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내딸은 살아있을텐데…"
[현장] 삼성본관 앞 삼성 반도체 노동자 추모주간 선포식
2010.03.02 17:53:00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내딸은 살아있을텐데…"
2일 점심시간 무렵 서울 강남역 4번 출구로 나오던 행인들은 낯선 광경에 저마다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출구 근처에 위치한 삼성 본관은 주위를 붉은 띠로 둘러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고, 그와 길 하나를 두고 등지고 선 30여 명의 사람들이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쓰인 흰 천에 저마다 붉고 푸른 손도장을 찍고 있었다.

이달 6일은 19살 때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3년 뒤인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3주기가 되는 날이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등은 2일 삼성 본관 앞에서 황 씨와 같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으로 숨진 노동자들의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반도체 노동자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금속노조 등이 2일 서울 강남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반올림 등은 고 황 씨의 죽음 이후 진상규명과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지만 지금까지 주류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던 한 지역 방송 프로그램이 회사 상부로부터 취재 중단을 지시받는 일이 벌어지면서 '삼성 눈치보기'에 대한 논란을 키웠다.

이날 연대발언에 나선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초일류기업인 삼성이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이야기할 때 뒤편에서 노동자들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고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에는 탄압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삼성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딸은 백혈병에 걸리지도,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삼성은 발암물질은 있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는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삼성의 거짓말을 이건희가 시켰는지, 이재용이 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둘 모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들이 정직하다면 모든 국민이 정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테드 스미스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ICRT) 활동가 ⓒ프레시안(김봉규)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ICRT)에서 활동하는 테드 스미스 씨도 함께 했다. 스미스 씨는 마이크를 잡고 "1960년대에 들어선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도 처음에는 청정산업이라고 홍보하고 유해물질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며 "전자산업 전반에서 7만 개가 넘는 독성 물질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 중 안전테스트를 받은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스미스 씨는 "전자산업에서 독성물질에 노출돼 일어나는 암이나 선천성 기형 등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대만의 반도체회사, 한국의 삼성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삼성 역시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이날 오후 고 황 씨와 마찬가지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민웅 씨와 고 이숙영 씨가 안치된 경기 화성 납골당을 추모방문하는 것으로 추모주간 행사를 시작했다. 5일까지 진행되는 추모주간 동안 삼성공장 앞 1인 시위와 촛불 문화제,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리는 추모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이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쓰인 천에 손도장을 찍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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