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에 대한 '가짜 뉴스', 이게 팩트다!
[장석준 칼럼] OECD 37개국 선거제 들여다보니…
선거제도에 대한 '가짜 뉴스', 이게 팩트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의 선거제도 개혁 합의안이 나왔다. 네 당은 이 안을 공수처 신설 등 다른 개혁 법안과 함께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패스트트랙')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직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이 안을 추인하지 않았고 패스트트랙에 올릴지도 최종 결정되지 못했지만, 촛불 항쟁 이후 오랜 선거제도 개혁 논의 끝에 이런 합의안이 나온 것은 분명 큰 성과다.

합의안은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이 바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다. 이른바 '50%' 연동형이다. 정당 득표율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정당 득표율에 더 가깝게 의석을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100%'(이런 수식을 붙이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길 한사코 거부한 탓에 이런 복잡한 타협안이 나왔다.

하지만 좀 복잡하기는 해도 현행 선거제도보다는 나은 개선안임에 분명하다. 선거의 비례성 원칙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됐기 때문이다. 우선 비례대표 의석이 47석에서 75석으로 늘었다. 그리고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이 서로 전혀 상관없는 지금의 병립형이 아니라 어쨌든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각 당 전체 의석을 조정하는 (준)연동형이다. 비록 불완전한 형태일지라도 비례성이 중심이 된 선거제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뗀 셈이다.

OECD 국가 중 절대 다수가 완전한 비례대표제 지향

왜 지금 시점에 선거의 비례성을 강화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보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의 요청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혹은 그 반대 사례)는 부차적인 고려 요소다. 나는 올해 초에 이 지면에서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관련 기사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할 근거, 촛불에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나라 선거제도의 전반적 추세를 들어 비례성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싶다. 여전히 이게 개혁의 중심 이유는 될 수 없지만, 해외 선거제도 현황과 동향에 관해 워낙 가짜 뉴스가 판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안 꺼낼 수가 없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을 수포로 돌리려 하는 자유한국당과 극우 언론들이 이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자, 그럼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팩트 체크'를 한 번 해보자. 검토 대상은 일단 OECD 회원국으로 한정하겠다. 이른바 '선진국'들이다. 사실 좋은 접근법은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비교한다면서 부자 나라들만 포함시키는 사고방식에는 경제가 발전해야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이 글에서는 일단 편의상 OECD 가입 국가들의 선거제도에 초점을 맞추겠다. 어쨌든 이들 국가가 전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한국과 사회 상황이 가장 엇비슷한 나라들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우선 가장 명확한 사실은 OECD 37개 국 중 대다수가 비례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의 26개 국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이스라엘, 터키, 뉴질랜드, 칠레, 콜롬비아.

물론 지역구 의석도 있으면서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각 당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독일 같은 나라도 있고, 지역구 없이 정당투표로만 의석을 결정하는 이스라엘이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는 '완전한' 비례대표제다.

이들과 달리 아일랜드의 경우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단기 이양식 투표(STV)라는 독특한 선거제도다.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의원을 선출하되(이른바 '중, 대선거구제') 유권자가 한 후보에게만 투표하지 않고 여러 후보에 대해 선호도를 기입하는 방식이다. 정치학자들은 이 방식 역시 비례대표제의 한 형태라 분류한다. 실제로 이 제도 덕분에 아일랜드 의회는 온건 다당 구도를 유지해왔다.

한편 위의 나라들 가운데 그리스와 터키는 좀 단서를 달아야 한다. 그리스는 정당투표로 의석을 나누지만 제1당에게 50석을 추가로 할당한다.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제1당의 안정적 집권을 보장하려는 절충형 제도다. 옆 나라 터키의 경우는 정당이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는 최저 득표 기준이 무려 10%다. 역시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골간이되 원내 진입 문턱을 높여 비례성을 다시 제한하는 묘한 제도다.

그럼에도 위 26개 국의 선거제도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어쨌든 선거의 비례성을 최대한 보장하려 한다는 점이다. 26개 국이라면 OECD 회원국 가운데 70%가 넘는다. OECD 국가의 절대 다수가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지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립형에서도 비례성 강화가 대세

OECD 국가 가운데는 우리처럼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가 전혀 별개인 나라들도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독일, 뉴질랜드 등의 연동형(혼합형)과는 달리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각 당의 전체 의석 수가 결정되지 않는다. 정당투표 득표율은 각 당의 비례대표 의석 수만 결정할 뿐이다. 이름 하여 '병립형'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헝가리, 리투아니아가 이런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위의 나라들 모두 전체 의석에서 비례대표 의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즉, 어느 나라든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보다는 선거의 비례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은 국회 총 300석 중 비례대표 의석이 47석이다. 비율로 따지면, 약 16%밖에 안 된다. 반면 이웃 나라 일본은 중의원 총 475석 중 비례대표가 180석이다. 약 38%가 비례대표다. 멕시코는 그 비중이 더욱 높다. 하원 500석의 40%인 200석이 비례대표다.

