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수집 노인들… '거리의 새 풍속도'
한끼 식사도 안 되는 폐지수집 일로 황혼 연명
폐지수집 노인들… '거리의 새 풍속도'
아침마다 출근시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가 있다.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사시는 서진구 할아버지.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할아버지는 올해 72세라고 하는데 겉모습은 더 늙어 보인다.

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엔 서울 마포구청에서 시민들의 민원을 처리해주는 공직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한 푼 두 푼 저축해 모은 돈으로 현재 거주하는 22평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 할아버지는 예상치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 됐다. 2남1녀의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지금은 할머니와 둘이서만 산다.

***"불경기로 고생하는 자식에게 짐 되고 싶지 않다"**

문제는 서 할아버지가 폐지수집 일을 해서 하루에 버는 돈 1000~2000원이 유일한 수입원이라는 데 있다. 물론 자식들이 적은 돈이나마 부정기적으로 간간히 보내주어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 할아버지는 '자가 소유자'라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다. 사실상 수입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극빈자인데, 젊었을 때 사놓은 집이 방해가 되어 생활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식이 있는 자가 소유자는 소득과 관계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법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폐지수집에 나선다. 할아버지는 "자식들도 다 경제침체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데 노인까지 책임지게 하는 건 부모로서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웬만하면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구리시의 인창동에 거주하는 임 모 할아버지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유명 제과회사에 근무했던 임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할 때 회사에서 받은 돈으로 지금의 24평 아파트를 구입했다. 불안한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거 공간의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상실한 장애인 자식을 둘이나 둔 임 할아버지로서는 주거 공간이 가족의 생명터였다.

임 할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그래선지 책임감이 남달라 보였다. 폐지수집 일도 많이 해서 하루에 거의 1만 원 정도 번다고 한다. 현재의 폐지 시세가 ㎏당 50원이니 하루에 무려 200kg 이상의 폐지를 수집하고 있는 셈이다. 65세의 연세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이다. 할아버지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에 집에서 나오고,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다.

최근엔 할머니도 폐지수집 일에 나섰다고 한다. 장애인 아들에게 먹여야 할 약도 사야 하지만 물가상승으로 식비 부담도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노부부가 폐지수집을 통해 한 달에 버는 수입은 대략 40만 원. 여기에 동사무소에서 중증 장애인인 아들에게 지급하는 얼마간의 수당이 추가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기자가 임 할아버지에게 "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이렇게 힘들게 사시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하면서 어렵게 집을 장만했는데 이것이 되레 짐이 되고 있다"며 "한때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집을 팔려고도 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공간인 집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의 실정을 외면하는 것은 문제"라며 "실제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수급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노인복지 수급대상자가 되려면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하고 부양의무자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하며, 자기소유 주택과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노인복지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문화재조차 폐지수집에 나서게 하는 후진적 노인복지**

같은 인창동의 지하 단칸 셋방에서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짜리 손주 둘과 함께 살고 있는 김말순 할머니는 올해 73세로, 굽어진 허리만큼이나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횡단보도 신호등도 안 보일 정도로 시력이 나쁘지만 그 불편한 몸으로 신문지며 박스를 부지런히 모은다.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폐지수집 일에 나섰다는 할머니는 그래도 여유 있는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다.

"집에 있으면 뭐 해. 이렇게 나오면 운동도 되고 좋잖아!" 김 할머니의 변이다. 기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 500원도 못 버시면서 이런 일을 왜 하세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대뜸 "500원이면 어디야. 그거 나한테는 큰돈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말어"라며 되레 기자를 나무랐다. 할머니는 동사무소로부터 얼마간의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한다고 했다. 그러나 빡빡한 살림에 여유가 없어 손주들에게 맛있는 과자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해 결국 폐지수집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수택동에 거주하면서 이름 밝히기를 꺼려 하는 이모 할아버지는 올해로 83세라고 했다. 이 할아버지가 폐지수집 일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으로, 건강도 생각하고 생계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하게 됐다고 한다. 할머니는 오래 전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자식들이 있지만 같이 살 형편이 못 돼 지금은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시에서 매월 주는 생계보조금 21만 원과 국가유공자 수당 6만 원, 그리고 폐지수집으로 매달 버는 1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다.

