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 하나 못 꺼? 대구가 그렇게 대단한 모스크바야?”
[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18>
2019.11.09 11:02:39
"잔불 하나 못 꺼? 대구가 그렇게 대단한 모스크바야?”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 18장, 패배할 것 알면서 왜 싸우나

“박정희가 대구 갔다 왔댔디? 동태 파악됐니?”
김창동은 주먹탄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에 앉아서 두 손을 싹싹 비벼대며 한 건 물었다는 듯이 앞으로 가슴을 내밀며 물었다. 
“이재복 최남근을 만나고 오민균을 만났습네다.”
“고건 서울과 춘천에서구, 고 자가 또 대구를 다녀왔단 말이다. 세포들 조직 파악하러 간 기라우. 고 자는 피부터 다르디.”
“어뜨렇게 다르다는 겁네까? 피는 다 똑같지 않습네까?”
“확연히 다르디. 음험하구 복수심에 불타고 있디.”
“그라갔디요.”
“그라갔디라니? 너 동조하니?”
갑자기 김창동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의 성격은 예측불허였다. 편하게 얘기했다가도 불쑥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렇게 화가 나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말 상대는 둘러앉은 대원들 중 행동대장격인 이한필이었다. 이한필이 난로에 두 손을 쬐며 말대꾸를 하지만 그 역시 큰 의미를 두고 대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쌍통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것은 평소에도 그런 표정이어서 오해를 살 수 있을 뿐, 실제로는 의미없는 표정이었다. 무표정하고 냉소적인 모습. 대개의 정보부대 출신이 그랬다. 관록이 붙어서 평소에도 늘 화가 나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쁜 때도 그런 것이다. 표정이 없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김창동과 이한필은 둘 다 만주군 헌병대에서 근무한 하사관 출신이었는데, 살아온 경로도 비슷했고, 이북 출신이라는 점도 같았다. 1연대 정보팀 대원들은 대부분 일제 헌병 출신과 특수부대 출신들이었지만, 경찰서 사찰계에서 근무하다 파견된 자도 있었다. 김창동이 말했다. 
“내 고 자를 확실하게 캤단 말이디. 분명히 이재복이 심복이야. 세포 확장을 위해 각 부대에 손을 뻗친 게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보인다니까니.”
“고럼 잡아들이야디요?”
“아니디. 더 놀게 해야디. 물고기가 헤엄쳐다니는 모냥 지켜보는 게 재미있지 않네? 내 그물코는 엉성하지 않으니까니 함께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까지 싸그리 일망타진할 수 있디. 자넨 고런 전략이 부족한 기야. 이재복이 최남근 박정희를 만나고, 박정희는 오민균을 만나고, 이상진 이병주를 만나고, 하여간에 8연대 놈들은 춘천, 강릉을 거쳐오면 모두 벌겋게 물든다 이 말이다. 이 자들이 야산대 놈들과 접선을 해서 뒤집을 모냥인데, 내가 가만 놔둘 것 같네? 길목에 덫을 놓았다가 어느 순간에 탁 잡아채는 기야. 고걸 고 자들은 꿈에도 상상치 못할 기야. 만주 군대에서 같이 활동했대시니 고 자들은 날 동지로 알 기야.”
그는 혼자 열을 내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어떤 공명심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일단 놔두면 일 낸다, 그거 아닙네까?”
“자넨 척 보면 구만리누만. 고렇디. 대구가 문제란 말이디. 세포들의 주 보급 루트가 그곳이니까니 길목을 지키구 있다가 단칼에 내려쳐야디. 안그러면 욕먹는다. 또 폭동이란 말이디. 정말 그쪽 동리는 웬 빨갱이 새끼들이 그렇게 우굴거리나. 하나같이 물들지 않은 자가 없어. 배웠다는 놈들이 죄다 그 모냥이야. 문제 아니간?”
“꼭 그렇게만 보면 안되디요.”
“왜?”
“그들은 악에 받쳐있지 않습네까. 가족이 죽고, 집안이 쑥밭이 됐대시니 가만 있지 않갔지오. 박정희 역시 고렇디요.”
