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 때문에 신혼 8개월 만에 이혼"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③] 이지선씨
2011.11.09 08:55:00
"반도체 직업병 때문에 신혼 8개월 만에 이혼"
"우리는 솔직히 말해서 인간 실험동물이었어요. 그들은 처음부터 이 화학약품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은 거예요. 그들은 오직 돈 버는 것에만 신경을 썼어요."

IBM 반도체 노동자 케이스 버락은 말했다. 그는 IBM에서 일한 대가로 고환암에 걸렸다. 20년 후, 반도체 주요 수출국인 한국에 수많은 케이스 버락이 생겨났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암과 같은 희귀질환에 걸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 수는 150명에 다다른다. <기고자>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
"삼섬 반도체에서 일하다 '앉은뱅이 병'에 걸렸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왜 평범한 삶이 나에게는 어렵죠?

이지선
(가명), 32세, 1997년 삼성전자LCD 기흥공장 입사, 모듈과 TAB솔더 공정에서 3년간 근무, 2000년 3월 다발성경화증 발병

이지선 씨를 만난 날, 함께 자리한 반올림 측 노무사는 산재신청에 필요한 자료를 소리 내어 읽었다. 지선 씨는 이메일로 자료를 미리 받았지만, 읽어오지 못했다고 했다.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다발성경화증은 신경기능이 반복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신체 여러 부위에 마비가 오는 병이다. 게다가 반복적인 재발은 이 병의 특징이다. 지선 씨는 다섯 번의 재발이 모두 눈으로 왔다. 시신경이 손상됐다. 그녀의 오른쪽 눈은 시력 장애 6등급 판정을 받았다.

"눈만 아니면 좋겠는데, 눈에 자꾸 오니까. 이러다 더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아닌지 걱정이에요."
노무사는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나요?"
"사람은 구별은 할 수 있는데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눈코입만 구별될 정도로 흐리게요."

지선 씨와 같이 아픈 이들을 만나온 반올림이었다. 그들의 우울을 보았고, 그 우울을 깊게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다. 노무사는 말했다.
"우리가 예쁘게 보이겠네요."
지선 씨는 웃었다.

ⓒ희정

삼성전자 기흥공장 오퍼레이터 이지선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 근무하던 어느 날, 지선 씨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에 갔으나,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척수염이라 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다발성경화증은 그만큼 희귀한 질병이었다.

증세가 심했을 적에는 누워만 지냈다. 왼쪽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1년 가까이 걷지도 못했다. 심장으로 마비가 오면 죽을 수도 있는 말에 한참을 울었다. 발병 당시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지선 씨는 매일 스테로이드 약을 복용한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완치가 없이 평생 재발을 염려해야 하는 병이다. 스테로이드 약은 부작용 위험이 큰 치료제이자, 그녀의 유일한 치료제다. 그녀는 이미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무릎과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재발만 일어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시신경에 문제가 생겼다. 재발이 온 것이다.

어려운 일들

지선 씨는 물었다.
"남들에게 평범한 일들이 나한테는 왜 그렇게 어려운 거죠?"
어려움에는 짝을 만나는 일도 포함됐다. 그녀의 병을 알고도 구애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지선 씨는 결혼을 승낙했다. 아직 재발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발병 후 오래도록 재발이 없어 그녀는 자신의 몸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정상적'이라 불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 후, 바뀐 환경을 몸이 적응하지 못했다. 재발이 왔다. 눈으로 재발이 오자, 남편이었던 사람은 그녀의 병상에서 이혼을 통보했다. 신혼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 병에만 안 걸렸으면 남들처럼 살 텐데…."

이혼 후, 지선 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사는 것, 그것은 지선 씨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이 꿈은 늘 멀리 있었다. 자식 많은 집 맏이로 태어난 지선 씨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컸다. 부모님은 타지에서 벌이를 했다.

"할아버지가 옛날 분이었어요. 되게 무서운 분이었어요. 그게 지겨운 거예요. 그런데 삼성은 기숙사 생활을 하잖아요? 잘됐다 싶어 신청을 한 거죠."

지선 씨 나름의 독립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음을 말했다. 그러나 18살의 독립은 고됨을 동반했다.