나머지 세 나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의석의 거의 절반을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총 141석 가운데 지역구 선출이 71석이고 비례대표 선출이 70석이다. 헝가리도 마찬가지다. 전체 199석 중 93석을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더 나아가 이탈리아는 하원 총 630석에서 398석이 비례대표 의석이다(약 63%). 지역구 선출 의석 232석보다 훨씬 많다.

병립형이라고 다 같은 병립형이 아닌 것이다. 다들 한국보다 선거의 비례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는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이 중심이고 지역구 선출 의석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중간 결론이다. OECD 37개 국 중 26개 국이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지향한다. 그리고 5개 국이 병립형임에도 한국보다 선거의 비례성이 훨씬 높다. 합쳐서 31개 나라가 우리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OECD 회원국은 다섯 나라,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뿐이다.

이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독특한 경우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하원은 소선거구제-선호투표로 뽑고, 상원은 대선거구제-단기 이양식 투표로 뽑는다. 하원의 경우는 결선투표의 또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선호투표를 실시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승자독식 선거제도다. 반면 상원은 위 아일랜드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은 일종의 비례대표제에 따라 구성한다. 하원의 승자독식 시스템을 상원의 높은 비례성으로 보완하는 셈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는 나라는 단 넷이다. 한국보다 비례성이 낮은 선거제도를 취하고 있는 OECD 회원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이 네 나라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장점? 후진성!

OECD 회원국 가운데는 거의 예외적이라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지닌 이 네 나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은 고려해야 할 여러 요청 중 단지 하나일 뿐이며 이 네 나라는 비례성 대신 다른 더 중요한 장점을 갖춘 선거제도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비례성 측면에서 극히 후진적인 선거제도를 아직 개선하지 못한 것일까?

굳이 남의 나라 선거제도를 놓고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돌연 비례대표 의석을 다 없애는 방안을 선거제도 개혁안이랍시고 내놓았기 때문이다. 위 네 나라가 바로 비례대표제 없는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다. 자유한국당은 OECD 국가 중 유독 네 나라만 채택한 완전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우리의 미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내가 보기에 저 네 나라는 현대 사회 현실과 정치 제도 사이의 모순과 충돌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국가들이다. 사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가장 단순한 이유는 현대 사회가 더욱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다당 구도 속의 정당 간 투쟁과 협상, 타협이 현대 사회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구에 반응하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양당 중심 정치를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양당 구도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를 반영할 다른 방식을 찾게 된다. 거대 정당 안에 사회적 토대가 크게 다른 분파들이 공존하며 투쟁하는 방식이다. 가령 영국 보수당 안에 열혈 브렉시트 찬성파와 유럽연합 지지파가 공존하고 노동당 안에 제러미 코빈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과 '제3의 길' 추종자들이 함께 있는 식이다.

그러나 당 내 분파 투쟁은 정당 간 경합, 협상보다 투명하지 않다. 더구나 사회 세력 간 갈등이 당 내 분파 투쟁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당 내 정치가 지나치게 과열된다. 이 때문에 영미식 선거제도가 강력한 거대 정당의 토대가 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완전히 뒤집히고 만다. 브렉시트를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강한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주류 리버럴과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의 생각이 전혀 다른 탓에 트럼프 정부에 맞설 혁신적인 정책을 좀처럼 내놓지 못하는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에서도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힘을 얻는 중이다. 개혁 방향은 대동소이하다. 선거의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의 현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소선거구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신 정당 지지 민심을 의석에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겠다고 했다. 대안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실시하는 선호투표제를 언급했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집권한 지 3년이 넘도록 선거제도 개혁에 미적대 지금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영국에서도 1980년대에 마거릿 대처가 과반 안 되는 지지율로 전횡을 일삼는 것을 경험한 뒤부터 선거제도 개혁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나라라 개혁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영국 국민에게도 이미 비례대표제는 낯설지 않다. 가령 스코틀랜드 의회나 웨일즈 자치의회처럼 최근 신설된 대의기구는 하나같이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의회, 웨일즈 자치의회 모두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따른다.

합의안에서 더 후퇴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OECD 회원국에 한정해 전 세계 선거제도의 추세를 살펴봤다.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눈에 확 띄는 첫 번째 흐름은 비례성 강화이고, 이 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의 선거제도 개혁 합의안은 현대 민주주의의 풍향과 일치한다.

비록 복잡한 게 흠이지만, 이 흠은 비례대표제 탓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지향하면 할수록 선거제도는 단순해진다. 합의안의 약점은 기존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와 절충하려다 생긴 흠결이다. 모르긴 해도 이번에 비례성을 확대한 합의안을 관철하게 되면, 민심은 다시 더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일단은 이 정도 합의안이나마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더 전 지구적인 예외 사례보다는 보편 경향 쪽에 근접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 구축과 함께 이는 2016-17년 촛불 항쟁이 1987년 6월 항쟁에 준하는 역사적 변화의 계기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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