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 환자가 인스턴트 식품이야?
[국민에게 주치의를!·上] 건보 재정과 보장성 강화 함께 해결할 해법은?
2011.05.02 07:58:00
'3분 진료'? 환자가 인스턴트 식품이야?
지난달 건강보험료 때문에 놀란 이들이 많다.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워낙 심각하다는 게다. 건강보험 재정이 건전해져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병원에 갈 때면 흔히 경험하는 과잉진료를 내버려 둔 채 건강보험료만 올린다면, 수긍하기 어렵다.

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노령화를 생각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일 역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는 다수 서민에게 '의료비 폭탄'으로 돌아온다.

의료 낭비 체계를 뜯어고치면서, 동시에 보장성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및 의료제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들은 '국민 주치의 제도'를 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프레시안>은 '국민 주치의제도'를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유럽의 주치의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주치의제도에 대한 오해와 도입을 둘러싼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A 씨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그는 자신이 왜 아픈지 궁금했지만, 의사는 환자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를 무작정 검사실부터 보냈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 진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검사를 마치자 진료는 3분 만에 끝났다. A 씨는 진료받는 내내 그동안의 질병 이력을 물어보지도 않고 증상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의사가 야속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병원에서의 '3분 진료'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는 외국의 진료실 풍경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외국에는 전담 주치의가 자신의 환자를 진료하는 데만 20~30분을, 특히 초진 환자에게는 40~50분을 들인다"고 말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환자의 건강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묻는다. 외국 의사가 유독 친절하거나 착하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과 유럽의 의료 체계가 달라서다.

▲ 한국은 단위인구당 활동 의사 수가 OECD 국가 평균의 0.7배에 수준이지만, 국민 의료 이용량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의사의 노동 강도가 OECD 평균의 3배에 가까운 셈이다. 의사가 환자를 많이 받을수록 환자 하나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진은 환자들로 붐비는 병원 대기실. ⓒ연합

3분 진료와 30분 진료의 차이

한국의 개원의들도 '3분 진료'에 자괴감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사들은 3분 진료를 하지 않고는 의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이 교수는 "한국은 의료서비스의 단가가 전반적으로 낮아 박리다매 식으로 의료 행위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전체 의료이용량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다. 유럽의 개원의들이 하루에 환자를 20~30명만 진료하는 것과는 달리, 환자 70~80명을 쉴 새 없이 봐야 수익을 낼 수 있는 한국 의사가 환자의 건강에 대해 상담할 시간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의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도 문제다. 한국은 환자가 병원에 갈 때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사에게 돈을 내주는 '행위별수가제'를 선택하고 있다. 행위별수가제를 시행하면 의사는 약 처방횟수, 검사횟수와 같은 진료 행위의 수가 늘어날 때마다 돈을 번다. 문제는 '건강 상담'과 같은 예방적인 진료행위에는 건강보험공단이 의사에게 내주는 돈인 '수가'가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료횟수가 늘어날수록 의사가 돈을 버는 구조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주민이 건강해야 의사가 돈을 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의사가 환자의 건강에 유달리 신경 쓰고 환자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의사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 제도가 한국과 다르다. 1차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주치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치의제도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주치의(일반의)를 지정하고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받는 제도다. 주치의제도가 시행되면 의사에게 등록된 환자가 건강할수록 의사는 돈을 벌게 된다.

영국 주치의의 수입은 절반이 인두제(人頭制, 주치의에게 등록한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진료비를 계산하는 것)에서, 나머지 절반은 건강관리 인센티브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주치의 이름으로 지역 주민 2000명이 등록하면 국가는 2000명의 1년 치 진료비를 한꺼번에 의사에게 준다.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으면 의사는 그만큼 진료비를 보존할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돈을 번다. 주치의가 건강 상담과 예방접종 등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환자가 건강해지면 국가는 추가로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국가는 주치의가 맡은 고혈압 환자 중에 혈압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는 사람의 비율, 당뇨 환자 중에서 당뇨수치를 정상으로 유지하는 사람의 비율, 흡연자 중에 금연상담을 하는 비율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따진다. 건강해지는 환자들의 비율로 성적을 매긴 후 의사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한다.

예방의료 불모지 한국, 병을 키워서 치료…의료비 지출 증가의 한 원인

유럽의 의료체계가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중시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치료를 중시한다. 문제는 병을 키운 후에야 발견하면 치료에 드는 의료비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재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정의학)는 "주치의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주치의로부터 질병예방과 합리적인 검진 추천을 받는 경우보다는, 환자 스스로 병을 발견하기 위해 무턱대고 고가 검진을 받는 경향이 있다"며 "고가 검진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가 검진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자신의 건강을 알고 있는 주치의로부터 검진 항목을 추천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반면에 (유럽에서는) 증상이 없을 때 정기적으로 건강 체크를 하므로 주치의가 암과 같이 중한 병의 신호를 미리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병원이 치료하는 곳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한국도 치료보다는 예방과 건강증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국에서도 주치의제도를 시도하려는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다. 사진은 인천의 평화의료생협에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재활을 위한 소모임인 '등대모임'을 열고 있는 모습. 주치의제도의 핵심적인 철학은 치료 외에도 예방이나 재활 서비스를 중시하는 것이다. ⓒ인천평화의료생협

"대형병원 쏠림 현상의 해법은? 무상의료의 핵심은? 바로 주치의제도"

사실 주치의제도는 무상 의료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무상 의료를 시행하려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량을 줄이고 의료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 공공성이 높은 국가에서는 가벼운 질병‧만성질환‧일상적인 건강관리는 주로 1차 의료기관이 담당하기 때문에 대형병원은 암과 같은 중증질환이나 희귀난치성질환에 집중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가벼운 병에 걸린 환자가 주치의를 거치고 상급병원에 가면 진료비의 70%를 돌려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받는 돈은 50%다. 프랑스에서 상급병원으로 가는 환자는 전체의 10%다. 그마저 주치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큰 병에 걸렸거나, 추가 검사가 꼭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다. 나머지 90% 환자는 지역 사회에서 진료를 받는다. 대신 프랑스에서는 암이나 희귀난치성 질환과 같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수술‧검사‧진료비‧약값 등이 무료다.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찾기 전에 주치의가 문지기 역할을 하므로 중복 진료가 줄어들고, 의료 이용량이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된다. 1차 의료기관에서 질병 예방‧건강 상담‧건강증진서비스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아픈 사람'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적자에도 도움이 된다.

"주치의제도는 사회주의제도?…미국도 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면 의사가 나태해져서 의료 서비스가 떨어지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예방 중심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오히려 의료 서비스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집에 의사가 직접 방문하는 '왕진 진료'에 대해 국가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면, 환자에게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진석 교수는 "국가가 질병관리 성과로 인센티브를 주므로 의사들도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며 "주치의제도가 실행되면 의사가 관료화돼 의료서비스 질이 나빠진다는 것은 오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보수 진영은 주치의제도가 사회주의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동네의원에 한해서는 주치의제도와 인두제를 실시하는 미국도 사회주의국가인가"라고 반문했다.

- 국민에게 주치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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