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 자살'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전달체계 개편은 왜 실패하는가
'○○동 ○○ 자살'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을 기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거치면서 복지전달체계의 구상과 실행에 있어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와 관련해 세 가지 전달체계 개편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첫째 주민자치형 공공서비스 구축사업(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업), 둘째,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셋째, 사회서비스원 설치 및 운영이다.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복지전달체계는 복지정책의 집행체계를 의미한다. 정책은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집행이 되어야 하고, 그 매개체가 전달체계이다. 복지에서 전달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인 전달체계는 수요-공급이 자율적인 시장거래처럼 작동하지만, 복지에서는 수요-공급 체계가 자율적이지 않고 일일이 수요와 공급을 구성해서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서울 관악구 탈북 모자, 성북구 네 모녀 사건 등 저소득 취약계층의 사건사고를 계기로 전달체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에 곧잘 등장하는 이를테면, 전달체계의 목표인 사각지대 해소, 위기사례의 발굴, 공동체 강화, 복지 체감도 제고 등이 과연 전달체계 개편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오랫동안 전달체계를 주전공으로 해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외연적으로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이고 또 왠지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과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질문해보자. 독자가 현재 우리나라 복지정책 집행과정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곰곰이 자문해보라. 진짜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인지, 혹 그 문제는 그냥 파생적인 곁가지 문제이고 사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지를. 우리 현실은 주변적인 문제에 주목하여 정작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는 시늉만 취하고 있다.

문제가 파악이 안 되니 문제가 해소될 리 없다. 문제를 정직하게 다루지 않고, 그 문제로부터 파생된 것이 본질적인 문제인 양 대책을 마련한다. 문제는 모습만 바뀌며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해야 함에도 순식간에 해결책을 마련하고, 머지않아 또 다른 전달체계 개편안을 준비한다.

전달체계는 사회복지인력의 서비스 제공 능력에 의존하는데, 최근까지 공공전달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담당 인력 확보의 실패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전인 2000년 이전의 복지 행정이 전반적으로 영세한 구멍가게 운영방식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일정 정도 체계를 갖추었다. 그런데 그동안 복지업무는 상당할 수준으로 팽창되었고, 특히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취약계층에 제한적으로 공급되던 서비스가 일반시민들에게 확장되었다. 보편적 서비스로의 전환은 바람직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공급자의 역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현장은 항상 난리 북새통이었다. 새로운 지침이 전파되고, 그에 따라 수요자는 민감하게 확대되었으며, 다양하고도 새로운 제도들이 속속들이 개발되면서 담당자가 모르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증가하였다.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전달체계 개편안은 문제의 진단과 대안이 항상 모호했다.

통합사례관리가 최근 공공복지전달체계에서 핵심적인 기제로 간주되었다. 사례관리 방식은 수혜자들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소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일군의 전문가들은 사례관리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의 질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통합사례관리사들의 신분적 한계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공공인력도 마찬가지였는데 모든 통합사례관리 관련 선행연구에서는 공공의 사례관리에서 관료제 내 순환보직체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공든 탑을 순식간에 부수고, 새롭게 공들여 탑을 쌓고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순환보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정책수단은 적합한가?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야기된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가 전달체계를 통해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동 ○○ 자살 사건'이라는 수많은 위기 사례가 공무원들의 찾아가는 복지를 통해 발굴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가? 공동체 강화라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의해 구성된 일상생활의 다양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방안이라고 보는가? 또한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여 지역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복지 체감도'라는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달체계를 강화하면 시민의 복지에 대한 체감도가 증가할 것으로 믿는가?

