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가 싫다면 선택하라!…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복지국가SOCIETY] "제주 영리병원 국회통과, 바라만 볼 것인가?"
"'3분 진료'가 싫다면 선택하라!…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이하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임박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영리병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닌 우근민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제주 영리병원 허용 안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의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20일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실정을 감안하여 중앙정부가 3가지 조건을 수용해야만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 통과가 가능하다며 '조건부 수용'으로 입장을 전환하고, 중앙정부에 요구 조건의 수용을 촉구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그 조건을 살펴보면 첫째, 영리병원 허용을 제주에만 한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치적 합의 또는 법안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둘째, 피부·미용·성형·임플란트·건강검진 등 서민들의 의료이용과 마찰이 적은 부분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열악한 제주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해 현재 BTL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서귀포의료원 신축 이전 및 첨단장비 보강에 대한 재정지원을 요구한 바 있다. 이 때 부터 제주도지사를 중심으로 한 제주도 공무원들과 제주도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우근민 지사의 소위 '제주 한정' 요구안을 들고 중앙정부와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압박 행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지난 3월 4일과 7일에는 민주당 소속 제주 출신 국회의원 3인이 총리 면담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제주 영리병원 분리 처리 요구를 내걸었으나, 사실은 우근민 지사가 제시한 3가지 조건의 수용을 압박하는 공식적인 대담 자리를 가지기도 하였다. 두 번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거부로 조건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3월 8-9일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 통과와 상임위 상정이 이루어지기 직전 상황까지 나아갔으나, 결과적으로는 4월에 처리하기로 합의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 바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3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부지사가 중앙정부가 제주도 지사의 3가지 조건부 요구안을 수용하였다는 것과 현재 중앙정부와 세부 논의를 조율하고 있으며, 조율된 내용을 토대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정부가 확답을 주었다는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영리병원을 최소 4~5년 제주에 한정하는 방안을 정부가 수용했는데, 이를 법안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영리병원을 최소 4~5년 제주에 한정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는 영리병원을 4~5년 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법률적으로 승인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는 법리적 논의를 차치하고라도 제주 한정이라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실질적으로는 영리병원 전국화를 정치적으로 승인해주는 것과 다름없는 조치일 따름이다.

둘째, 영리병원 진료 대상을 서민들의 의료이용과 충돌하지 않는 성형, 미용, 건강검진, 임플란트로 한정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 또한 법안에 담을 지 또는 이를 조례로 위임할 지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자체는 논외로 하더라도, 법안에 담을 지 조례로 위임할 지의 중요한 문제 이외에도 건강검진이 포함된다는 조항이 심상치 않다. 건강검진은 모든 진료과목의 개설 허용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진이 포함되지 않은 진료행위는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방 및 치료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구분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영리병원 개설 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 크게 염려할 것 없다는 구실로 삼으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제주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재정지원 부분인데, 조만간 제주도와 중앙정부 간의 합의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주도에서는 1000억 원 규모로 제주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추정해보면 이미 BTL 방식으로 확정된 400억 원 규모의 서귀포의료원 신축 이전을 재정 지원으로 돌리고, 기존에 지속되던 제주 공공의료 예산지원 내용 수년치를 대거 포함시키는 수준에서 정리될 듯하다.

중앙정부가 확답을 주었다는 '제주 한정' 요구를 정리해보면, 기존 법안의 내용을 견지하면서도 영리병원 통과를 위한 명분을 주고, 기존 중앙정부의 제주 공공의료 예산 지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새롭게 포장하여 공식화하는 과정을 통해 제주도민과 국민 여론을 환기키시면서, 그 동안 공식적으로는 제주 영리병원을 반대하던 민주당에게 동의할 명분을 주어 국회 처리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제주 영리병원 허용 방안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임박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제주 지역 보건의료인들 . ⓒ제주의소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영리병원 처리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영리병원 처리를 원하는 것은 서비스 산업을 통한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고, 의료시장에 뛰어들어 수익을 내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연간 총 진료비 40조 원을 상회하는 건강보험 진료비 규모를 탐내는 보험회사, 영리병원을 계기로 의료공급 부분에 뛰어들어 시장을 확보하고 수익을 내고자 하는 기업과 자본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이 모델로 삼는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의료산업 팽창과정이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기반을 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면서,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민간을 중심으로 한 금융·의료·법률·교육 등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왔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 유학하면서 이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의료산업 선진화 담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의료산업의 팽창은 보험을 매개로 금융시장의 확대에 기여하였고, 의료사고를 고리로 법조 시장의 동반성장에 기여한 탓이다. 최소한 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어볼 사안이 하나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의료산업 확대 과정의 비용을 국가와 기업이 부담하였다는 사실이다. 65세 이상 인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와 유사한 '메디케어' 제도로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였고, 65세 미만 인구에 대해서는 보험료의 70~80% 이상을 기업이 부담하는 의료제도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건이 좋은 회사의 경우 직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아예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65세 이상 인구의 경우 10년 이상 소득의 2% 수준의 메디케어 세금 납부 실적만 있으면 65세가 넘어서는 별도의 보험료 없이 의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고용 상황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70~80년대의 경우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일부 유색인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보장 수혜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국가재정과 기업이 부담하기에 너무나도 그 부담이 높아 지속되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최소한 이러한 제도적 틀이 유지되었기에 국민적 저항 없이 미국의 의료산업의 지속적인 육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혹시, 의료산업 육성을 주창하는 정부와 기업이 부담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그런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의 주장이나 민주당마저 수용한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에 대해 현 정부는 수십조 원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기업들 또한 보장성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단히 인색하다. 그렇다면 의료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산업 확대를 위해 불가피한 추가적인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된다는 소리일까? 남은 주체는 국민밖에 없다. 국민들의 추가 부담에 따른 국민적 불만과 사회적 갈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현재의 국내 경제 상황에서 가계에 의료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지불 능력이 있는지 대단히 의문스럽다.

미국과 같은 방식의 의료산업 육성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 유럽의 복지국가 방식이 그것이다. 현재 국내 의료제도와 의료이용 현실을 놓고 볼 때, 직접서비스 분야의 의료 인력을 OECD 주요 국가 수준으로 확충하고자 해도 40만 명 이상의 추가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의 인력 확충이 가능하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도 '3분 진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의료서비스 질이 대폭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서비스 현장을 버텨나가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들의 노동 조건 또한 개선되어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재원 확보는 유럽의 복지국가의 방식을 따르면 된다. 이 길이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접근하는 데 보다 적합한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 방안 아니겠는가?

제주 영리병원 문제는 단순히 제주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한국 의료제도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계기이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서비스산업 육성의 길로 접어들 것인지, 아니면 복지국가의 모델을 따를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로이기 때문이다. 제주 영리병원에 발목이 잡혀있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중앙정부의 요구에 떠밀려 제주 영리병원 통과에 매진하고 있는 제주도 당국과 제주도 소속 국회의원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복지국가를 주창하고 있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제주 영리병원 문제에 분명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 2012년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는 이 땅의 많은 국민들 또한 제주 영리병원 문제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의료의 운명과 우리 후손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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