“빨갱이 새끼들은 세월이 가두 빨갱이야.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안되디. 일본군 시절 얼마나 치를 떨었댔나?”
“불이 꺼졌다 싶으면 다시 붙고, 또 꺼졌다 싶으면 다시 붙고 그랬디요?”
“고래, 고런 잔불 하나를 못끄네? 대구가 고렇게 대단한 모스크바네?”
“밤에 내려왔다가 낮엔 산악지대로 사라져버리니 그렇디요. 솜옷에 이 박히듯 박히니까니 소탕하기가 곤란합네다. 추위가 벌써 영하 이십도를 오르내립네다.”
“고따우로 말하지 말라우. 나는 영하 사십 도에서두 고 새끼들 잡으려구 밤을 샜다야. 만주 벌판이 보통 추운 곳이니? 거기 비하믄 여긴 열대지방이디. 이런 추위에 몇시간 매복하고 있는 기 뭐 대수니?”
대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과장이 좀 지나치다는 뜻이다. 김창동이 정색했다. 
“이 새끼들 왜 웃나? 진지하게 들으라우. 이한필이 정인택이 이희여이, 장복서이 노엽이, 이진요이, 이각보이, 박평래, 김안수 잘 들으라우. 영하 40도를 가리키는 한파 속에서 밤을 새는 잠복 근무 끝에 빨갱이 새끼들 잡아낸 비결, 고걸 노하우라고 하디. 고걸 말해주가서.”
그는 둘러앉은 대원들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임무는 국경지대에서 암약하는 항일 투사들을 잡는 일이었다. 항일 투사들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자·민족주의자로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분이 다르다고 해서 대립하고 분열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계가 모호할 뿐 그들은 결속되어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만이 공통된 인식이었다. 
김창동은 그들을 붙잡으면 두말할 것없이 공산주의자로 기록에 올렸다. 그러면 고과가 올라갔다. 김창동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체포된 자들도 공산주의 이론에 밝은 것이 아니어서 악다구닐 쓰면 통용되었다. 체포당한 자도 무산자계급 어쩌고, 일본군국주의 타도 어쩌고 하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서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는데, 그러다 보니 졸지에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론적 바탕을 갖춘 자는 그닥 없었다. 감상적으로 알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 쥐새끼 같은 놈들은 배가 고프니까니 비적떼가 되는 기야. 고래서 주민들의 원성도 높았디. 피해입은 주민을 꼬시면 성과를 올리디. 식량 훔쳐가는 지겨운 비적들을 밀고하면 절대 비밀을 보장하구 또 돈을 주갔다. 그래서 밀고가 들어오는데 하루에 너댓 건이 접수된 적도 있었다야. 고게 힘이 됐디. 밀고를 받고 암약하는 자들의 숙소에서 잠복근무를 하는데 만주벌판은 10월부텀 대지가 꽁꽁 얼어붙고, 불알도 돌덩이처럼 얼어붙는 기라. 하디만 사명감으로 하니까니 견뎌내는 거이디. 그 결과 2년간 50여건의 항일 조직을 적발했댔디. 그 공로로 오장으로 진급했다 이 말이디. 말이 오장이지 고게 얼마나 값지고 우러를만한 계급장인가? 일본군 오장이라믄 내 입장에선 별보다두 빛난다야. 보통학교도 다니는둥마는둥 하던 내가 천황폐하를 깍듯이 모시는 하사관이 되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갔나. 고래서 대일본군제국의 적대 연합군, 정확히 말하믄 소련군 간첩 두목을 기를 쓰고 체포했던 거이디. 고것은 지금 생각해두 꼭 영화같은 장면이다야. 고 자를 잡기 위해서 나는 고 자가 경영하는 잡화점에 배달부로 들어갔디. 고저 잡곡을 배달하믄서 고 자가 접촉하는 범위들을 파악해 나갔디. 특수공작원은 특수공작부대를 잘 알게 돼있디. 왜냐하면 활동 범위와 행동거지가 공통점이 있으니까니. 오랜 기다림과 추적 끝에 일망타진했디. 파견된 간첩 십수 명을 체포하구, 고 자들이 암약하면서 사용한 권총, 아이꾸찌, 무전기 따위를 노획했디.”
