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불확실성과 아베의 질주, 동아시아 미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역설을 극복하려면
2019.11.10 14:33:00
트럼프의 불확실성과 아베의 질주, 동아시아 미래는?
"역사 분쟁이 경제 협력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현상,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체제에서 일어나는 현상."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를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은 "샌프란시스코 패러독스", 즉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동아시아 역사 갈등, 영토 갈등의 근원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 극복을 위해 국제 석학들이 9일 머리를 맞댔다. 동북아평화센터가 주최하고 동북아 역사재단, 도담 문화재단, ERA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국제학술대회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에서다. (☞ 관련기사 보기 : 샌프란시스코 체제, 그리고 '종속 국가' 일본)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주로 북미 협상의 관점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 극복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미국 주도로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협정은 출발부터 "전쟁 종식이 아니라 지속을 목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적대세력은 북한, 중공, 소련이었으며 미국 측 선봉에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미군 본진은 일본 오키나와에 위치하게 됐다"는 것이다.

와다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이 중공 및 북한에 맞서 3년 전쟁(한국전쟁)을 수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휴전협정 체결 후에는 남북을 나누는 비무장지대(DMZ)에 영구적 적대감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1960년대 들어 냉전 체제의 군사적 충돌 지역이 한반도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동했지만, 센프란시스코 체제는 이때에도 작동해 "한국은 베트남에 지상군 5만 명을 파견하고", "오키나와는 미국에 영구적 병참기지를 제공했다"고 했다.

이후 1970년대 미중 화해, 1980년대 말 소련과 동구권 몰락을 거치며 냉전이 종식됐음에도 "북한과 샌프란시스코 체제 간의 적대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고 와다 교수는 말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등 선택의 기로에 놓였지만 모두 미국의 반대와 저지에 가로막혔다는 것이다.

특히 2002년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선언'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모색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빛을 보지 못했으며, 이후 북한은 자체 핵무기 개발의 길로 내몰려 북미 간에 새로운 전선이 형성됐다는 게 와다 교수의 분석이다.

터닝 포인트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간에 북한의 체제보장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마련됐다.

와다 교수는 "동북아 모든 국가들은 북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다"며 "이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정말 넘어서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반도 비핵화 시점은 미국의 핵우산이 한국과 일본에서 접히는 시점을 의미한다"며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다 교수는 북미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보다 전향적인 입장에서 북일 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평양과 도쿄에 대사관이 설립된다면 북한과 일본은 경제협력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통일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 핵무기 비보유 원칙을 확인하고 중립국화 돼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새로운 동북아 안보동맹체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동북아의 모습이고 진정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들파워의 복원과 민주주의의 역할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는 유럽 통합의 경험과 냉전 극복 과정을 돌아보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패 가능성을 짚었다. 그는 특히 미중 갈등, 일본의 대국주의 등 강대국 간 힘겨루기가 상수가 된 동아시아에서 '미들파워(Middle power)' 역할을 복원해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유럽 통합의 과정에 세 가지 동기가 작동했다고 봤다. "전쟁을 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정치적 목표", "국가별 좁은 시장을 큰 시장으로 통합하자는 경제적 목표"와 함께 "'소셜 유럽'이라는 슬로건으로 노동, 환경, 시민사회적 가치를 축으로 통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1975년 헬싱키 선언에서 시작된 유럽의 평화정착 과정을 의미하는 '헬싱키 프로세스'에 주목해 "체제의 차이를 상호 존중하고", "그 위에서 경제적 교류를 확대하며", "이동의 자유 등 인적 교류"가 활성화된 결과 "동서 냉전이 큰 부작용을 겪지 않고 평화적으로 종결된 점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미들파워는 국가 사이즈만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통적 권력정치와 다른 대안적 질서를 추구하는 가치적 개념"이라며 그 핵심 원리로 "다자주의와 지역협력주의, 지역 통합을 촉진하는 외교, 비군사적 수단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꼽았다.

이 교수는 이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물밑 역할을 하며 한동안 미들파워 외교 노선에 충실했던 일본이 아베 총리의 집권 이후 이를 부정하는 외교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5년 시작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비롯한 각종 협의체가 지지부진해진 배경도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강화돼 미들파워 역할이 축소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대표되는 유라시아 주도권 전략을 추구하며 이와 충돌한다.

이 교수는 특히 "아베 총리의 방점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냉전에 찍혀있다"며 "일본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버전2'로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관여 축소가 불가피해진 미국이 일본에 보다 큰 역할을 부여했고, 우파 논리에 경도된 아베 총리의 일본은 대국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 대국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문제가 간단치 않다"며 미중 갈등과 북핵 문제 등을 동아시아를 협력보다 분열로 이끄는 동력으로 파악했다. 

다만 이 교수는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역내 국가들의 관심은 경제다. 경제에 관한 관심을 기능적으로 엮어나가는 것이 관건"이라며 경제적 공통분모에 기반한 동북아 협력의 토대 구축 가능성을 내다봤다.

아울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의 고립주의 노선 등 통합보다 분열이 세계적 화두가 된 배경을 "무차별적 세계화로 인한 격차 확대에 대한 반발"로 진단하며 "각국에서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려는 정치적 집단이 정책의 우선권을 잡도록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화의 부작용에 각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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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