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제재가 유발한 北인권 문제는 왜 침묵하나
[정욱식 칼럼] '제재' 아닌 '공감'이 핵문제 해결의 첩경
美경제 제재가 유발한 北인권 문제는 왜 침묵하나
경제 제재에는 지독한 역설이 존재한다. 먼저 제재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파괴무기(WMD) 저지를 주된 목표로 삼지만 정작 제재 자체가 WMD보다 더 큰 인도적 참사를 야기해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라크다. 1990~91년 1차 걸프전 직후부터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축출될 때까지 12년 간 가혹한 경제 제재를 받았던 이라크에서는 매달 5000~60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약 300만 명 안팎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WMD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가 필수 의약품을 비롯해 생필품 상당 부분을 수입할 수 없었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300만 명의 사망자는 역대 모든 WMD로 인한 사망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정치학자들인 존 뮬러(John Mueller)와 칼 뮬러(Karl Mueller)는 "진정한 대량파괴무기는 바로 경제제재"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두 번째 역설은 인도적 참사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문제시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의 가공할 살상 능력에 대한 경각심에 압도된 나머지, 정작 인도적 참사를 야기해온 제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문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제재는 '집단이 집단에 가하는 고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보건·위생상의 고통을 가하면서 '잘못을 인정하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잘못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과 무관한, 그래서 무고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보단 제재가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더 높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세 번째 역설은 제재를 부과하는 주된 국가들이 다름 아닌 핵무기 보유국들이라는 점이다. 제재 부과 주체는 개별 국가가 되기도 하지만 갈수록 선호되고 있는 방식은 역시 유엔 안보리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안보리에서 사실상 제재 권한을 갖고 있는 상임이사국들은 5대 핵보유국들이기도 하다. 이들 가운데에는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해본 나라도 있다.

이는 제재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효과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어떤 나라가 핵을 만든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나라가 바로 그 핵을 갖고 있다면, 제재를 받는 쪽에선 당연히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재를 받는 나라는 굴복하기보다는 저항하고 버티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북 제재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지난주 미국을 방문해 국무부 관리들을 두루 만났다. 그들은 제재를 통한 압박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낸 힘이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대북 제재를 계속 가하면 결국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제재는 일종의 고문입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 고통을 감수하면서 저항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든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왔죠. 그런데 제재를 가하는 나라들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데, 5개국 모두 핵보유국들입니다. 북한이 제재를 부당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래서 제재가 효과를 보려면 제재를 완화하고 해제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김정은에게 비핵화가 강요된 굴욕이 아니라 명예로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제재 때문에 대화에 나왔다거나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믿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고문을 받는 사람이 고문이 중단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 고문에 결단코 굴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다.

지금까지 대북 제재는 두 가지 맥락에서 이뤄져 왔다. 하나는 '당근'으로 불려온 설득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제재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채찍'으로 불려온 강압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더 심각한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게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여 새로운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굳이 심리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언행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공감'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북한을 상대로는 이와 같은 검증된 방식을 외면해왔다. 비핵화에 실패해온 가장 본질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이는 거꾸로 비핵화로 가는 첩경이 제재 완화·해제를 통한 북한과의 공감 형성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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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