정말 조선인이라는 신분적 장애물을 뛰어 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더많은 노력을 했고, 때로 과도한 수사와 조작도 없지는 않았다. 피라미를 두목급으로 서류를 작성해 올리기도 하였다. 거짓이고 조작이라고 항의하면 몇 대 내지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항의해보았자 통용되는 구조도 아니었다. 
반대로 보아주기로 작정하면 두목급도 혐의 없음으로 처리해 내보냈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임의로 선하게 쓸 수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강자의 위치에 서려고 한다는 것을 그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때 비굴한 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고문을 피하는 대가로 변소 바닥을 핥으라고 명령하면 일초도 안돼서 후다닥 행동으로 옮기는 비열성. 그걸 즐기며 조롱하는 일이 얼마나 흐뭇했던가. 
그러나 버팅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간은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실토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고집 센 놈들은 허공에 매달아 통돼지구이, 전기고문, 물고문을 가해도 견뎌낸다. 그래서 담력있는 놈일수록 석방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니 세상이 불공평하다. 고문을 끝까지 버티는 체력좋은 놈은 풀려나가고, 심약하거나 체력이 떨어진 자는 예외없이 구속되는 것이다. 그게 김창동으로서는 내내 불만이었다.
“내 수법이 하나 있디. 버티는 놈은 토설할 때까지 조지는 기야. 그놈들이 더 악질이니까니 눈에서 피를 쏟도록 조지는 기야. 그러다 간 놈도 있었댔디. 니네들 야산대 놈들 부수려면 당장 산으로 들어가라우. 산간에 들어가면 이 엄동설한에 먹을 것이 어디 있갔나. 마을로 기어 내려와서 보급투쟁 한답시고 민가의 닭과 돼지, 곡식을 가져간단 말이다. 아무리 친척이라두 자꾸 쌀과 김치를 가져가면 지겹디. 고걸 우리가 이용한단 말이디. 마을 사람들을 달래고, 위협하면 불디. 고래서 타격하는 기야. 마을 인간들이 세포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눈깔 한번 굴리면 어느새 눈이 풀어져버리디. 백정 고수 앞에서 소가 넋을 잃은 것과 같이 말이디. 고래서 잡는 기술이 필요한 기야. 또 마을사람들끼리 이간질 시키면 고대로 잡아낼 수 있디. 따로따로 불러서 조사하면 들통나는 기야. 이런 건 전통적인 수사기법이니까니 더 우수한 기법을 개발하라우. 아매두 수천 가지 될 기야. 산간마을 주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뽄대를 보여주라우. 말깨나 하는 놈 불러세우고 총 개머리판으로 몇 대 내지르구, 그래두 신통찮으면 빵-, 이렇게 알가서?”
그가 오른 손을 들어 한 대원의 머리를 겨누어 총을 격발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한필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우다, 고 자들은 패배할 걸 빤히 알믄서 왜 싸우려 하지요? 세계 최강의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는데두 말입네다.”
“그러니까니 어리석은 종자들이디. 이 편에 서면 따뜻한 국물 나오디, 최신의 필터 담배인 말보로, 럭키스트라이크가 나오디, 이제 깨끗한 군복도 지급되지 않나. 개털이 붙은 야전잠바가 얼마나 포근하니. 고 자들은 산속에서만 사니 아직도 세상 판세가 어뜨렇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기야. 자네가 그 자들 체포하면 꼭 그것을 한번 물어보라우. 왜 죽을 것을 빤히 알믄서 꼭 죽을 짓을 하느냐구 말이다.”
“대답 하갔습네까.”
“그럴 기다. 고래서 독종이라고 하디.”
“고게 그래두 나름으로 철학이 있지 않가습네까? 인간은 다 죽는다. 좀더 일찍 죽나, 나중에 죽나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기왕에 살다 간다면 가치있게 살다 가는 거다. 고건 민족이란 이름의 살 길이다. 고런 철학을 갖고 있는 게 아니가소?”