삼성전자 LCD 모듈과에 입사한 그녀는 액정화면 판넬을 제조하는 일을 했다. 주된 업무는 판넬 회로기판 가장자리에 작은 필름 조각 '탭'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납을 사용해 탭을 연결하기에, 흔히 납땜이라 했다. 납은 발암물질이다. 그녀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회사가 말할 리도 없었다.

불량이 난 제품은 그녀가 인두기를 들고 직접 납땜을 했다. 납이 타는 냄새는 지독했다. 환기장치는 자주 고장이 났다. 게다가 사진필름 조각보다 작은 탭을 회로기판에 연결하는 작업은 까다로웠다. 노후한 기계는 불량을 자주 냈다. 불량이 나면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연장근무에는 수당이 붙었다. 근무시간이 길수록 월급은 올라갔다. 몸은 고돼도, 돈을 벌자 자신이 생겼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살던 동생들을 서울로 불러왔다. 그녀는 어린 동생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지선 씨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다리에 힘에 풀리고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2000년, 입사 3년만의 일이었다.

ⓒ희정

다시 삼성전자로

퇴사를 했다. 벌이가 없자, 돈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동생들은 아직 어렸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지선 씨는 일을 구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삼성전자를 다시 찾았다. 어린 그녀에게는 전자회사에서 일한 경력 밖에 없었다. 자신의 병과 회사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삼성전기, 삼성반도체를 거치며 몇 달간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협력업체 직원에서 정직원으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몸이 아프니 예전만큼 일을 할 수 없던 탓도 있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재발이 일어나 더 이상은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병을 앓은 지 10년이 지났다. 어려운 시절을 거쳤지만, 동생들은 무탈하게 컸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며, 각자의 생활을 책임졌다. 이제 가족들이 그녀를 돌봤다. 첫 면담 날, 지선 씨의 가족을 보았다. 그녀의 자매들이 들어오자 조용했던 카페가 순간 시끌벅적해졌다. 반올림에 지선 씨의 병을 알린 것은 둘째 동생이었다. 동생은 반올림에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 했다.
"저희 언니를 잘 부탁드려요. 불쌍한 언니에요. 꼭 잘 해결되게 부탁드려요."
그 전화를 받은 당사자인 노무사는 동생의 절절함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잊고 살려고요

지선 씨의 바람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는 걸을 수만 있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몸을 추스르고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게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요즘은 잊고 살려고 한다.
"내가 아프다는 것도 잊고 살려고요. 잘 잊고,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렇게 살아요."

한탄이 주를 이뤘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슬퍼하다가도 곧 자신을 일으켰다. 바깥출입조차 조심스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병을 안겨준 회사를 원망하다가도, 어느새 자매 많은 집 큰언니로 돌아와 웃었다. 웃고 살려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지선 씨는 좌절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웃는다.

올해 6월, 이지선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지금은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희정
반도체 노동과 직업병

이지선 씨는 TAB솔더 공정에서 3년간 근무했다. 탭솔더 작업을 하던 중, 불량이 발생하면 지선 씨가 일일이 수동 납땜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납 증기에 노출됐다. 노후화된 공정으로 인해 불량률이 매우 높았기에, 수동 납땜을 하는 시간은 길었다. 납 증기를 막아주는 것은 지선 씨가 쓴 종이마스크였다.

하루 4시간 연장근무(주야 12시간 교대근무)가 수시로 있었다. 시간을 다투는 '긴급물량' 또한 많았다. 과로와 스트레스는 다발성경화증에 영향에 끼친다. 1879년 Charcot 박사가 스트레스와 다발성경화증 악화가 관련이 있다고 발표한 이후,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 최근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반올림으로 제보된 반도체 근무자들의 직업병은 다음과 같다.

간암, 골육종, 난소암, 뇌종양, 다발성경화증, 다발성 신경염증, 두경부종양, 루게릭, 루프스, 림프종, 백혈병, 비인강암, 유방암, 위암, 웨거너씨 육아종, 자궁암, 재생불량성 빈혈, 정신질환, 종격동암, 직장암, 폐암, 흑색종(피부암) 등.

이 이외에 피부질환, 생리불순과 중단, 불임, 근골격계 질환 같은 증상들도 제보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dongglmo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