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수 "나는 '대한민국 최고 연기자'와 싸웠다"
'黃 사태' 취재파일 공개…"제보자에게 빚 갚아야"
2006.11.09 10:31:00
한학수 "나는 '대한민국 최고 연기자'와 싸웠다"
문화방송(MBC) <PD수첩>이 '황우석 사태' 당시 권력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을 새롭게 제기한 한학수 PD의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펴냄)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한 PD가 2005년 5월 <PD수첩>으로 발령을 받은 뒤부터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었다"는 충격 발언을 할 때까지의 뒷얘기를 취재 파일에 근거해 소상히 담고 있다.

"심연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미 서울대 조사위원회, 검찰 수사 등을 통해 황우석 사태의 전모가 비교적 소상히 언론을 통해 공개된 상황에서 이 책의 내용은 새롭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최승호 PD, 한학수 PD를 비롯한 <PD수첩> 팀이 겪은 고뇌, 갈등이 가감 없이 묘사된 부분이다. 이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진실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진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한학수 지음, 사회평론 펴냄, 2006) ⓒ프레시안

황우석 박사를 집요하게 코너로 몰아넣던 한학수 PD와 <PD수첩> 팀을 곤경에 빠뜨린 '취재 윤리' 위반 부분을 보자. 10월 19일, 김선종 연구원 등을 인터뷰하고자 미국 피츠버그에 와 있던 한 PD에게 서울에서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가 통보된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논문에 실린 2번 줄기세포 결과와는 다를 뿐만 아니라, 미즈메디병원의 4번 줄기세포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심적 상태를 한 PD는 이렇게 기록한다.

"처음에 내 눈을 의심하고 여러 차례 재확인해 보았다. 정말 믿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 나와 조연출은 멍했다. 우리가 지난 5개월 동안 숨죽이며 취재하던 내용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을 조작이라고 증명한 것이었다. (…) 도대체 이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리고 세계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막막하고 씁쓸한 감정이 물밀듯이 다가왔다."

희대의 사기극의 실체를 간파한 한학수 PD는 "심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10월 20일, 한 PD가 김선종 연구원을 취재 윤리까지 위반하면서 몰아붙였던 데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다. 물론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대로, 이 2번 줄기세포는 제보자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확보한 것이기 때문에 한 PD는 방송을 위해 정식적으로 줄기세포를 확보해야 했다. 한학수 PD는 이를 위해 "대한민국 최고 연기"를 지켜봐야 했다.

"황우석은 대한민국 최고 연기자"

2005년 10월 31일, 이미 제보자로부터 "황우석 박사가 실험실의 현미경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어 아는 한학수 PD 앞에서 그는 현란하게 영어를 섞어가며 줄기세포를 주제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 황 박사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PD는 그에게 일격을 날린다. 바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테라토마(줄기세포를 면역력이 결핍된 생쥐(SCID mouse)에 이식해 암과 같은 종양으로 자란 것) 실험을 누가 했는지를 물은 것.

예상대로 황우석 박사는 김대용 박사, 최양규 박사를 들먹였다. 물론 이미 한학수 PD는 두 사람으로부터 '자신들은 테라토마 실험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였다. 한 PD가 바로 두 사람으로부터 확인한 사실을 알려주자 현장에 있던 황 박사팀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녹음이 되는 상황인데도 황 박사는 자신이 조금 전에 한 증언을 부정했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과 착오를 일으켰다고 둘러댄 것.

이미 강성근 교수는 "테라토마 실험은 서울대 수의대 실험실에서 했다"고 밝힌 터였다. 이때부터 이미 황우석 박사팀은 손발이 맞지 않았다. 재차 한 PD가 물었다. "(강 교수 말과 달리) 서울대 수의대 실험실에서는 '스키드 마우스'가 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최고 연기"를 보였던 황우석 박사도 흔들렸다. "가, 가만 있어 봐, 가, 강 박사, 우리 지금 스키드 마우스 어디서 길러요?"

다시 평정을 찾은 황우석 박사는 이제 한학수 PD를 역습했다. 논문에 실린 사진을 조작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언급하자마자 황 박사는 엄포를 놓았다. "김선종 선생을 어떻게 위협했고 어떻게 이야기했기에 그렇게 답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회유도 이어졌다. "한 선생님, 다음부턴 내가 철두철미하게 할게요. 이젠 이 세상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젠 할 게요." 이런 회유도 안 통하자 결국 황 박사는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학수야, 네가 구속돼라"

12월 4일 오후 3시, YTN은 한학수 PD가 피츠버그에서 김선종 연구원을 취재하면서 취재 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전격적으로 보도한다. 나중에 이른바 '청부 취재'로 밝혀진 바로 그 보도다. 6일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던 한학수 PD는 곧 최문순 사장을 비롯한 MBC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 불려간다. '취재 윤리를 어긴 것은 인정하지만 방송은 해야 한다'는 그의 요구는 뭉개졌다. "당신은 지금 그런 말할 입장이 아니다. 자숙하라."