“그기 개죽음인데 가치 있다구? 다 개똥철학이다. 인생 고렇게 사는 기 아니다.”
“두려울 텐데도 겁먹지 않는단 말이우다. 그럴 때는 내가 죄인 같더라니까니. 후려패구 전기를 들이대두 꺼떡 않으면 내가 겁이 덜컥 난단 말이우다.”
“쓸데없는 얘기 집어치우라우. 고따우 헤픈 소리 하려거든 나가서 똥이나 싸.”
대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며칠 전 겪은 일 생각하믄 몸이 오싹해집네다.”
한 대원이 끼어들었다. 칠곡과 왜관, 영동, 김천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경찰 지서에 붙잡혀 온 맹원 중에 염상원이란 자가 있었다. 염은 삼백석지기의 지주이자 지역의 유지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지역에 보통학교를 설립할 때 건물 신축 자금을 지원한 신망있는 사람이었다.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 초대 인민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군 인민위원회는 그를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마을 재건사업을 펼쳤다. 도랑을 치우고, 해마다 홍수가 나면 좁은 개울이 범람해서 토사가 농토를 휩쓸기 때문에 피해가 많았는데, 개울을 넓히고 제방을 튼튼하게 쌓았다. 인민위원장은 공사를 완공한 날 자기 집 소를 잡아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미군정에 의해 인민위원회가 강제로 해산되었어도 그는 여전히 인민위원장이었다. 대구에서 10.1사건이 터지고 고을까지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겁먹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좌익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상시대로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야산대를 뒤쫓던 경찰토벌대가 마을에 들이닥치면서 그를 체포했다. 병력은 지역 인물의 됨됨이를 알지 못했다. 고을의 지서순경이 구금된 그에게 말했다.
“위원장님,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시요.”
순경은 그의 덕망을 아는지라 그를 풀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맥고모자를 제대로 갖춰 쓰고, 깨끗한 중의 적삼을 차려입고 급히 지서로 되돌아왔다. 결국 그는 주민과 함께 산골짜기로 끌려가서 처형되었다. 
그가 경찰지서로 돌아올 때쯤엔 남은 폭도들이 골짜기로 끌려간 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정직하게 빨리 온 통에 그도 다른 폭도와 함께 끌려가 처형되고 만 것이다. 그게 꼭 그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지서 순경은 그길로 산으로 도망가버렸다. 그는 죄책감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특수대원이 그 순경을 붙잡았다. 그 순경이 그를 노려보던 시선을 그는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향한 저주와 증오의 눈빛. 그래서 자다가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쓸어담았다. 온 몸은 목욕을 한 듯 식은땀으로 젖었다. 순경은 다른 대원에 의해 즉결처분되었다. “별에 별 종자들이 다 있디. 그런 것에 마음 흔들리지 말라우. 감상적으로 나가면 고게 정서노동이 된단 말이다. 괴로워진단 말이다. 잊으라우. 내 다시 정리하갔다. 대구폭동을 계기로 반란이 다시 획책되고 있다. 이거이 전염되어서 제주 3.1사건이 터지지 않았네. 그 뿌리가 대구 폭동이란 말이다. 서로간에 직접적인 연락이 없었다 해두 이심전심으로 반란의 기운이 전염이 되어서 제주까지 간 것이디. 그거이 어느 순간에 다시 폭발할지 몰라. 전국화할 지도 몰라. 언제나 그 중심이 대구란 말이다. 왜 대구냐. 본래 싸가지 없는 동리라서 고렇디만, 인적 자원이 풍부해서 그렇디. 군대만 하더라두 이재복 황태성 최남근 김종석 박정희 조병헌 오민균 김달삼 홍순석 김지회 강태무 표무원 문상길 따위가 거기에 거점을 두고 있구, 세포들이 활동할 최적의 근거지가 되고 있디. 10.1 폭동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런 연결 맥락이 있다니까니. 그 윗대로 가면 빨갱이들 숫자가 사단병력이다. 알갔나?”
“그중 핵심이 군에 있다는 얘깁네까?”
“말해야 알갔니? 군 내부에도 있디. 박정희를 유의하라우. 명석하구 두뇌회전이 빠르구, 세상을 증오로 보구 있는 자디.” 

