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정부의 '세 달 연속 주 64시간 노동' 다루는 법
문재인 정부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논의 톺아보기
2019.11.06 09:54:15
노동존중 정부의 '세 달 연속 주 64시간 노동' 다루는 법

"내년에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 시행됨에 따라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9년 마지막 국회가 열린 10월 31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가경쟁력 정책협의회에서 "탄력근로제 등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에 주력하겠다고" 다시 한 번 발표했다.


노동계가 "과로사 기준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며 강하게 반대하는 탄력근로제 연장 법안. 이 법안의 국회 통과에 '노동 존중' 정부가 전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뿐 아니라 거대 양당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최소 6개월로 늘리는 데 동의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탄력근로제 연장에 반대하던 근로자위원을 해촉한 끝에 단위기간 6개월 연장에 합의했다. 탄력근로제 연장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여느 때보다 높다.


탄력근로제의 내용과 최대 단위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날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까. 


가산 수당 없는 연장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탄력근로제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을 정하고, 해당 기간의 특정 주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여 주 평균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연장 노동에 붙는 통상임금 0.5배의 가산 수당 지급 여부도 주 40시간이 아니라 탄력근로제로 결정된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넘겨서 일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탄력근로제로 결정된 특정 주 노동시간에 근로기준법상 한 주 연장 노동 제한 시간인  12시간을 넘겨 노동을, 즉 일을 시킬 수 있다. 


따라서 탄력근로제는 사용자 입장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정 기간의 연장 노동에 가산 수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경우와, 특정 기간의 장시간 노동을 늘릴 경우 등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는 사례를 통한 설명이다. 단위기간은 현행 최대인 3개월로 가정했다.


첫째 방향과 관련하여 3개월 단위기간의 주 평균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맞추는 경우를 보자. 3개월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 주 노동시간을 첫 달 30시간, 둘째 달 40시간, 셋째 달 50시간으로 정하면, 셋째 달 주 연장 노동 10시간에 가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주 평균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방향과 관련하여 3개월 단위기간의 주 평균 노동시간을 최장 노동 주 52시간에 맞추는 경우를 보자. 현행 3개월 탄력근로제는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정할 시, 최장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다. 여기에 근기법상 주 연장 노동 제한 12시간을 더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주 최장 노동시간은 64(52+12)시간이다.


적게 일하는 기간의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잡으면, 첫 한 달 반은 주 40시간, 다음 한 달 반은 주 64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최장 노동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법문이 그렇다. 탄력근로제가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한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현행 3개월 탄력근로제는 일 최장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한다. 따라서 주 64시간 노동은 주 5일 12시간 일하고, 하루 4시간을 더 일한다는 뜻이다. 근기법상 8시간 연속 노동에는 1시간 휴게, 4시간 연속 노동에는 30분 휴게가 부여된다. 즉, 하루 12시간 노동 시 실제 직장에 머무는 시간은 13.5시간이다. 밤 10시 반에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출근하면, 직장에 13.5시간 머물게 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로 확대하면 과로사 기준 넘는 장시간 노동 가능


이제 현재 정부와 거대양당, 경사노위가 동의하는 '단위기간 3개월'에서 6개월(26주)로 연장하는 경우를 보자.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한 기간은 당연히 두 배로 늘어난다. 적게 일하는 기간의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잡으면, 13주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과로사 기준은 12주 연속 주 60시간 노동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경사노위가 말하는 보완책인 퇴근과 출근 사이 11시간 연속 휴게를 보장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주 5일 동안 밤 10시에 퇴근해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출근하면 11시간 연속 휴게는 보장된다. 이 경우 휴게시간을 제외한 실제 주 노동시간은 57.5(11.5X5)시간이다. 하루 더 출근해 6.5시간 일하면 주 64시간이 채워진다. 13주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한 것은 똑같다.


게다가 한 의원안과 경사노위안에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 11시간 연속 휴게를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 임금 삭감 등의 피해는 노동조합 없는 사업장 노동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탄력근로제 도입 조건은 현행과 개정안 모두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노동조합 대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 대표가 사용자와 제대로 된 교섭을 하기는 어렵다.


여당이 쏘아 올린 탄력근로제 연장, 반대 입장 밝힌 장관 퇴임 후 정부 공식 입장으로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이러한 탄력근론제 개정안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온 것일까.  


가산 수당과 장시간 노동을 고무줄 식으로 만드는 탄력근로제는 2018년 7월, 300인 사업장에서 최장 노동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이 최장 노동 주 52시간제의 보완책이라며, 재계의 오랜 요구였던 탄력근로제 연장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논의 시작의 총대는 여당이 멨다. 최장 노동 주 52시간제 300인 사업장 시행을 한 달여 앞둔 6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당시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홍 전 원내대표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식사를 갖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다.


