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담아낸 소녀시대, 왜 슈스케에 밀릴까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걸 그룹 시대 변화의 징조
성과 담아낸 소녀시대, 왜 슈스케에 밀릴까
눈여겨보지 않는 변화, 소녀시대의 새 앨범

소녀시대는 적당한 실력과 분명한 캐릭터라는 음악 상품의 조건, 십대에서 청장년층까지 아우른 타깃 설정, 그리고 고도의 기획이 결합되어 탄생시킨 2000년대 아이돌 그룹의 완성형이었다. 예전의 '서태지 효과'처럼 확대·재생산되는 핫이슈 메이커가 되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과잉공격과 과잉방어와 같은 과열현상까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영화 시상식 굴욕사건'도 그렇다. 워낙에 딱딱한 분위기 탓도 있겠으나 '국민 아이돌'이나 인기가수 대신 영화와 인연 있고 영화인들의 취향에 호소할 수 있는 음악인을 섭외했다면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을까?

원더걸스가 일찌감치 빠져나간 이후 소녀시대는 다른 걸 그룹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겨뤄왔다. 또한 팬들로 하여금 성장과정을 지켜보게 만든 특별한 유형이다. 그런 소녀시대가 이번엔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방송에선 1위를 차지한다지만 온라인 차트에선 '슈퍼스타K2' 출연자들의 기세에 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대해온 이들도 있겠지만 바닥민심은 예전과 달라서 신곡 활동을 '트렁크 쇼'처럼 다소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고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게 되자 기존 지지자들이 "빼앗기느니 파괴해버리겠다"는 <영웅본색2>의 명대사를 실천하려고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지도 않다.

▲소녀시대 미니앨범 [훗] ⓒSM엠터테인먼트
사실 타이틀곡인 <훗>의 중독성과 파괴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누군가는 목에 발이 들어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으나 <Gee> 이후엔 그만한 곡이 없었다. 소녀시대이기 때문에 달라 보였을 뿐이다. 그마저도 4년차 그룹이 되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미니앨범 [훗(Hoot)]에는 눈여겨 볼 부분들이 있다. 외국인들의 곡이란 점에서도 제2의 <Run Devil Run>이라 할 <훗>은 성숙한 이미지를 흘리고, 농염하기까지 한 <Wake Up>에선 걸 펑크 밴드 숄티 캣(Shorty Cat)마냥 "난 네 인형이 아냐, 난 장난감이 아냐"라며 시치미를 뗀다. '소녀시대에서 숙녀시대로'의 변신이 다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녀풍의 <단짝>과 <첫눈에>가 있으니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는 틀을 유지하되 새로운 이미지를 모색한다고 정리해버리면 편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타이틀곡은 무뎌졌지만 앨범 단위의 충실도가 부쩍 높아졌다. 삼투압 현상처럼 곡들의 완성도가 타이틀곡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 되어 지금껏 소녀시대의 이름을 내걸고 발표한 앨범들 중 가장 낫다. 국내의 실력파 작곡가들도 참여한 이 미니앨범은 소녀시대의 열혈 팬보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이들이 들으면 더 좋다. 그러고 나서 더 열심히 흉을 볼 자격을 얻었다고 득의양양할 수도 있긴 한데 이번만큼은 말리고 싶다. 대단한 수작이라는 찬사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만, 만약 다음 정규앨범이 이번에 실린 곡들 수준으로 채워진다면 어떤 기념비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대목은 소녀시대(와 작곡가, 제작자)의 딜레마다. 아이돌 그룹에게 시장에서의 성과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간의 앨범들은 타이틀곡과 하나 정도의 후속곡 말고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선물상자에 불과했는데도 그들에겐 성공이었다. 사회의 시선은 어떠했나. 수출기업 운운하며 상품가치만 강조하고 애초에 비평적 조언은 중시하지 않았다. 관성 탓인지 음악 전문가란 사람들조차 이번에도 허투루 듣고 자동차 품평회처럼 대충 말해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이번엔 타이밍까지 썩 좋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소녀시대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눈여겨봐야 할 변화, 역풍이 의미하는 것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그리고 예정된 행보는 완성도 향상과 해외 진출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물론 완성도에 대한 오해는 걷어내야 한다. 시골에서 건전지를 약이라 부르고, <혹성탈출>을 <행성탈출>이라 바꾸지 않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개념과 전제가 잘못되면 결론이 엉뚱해진다. 완성도를 강조하면서 들을만한 곡이 실렸지만 권하기엔 부담스러운 앨범, 안 버릴 곡 하나 없는 앨범, 버릴 곡 하나 없으면서 권할 곡도 없는 앨범, 무결점이긴 하되 무결정의 앨범을 양산해온 가요계였다. 앨범은 대충 만들고 타이틀곡으로 승부하는 것이 첨단시대에 대한 적응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오히려 옛날 옛적 풍토와 닮아가는 과거회귀 같은 면이 있다. 그에 비하면 [훗(Hoot)]은 포인트도 있고 곡들의 수준도 고른 편이다.