박정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남로당에 입당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만주 군관학교의 전신인 봉천 육군훈련처 출신으로서 간도특설대의 신병교육대 부대장 출신 최남근을 통해서였다는 주장이 있다(조갑제 주장). 그러나 최남근과 친하다는 것 뿐, 그를 통해 공산주의자로 활약했다는 근거는 없다. 최남근 역시 공산주의자로 볼 수 없다. 그를 처형하면서 그를 그렇게 묶었을 뿐, 굳이 따지자면 민족주의자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정희가 해방이 되어 귀국해 군부에 들어와보니 미 군정하의 국방경비대 현실이 국군의 모체로서 턱없이 부족했고, 경찰의 보조기관으로 전락해있는 데 불만이 컸다. 경찰에 의해 형이 희생된 가족사도 그를 분노케 했다. 이런 때 만군 시절 함께 복무했던 최남근이 내려와 군에 있으니 자연 의기가 투합했다. 이런 인연이 함께 세상을 고뇌하는 입장이 되었다. 죽은 형의 친구인 이재복의 포섭으로 남로당 군책이 된 뒤, 그가 오히려 최남근을 끌어들인 측면이 있다. 그에 의해 후배들 역시 그의 지휘하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박정희는 1947년 9월 대위로 승진한 뒤 조선경비사관학교 중대장으로 부임하여, 10월 입교한 5기생들부터 가르쳤다. 5기생은 채명신 장지량 김재춘 정승화 오보균 신능순 박원석 박종길 등이다. 이때 박정희는 1중대장, 그 아래 2구대장은 황택림 중위, 2중대장은 강창선 대위, 그 아래 2구대장은 김학림 대위였다. 박정희를 포함한 네 장교 모두 남로당에 포섭되어 있었는데, 이중 신망을 받던 박정희와 박창선의 영향력이 컸다
훗날 숙군작업 실무 책임을 맡았던 김안일 특무과장은 제주4.3과 여순사건을 거치면서 남로당 군사책으로 체포된 박정희의 자술서(1948.11 작성)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박정희 소령은 김창동에게 붙들리자마자 “이럴 때가 올 줄 알았다”면서 순순히 자술서를 줄줄 써내려 갔다고 합니다. 육사 재학시절 형 박상희가 대구 10.1사건에 연루돼 구미에서 경찰의 총을 맞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내려가 보니 형 친구인 이재복이 유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있더랍니다. 이재복은 박정희에게 '공산당 선언' 등 불온 책자를 건네주면서 남로당 가입을 권유했고, 또 형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부추기더랍니다.(<실록 박정희> 68쪽)

이보다 더 훗날 박정희 유신 독재를 폭로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증언 기록이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이던 기간 중 박정희는 남로당 조직책 이중업의 지령을 받은 군부연락책 이재복에 의해 남로당 군사부장으로 임명되어 국방군내에 남로당의 세포조직을 통괄하는 군부 조직책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박정희가 어떠한 경로로 이중업ㆍ이재복과 접선됐는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박정희 형(박상희)의 친구 황태성이 접선을 주선하였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김경제(박사월) <김형욱회고록 제2부> 35쪽) 

박정희 전기를 쓴 조갑제의 기록이다.

-몸도 마음도 통이 큰 최남근은 해방된 뒤 일찍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덕분에 박정희가 육사 중대장일 때는 대구에 주둔한 6연대장이었다. 박정희는 이때 남로당 군사부책(軍事部責) 이재복, 최남근과 자주 접촉하고 있었고, 많은 목격자를 남겼다. 박정희는 강창선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남로당 대군(對軍) 공작부서의 지휘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박정희와 8연대에서 함께 근무한 국방경비대사관학교 3기생 염정태(육군대령 예편)의 증언이다.