"요즘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들이 많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구리시에만 족히 100명 정도는 될 거야"라며 "어려워서 이 일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만난 몇몇 노인들은 수입의 액수와 상관없이 건강을 위해 폐지수집 일을 한다고 말해 이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그러나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들의 대다수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불가피하게 생계수단으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수택동에 사는 유상호 할아버지는 올해 80세인데 같은 연배의 오랜 친구인 안필호 할아버지를 언제나 리어카에 태우고 다니며 폐지수집 일을 한다. 유 할아버지는 고궁건축 분야 인간문화재 55호로 지정된 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다 보니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더라"며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과거의 일이며 더 이상 나라에 미련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할아버지는 "나보다도 저 친구가 호흡곤란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며 "누가 전동 휠체어라도 기증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유 할아버지는 현재 아들 집에서 같이 살고는 있지만 궁색한 살림에 자식들 보기도 미안해서 1년 전부터 폐지수집으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시에서 받는 돈은 고작해야 월 1만2000원이다. 할아버지는 "요즘에는 폐지수집을 해봐야 하루 5000원밖에 벌지 못 한다"며 "그래도 친구와 나눠 피울 담배 값은 벌고 있으니 그나마 사는 맛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혹시 친구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나도 함께 할 것"이라는 비장한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노인복지 수급자 선정, 실태파악부터 제대로 해야**

이처럼 요즘 거리에 나가면 동네마다 생계를 위해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런 현상을 "새로운 풍속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IMF위기 이전에는 고물상들이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지와 각종 고물을 수거하는 대신 엿이나 강냉이를 내주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고물상은 보기 힘들고, 대신 폐지수집을 하러 다니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폐지 값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kg당 60~70원선이었지만 최근에는 50원 정도로 뚝 떨어져, 아무리 열심히 폐지 수집을 해도 하루 벌이가 1만 원선에서 오락가락 하는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1만 원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노인은 흔치 않으며, 대부분은 하루 벌이가 5000원 안팎이다. 이마저도 경쟁이 심해 대문 밖에 내놓은 폐지는 순식간에 없어진다. 일하다가 끼니 때가 되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를 찾기도 한다.

앞의 사례들처럼 나이가 차서 불가피하게 정녕퇴직을 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면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당장에 생계 걱정을 해야 하고 때로는 몸서리쳐지는 역경을 헤쳐가야 한다. 젊었을 때 어쩌다 겨우 마련한 집 한 채를 덜렁 끌어안고 살아가지만, 얼마간의 저축도 곶감 빠지듯 사라지고 나면 칠십의 나이에 할 만한 일도 마땅치 않으니 절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야 하기에 애를 써보지만 식비나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손주와 같이 사는 노인들의 경우는 아이들 학원비 걱정까지 해야 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노인들이 손주를 돌보며 산다. 아마도 가정경제의 붕괴나 이혼가정의 증가가 초래한 후유증이 아니가 싶다.

***가난한 노인들 방치한 채 지방의원 월급 줘야 하나**

가난한 노인들의 하루하루가 고단한 데는 정부의 불합리한 복지정책이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생활수준은 빈민이나 다름없는데 주택을 소유하고 있거나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자식이 있으면 노인복지 수급대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은 예산부족의 문제라기보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제도의 문제다.

오늘날 노인들의 애환은 극심하다. 핵가족화의 추세를 노인들만큼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연령층도 없다. 요즘 노인들은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자신이 짐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설령 날품팔이를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얹혀살지는 않겠다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대한노인회 구리시지회의 홍두암 회장은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세대는 가족에 의한 부양을 받지 못해 더욱 방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가는 노인 세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무엇보다 제대로 실태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태파악 결과를 토대로 필요한 노인복지 관련법을 제정 또는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는 노인들의 폐지수집 노동에 대해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의 조진희 사무관은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들의 실상에 대해 조사한 적은 없으며, 그런 노인들에 대한 정책도 아직까지 검토된 바 없다"며 "그러나 노인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그런 노인들의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밥 한 끼 잇기도 힘든 노인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후진적인 노인복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황혼의 시기를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내년에는 먹고 살 만한 지방의원들에게도 연간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8000만 원까지의 급여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주겠다는 돈은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들이나 그 밖의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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