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미세먼지와 '비민주적' 반기문 모시기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결정장애와 과잉행동 사이의 정치
'민주적' 미세먼지와 '비민주적' 반기문 모시기
얼마 전 환경문제에 천착해 온 동료들과 미세먼지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한 동료는 "미세먼지를 다루는 데 민주주의는 너무 무기력해. 권위주의적 강제가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한 통제로 베이징 일대의 미세먼지를 개선한 사례를 들어, 긴급한 환경 문제에 일사분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해답을 안다고 믿고 일거에 해결하자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민의 조직된 의견에 기초해 지루한 논의 과정과 어정쩡한 타협도 감수하는 민주주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동료 역시 민주주의가 미세먼지를 다룰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했지만 이유는 달랐다. 그는 문제를 실체적으로 다뤄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이리저리 쏠리는 여론에 매달려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의 즉흥성을 지적했다. 과잉 동원된 미세먼지 중국 책임론과 효과가 의심되지만 여론을 좇는 행정부, 지방정부의 대증적 정책-'인공강우'(문재인 대통령)나 '옥외 공기청정기'(환경부), 광촉매 도료(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예로 들었다. 크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사려 깊은 정치적 이성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에게 지적 숙고 없이 여론에 휘청대는 정치는 위태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동료의 불만은 미세먼지 앞에서 번민을 거듭하는 결정장애 또는 포퓰리즘적 충동과 자극에 휘둘리는 과잉행동이라는 딜레마 사이에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가 놓여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민주적 결정이 더 강하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통치형식이다. 통치란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뭔가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정부 역시 공적 결정을 통해 강제를 실행한다. 민주주의를 번민만 거듭하는 햄릿증후군에 비유하는 것은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는 공적 강제의 유무가 아니라 정부에게 강제에 대한 책임성을 부과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민주주의는 완벽하거나 만능이 아니다. 그러나 책임성 있고 좋은 정치과정을 밟으면 어느 체제보다 더 넓고 공고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 수 있다.
 
결정과정이 민주적이기 위해서는 유권자와 그 대표들이 공익을 염두에 두고 심의‧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들이 냉정하고 합리적인 계산을 거쳐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문제의 성격, 정책이 불러올 비용과 편익 등)이다. 분석과 정책 설계는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를 잘 아는 관료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잘못된 정보로부터 벗어나 문제를 꼼꼼히 검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당은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집약하고 전문가와 협력해 문제를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구체화한다. 정책의 집행과정에서도 관료를 지휘, 감독해 정부의 신뢰와 책임성을 높인다. 

정당을 중심으로 전문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과정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당장 폭포처럼 쏟아지는 포퓰리즘적 열정을 냉각시켜 문제 해결의 이성적 방법을 찾는 과정을 결정장애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시민에게 위협이 되는 문제에 적절한 자원을 배분하는 숙고의 시간은 민주주의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통치의 능력 

최근 고농도 미세먼지 관련, 여론을 지배하는 것은 중국 책임론이다. 문재인 정부가 여론을 추수해 중국을 지목했을 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로 압력을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주장을 과학적 근거나 전문가의 분석으로 뒷받침한 것이지 모르겠다"며 "(미세먼지에 대한)종합적인 관리는 과학적 태도에 근거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여론정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겐 부아가 치밀겠지만, 반론할 근거는 궁색하다. 

미세먼지 등 환경정책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복잡하고 중요한 정치문제이다. '여론'이라는 상식적 이해나 편견들로부터 이성적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사회적, 국제적 협력을 통해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입관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사실과 논리로 다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의 원인과 위험에 대해 나라 안팎으로 공신력을 갖는 분석이나 조사 결과를 제출하지 못했다. 문제를 실체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때, 정책은 산만하고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회경제 문제는 얼마간 득을 보는 사람과 해를 입는 사람으로 나눠지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그 사람이 어디 살든, 어떤 지위에 있든 보편적인 위험이다. 동시에 미세먼지는 시민 생활의 중심인 에너지의 생산, 사용에 관한 것이기에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공평한 해악이다. 

미세먼지 절감이라는 공적 목표를 합의하기는 쉽지만, 시민들에게 사익을 희생해 '불편한 행복'을 선택하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광범위한 공적 성격에 걸맞은 민주적 정치과정으로 사회적 동의와 협력을 얻지 못하면 이 문제는 집합행위의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미세먼지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정부를 민주적이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통치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국가적 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청와대


민주적 정당성 없는 미세먼지 범국가적 기구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3월 들어 고농도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는 기구의 명칭, 위상, 성격도 정리되지 않은 "미세먼지 범국가적 기구(또는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하겠다며 위원장으로 반기문 전(前) 유엔사무총장을 갑작스레 임명했다. 

조직은 아직 얼개도 없는 데 사람부터 인선하는 것은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광범위한 공적 성격을 갖는 범국가 기구가 그에 부합하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췄는지 여부다. 청와대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제안을 대통령이 적극 수용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입법부는 물론, 심지어는 집권여당도 이번 결정에서 소외됐다. 국회 환경노동위는 물론 주요정당 사이에서도 이런 기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나 의사결정과정은 전무했다. 입법부와 민주적 정치과정을 우회한 기구가 범국가(또는 범사회)의 명칭과 위상, 권한을 갖겠다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더욱이 정부에는 미세먼지 대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가 있다. 미세먼지특위는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미세먼지 특별법에 근거한 기구이다. 법에 의해 이제 활동을 시작한 범정부 기구가 있음에도 입법적 기초도 없는 미세먼지 범국가 기구가 왜 필요하고, 무슨 일을 하며, 여기에 세금을 쓰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미세먼지 재난까지 운위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급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민주정부의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개선하겠다면 무엇보다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잘 이행하는 책임성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서 더해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정치‧사회적 협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제1의 통치기관인 의회와 정당들이 중심이 되어 다뤄져야 한다. 이래야 범국가 기구라는 위상에 맞고, 제도적 조건도 갖출 수 있으며, 넓고 공고한 사회적 협력 기반 역시 형성할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 지금처럼 양극화된 정치환경에서 대통령이 적폐청산 같은 적대적 기조에서 벗어나 협력을 위해 전력을 다해도 초당적 협력을 기대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와 정당을 우회해 대통령 명령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그 일을 진짜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위장으로 일 하는 척하거나 누군가에 책임을 돌리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이제 곧 미세먼지 추경을 둘러싸고 공방이 격렬할 것이다. "문세먼지 vs 황세먼지" 같은 저열하고 적대적인 대립이나 적폐청산 같은 복수혈전의 패턴을 반복한다면, 숨 쉬는 공기는 물론이고 정치의 모든 영역이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고 했다. 냉소적이지만 미세먼지의 정치적 성격을 명쾌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적인 미세먼지'가 불모의 적대라는 통치의 패턴을 책임 있는 협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분명 기회는 될 수 있겠지만 권한과 책임을 가진 집권세력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 한 패턴을 바꾸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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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