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
"PD 문제의식 소진 큰 문제"-"'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
2005.10.21 13:52:00
최장집 "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
"한 사회의 정당성의 기준은, 그리고 역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정의된 어떤 형태의 이념의 구현이 아니라 시민적 자유, 권리, 복지,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훌륭하게 실현하는가에 두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조건에서 누가 문제를 정의하고,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민중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해방 60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좌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뜻밖에도 1980년대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문제의식을 다시 되새겨볼 것을 제안했다.

***해방 60년, 왜 오늘의 한국 사회 문제점 회피하나**

최장집 교수는 참여사회연구소가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해방 60년에 대한 한 해석'이라는 글에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한 냉철한 직시를 촉구했다.

최 교수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해방 60년을 주제로 한 행사나 논의들은 '성찰 없는 현대사 이해'를 특징으로 한다"며 "정작 오늘의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회피 내지 문제의식의 결핍을 나타내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최 교수는 "분단국가의 건설과 권위주의 산업화가 내포했던 갈등과 이로부터 제기된 문제 해결의 과제는 민주화로 떠 넘겨졌다"며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곧 '민주주의를 향한 전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방 60년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디를 지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란 곧 오늘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과제를 통해 조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억압과 궁핍,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던 민중을 역사와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낸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여전히 민중이 소외된 민주주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민주화는 매우 불완전하고 미숙한 수준에 있다"며 "민주화야말로 한국 사회를 진정으로 성숙하게 하는, 한국인이 대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한국적 '해방의 이념' NL-PD 문제의식 다시 불러와야**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열쇠'로 뜻밖에 NL-PD의 문제의식을 다시 불러올 것을 제안했다.

최 교수는 "NL-PD의 문제의식은 강력한 반공 권위주의 국가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민주화의 두 의제를 축약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 내부로부터 제기됐고 민중성을 관심에 중심에 두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적 '해방의 이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NL-PD의 이념을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NL-PD의 문제의식은 현실의 핵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돼 그 이념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정당 체제 내로 들어오고, 그 정당이 선거 경쟁을 통해 다수당과 정부가 돼 그 개혁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NL-PD의 장점은 한국의 역사로부터 생성된 체제가 안고 있는 두 문제(민족 문제-민중 문제)를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라며 "그간 민족 문제에 초점을 둔 NL과 민중 문제에 초점을 둔 PD가 상호 연계성을 잃고 분리된 것과는 달리 둘 사이의 연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상승적으로 그 의미를 크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둘 사이의 연계가 유지될 때 민족 문제는 민중 문제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반대로 민중 문제는 민족 문제의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다"며 "이 연계가 단절될 때 하나가 다른 것을 희생하여 자기 정당화와 자기 권력의 증진을 도모하는 분열과 적대성을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민주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PD적 문제의식의 소진**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상황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PD적 문제의식의 약화 또는 소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결합한 경제 및 사회ㆍ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에 여러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각종 양극화의 현실은 그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민주화 이후 집권 정당과 집권 엘리트들이 이런 현실을 초래한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같은 신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통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NL-PD는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통한 개혁 프로그램들, 즉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서 노동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분배 구조의 개선과 사회 복지권의 확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와 공공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민주정부는 대신 신자유주의적 극단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여기에 노동참여, 사회복지와 같은 내용을 가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결합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민주정부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통일 지상주의 경계해야…'통일'보다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

한편 최 교수는 NL적 문제의식에 대한 강조가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 교수는 특히 "NL은 PD적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의 민족주의로 전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주의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민족주의적 정서의 동원이나 이슈로 활용해 왔다"며 "이것은 민중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저평가하게 만들거나 나아가서는 민중 문제를 민족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분열적 요소로 보게 만들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최 교수는 "탈냉전 시기 남북한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평화와 공존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커다란 격차가 남북한 사이에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민족 통일'을 최대 명제로 강조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남북한 간의 이상적인 관계는 장기간에 걸쳐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북한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남한과 같이 자족적인 독립 국가로서 지위와 안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단일민족→분단 이후의 다음 단계는 완전히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명한 것은 통일보다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사회의 정당성의 기준은 시민적 자유, 권리, 복지,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훌륭하게 실현하는가에 있다"며 "다른 사람이 아닌 민중이 민주주의를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해방 60년의 좌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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