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게 뭘까?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⑱숨겨진 갈등
서운한 게 뭘까?

1월 16일 새벽 퀸즈 타운 캠핑장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오늘도 만능 키의 텐트 지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나기로 했어요?” 추니도 이미 깨어있었나 보다. “6시라고 했을걸.” 텐트 머리맡 그물망에서 휴대폰을 꺼내보니 5시였다.
“한 시간 더 잡시다.” 내가 말했다.
“오늘도 버스에 자전거를 잘 실어줄까요.” 추니가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타악. 탁∼탁.’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무때기로 텐트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자아∼, 이제 일어납시다." 만능 키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방금 그 소리는 분명 만능 키가 낸 소리였다.

“아니, 왜 그래요?” 순간 인천 총각의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 몇 시에 일어나기로 했어요?" 텐트 속 인천 총각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 만능 키는 쥐죽은 듯 아무 대답이 없었다.

“6시에 일어나기로 했잖아요. 그러면 그때 깨워야지요. 그리고 왜 텐트를 두들기는 거예요.”
“….” 텐트 밖 만능 키의 움찔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어휴,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미안하지요” 만능 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듯 작게 들렸다.
“나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오늘 몇 시에 일어나야 되는지를.” 텐트 속 인천 총각은 바깥을 향해 공격을 계속 해댔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그게, 그런 게 아니고요. 삐삐님도 벌써 일어난 것 같고 또 오늘 아침은 일찍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요. 아무튼 미안하네요.” 만능 키의 해명과 사과가 이어졌다.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서운한 게 많아요. 정말이지.” 인천 총각이 뭔가 속내를 내비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말이 오가지 않았다.

“인천 총각님이 서운했던 게 뭐예요?” 추니가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
“엊그제 만능 키님이 뭐 얘기한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인천 총각님이 입고 있는 상의 있잖아요.”
“푸른색 겉옷.”
“그거. 차량 운전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색깔이잖아요”
“좀 그런 편이지.”
“그래서 만능 키님이 가져온 조끼를 입으라고 줬거든요.”
“어, 형광 색 조끼”
“문제는 인천 총각님이 그 옷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한 거예요.”
“그럼 그만이지.”
“그런데 자꾸 권했거든요.”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때 인천 총각님 눈치를 보니까 기분이 좀 나빠 보이더라고요.”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맘에 안 든다고 하면 그만이지.”
“근데 뭐,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 들었을까요?”
“하긴 지도를 받는 기분. 허허.”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저도 말조심해야겠어요.” 추니가 말을 이었다.
“뭘?”
“어제 인천 총각님한테 뭐 한마디 했는데.”
“그게 뭔데?”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몇 번 추돌할 뻔했거든요.”
“급브레이크?”
“그래서 미리 예고 좀 해달라고 했죠.”
“듣기에 따라서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암튼 제 추측이에요.”
“하기야 나이 들면 별것도 아닌 걸 갖고 기분 상하는 경우가 많아. 과거 한창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도 가슴에 맺히고 자꾸 곱씹게 되지. 그리고 한 번 토라지면 제자리에 돌아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또 어제 퀸즈 타운 호숫가를 지나서 쇼토버 강 쪽으로 가려다가 공사 중이라서 되돌아오는데 인천 총각님은 더 타고 싶다며 혼자 호수 건너편으로 갔잖아요.”
“그랬지.”
“그때 같이 안 가서 서운한 걸까요?”
“아니, 어제는 각자 자유롭게 라이딩 하기로 했잖아.”
“물론 그렇지요. 근데 만능 키님은 우리와 함께 라이딩을 했으니 결과적으로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을 거란 말예요.”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그리고 술값 말이에요.”
“와인 값?”
“인천 총각님은 술도 안 마시는데 공통 경비에서 계산하고 있잖아요.”
“처음부터 그랬지.”
“인천 총각님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회계를 맡고 있으니 얘기를 했을 텐데.”
“하여간 그건 좀.”
“사실 술 못 마시는 인천 총각님은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와인 값을 부담하는 게 맞아. 하지만 밥상 차려놓고 ‘건배’하면서 와인 잔 부딪히는데 인천 총각님만 빼놓을 수 없어서 무알콜 음료수도 한 병씩 곁들여 사다보니 공통 경비에서 지불했던 거지. 굳이 계산적으로 보면 인천 총각님이 손해는 아니잖아.”
“인천 총각님은 굳이 음료수를 마실 의향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해요.”
“그럼 그래야지. 그래서 처음엔 와인을 공통 경비로 계산하다가 인천 총각님 눈치가 보여 나중엔 만능 키님과 내가 둘이서 와인 값을 따로 계산했어. 그러니 서운한 게 없을 거여.”
“에효, 참”
“자, 이제 그만합시다.”

나는 침낭과 매트를 접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조금 전 상황을 모르는 체했다. 퀸즈 타운 캠핑장에서의 아침 식사는 썰렁한 분위기 탓에 누룽지 국물만 들이켰다.

캠핑장을 나와 퀸즈 타운 버스 승강장 옆 열 평 남짓 작업 공간을 찾았다. 엊그제 푸카키 마켓에서의 포장 경험을 살려 각자 자신의 자전거 앞바퀴와 페달을 빼고 핸들을 돌려 몸체에 바싹 붙이고 끈으로 금방 묶었다.


ckchoul@naver.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