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유독가스 빠지려면 4시간 남았는데 라인 가동"
<추적60분>, 삼성 백혈병 의혹 집중 조명
2011.01.27 09:24:00
"삼성, 유독가스 빠지려면 4시간 남았는데 라인 가동"
'삼성 백혈병'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단체 반올림이 17번째 산업재해 신청을 예고한 가운데 KBS <추적60분>이 26일 방송에서 삼성 백혈병 논란을 재조명했다. 방송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에 대한 삼성 측의 해명과 함께 새로운 제보자들이 증언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실태를 나란히 내보내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방송에는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약 6년간 일하다 퇴사한 후 시한부 1년의 악성 뇌종양에 걸린 이윤정 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씨는 재직 당시 고온실에서 반도체 칩을 테스트하는 일을 했다. 그는 당시 근무 환경에 대해 "칩에 묻은 가루가 설비에 끼면 오작동이 나 에어건을 뿌려 제거할 때 공기 중에 날리는 가루를 들여 마셨다"며 "장비에서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증기가 났다"고 증언했다. 이 씨와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유명화 씨도 입사 1년 만에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관련 기사: "맨손으로 만진 반도체, 그리고 어린이날 시한부 선고")

▲ 발병하기 전 이윤정 씨의 모습 ⓒ반올림
이 씨는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짓은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런 병에 걸려 1년 밖에 못산다는 사실이 감당하기 힘들다"며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남편, 아이와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 반도체에서 5년을 일한 한숙희(가명) 씨도 재직 도중 납 성분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납 도금 공정에서 일한 한 씨는 "도금이 안 된 자재를 직접 도금 장비에 투입하곤 했는데 장비 뚜껑을 열면 납 액체가 그대로 보이고 냄새도 났다"며 "재직 당시 받은 건강검진에서 납 중독 진단을 받고 공정을 바꾸기도 했는데 지난해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삼성, 제작진에 "정보 공개하겠다→영업 비밀"

삼성 피해 노동자 대부분이 일했던 노후 라인은 현재 폐쇄돼 이들의 과거 작업환경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삼성은 가스 누출 탐지기의 데이터를 영업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라인에서 실제 가스 누출사고가 일어났는지 여부는 제한된 자료와 피해 노동자들의 증언으로 추측하고 있는 실정이다.

<추적60분>은 지난해 9월 참여연대가 입수해 공개한 삼성전자 기흥공장 노출평가 자분보고서를 소개하며 이 내용에 관한 삼성 관계자의 해명을 실었다. 당시 보고서에는 납품업체가 공급하는 화학물질의 성분을 삼성이 직접 확인한 사례가 없고, 10종의 화학물질은 성분조차 파악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실려 파장을 부른 바 있다.(☞관련 기사: 삼성 내부 보고서도 반도체 공장 위험 인정)

<추적60분> 제작진이 인터뷰한 김관식 삼성 반도체 환경안전팀 부장은 파악하지 못한 10종의 화학물질에 대해 "납품업체에게 자체 분석한 결과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고 추가적인 개선을 했다"고 말했다.

자문보고서는 또 2009년 2월부터 7월까지 46건의 가스 누출이 일어났고 그 중 한 차례는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농도의 가스 누출사고였다고 지적했다. <추적60분>이 인터뷰한 전직 5라인 노동자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이 따가울 정도로 퍼진 적이 있다"며 "당시 5라인 근무자 전체가 대피했었다"고 증언했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 "매달 하는 통상적인 대피 훈련"이라며 "근무 중에 예고 없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문보고서의 가스 누출 기록에 대해서도 "가스 감지장치는 먼지나 부산물에도 반응할 수 있다"며 "노출 경보가 울리면 장비가 멈추기 때문에 가스 공급이 차단되므로 실제로 가스가 나오는 일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추적60분> 제작진이 만난 한 삼성 엔지니어 출신 노동자는 이러한 해명을 반박했다. 그는 "(장비를 점검할 때) 나오는 가스를 다 없애려면 8시간은 라인을 멈춰야 하지만 제품을 계속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4시간으로 타협하곤 했다"며 "신내가 나는 가스는 검출 장비가 따로 없어 엔지니어들이 직접 코로 냄새를 맡고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노동자는 "(삼성이)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들이 잘못했다고 말할지 몰라도 실제 작업환경은 (규정과) 다르다"며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하면 온몸에 열이 올라 땀이 물 흐르듯 했다"고 덧붙였다.

