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터에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1> 원진레이온 사태, 그리고 20년
2012.10.24 10:35:00
우리는 일터에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죽음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죽음은, 한국 사회 불안정성의 결과이자 경향이다. 19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이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 수는 8만1393명이다. 2010년 '활동하는 의사 수 8만4489명'과 비등한 숫자다. 의사가 그렇게 죽어나갔다면 세상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참사로 40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법원이 해당 기업에게 내린 벌금은 죽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수가 우리나라의 14분의 1(2010년 기준)에 불과한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살인 행위'에 준하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후, 노동자 1명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제 노동자의 목숨 값이 낮은 한국 사회에, 일하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기업살인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노동건강 공동행동)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자신을 죽이려 한 조직 보스에게 묻는다. 전달을 위해 분량을 줄인 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말해 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 온 날, 왜 그랬어요?"

나는 종종 이 대사를 떠올린다. 세상에는 "왜 그랬어요?" 라고 묻고 싶어지는 일이 많은 법이다. 최근, 구미 불산 누출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을 보다 이 말을 떠올렸다. 누출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업체 소속 관리자는 말했다.

"가족 같은 직원들이었는데 일시에 명을 달리한 것에 대해 저희도 충격이 큽니다."

사고 현장에 있던 5명의 직원은 불산 액체를 뒤집어 쓴 채 사망했다. 가족이라 쓰인 자막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왜 그랬어요?

가족 같이 여겼다면서 왜 그랬을까. 휴브글로벌은 연간 1만2000톤을 취급하는 불산 양을 4800톤으로 속여 신고했다. 종업원 수도 5명 미만으로 축소 보고했다. 정부의 정기점검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서다. 점검 대상에서 제외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위험물질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는 권리와 비용 절감이었다.

법을 피해간 회사는 가족 같은 노동자들이 달랑 마스크 하나 끼고 일하는 것을 두고 보았다. 인체에 들어가면 폐를 망가뜨리고 뼈를 녹이는 불산의 유해성을 회사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 같은 이가 다섯이나 불시에 죽어버린 것은 결코 우연도, 피치 못할 사고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돈 버는 것에만 신경을 썼어요

'가족 같은 회사'는 많다. 한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닌지, 20년 전 글로벌 기업 IBM도 노동자들을 가족이라 했다. IBM 노동자 케이스 버락은 말했다.

"회사는 우리를 한 가족이라고 했죠."

그는 고환암에 걸렸다. 가족이라던 회사는 그가 사용한 유독물질에 위험표시를 하지 않았다. IBM 노동자들은 발암물질을 그저 갈색병이라 알고 썼다. 그를 포함한 250여 명이 암에 걸렸다. 이들은 회사를 향해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랬어요?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 온 날, 왜 그랬어요?"

병든 몸으로 원망과 고통 속에서 보낸 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답을 스스로 찾았다.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은 거예요. 그들은 오직 돈 버는 것에만 신경을 썼어요."

ⓒ원진산업재해자협회
6,70년대 남한에서 돈이 되는 산업은 방직업이었다. 원진레이온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인조견사 레이온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공장 기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친히 내려와 축하사를 했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70년대 들어와 합성섬유로 인해 레이온 인기가 주춤했다지만 원진레이온은 여전히 19만평 부지, 4000여명 의 직원, 연간 50톤가량의 레이온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원진레이온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월급 또한 셌다. 당시 빙그레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다 하니, 농사밖에 지을 게 없던 지역 주민들이 몰리는 것이 당연했다. 인기가 높아 '뒷돈을 찔러줘야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방사과 직원 박지성 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입사 3년, 성대가 마비됐다. 그럼에도 쇳소리라도 지르며 다녔다. 이만한 직장이 없다 여겼다. 성대가 마비된 이유는 알 턱이 없었다.

염산과 각종 표백 약품이 내뿜는 수증기로 방사과 작업장이 온통 뿌옇게 되도, 그는 자신이 왜 아픈지 몰랐다. 약품 수증기가 천정에 달라붙었다가 물이 되어 그와 그의 동료 머리로 똑똑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열심히 일만 했다. 물이 떨어진 자리에 머리가 있으면 머리카락이 뽑히고, 시계가 있으면 가죽이 삭았다.

정작 문제는 염산과 표백제가 아니었다. 성대 마비가 아니었다. 3년이 뒤. 일이 벌어졌다.