결국,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한다. 6일 방송이 중단됨은 물론 최승호 PD, 한학수 PD 등 <PD수첩> 팀은 초토화되었다.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말없이 근처 술집을 찾은 최승호 PD, 한학수 PD는 결심한다. "팀장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취재한 내용이 중대한데 이것을 방송하지 못하게 한다면,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MBC를 떠나서 그동안 취재한 내용을 검찰에 알린다는 것."

최승호 PD는 한학수 PD에게 말한다. "학수야, 네가 구속돼라."

구속을 각오한 한학수 PD는 이날 오전 제보자와 그간 <PD수첩>을 도왔던 과학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취재윤리와 관련해 제가 잘못한 부분은 책임지겠지만, 이것이 진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별개 사안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방송할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이미 한학수 PD가 이 메일을 보낼 때, 진실을 말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4일 밤 10시 40분, 최승호 PD 앞으로 'anonymous'는 편지를 보냈다.

"중대한 일에 대해서 긴급하게 상의하고자 하니 연락을 달라." 한 번 더 대반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제보자에 빚지고 있다"

이 anonymous는 5일 새벽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게시판에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최초로 제기한 사진 조작 의혹은 BRIC,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과학갤러리'의 젊은 과학자의 검증 노력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고 당일 <프레시안>을 통해 최초 보도됐다. 이때부터 12월 10일 <프레시안>이 문제의 그 김선종 연구원 인터뷰 녹취록을 보도할 때까지 숨 가쁜 한 주일이 이어졌고 결국 상황은 반전됐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학수 PD가 2005년 그 초조하고 긴박했던 순간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 탓이다. 한 PD는 목소리를 높인다. "황우석 박사와 <조선일보>, 그리고 청와대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초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와 논문에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참하다. 제보자 K는 다니던 병원에서 과학기술부의 압력을 받아 '강요된 퇴직'을 당했고, 그 부인인 제보자 B도 실직한 상태다. 이 부부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맨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 대한민국은 제보자 K 부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을 모른 체하고 도리어 제보자 K 부부를 '왕따'시킨다면, 그 곳은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 6일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를 상대로 "파면 처분은 부당하다"며 파면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얼마 전 박기영 전 청와대 보좌관은 "김선종 연구원만 아니었다면 황우석 박사는 성공했을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김 연구원에게 돌렸다. 한학수 PD는 한국 사회가 같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지며 책을 마무리한다.

"황우석 사태는 이제 긴 터널의 끝이 아니라,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anonymous는 감자 농사꾼

한학수 PD는 이 책에서도 제보자의 실명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보도, 검찰 수사 결과로 이미 많은 이들이 제보자 K 부부의 실명을 알고 있다. 한학수 PD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한 끝까지 제보자의 신분을 지키는 것이 언론의 자세라고 생각한다"며 "황우석 사태 후 1년이 지나도록 그들 스스로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이 사태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책에서는 그 동안 신분과 역할이 베일에 싸여 있던 'anonymous'에 대해서 일정부분 설명이 이뤄졌다. 2006년 초에야 그를 만난 한학수 PD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70년대 학번으로 나이는 40대 후반의 농사꾼이었다. 그는 시골에서 감자 농사를 지으며 밤마다 과학 논문 두어 편은 읽어야 잠이 오는 사람이었다. 과학이 좋아서 학문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낙향했고, 그저 과학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하는 '감자 농사꾼'이었다."

anonymous는 BRIC에 최초로 사진 조작 의혹을 제기했을 때 "잠시 감자밭에 가야 한다", "조작된 사진을 더 찾는 사람에게는 감자 한 상자씩을 주겠다"고 경품까지 내걸었는데, 이것이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가 새벽에 감자밭에 다녀오자 후배 과학자들은 이미 5쌍의 조작된 사진을 찾아놓고 있었다.

(<프레시안>은 12월 5일 사진 조작 의혹을 최초로 보도하면서 anonymous도 '젊은 과학자'에 포함시키는 '오보'를 냈다. anonymous도 "강 기자가 나를 젊은 과학자로 만들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기회에 anonymous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마음만은 어느 후배 과학자보다도 젊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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