-사관학교에 다닐 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수재에다 인품도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죠. 그래서 나는 첫 부임지가 춘천 8연대란 얘기를 듣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당시 8연대는 빨갱이 소굴이었습니다. 연대 내 좌익 총책이자 부연대장인 이상진(만주 신경군관학교 2기, 당시 소령) 등이 주동자였는데, 이들은 대개 만군 출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했습니다. 박 전대통령도 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포섭됐다고 봅니다.”(<실록 박정희> 69쪽)

박정희의 ‘장교 자력표’에는 춘천 시절의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었다. 또 남로당사건 관련 기사는 5ㆍ16 이후 신문 보관철에서 사라졌다. 누군가 절취하여 빈 공간으로 남겨둔 것이다. 1963년 윤보선과의 대통령 선거 때 사상논쟁으로 정치적으로 몰린 이후 박정희 정부가 집요하게 그의 옛 기록과 자료들을 소멸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한 신문에 군사재판 기록이 남아있다.<김삼웅 저 ‘개발 독재자 박정희 평전’ 5장 ‘조선경비사관학교 입학 남로당’ 일부 인용>

김창동은 부산 5연대를 찾았다. 연대 본부와 1대대는 부산 감천에 있었고, 2대대는 진해에, 3대대는 통영에 있었다. 그는 감천의 연대장실부터 찾았다. 
“2대대장 오민균 대위 사상이 의심스럽습네다.”
그는 백선진 연대장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보고했다. 그는 매사 자신감이 있었으므로 말투도 단정적이고 직선적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확신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백선진 연대장과는 관동군 시절 정보팀에서 한때 부하로 복무해온 인연이 있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우. 유능한 장교인데...”
연대장은 의아스러웠다. 바로 며칠 전에도 오민균은 그의 숙소를 다녀갔다. 듬직한 몸집과 큰 키에 지적 풍모가 풍기는 미남형의 그를 보자 단숨에 호감을 가졌던 청년이었다. 스무살 정도의 청년이지만 늠름하고 기개가 넘치는 모습이 장교로서 적격이었다. 기품있게 보이는 게 더 호감이 갔다.
“그게 아니고 말이우다. 고 자는 건준 치안대 대장이었던 박승환의 애인과 산단 말입네다.”
“거 무슨 소리야?”
“박승환의 애인이 이영재라는 처녀입네다. 박승환이 북으로 넘어가자 이영재를 오민균에게 넘겨주었습네다.”
“이 사람아, 사람이 물건인가. 한 사람의 인격체를 그딴 식으로 보지 말게. 인격 모독이야.”
백 연대장은 불쾌했다. 나이가 비슷하고 만주군 시절 한때 함께 활동을 해서 찾아오면 가깝게 맞지만, 매사 사물을 음험한 공작의 눈으로 보니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연대장 각하, 등잔 밑이 어둡습네다. 냄새가 난단 말이우다. 특수 관계가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습네다.”
“남의 애정사를 특수 관계니 뭐니해서 초점을 흐려놓고, 또 감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온당치 않아. 말 다했나?”
그런 말이라면 더 이상 들을 것 없으니 당장 나가라는 뜻이었다.
“각하, 동서고금을 통해 내연녀를 첩자로 활용한 경우를 많이 보아 왔잖습네까. 프로가 왜 그러십네까.”
“내가 그들을 너무도 잘 알아. 며칠 전 오민균 대대장이 아내를 데리고 찾아왔어. 예쁘장하고 착한 여자야. 세상을 잘못 만나서 운명적으로 이성과 헤어지고 새로 만날 수도 있는 것 가지고 미행 감시의 대상으로 삼으면 되는가. 첩보 활동에도 예의와 금도가 있고, 윤리적 기준이 있어.”
하지만 김창동은 부산까지 내려온 마당에 오민균과 이영재의 뒤를 캐고 갈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퍼즐들을 맞춰보니 아귀가 척척 맞아 떨어져가는 것이었다. 

어느날 송호성 국방경비대 총사령관이 경비대사관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연병장에서 젊은 두 장교를 만났다. 오민균과 조병헌이었다.
“눈이 부시군. 소속은?”
“저는 생도대장이고, 조병헌 소위는 교관입니다.”
오민균이 대답했다. 
“좋아. 꼭 내 손자들이야.”