"86년 11월이니까, 6년을 일했구나. 갑자기 쓰러졌어요. 생전 병원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없으니까 한방에 갔어요. 다리가 퉁퉁 부어서 바지가 안 들어가고, 누르면 살이 푹푹 들어갔어요. 죽겠더라고. 화장실 가면 하혈을 하고 한의원에서 주는 약을 먹기만 하면 토하고. 나중에는 그 약 던지면서 이게 약이냐고! 나 죽으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내과로 가래요. 가니까 혈액 투석을 한다는 겨. 여기 저기 누르는데 피가 안 나와. 동맥을 끊어놓으니까 피가 찔끔찔끔 빠지더라고. 그 혈액 투석을 일 년을 했어, 그래가지고 살아난 거예요."

이번에도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치료만 하다 복직을 했다. 굳어버린 다리를 질질 끌고 가 출근 카드를 찍었다. 그렇게라도 직장에서 버터야 했다. 어린 자식들이 있었다.

그러던 88년 여름, 노동부에서 그와 몇몇 동료들에게 진료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해왔다.

"병원? 안 간다 했지. 회사로 가니까 회사에서 오지 말래. 병원 가라는 거야. 난 안 간다고. 내 돈 내면 안 간다고 했지."

떠밀려 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담당의사는 그에게 말했다.

"직업병입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당시 박지성 씨는 몰랐지만, 그가 검사를 받은 까닭은 한 달 전인 7월 22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에 있었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자 12명 발생'

원진레이온에서 사용하는 레이온사 방사 기계가 이황화탄소를 배출하고, 이에 장기간 노출된 노동자들이 중독 증세를 보인다는 기사였다.

▲1988년 7월 22일 <한겨레>에 실린 원진레이온 사태. ⓒ한겨레

중독증세를 보인다는 12명 대부분이 함께 일한 선배였지만, 박지성 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사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만이 아니었다. 십년 이십년을 일했지만, 이황화탄소라는 말을 들어본 이가 없었다. 회사는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이리 이야기 했다. 술을 많이 먹어서다, 여자를 밝혀서다. 대대로 집안에 병이 있다. 늙어 풍을 맞은 거다.

그러나 의사는 그에게 직업병이라 했다.

"얼마나 화딱지가 나는지, 42일 만에 퇴원을 하고 바로 집으로 안 갔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형(직장 선배)이랑 원진레이온 노무과로 간 거야. 그때 난 젊었으니까. 살려내라고 간 거지. 분이 안 풀리잖아. 둘이 가서 때려 부순 거지. 내 몸 살려내라고."

망가진 몸은 무엇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 한번 중독되면 완치가 없는 병. 평생을 장애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병. 그것이 이황화탄소 중독이었다. 현재 박지성 씨의 몸에는 9개의 질환이 있다. 중독 진단을 받은 뒤로 크게는 두 번, 작게는 셀 수 없을 만큼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발이 안 구부려져 구두 한 번 신어본 적이 없다는 그다. 그럼에도 동료들 중 자신은 몹시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전신불수, 뇌 손상으로 인한 언어 장애, 정신 이상, 내장기관 손상, 이에 따른 각종 합병증, 답이 없는 오랜 병환으로 인한 우울증, 이것이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증세다.

직업병입니다

원진레이온이 사용한 기계는 한국에 팔려오기 이전, 일본 도레이레온사 시절부터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황화탄소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신경독가스의 원료로 사용할 만큼 독성 강한 물질이다. 그런 기계를 두고, 공장 안에는 제대로 된 환기장치조차 없었다. 오히려 실을 뽑아내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느라 작업장은 늘 습했고, 이는 이황화탄소가 몸 안에 들어오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마스크도 12명의 중독자가 생긴 87년 이후에야 지급됐다. 지급 사유는 비밀이었다.

회사는 뒤로 중독 환자들에게 몇 백만 원의 보상금을 건넸다. 퇴직서와 함께 형사상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 또한 내밀었다. 회사는 직업병을 숨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가능한 시절이었다. 경제발전에 사활을 건 남한은 산업재해 문제에 무심했다. 아니 적대적이었다. 개개인 병 치료 해주다 보면 언제 경제 발전을 이루냐는 논리였다.

