까다롭고 시간과 비용도 엄청나게 요구된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미국이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북한이 생각을 달리하지 않으면 볼턴의 장담이 실현될 수도 있다. 단계적 해법을 고수하지 말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포괄적인 일괄타결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여전히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영변 이외의 핵시설 문제와 비핵화의 핵심인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합의도 늦추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들 사안에 빠르게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핵심적인 상응 조치, 즉 대북 제재의 완전한 해제, 안전담보를 위한 군사적 조치,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을 동시에 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다른 변수들이 끼어드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로 하여금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 역시 막중하다. 우선 상기한 내용을 중심으로 담판을 추구할 수 있는 협상 구도, 즉 남북미 3자나 남북미중 4자, 혹은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함한 6자 회담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외 중재자'가 아니라 '장내 협상당사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동시에 북한의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문제는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남북대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점차적으로 풀어가겠다고 미국에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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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