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밤, 60대 비정규직 해고 날벼락
[현장] "정부, 공공기관 고용안정은 말로만?"
2012.01.02 18:29:00
12월31일 밤, 60대 비정규직 해고 날벼락
지난해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된 데 이어, 새해 직전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났다. 이번엔 공공기관인 인천국제공항에서 수하물에 전자태그를 붙이는 6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구영홍(가명·64) 씨는 지난해 12월 31일 밤 10시경 '계약 만료'를 문자 메시지로 통보받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던 중에 갑자기 받은 문자였다. 약 한 시간 뒤, 새해 첫날을 불과 몇십 분 앞두고 사장과 관리자 두 명이 근무 현장으로 나와 "계약이 종료됐으니 나가라"고 말했다.

▲ 1월 1일부터 해고돼 인천국제공항에 눌러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가더라도 업무를 마치고 가겠다"고 버텼다. 결국 이들은 새벽 4~5시 비행기 수하물을 받고 작업을 마친 뒤 1월 1일 오전 7시에 퇴근했다. 그 때부터 구 씨를 비롯한 해고 노동자 30여 명은 인천국제공항에 눌러 앉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다.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가족들이 생각나고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새해를 맞이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연초도 시작하기 직전에 하늘이 무너지는 통보를 받으니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86세 된 노모와 아내와 함께 사는 구 씨는 집안의 유일한 가장이다. 아내는 "딸의 자녀를 돌보는 대가로 용돈이나 받고" 있고, 그가 받는 월급 121만 원이 세 식구의 유일한 공식 수입이다.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 좋겠다. 그뿐이다"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노예문서 서명 거부해 노조 만들자, 돌아온 건 해고"

인천공항세관에는 수하물에 전자태그를 붙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50여 명이 24시간씩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날씨가 궂어도, 명절이 와도 휴일은 없었다. 임금은 121만 원, 4대 보험료와 차비를 빼면 그마저 90~100여 만 원밖에 안 남는다. 계약은 1년 단위가 아니라 10개월 단위로 체결됐다. 조성덕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은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세관이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 계약단위를 10개월로 쪼개는 치졸한 짓을 했다"고 주장했다.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7년 이상 일했던 노동자들은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고용을 승계받아 왔다. 그러다 올해부터 용역업체가 KTGLS에서 포스트원으로 바뀌면서 전체 50명 중에 유독 노동조합에 가입한 31명만 해고됐다. 이에 노조는 "새로운 업체인 양 행세하는 KTGLS은 노조를 없애버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합원만 해고시켰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KTGLS는 포스트원으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며 "관리자와 사무실도 똑같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똑같았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은 지난해 8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측이 지난 7월 '근무시간 24시간 중 실제 태그를 붙이는 시간 5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는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해서"다. 인천공항에서 6년째 일하는 임창수(가명·61) 씨는 "노예 문서에 서명할 수는 없고,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고민 끝에 노조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 간 임금이 동결된 것도 모자라서 지난해에는 2만 원이 도리어 깎였다"며 "아무리 무식하고 하찮은 일을 해도 최저임금 오르는 만큼은 임금이 올라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비행기는 밤에도 새벽에도 온다"며 "24시간 비행기가 오나 모니터를 보고 감시해야하는 만큼 태그를 부착하지 않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조성덕 지부장은 "24시간 대기하는 소방관들이 불 끄러 가는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면서 "왜 공무원은 출근부터 퇴근시간까지 전부 노동시간인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공공기관에서,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조 지부장은 "정부가 공공기관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공공기관이 연초부터 실업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한 집안의 가정을 꾸리는 연세 있는 사람들이라서 해고된 게 가슴이 아프다"며 "이분들이 24시간 맞교대해서 최저임금이라도 받아보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이냐"고 답답해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정규직 차별 개선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계약 해지?

또 다른 준공공기관인 노사발전재단에서도 지난 12월 30일 비정규직 노동자 31명이 대거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이 하던 업무 중에는 '비정규직의 차별 시정을 권고하는' 것도 있었다.

2010년 4월부터 노사발전재단에서 일한 박영철(가명·45) 씨는 종무식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30일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박 씨는 "(사측이) 사전에 계약을 해지한다는 어떤 언질도 하지 않았다"며 "해고자 중에는 해고될 줄도 모르고 전날 새벽 1시까지 야근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내가 속한 사무소는 지역 내 6개 사무소 가운데 업무실적이 1위여서 (해고된 사실이) 더 이해가 안 된다"며 "해고된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노사발전재단 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측은 근무평가에서 해당자들이 미달해서 계약을 종료했다고 주장하지만, 노조에서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서 계약 해지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계약이 해지된 31명 중 대다수가 1월 1일 계약을 갱신하면 고용된 지 만 2년이 넘어서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가 된다는 것.

노사발전재단은 직장 내 비정규직 차별 개선, 노사상생협력 교육 등을 진행하는 기타 공공기관으로, 고용노동부의 예산을 보조 받아서 사업을 운영한다. 지난달 노사발전재단과 인천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을 뼈대로 한 업무협약식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기관의 전체 직원 280여 명 가운데 130여 명은 비정규직이다.

박 씨는 "비정규직 고용차별, 비정규직 부당 해고를 방지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정작 이렇게 해고될 줄은 몰랐다"며 "내부 직원에게 이런 식으로 칼날이 비참하게 돌아온다는 게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노사발전재단 노조는 "사측이 사전 예고나 협의도 하지 않고 뚜렷한 해고자 선정 기준도 밝히지 않은 채 해고를 전격 감행했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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