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아무것도 모르는 19살 아이들 데려다가…"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⑤] 윤은진, 박진혁
2011.11.24 08:20:00
"삼성, 아무것도 모르는 19살 아이들 데려다가…"
"누구도 그들이 이런 짓을 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우리를 한 가족이라고 했죠."

IBM 반도체 노동자 케이스 버락은 말했다. 그는 IBM에서 일한 대가로 고환암에 걸렸다. 20년 후, 반도체 주요 수출국인 한국에 수많은 케이스 버락이 생겨났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암과 같은 희귀질환에 걸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 수는 150명에 다다른다. <기고자>


-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
"삼섬 반도체에서 일하다 '앉은뱅이 병'에 걸렸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반도체 직업병 때문에 신혼 8개월 만에 이혼"
"알아주는 삼성, 돈 좀 벌자고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아닌 죽음들, 제보되는 죽음들

윤은진. 80년생,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세척업무 담당, 2003년 8월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23세.
박진혁. 78년생, 삼성SDI 울산공장(하청), 세척업무 담당, 2005년 11월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28세.

'반올림'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수화기 저편에서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말한다. 내 딸이 죽었다. 내 아들이 죽었다. 늙은 부모들의 자식은 삼성 반도체에 다녔다고 한다.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반올림은 묻는다.

"몇 년도 입사인가요? 퇴사는요?"
"그게…몇 년 전이었더라."
"어디 부서였는데요?"
"말을 하긴 했는데 기억이…."
"어떤 일을 했는지 혹시 아세요?"
"그런 걸 집에 와서 말을 하나. 내가 듣는다고 뭘 아나."

자식 잃은 부모들은 아는 것이 없다. 집에 온 아이가 간혹 '일이 힘들다', '일하는 곳 냄새가 너무 심하다'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이마저 듣지 못한 부모도 많다.

부모 걱정시킬까 봐 자식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 삼성 가족이라며 회사가 준 에버랜드 이용권만 내민다. 연말에 지급되는 성과급 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병에 걸린다. 세상을 떠난다.

뒤늦게 부모는 소문을 듣는다. 자식이 다니던 회사에서 여럿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딸과 같은 회사, 아들과 같은 병으로 죽은 이들의 소문이다. 자식이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나 흐른 후다. 그제야 부모들은 '반올림'에 연락을 한다. 그리고 묻는다.
"내 자식도 회사에서 병을 얻은 걸까요? 회사 때문에 죽은 걸까요?"

▲ 2008년 故 황유미 씨 추모제에서 발언하는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건강했는데…

늙은 부모가 아는 사실은 단순하다. 건강하고 착한 딸이었다. 성실하고 순한 아들이었다. 아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픈 곳이 없었다. 열아홉 살 나이에 기숙사가 딸린 회사로 갔다. 회사와 기숙사만 오갔다.

"우리 애가 착했어요. 일 끝내고 밤차를 타고 엄마 보겠다고 내려오는 거예요. 우리가 사는 데가 구석이라, 새벽에 역에서 내리면 버스가 없으니까 몇 시간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첫차를 타고 집에 와요. 집 밥 먹고 겨우 한 밤을 자고, 그러고는 다시 일을 한다고 올라가는 거예요." (故 윤은진의 어머니)

"10시간 일을 하나 12시간을 일을 하나, 집에 와서 할 수 있는 게 자는 것 밖에 없다고 해요. 어차피 쉬지 못하고 개인 시간 없는 거는 똑같다고, 일이나 더 한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일하고도 주말에는 조기축구를 나가던 애에요. 움직이는 거 좋아하고 활달하고, 건강 하나는 자신 있던 애였어요."
(故 박진혁의 아버지)

그런 아이들이 몸이 엉망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병에 걸렸다. 그것도 희귀병이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다니던 윤은진 씨는 입사 1년 3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영덕 집으로 내려왔다.

"손에 온통 사마귀가 난 거예요. 회사 그만뒀다고 집에 왔는데 손이 그 꼴이야. 왜 그런지 모르겠데요. 회사 안 다니니까 두어 달 지나서 그건 없어졌어요. 이번에는 애가 밥도 잘 못 먹고 비실비실한 거예요. 그런데도 배는 자꾸 나와. 살이 쪘나 했는데, 나중에 병원 가서 보니 그게 복수가 찼다는 거예요."