송호성 총사령관은 어언 나이가 60대였다. 같은 광복군 출신인 유동열 통위부장(국방부장관)의 주선으로 총사령관직에 오른 인물이었다. 김구 계열의 광복군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한 미군정이 군벌 관리 차원에서 광복군 출신을 끌어안으려고 그를 기용했다. 그는 광복군 5지대장으로 복무하고, 중국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60노객이라서 현대전에 대한 감이 떨어지고, 군대조직을 사조직인 군벌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늙은 군인이었다. 나이 탓인지 군대조직을 정분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그가 젊은 청년장교들을 보자 마치 손자를 대하듯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내 요즘 군대 돌아가는 모습이 걱정인데 서로 나뉘어서 다툴 일이 아니지. 좌도 좋고 우도 좋은 것이야. 한 데 버무려서 건강한 민족군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네. 민족이라는 깃발 아래 뭉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념과 사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민균은 평소 생각하던 것을 말하고 싶었다. 군의 재편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사령관 각하, 군부 내의 모순이 문제입니다.” 
“모순? 뭔가. 미군놈들 때문인가? 그렇지?”
그는 스스럼없이 단정했다. 오민균은 힘을 얻었다.
“모든 군 조직, 관공서가 친일 매국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 군정청이 그렇게 틀을 짜버렸습니다. 신생조국의 기강이 엉망이 됐습니다.”
“그래. 어떻게 찾은 나리인데, 그것들이 나라의 주인이 된단 말인가.”
광복군 출신으로서 그도 현금의 전개되는 사태를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송 총사령관은 요즘 미군 고문관과 자주 부딪치고 있었다. 미군은 군사작전의 디테일을 말하지만, 그는 민족 군대라는 거대담론을 말하고 있었다. 서로 바라보는 지점이 달라서 부딪쳤다. 그런 중에 의식있는 청년장교들을 만난 것이다. 
미 고문관 사회에서나 군대 조직 내에서 암암리에 송호성은 배척받고 있었다. 민족의식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신생조국의 군 조직에서는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오민균과 조병헌은 알게 모르게 송호성 국방경비대총사령관의 총애를 받았다. 송 사령관이 경비대사관학교를 방문하면 꼭 오민균과 조병헌을 불렀다. 두 젊은 교관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특수한 관계라기보다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만남으로 비쳐졌다.  
이것을 김창동이 읽어내고 있었다. 군 조직이 민족계니 좌익계니 섞이면 잡탕이 되고, 내부갈등을 부추기는 분파활동이 된다. 군대는 두말 할 것없이 단일성이 요구되는 집단이다. 그런데 총사령관의 색깔이 모호하다.
대구 항쟁이 수그러지지 않고 연이어 폭발하고, 제주에서 3.1사건이 일어났다. 다른 지역에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군사 지휘부는 무능할 정도로 안이하게 사태를 보고 있다. 김창동 대위만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이건 비상 상황인 것이다. 
어느날이었다. 송호성 총사령관이 법무처장 김완룡 대위를 불렀다.
“김창동을 조사하라.”
“네?” 
김완룡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반문했다. 
“친일 군인 출신 중에서도 악질이라며?”
만주군에서 헌병으로 활동했다면 송호성은 본능적으로 적개심을 품었다. 광복군 지대장으로서 가장 먼저 이가 갈렸던 대상이 일본군 헌병이었다. 그리고 사실 두려웠다. 그중에서도 조선인 출신 헌병을 맞닦뜨리면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어떻게 동족이 저렇게 비정할 수 있는가. 일본군보다 더 거칠게 동족을 잡아가두고 때리고 고문하는가. 그런 그가 국방경비대 1연대 정보책임자로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 총사령관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이성가 1연대장을 불러 질책했다. 
“자네는 이관석 선생의 아들이라서 각별히 내가 챙겼네. 내가 특별히 자네를 1연대장으로 발령낸 거야. 그런데 조선인 항일투쟁가들을 미행 감시하는 악질 헌병 출신을 정보책임자로 보직을 주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여기 항의탄원서 보게.”