같은 날, 한 사업장에서 3명의 직원이 쓰러져 죽음을 당해도 식중독이라 박박 우기면 되던 시절이었다(84년 반도기계 납중독 사건). 기계에 잘린 손가락 하나가 1만 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고, 산업재해 문제로 공장이 시끄러우면 안기부 직원이 친히 내려왔다.

원진레이온 또한 첫 중독 환자(홍원표)가 나온 것이 81년이었지만, 6년이 지나도록 조용했다. 심지어 노동부는 86년 원진레이온에 2만 5천 시간 무재해 기록증을 지급하기까지 한다. 이황화탄소에 중독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길에서 픽픽 쓰러지던 때다. 그러나 결국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졌다. 너무 많이 병들고 죽어버린 게였다.

1만8000명 중 1000명이 중독 증세

88년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알려진 후, 최근까지 900여 명이 이황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인다고 밝혀졌다. 원진레이온을 거쳐 간 노동자가 1만8000명, 이 중 정밀검진을 받은 노동자가 2000여 명. 이 중 직업병 판정을 받은 이가 900여 명이다. 이 엄청난 규모는 원진레이온 사태를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단일 사업장 최대 규모의 직업병으로 기록하게 한다.

이 900여 명조차 쉽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검사를 해 달라 싸우고, 직업병 판정을 해 달라 싸웠다.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에, 아픈 이들이 직접 병실을 돌며 빈 병상 수를 세 항의하고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죽은 노동자의 관을 공장 앞에 137일 세워두고야 직업병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 싸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부단히 싸우고, 부단히 죽어갔다.

그 결과,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치료 보상금도 받았다. 보상기금 일부로 산재요양 병원을 세웠다. 병상 6개, 의사 1명, 의원 수준으로 시작한 병원은 이제 규모를 키워 '녹색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했다. 작업환경과 노동자 건강 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도 세웠다. 노동자 스스로, 아픈 이들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만들어 간 것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정부는 무재해 발급증을 남발하고, 일하다 쓰러진 직원은 퇴직시키면 그만이고,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독가스인지 독극물인지 노동자는 알 턱이 없고, 직업병이라는 개념조차 없어 의사들은 병명을 못 내던, 우리 모두 일하다 죽는 현실에 무지했던, 그래서 참 많이도 죽은 80년대가 지났다. 그 시대를 지나게 한 데에는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이라는 거대한 직업병 사건이 있었다.

끝나지 않은 원진레이온 사건

20년이 흘렀다. 세월이 변했다. 레이온은 더 이상 유망 산업이 아니다. 방직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긴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이 국가 유망산업으로 떠올랐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열로 들어선 지도 오래다. 강산도 2번이나 변했다. 그러나 원진레이온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17년을 중독증세로 고통 받다 스스로 목을 맨 노동자의 이야기는, 20년 전도 10년 전도 아닌 2009년의 일이다. 병든 몸이 주는 고통은 끝이 나지 않는다.

중국에 넘긴 원진레이온 방사 기계 또한 여전히 가동되고 있을 것이다. 93년 원진레이온 폐업 이후, 정부와 산업은행은 공장부지 판매로 남긴 수천억 원의 이득에 만족하지 못했다. 50억 원에 유독물질 배출 기계를 중국에 팔아버렸다. 두 나라의 기업과 정부 모두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풍이 불면 공장 인근 주민들이 약품냄새에 코를 막고 다녔다는, 그런 일이 중국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죽음도.

그러나 무엇보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은 다음 수치이다. 2011년 노동부 공식 통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2114명.

하루에 6명씩 일하다 죽고

2114명, 하루 6명꼴로 일하다 죽는다. 뇌리를 남는 죽음들을 떠올려 본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1000℃ 용광로 쇳물에 젊은 목숨이 타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철도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열차에 깔려 죽는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이유를 모른 채 암과 백혈병으로 죽고, 산소농도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숨이 막혀 죽는다. 3개월 실습생으로 자동차 공장에 온 고등학생이 주당 58시간 노동(현행법상 근로시간은 주40시간이다)을 하다 뇌출혈을 일으켜 식물인간이 된다. 산재 신고를 하지 않으려는 사업주로 인해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죽어가는 순간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에 실려 나간다.

최근 1, 2년 사이의 일들이다. 막을 수 있던 죽음들이다.

이황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계를 돈 몇 푼에 타국가로 팔아버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돈 몇 푼에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이 죽는 것은 살인이다. 더 이상 누구도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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