<추적60분>은 또 삼성 측이 2007년부터 도입한 노출 감지 시스템인 ACM 감지기의 데이터를 처음에는 제작진에 공개한다고 했다가 "생산설비 관련 내용이라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말을 바꾼 과정도 밝혔다.

ⓒ프레시안(최형락)
"산재에 준한, 그 이상의 금액 준비하겠다"…회유 작업도

세계3대 연기금 운용사인 APG 자산운용이 지난해 4월부터 삼성 백혈병 문제와 관련 투명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선 과정도 다뤄졌다. 제작진이 만난 레이크 APG 자산운용 책임투자 총괄은 "(삼성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세계적인 기업을 보면 최대한 관련 정보를 공개한다"며 "(삼성이 현재 자체적으로 벌이는) 조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조사방법과 결과에 대해 사측이 조작을 할 수 없도록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를 제시하면 지켜보는 이들이나 삼성을 비난하는 이들도 조사 결과를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백 삼성전자 인사팀 부장"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조사 과정의 세부사항을 일일이 공개할 수는 없다"며 "결과가 나오면 영업상 비밀을 제외하고는 투명하게 공개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자체적으로 벌이는 조사 결과는 7월에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추적60분>은 삼성이 피해 노동자들의 발병과 작업 환경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비공개적으로 유가족들을 만나 산재 취소를 전제로 합의를 종용한 사실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최초로 밝혀진 삼성 피해 노동자 故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지난달에도 삼성 측 관계자가 집에 찾아왔다고 밝혔다. 황 씨가 공개한 녹취에서 삼성 관계자는 "예전에는 (황유미 씨의 질병이) 직업병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예전에 황 씨에게) 약속했던 금액을 드리려 했지만 산재를 신청해 약속을 못지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측은 이달 초에도 황 씨를 찾아와 "(삼성 백혈병 논란이) 이제는 많이 알려진 상황이라 회사가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사안은 리드해야하지 않겠냐는 경영진의 말을 듣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산재에 준한, 그 이상의 금액을 준비해서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위로금을 제시하며 산재 포기를 종용한 셈이다.

황 씨는 제작진에게 "그들은 이러한 발언을 반올림에 알리지 말고 회사에 대한 비방도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며 "나중에는 집에 찾아왔다는 소문이 잔잔히 퍼지고 있다며 약속을 못지키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추적60분>이 이 사안에 대해 묻자 처음에는 황 씨를 찾아간 적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다음날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에 대해 고민해왔다"며 "그 과정에서 황 씨에게 지원할 수 있는 규모에 대해 상의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추적60분>이 삼성이 전례 없이 퇴사 이후 발병한 직원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위로금을 지급하려는 이유를 묻자 삼성 측은 "사회적, 도의적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현재 검토 중인 지원 제도가 정리되고 나면 모든 이들에게 알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씨는 "위로금은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이지만 공식적이어야 한다"며 "그래야 지금 삼성에 다니는 이들도 (발병하면) 따라서 위로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추적60분>은 이밖에도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린 근로복지 공단을 상대로 피해 노동자와 유가족들이 낸 행정소송에 삼성 측 변호사들이 참가한 사연과 현재 산재판정 제도가 취지를 벗어나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추적60분>을 진행하는 강희중 PD는 "삼성은 취재 과정 중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지만 안전성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고 밝히는 등 논란을 해소할 실마리도 제시했다"며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는 초일류 기업으로서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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