이성가의 아버지 이관석은 독립운동가였고, 송호성 총사령관의 젊었을 적 동지였다. 총사령관이 연대장에게 철필로 꾹꾹 눌러 쓴 16면지 편지 석장을 내밀었다. 탄원서에는 김창동이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 앞잡이로서 만주의 조선 동포들에게 박해를 가한 활동상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신생 조국의 국군 창설에 등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 편지 내용이었다. 
“당장 파면하게.”
그러나 아무리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군사 조직이라고 해도 당장 파면이라니, 이성가는 지나치다고 여겼다. 대신 말없이 각지게 거수경례를 붙인 뒤 총사령관실을 나왔다. 총사령관의 충정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차까지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연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좌익을 색출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그 자신이 직접 김창동을 발탁했다. 
장교단 중 과거 경력을 살피면서 첩보활동의 전문성이 있는 김창동을 연대 정보주임 보좌관으로 임명하고, 정보 소대를 편성케 하여 사상 사찰을 전담시켰던 것이다. 과연 김창동은 생존과 권력 추구를 위해서는 물불 안가리고 직무에 충실했던 과거의 경력 그대로 맹활약했다. 북한에서 소련군에게 두 차례나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 일생 일대의 치욕으로 받아들인 그로서는 공산당 척결만이 사는 근거라고 보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이런 개인적 감정까지 개입되니 활동상은 날개를 달았다.
김창동은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일제하에서 경찰관이나 헌병을 지낸 경험자들을 특채하여 정보 소대를 구성해 연대 내 좌익색출에 매진했는데, 그 범위를 각 연대로까지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수사도 적지 않았다. 이때 음해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부대로 돌아온 이성가는 이정석 정보주임을 불러 문제의 항의탄원서를 보여주었다. 
“안됩니다.” 이정석이 단숨에 잘랐다. “군 내부의 공산당을 잡아내는 데는 김창동만한 자가 없습니다. 과도기엔 그런 경험자가 필요합니다. 물론 병적인 집착이 없는 게 아닙니다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눈치 안보고 윗사람들까지 수사망을 확대하니까요. 지금도 암약하는 자들이 있잖습니까. 김창동이 지금 그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 자들을 쫓아?”
“네. 이병위 김종석 최남근 박정희 김지회 홍순석 오민균 조병헌 등입니다.”
그중에는 이성가와 친분이 있는 장교도 있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데 이정석은 자신있게 거명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 잘못했다간 역으로 당한다.”
“총사령관 각하도 색깔이 불분명합니다.”
“뭐?”
이성가가 놀랐다. 
“사상이 의심스럽습니다.”
“조용. 조심하라고 했잖나. 근거가 없는 것을 함부로 입으로 옮기지 말라우.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야. 몇마디 불만이 근거가 될 수 없어. 난 안들은 걸로 하겠네. 어쨌든 김창동을 조사하라구.”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일하고 있는 자의 뒤를 캔다는 것은 일을 그만 두라는 뜻이고, 자신의 임무를 부정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정석은 역으로 김창동에게 주의하라면서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금방 반발이 나왔다.
“고 쥐새끼 같은 놈들이 날 모해하고 있습네다. 꼭 원수를 갚아줄 것입네다.”김창동은 방방 뜨면서 이를 갈았다. 누가 항의탄원서를 쓴 것인지 그는 눈치로 때리고 있었다. 그를 벌레 취급하던 젊은 장교단이다. 새로 사관학교 교관으로 부임한 박정희도 떠올랐다.
“간나 새끼들, 두고 보자우.” 
그는 부산 5연대 2대대 주변을 맴돌며 오민균의 일거수일투족을 훑었다. 박정희의 심복인데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의심스러운 장교단의 일원이었다. 
오민균은 잠깐 광주 4연대를 거쳐 부산 5연대 2대대장으로 배속받아 근무지인 진해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동거녀 이영재와 함께 영외생할을 하고 있었다. 이영재는 월북한 박승환의 애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창동은 어떤 확신을 갖고 있었다. 붉게 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부산 5연대 2대대는 시위 진압 부대로 출동준비 중이었다. 대구로 출동한다는 말도 들렸고, 3.1사건 이후 계속 끓고 있는 제주도로 출동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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