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부터 폭스콘·삼성까지…'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IT 일상다반사] '공룡' 반도체 산업, 빛과 그림자(下)
2010.10.12 09:17:00
"IBM부터 폭스콘·삼성까지…'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 '공룡' 반도체 산업, 빛과 그림자
흔들리는 반도체 신화, 한국 경제 '알몸' 드러나나? (上)
"반도체 산업, 언제까지 '아오지 탄광' 방식인가?" (中)

"다치고, 병들고, 죽은 노동자들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학적으로는, 기술적으로는,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방도, 치료도, 보상도 받을 수 없다."(울리히 벡)

"이 경우 통계적 유의성이 없습니다. 전문가들 의견이 그렇습니다."(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관련 질의에 대한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답변)


IT(정보기술)라는 용어가 일상 속에 자리매김한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PC(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부터 스마트폰의 등장까지 IT 산업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보여줬다. 나날이 발전하는 IT 기술과 쏟아져 나오는 소프트웨어는 IT를 가상의 공간에서 생성되는 서비스 산업의 일종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그 제품 안을 뜯고 안을 들여다보면,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IT 산업의 최하층에 자리잡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비극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반도체 신화'를 일구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IT 기업으로 부상한 삼성에 의혹에 제기된 것은 지난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 황유미 씨가 숨지면서부터다. 황 씨의 죽음 이후 꾸려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금까지 접수한 피해 제보는 100여 건에 이르고, 이중 32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피해 노동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되었지만, 정작 삼성과 정부가 내놓은 대답은 한결같다. 피해 노동자들의 발병과 노동 환경은 직업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박재완 장관의 말이 이를 잘 웅변한다.

<CTC>, 삼성을 비추는 거울

'통계적으로는 사업장에서 희귀 질환에 걸리지 않은 산재 노동자'가 유독 반도체 사업장에서 도드라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답변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우선 IT 산업은 그 역사가 짧은 대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산업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고, 세계화 바람을 타면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새로운 제품·기술·소프트웨어의 출현만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정작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기여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시대의 변화에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현상은 여기서 나온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원자재의 안전성과 작업 환경에 대한 대책, 이를 연구하기 위한 학계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현실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여기에는 이익을 위해 조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조사 자체를 방해하려는 업계와 자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을 감는 정부도 한몫했다.

▲ <챌린징 더 칩: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메이데이)
지난 2006년 출간돼 지난해 말 국내에도 번역된 <챌린징 더 칩: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Challenging the Chip, 이하 CTC)>(메이데이)는 이 책의 역자 중 하나인 반올림의 공유정옥 전문의의 말처럼 "세계 반도체·전자 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의 문제를 망라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단행본"이다.

2002년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ICRT)'이 주최한 국제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CTC>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돼 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까지 흘러간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조망했다.

한국에서 반도체 노동자 논란이 2007년부터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CTC>는 현재 삼성이 봉착한 문제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법'보다 기업이 빨랐다

반도체 칩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1.7㎏의 화석연료와 화학약품, 32㎏의 물이 필요하다. 데스크톱 PC와 모니터를 만드는데 필요한 원자재는 평균 1.8톤에 이른다. 갖가지 화약제품으로 처리된 반도체를 다루는 노동자가 병에 걸릴 개연성이 상당한 셈이다. 당연히 정부나 기업에서 새롭게 출현한 사업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하고,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적절한 안전 수칙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초기 반도체 산업을 주도한 미국에서부터 그러한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도체 산업이 독립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부터다. 당시부터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나 작업공정을 기업 기밀로 유지하는 것인 관행이었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작업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화학제품을 다루는지, 노출될 위험을 어느 정도인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반도체 산업의 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시작된 게 아니라 작업 중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생겨나면서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 셈이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1980년 처음으로 반도체 산업의 건강유해성 평가를 시작했지만 기업들은 조사에 소극적이었다. 초기 조사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직업과 관련된 심각한 건강문제들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추가 조사는 없었다.

이후 연구를 통해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벤젠, 클로로포름, 디클로로메탄 등 발암물질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반도체 노동자 중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알려졌다. 대기업들도 자체적인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IBM같은 대기업이나 반도체산업협회(SIA) 등이 지원한 연구는 일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결과만을 도출했다. 이후 지원하던 연구 기금을 통제해 추가적인 평가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간의 조사를 토대로 일부 발암물질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효과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나 자료 제공 역시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신 IT기업들은 제한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업장에서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해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2003년 IBM에서 암을 얻은 두 명의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했을 때 사측은 "IBM처럼 큰 사업장에서는 우연히 많은 노동자들이 희귀병에 걸릴 수 있다"며 "IBM에서 했던 일 때문에 걸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IBM의 30년치 '기업사망자료'를 분석해 IBM 노동자들의 사망 패턴이 제조공정에서 사용한 화학제품 노출과 일치한다는 증거도 나왔지만 법원은 이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여론의 압박에 자체적인 조사를 시작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과 암 질환과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밝히는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자사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여력이 있었지만, 실제로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벌인 적은 없었다.

