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만난 中 왕이, 미국 겨냥해 "내정간섭 반대"
"패권주의는 국제관계 규칙에 대한 도전"
2019.12.04 17:27:47
강경화 만난 中 왕이, 미국 겨냥해 "내정간섭 반대"
5년 만에 공식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세계 자유무역 질서 수호와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며 사실상 미국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난 왕이 부장은 모두 발언에서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책임지는 나라들과 함께 다자주의 이념을 견지하고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지키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를 수호하며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국제질서와 WTO를 초석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굳건하게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일방주의가 현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패권주의 행위가 국제관계 규칙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무역을 포함해 경제적인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반발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자유무역보다 자국 우선주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상기,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최근 미국이 이른바 '홍콩인권법', '위구르법' 등을 잇따라 제정하는 등 내정간섭의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왕이 부장은 구체적으로 미국과 홍콩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중국은 시종 일관되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평화 외교정책을 시행하고 나라가 크든 작든 모두 평등한 것을 강조하고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 힘만 믿고 약한자를 괴롭히는 것,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왕이 부장은 "현재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국제정세에 대해, 지난 100년 동안 없었던 변화에 처한 배경 아래 이웃들 간에는 왕래와 협력을 강화하며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다같이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5년 만에 방한하게 됐다. 중한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이며 파트너"라며 "각 분야의 호혜적인 협력 강화에 대해, 그리고 지역 및 국제정세의 새로운 변화 새로운 정세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할 것이다. 우리 사이에 반드시 새로운 공동 인식이 형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가운데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장관은 "그간 양국관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성과를 평가하고 다소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왕 부장과는 달리 한중 관계의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강 장관은 "오늘 회담을 통해 정상 및 고위급 교류 활성화방안과 경제, 환경, 문화, 인적교류 등 실질 협력 증진 구상과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중 간 협력방안, 지역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4시경부터 시작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은 예정보다 1시간 정도 길어졌다. 회담이 길어진 이유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 공식 방한했고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사안들을 차분히 논의했다"며 "양자 방한이다 보니 양국관계 논의가 상대적으로 더 있었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양 외교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올해 말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답변드릴 단계가 아니다"라면서도 "과거 (회의를) 보면 3국 정상회의 계기에 정상 간 회합이 있긴 했다"며 여지를 열어 뒀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중국은 그동안 총리급이 참석해왔다. 이에 회의 계기에 중국 주석과 한국 대통령이 별도의 만남을 가지는 식으로 정상회담이 이뤄져 왔다. 

이와 함께 이날 회담에서는 양국 간 사드로 인해 껄끄러웠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기본 작업들을 재개하자는 의견도 교환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중 간 인적 교류 관장하는 차관급의 인문교류 촉진위원회, 차관급 전략대화 채널 등이 있는데 가까운 시간 내에 (회의를) 열어서 필요한 이야기를 하자고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른바 '한한령'이 풀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인문교류 촉진위원회를 열게 되면 양측 간 인적교류나 협력사업을 전체적으로 펼쳐놓고 논의하게 된다"며 "양국 관계를 정상궤도로 가져가서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다뤄졌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은 북한의 핵 보유 용인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 유지돼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통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 기초해서 진지하고 착실하게 진전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소통 및 협력하자고 협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등정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소집까지 폭넓게 다뤘다"며 "북한이 연말 시한을 이유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선 안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소위 '새로운 길'과 관련, 미국과 협상에서 벗어나 중국 및 러시아 등과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북미 회담이 우선임을 양국 외교장관이 확인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그렇다. (북한과) 미국과 회담이 우선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왕 부장의 공식 방한은 지난 2014년 이후 5년 만으로, 2017년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배치된 이후 처음이다. 왕 부장은 이날 회담 이후 강 장관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방한 이튿날인 5일에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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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