훗날 노래방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게 될, 하지만 그 만인의 성대와 일행의 고막을 고통스럽게 만든 스틸 하트(Steel Heart)의 <She's Gone>이 실린 음반을 샀다가 취향이 안 맞아 당황했다거나, 곡명만 알고 음반을 샀더니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She's Gone>이 흘러나오더란 일화가 생길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고마워하게 된 음악애호가들도 많았다. 다른 곡들도 좋았으니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은 소녀시대에게 비판적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라고 말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좋겠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기에 입장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

외국에서 잘 나간다고 국내에 홍보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집안일로 집을 비우는 가수들에 비하면 소녀시대의 해외진출도 성공적이다. 일본 아이돌을 모델로 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파워와 카리스마를 더하여 아시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아이돌 타입을 보여줬다. 육감적인 매력이 강한 서양 아이돌과는 차이가 확연하여 아시아에서만 성공 가능하다는 뜻도 되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청장년 남성층이 순풍이 되어준 것과 달리 일본에선 젊은 여성층의 바람 안에 머물고 있어도 제한적인 성공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그런데 하나. 박진영이 외국 인기가수에게 곡을 제공했을 때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반응했던가? 그런 식이라면 <Run Devil Run>과 <훗>, <단짝>처럼 외국 작곡가들의 곡을 부르는 소녀시대는 순수국산일까?).

▲ ⓒ뉴시스

이처럼 비로소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소녀시대에게 '슈퍼스타K' 후폭풍은 역풍이 되어버렸다. 패자응원 심리와 동질감에 대한 고찰은 몰라도 전 세계에서 히트하여 검증받은 프로그램 포맷을 두고 공정·참여·평등·소통과 같은 과잉담론까지 횡행할 정도니 바람이 세긴 센 모양이다. 실은 특정 기획사와 불편한 관계였던 대기업 계열사의 일격, 연예산업의 주도권을 기획사에게 빼앗긴 방송사의 반격, 지상파와 케이블의 쟁투 예고가 숨어 있다. 실력의 기준도 문제다. 중국에선 립싱크 공연에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지만,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가보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연주도 마찬가지다. 기타를 빨리 친다는 이유만으로 '잉베이'가 추앙받진 않았다. 그런데 장인의 영역이라고도 하는 리메이크를 조롱하는 수준의 급조품들이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왜? 원곡이 좋으니까, 프로그램이 히트했으니까.

지난 1년, 피로감을 느낀 대중이 신선함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걸 그룹 과잉이 조정국면에 들어가 1등 그룹과 2등 그룹의 격차가 커지고, 상당수의 관심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일반인 스타로 옮겨갔다. 기압차에 의해 바람이 발생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대형 기획사를 이겼다고 순진하게 볼 수도 있지만, 양질의 앨범을 질 낮은 콘텐츠가 압도하는 애석한 상황도 겹쳐 있다. 소녀시대와 신곡들은 '슈퍼스타K'와 어설픈 리메이크에 전혀 밀리지 않았지만, 큰 판도에선 밀리고 있다. 긍정성과 부정성을 포함한 이 기호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수억의 상금을 내걸고 스타병을 부채질하는 방송은 경유지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양상이라면 프로그램의 기능과 우승자들의 음악적 결과물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 뒤따를 테고, 수긍하는 여론도 커지게 되어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건 부동층(不動層)이 아니라 부동층(浮動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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