단순할 것 같지만 실상 본질적인 문제 혹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문제는 단순히 하겠다는 의지만으로 해소될 수 없고, 보다 정밀하게, 보다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단순히 뭉뚱그려 해소할 수 있다고 외치는 수준이 아니라,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의 배치와 확보, 그리고 그것의 질을 강화시킬 수 있는 환경의 마련 등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작동하는 체계인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전달체계 강화 전략 중 대표적인 것이 인력 확충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전달체계는 항상 압박이 심했다. 인력이 없으면 만개의 대안이 무익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소해왔는가 보면 그렇지 않았다. 외형적으로는 정부가 인력을 확충해 온 것처럼 보인다. 일부는 맞다. 그런데 현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업무는 증가하는데 비해 인력 확충 속도는 매우 느렸고, 인력 확충은 항상 기존 인력 부족에 대한 보완이 아니라, 새로운 업무 부여에 따른 인력 확충이었다. 그러므로 인력 확충 효과는 당연히 낮았다.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찾동)'의 경우를 보라. 상당한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현장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핵심적인 이유는 부족한 인력에 대한 투입이 아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한 인력 투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찾아가는 복지에 대한 강조를 살펴보자. 기존에 공공은 찾아오는 복지조차도 소화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읍면동에 담당자가 1인 근무 시 소화해야 하는 복지프로그램은 대략 100가지가 넘는다. 100가지 이상을 몇 사람이 나누어서 실행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과연 얼마만큼 심층적인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가? 복지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인권적 바탕에서 대상자에 대한 민감성을 반영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한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현재의 서비스 제공 수준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단순히 인력확충의 문제가 아니라 양질의 인력확충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찾아가는 복지는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전략은 공공인력의 환경을 고려하였을 때 현실성 있는 전략인가?

요약하면, 현재의 전달체계의 수준과 질로는 그 어떠한 개선 방안이 제시되더라도 반복적인 문제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인프라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로를 이탈하기 위해서는 보다 합리적인 혹은 원칙에 부합하는(한국에서는 합리적인 원칙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높다)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비전이나 가치는 지향점이 될 수 있으나 그것 자체는 수사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므로 실제 해결 여부는 이행되는 과제나 세부사업의 설계 혹은 관리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문가들이 흔한 그러면서 동시에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제발 전문가들이 진단한 결과를 왜곡해서 현장에 적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뒤틀린 현장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호전이 되지 않고, 더 큰 모순이 축적되면서 결국 적기를 놓쳐 해결 자체가 어렵게 되는 상황을 수없이 목도한다.

과도한 기대와 희망, 욕심은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쉽사리 바뀌기 어려우며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는 바탕은 엉망진창이며,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큰바람에 흔들리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마치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현장에 기반하여 길게 보고 가자

아쉽게도 복지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나 행정안전부는 현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알긴 알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행하려는 전달체계 안의 내적 체계성과 정합성이 높지 않다.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정책을 수립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이론적·논리적 근거가 확보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찾동'의 경우, 마을공동체와 복지의 결합을 시도하려 했다면, 그에 따른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추진하는 '주인공' 사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주민자치와 복지전달체계를 연계하고자 하였다면, 그에 따른 최소한의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나 모델은 충분히 검토된 것인가? 그리고 그 성과는 단순 자원 투입에 따른 산출 이외에 어떤 결과가 제시되어 있는가? 목표는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되 전략은 보다 현실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정책이 구성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한번 보자. 한국에서는 뭔가 빠르게 만들어진 것이 당시에는 대단해 보여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제도가 가진 한계나 문제점은 즉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좀 더 장기적인, 적어도 3~5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과제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진행되는 대다수의 연구들은 1년 이내이거나 혹은 6개월 이내, 심지어 3개월 기간에 실질적으로는 1~2개월 내 분석되는 연구들이 많다. 주어진 정치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정부 변동과 별개로 꾸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과거 발전도상기에는 빨리빨리 처리해서 일정 정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지났다. 문제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에 수단도 정교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데 있어 두꺼운 장벽을 가지고 있다. '문제 진단-개입 수단'이 보다 진일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전달체계 구성에서 상당한 시련이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포용적인 전달체계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 현 정부에 기대를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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