제한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 공정과 노동자의 건강권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상당 부분 확인된다. IBM와 SIA의 조사에서 클린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이 증가했다는 점이 밝혀졌고, 1980년대 초반 다른 조사에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폐암·방광암·악성 흑색종 등 특정 암에 노출될 위험이 1.22~1.52배 높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2001년 미국 노동통계사무국 조사에서도 유해물질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손실이 제조업 전체에서 2.4%인데 반해 반도체 산업은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반도체 회사들이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 발병과 작업환경 사이의 연관성이 확인되면 산업재해 대상이 되고, 기업도 안전 대책을 세우는 등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의 복잡한 공정과 기업 기밀을 무기로 반도체 노동자의 실상을 가려온 셈이다.

세계화 바람 탄 IT, 아시아로 흘러간 비극

노동자들과 지역 사회의 문제제기와는 별도로 IT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산업구조도 변해갔다. 예전에는 IBM과 같은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에 쓰려고 만드는 부품 정도의 위상을 갖던 반도체였지만, 점점 CPU, 메인보드 등 완제품이 아닌 특정 부품만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대신 생산하는 하청기업들도 노동력이 값싼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들어섰다. 제조 전문기업이 늘면서 반대로 공장이 없이 반도체 설계만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도 출현했다.

전 세계에 퍼진 IT 기업들은 각각의 시장접근성과 물류 환경 등 지리적 특성을 살리면서 공급망 사슬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제기됐던 반도체 노동자 논란도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몰린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1990~1991년 태국 테파룩에서 하드디스크를 만들던 노동자 4명이 사망했고 약 200명이 납 중독 진단을 받았다. 1993년에는 람푼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동시에 비슷한 질환을 보이며 연이어 사망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태국 정부가 인정한 조사를 거부했다. 노동자들이 발병과 작업환경을 증명할 증거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일들은 인도·중국·대만 등에서 비슷한 유형으로 반복됐다. 올해 초 생산직 노동자들의 잇단 투신으로 비난을 샀던 대만기업 폭스콘은 중국에서 수십만 명을 고용해 근로계약서도 없이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했다. 윈테크라는 기업의 공장에서는 홀해 초 수백 명의 노동자가 헥산에 중독돼 일부는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사측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파업이 일으키기도 했다.

애초에 대량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아시아로 몰린 이유를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예고된 결과다. 값싼 노동력 대부분이 저학력 여성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점은 노동집약형 산업에 '최상의 조건'이다. 아시아 개도국 대부분이 노동권을 보호하는 제도의 정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노동자를 해고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갖춰 고용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라는 로버트 조이스 전 인텔 CEO의 말이 이를 잘 대변한다.

각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인 IT 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중국은 개별적인 노동조합 결성이 금지되어 있고, 말레이시아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게다가 특정 산업에서는 노동조합 설립이 제한된다.

삼성과 한국, '노동 후진국' 굴레 벗을까?

▲ 지난 3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스물 셋의 나이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숨진 故 박지연 씨. ⓒ반올림

삼성의 '반도체 신화'의 이면에서 신화를 떠받치는 노동자들의 실상 역시 <CTC>에서 말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이들 대다수는 10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취업한 청년들이었고, 대부분이 가임기의 여성이었다.

피해 노동자들은 재직 당시 몰려드는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해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고, 업무를 빨리 처리하게 위해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동료 노동자들이 잇따라 생리불순과 유산 등을 경험했고, "오래 일할 직장이 아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삼성 백혈병' 비밀?…"밀려드는 작업량에 맨손으로 칩 다뤄")

반도체 노동자 문제가 세상에 나온 이후 공장의 작업환경을 조사한 역학조사 결과는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고, 삼성이 자체적으로 학계에 의뢰에 조사한 연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지금까지 피해 노동자 16명이 신청한 산재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무노조 경영을 추구하는 삼성 내부에서 노동자의 권리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날 계기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반올림과 일부 언론에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관심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삼성을 중심으로 제기된 반도체 노동자 논란은 세계 IT 산업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 제품 개발과 제조 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삼성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전통적인 강자와 HTC 등 신흥 기업이 합세한 모바일 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는 한편, 수십 년 간 풀리지 않았던 반도체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 이중의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은 한편 답답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찾아가는 길은, IT를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부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수 시민이 IT로 행복을 얻는, 진짜 'IT 강국'에 다가가려면, IT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반도체 분야에서부터 '노동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 '죽음의 반도체 공장' 피해자 열전

"딸이 죽어가는데 500만 원, 귀싸대기를…"
"뇌종양 수술 후, 사지가 묶여 있는 딸을 보고…"
"맨손으로 만진 반도체, 그리고 어린이날 시한부 선고"
"뽀얀 피부 예쁜 눈의 그녀, 마비된 손으로…"
"'가까이 하면 고자 된다' 알면서도…"
"하혈하고 생리 거르더니 백혈병"…우리가 정말 무식해서일까?
"자식 잃은 부모 앞에서 삼성은 돈 이야기만 했죠"
"삼성, 생리 끊어지고 구역질 나는데 '증거 있느냐고?'"
"뼈가 녹는 느낌에 삼성에 문의했더니 답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srv@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