정부 내 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영주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홍 전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 취지에 어긋난다"며 맞섰다. 그러 김 당시 장관 "전반기를 열심히 뛰었고 체력이 소진됐다"며 2018년 9월 퇴임하면서 정부·여당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한 달여 뒤인 10월 정부는 김동연 전 부총리가 주재한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탄력근로제 연장 방안을 올해 안에 구체화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탄력근로제 연장과 관련해 재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노사가 대립하는 이슈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체인 경사노위 출범을 한 달여 앞둔 시기였다.


▲ 민주노총이 국회 앞에서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과 비정규직, 여성, 청년 근로자위원의 탄력근로제 연장 반대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탄력근로제 연장이라는 ‘공’을 떠앉은 경사노위는 출범부터 삐꺽거렸다. 2018년 11월 경사노위는 민주노총이 없는 채로 출범했다. 2019년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안이 부결되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이 확정됐다. 탄력근로제 연장,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노동 개악" 반대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경사노위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비정규직, 여성, 청년 대표 4인으로 꾸려졌다.


그렇게 출범한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이 나왔다. 재계가 탄력근로제 연장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4인의 근로자위원 중 합의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한 사람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 안에서 강성으로 통하는 본부장급 인사 2명을 제치고 직접 문구를 조정하며 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다. 


청와대는 "사회적 합의의 첫 사례"라며 합의안을 추켜세웠지만, 청와대가 따른 샴페인 거품이 꺼지기도 전, 일이 틀어졌다. 2019년 3월 비정규직, 여성, 청년 근로자위원 등 3인이 합의안에 반대하며 경사노위 본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경사노위 본회의 의결을 위해서는 각 이해관계자 위원회 위원 1/2 이상의 의결이 필요하다. 합의안이 경사노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의결되지 않은 합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후 탄력근로제 연장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주요 법안 중 하나로 거론됐다. 그러나 "경사노위 합의안대로 진행하자"는 민주당과 "단위기간 1년으로 확대, 선택근로제와 재량근로제 확대, 주휴수당 폐지 등 더 세게 가자"는 한국당이 맞선 탓에 탄력근로제 연장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반대 위원 해촉 뒤 출범한 2기 경사노위, 첫 본회의에서 탄력근로제 연장 합의

지지부진하던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연장 법안 통과의 새로운 모멘텀이 마련된 건, 지난 10월다. 2기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합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2기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연장에 반대한 비정규직, 여성, 청년 근로자위원을 포함한 위촉직 위원 전원을 해촉하는 강수를 두며 출범했다. 근로자위원 3인의 빈자리는 탄력근로제 연장 합의에 나선 한국노총 중심으로 채워졌다. 비정규직 몫은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에게 돌아갔다. 여성 몫은 아직 공석이지만 한국노총의 추천을 받아 위촉할 예정이다. 현재는 근로자위원의 2/3, 앞으로는 3/4이 한국노총에 배당된 셈이다.

2기 경사노위는 10월 11일 1시간여 진행된 첫 본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문 위원장은 다시 한번 합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0월 31일 2019년 마지막 국회가 열렸다. 같은 날 정부도 탄력근로제 연장 법안 통과를 국회에 주문했다.


▲ 2기 경사노위 첫 본회의에 앞서 손을 맞잡고 서 있는 위원들. ⓒ프레시안(최용락)


탄력근로제 연장 논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노동 존중 없었다

탄력근로제 논의 과정을 돌아보면, 정부는 노동계의 반대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력화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노동 문제 해결의 중요한 방책이자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그 위상을 존중하겠다"며 출범시킨 경사노위 안에서도 노동 존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연대회의 정책위원은 "1기 경사노위 출범 당시 양대노총을 설득해, 경사노위에 비정규직, 여성, 청년 대표를 넣은 쪽은 청와대였다"며 "자신들이 만든 자리에 앉은 위원들이 탄력근로제 연장에 반대했다고 그 사람들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한 것은 (그들에게)  경사노위에 거수기 역할을 바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노동 존중을 말하던 정부라면,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으로 예상되는 문제점을 탄력근로제 연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오 위원은 "주 최장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것은 애초 일자리를 늘리자는 취지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한 것이었다"며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사람을 더 뽑는 것이 당연하고, 사람을 더 뽑는 것이 하청업체 등 중소기업에 부담이 된다면 대기업 원청의 이윤을 하청과 나누는 방식을 고민했어야지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과 임금 삭감 같은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한국사회와 노동>에 실은 연구보고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사정 관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를 "대기업을 하위 파트너로 삼는 국가의 관료적 결정에 구색을 맞추는 관제적 또는 관치적 코포라티즘(노사 협조 체제)"이라고 평가했다.


탄력근로제 연장 입장 발표, 경사노위 근로자위원 해촉 등 정부의 노력으로 탄력근로제 연장은 마침내 경사노위에서 합의됐다. 이제 공은 온전히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가산 수당 없는 연장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는 탄력근로제에 어떤 답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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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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