병원은 도시에 몰려 있다. 큰 병원이라도 가려면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나가야 했다. 병은 그저 참는 것일 수밖에 없는 살림이었다. 삼성은 전국 각지에서 열아홉 살 이들을 직원으로 삼겠다며 데리고 갔다. 이들은 일을 했고, 병이 들었다. 아픈 이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아이가 혼절하다시피 해서, 큰 병원에 가니까 백혈병이라고…. 거기 가서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 병은 만지는 거 하나하나가 깨끗해야 한다는데, 당장 집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병원 근처로 이사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를 마스크 하고 모자 씌우고 옷으로 돌돌 말아서 버스에 태우고 갔다가 왔다가…."

면역력 싸움을 하는 백혈병 환자들에게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가족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미 집은 빚더미에 올라섰다. 하루 병원비만 100만 원이 든다는 백혈병이었다.

건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 아니다. 돈 없고 배운 것 적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컸다. 이들의 주거지는 의료시설과 밀접하지 않았다. 이들은 의료 시스템을 편히 이용할 경제력이 없었다. 이들은 병에 걸리기 쉬웠고,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어려웠으며, 병에 걸려 더욱 가난해졌다. 남은 가족에게 빚을 남기고, 이들은 세상을 떠났다.

팔다리가 부러져야 산업재해인 줄로만

ⓒ반올림
자식은 떠나고 늙은 부모는 남았다. 늙은 부모는 자식이 왜 이리 일찍 갔는지 모른다. 때로 회사가 의심스러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삼성 협력업체에 다니던 박진혁 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3개월 투병 생활을 했다. 짧은 투병 기간 동안 회사 사람들이 병실을 찾았다. 그들은 병문안을 온 것이 아니었다. 회사는 박진혁 씨에게 사직서를 받아갔다. 박진혁 씨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사직서를 내민 회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끓어오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독한 약품을 쓰겠죠. 안 쓸 리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 밖에 없는 자식 보내고 늙은 부모가 뭐 좋은 꼴 볼 게 있다고 아등바등 싸웁니까. 이빨이 다 빠져버렸어요, 그 녀석 병원에 있는 거 보면서 하도 속상해서. 자식 앞세운 부모가 무슨 살맛이 있겠어요. 아내한테 그래요. '우리 있는 거 다 쓸 때까지만 살다 가자'고."

늙은 부모들은 싸우지 못한다. 자식을 잃은 충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하면 눈물바람이다. 큰 회사를 상대로 싸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힘이 없음을 잘 안다.

회사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부모들도 많다. 팔 다리가 잘려야 산업재해인 줄 알고 산 이들이다. 산업재해, 직업병이라는 말이 생소하기 그지없는 부모들이다. 힘없고 배운 것 없는 나이든 부모들은 반도체와 자식의 병을 연결시킬 수 없다.

아무 일 없이 세월은 흘렀다. 그런데 자꾸 소문이 돌았다. 반도체 공장이 위험하다고 했다. 죽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삼성 협력업체에서 백혈병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 사람을 삼성에서 거짓말을 한다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협력업체가 내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요.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 없다고? 그럼 내 아들은? 그랬죠."

박진혁 씨의 아버지는 반올림으로 연락을 했다. 윤은진 씨의 어머니도 수원에 있는 큰딸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큰딸은 은진이 같이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전했다.

다 모르는 애들 데려다가…

지금은 병실에 있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오퍼레이터 이윤정 씨는 6년간의 회사생활을 떠올리며 말했다.

"삼성에서 시골 애들을 많이 선호했던 거 같아요. 지방 애들은 집도 멀고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 열아홉 살 때, 다른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으니 여기가 힘든 곳인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다 모르는 애들 데려다가…"

생산업체도 서비스직도 많지 않은 지역에서 취업은 귀한 단어였다.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 생산직도 그냥 생산직이 아니라는 반도체 회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 꿈의 일터였다. 어린 나이에 시키는 대로 일했다. 뭐가 부당한지도 몰랐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말하지 못했다.

ⓒ반올림

생리가 끊기고 하혈을 해도, 선배들은 당연한 일이라 했다.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라고 했다. 그러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이상이 왔다. 병에 걸렸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몰랐다. 그들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저 개인질병이었다.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들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이었다. 2007년 반올림이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알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반올림이 만들어지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들은 결코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현재 반올림으로 들어온 제보는 150명에 다다른다. 영문을 모른 채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늙은 부모들은 소문을 듣고 반올림에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묻는다.

"내 아이도 회사에서 병을 얻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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