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부자와 서민 중 누구에게 더 거둘 건가
[재정 논란, 증세로 확장되나 ②] 목적세 도입부터 부자 증세까지
박근혜, 부자와 서민 중 누구에게 더 거둘 건가
'박근혜호'가 출항 전부터 암초를 만났다. 복지 공약 실행을 위한 재정 계획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박 당선인은 "증세는 없다"던 말을 철회하고 공약 이행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거나, 강조하던 자산인 '신뢰'의 구호를 버리고 공약을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순조롭지 않은 미래가 이미 박 당선인을 기다리고 있다. 공약을 철회할 경우, 곧바로 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크게 흔들리게 된다. 신뢰를 잃고, 국민의 지지를 잃으며, 그에 따라 '국민대통합 시대'는 헛구호에 그치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약 이행도 쉽지 않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벌써부터 박 당선인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 무엇보다 증세 카드를 꺼낼 경우, 강력한 조세 저항이라는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프레시안>이 해법을 구한 전문가 대부분이 박 당선인에게 "증세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한 절차, 증세 방식, 규모 등을 놓고는 의견이 다소 갈렸으나, 증세의 필요성만 놓고 보면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을 슬기롭게 이겨낼 경우, 박 당선인은 강한 권한을 갖고 '새로운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도 나왔다.

<프레시안>은 3편에 걸쳐 재정 확충 논란을 다룬다. <편집자>


- 재정 논란, 증세로 확장되나
<1> 기로에 선 박근혜…공약 포기냐, 증세냐

증세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가 지난 2005년 종합부동산세 도입 과정의 진통 및 도입 후 겪은 후유증이다. 특정 가격(도입 당시 국세청 기준시가 6억 원) 이상의 부동산에만 부과하던 누진세였으나, 세금 저항은 노무현 정부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격렬했다.

'ABR(Anything But Roh) 정책'이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로 이전 정부와 각을 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결국 감세 정책의 하나로 2008년 말 이 기준을 9억 원으로 완화했다. 자연히 지지층의 환영을 받았다.

박근혜 당선인도 증세를 위해서는 세금 저항과 일전을 각오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와 사정은 다르다. 일정 정도의 증세를 감내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 <경향신문>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8일~2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8퍼센트가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더구나 박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보다 더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7월 1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당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결심을 하면 새누리당이 변할 수밖에 없다"며 "변화한 새누리당을 가지고서 우리나라 사회의 지금 현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다.

15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박 당선인을 지지했다. 새누리당은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한 다수당이다. 보수 언론과 방송도 박 당선인의 편이다. 총선은 3년 후에나 있다. 이 기간에 박 당선인이 가진 힘은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박 당선인에게 남은 숙제는 '어떤 증세냐'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밝힌 재정 조달 계획. ⓒ프레시안

어느 정도의 증세냐

박 당선인의 현재 재정 확충 계획 중에도 증세 효과를 거둘 정책은 있다.

박 당선인의 재원 조달 계획은 크게 예산 절감, 세입 확충, 복지 사업 조정, 공공 개혁 등 4개 분야 개혁을 통해 5년간 134조5000억 원(연평균 26조9000억 원)을 모으는 것이다.

이 중 48조 원을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담은 세입 확충 부문에서 증세 효과가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늘어난 비과세 혜택과 과세 감면 혜택을 축소해 15조 원을 마련하고,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해 4조5000억 원을 걷는다는 게 세부 내용이다. 논란이 되기도 한 '지하경제 양성화' 역시 증세 효과를 지닌다. 박 당선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총 1조6000억 원의 세수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이 계획대로 재정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등은 장기간에 걸쳐서 조금씩 세수 증대 효과가 나타나는데, 복지에 투입해야 할 돈은 당장 필요하다"며 "재정 지출 구조조정 역시 부처마다 필요한 재원이 있어, 인수위가 발표한 축소 계획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건 이명박 정부가 감세 정책으로 줄여놓은 재정을 다시금 늘리는 방안이다. 소극적 증세다.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대기업 비과세 감면액 규모가 노무현 정부 때의 21조 원보다 10조 원 늘어난 31조 원에 달한다"며 "우선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줄인 정부 덩치를 다시금 키우는 방식의 증세를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8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이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답한 내용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 규모는 63조8000억 원이다.

이 중 지난해 감세분은 15조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단순 계산하면, 박근혜 정부 5년간 연 15조 원가량의 재원을 추가로 조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 수준이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의 복지 공약에 비해 낮다. 감세 철회만 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재원을 추가로 조달하는 것만으로도 공약 이행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열어야 할 새 시대의 열쇠는 증세가 될지도 모른다. 박 당선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에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등 미국 대표단을 접견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적극적 증세 정책 고민해야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분 중 상당량이 부자가 아닌 중산층에게도 돌아갔다는 점이다. 재정부가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감세 정책에 따라 중소기업과 중산·서민층이 얻은 혜택은 32조5000억 원이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얻은 혜택 31조 원보다 많다.

단순히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만 돌아간다면, 부유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증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 기간에 감세 혜택은 부자가 봤는데 그로 인한 증세 부담은 중산층이 진다'는 식의 비판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임기 초반에 부자 감세를 밀어붙인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는 이러한 비판 여론은 더 강한 조세 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한 목적세 신설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더 적극적인 증세 주장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지난 1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부가가치세를 2%포인트 인상해, 인상분을 '사회보장세'로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가가치세는 세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목적세 신설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창수 교수는 "목적세는 '칸막이 효과'가 발생해,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며 목적세 신설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칸막이 효과란, 특정 목적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된 목적세로 인해 재정 운용의 경직성이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더구나 부가가치세 역시 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데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부담을 늘리는 간접세 증세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한국의 조세 체계에서 직접세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부담을 더 높이는 직접세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반론의 요지다.

이와 관련, 한국의 직접세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1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4%)과 격차가 크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직접세 비중은 기존보다 5.6%포인트 올라갔으나, 감세 정책의 영향으로 이명박 정부 기간 그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간접세 비중이 커졌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1년 국세 수입 중 간접세 비중은 52.1%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누진세인 직접세 과세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증세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시민사회진영이나 진보 성향의 학자 계층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나온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세수를 늘려야 한다면 OECD 회원국 평균과 격차가 큰 소득세와 고용주 부담 사회보장세의 세수부터 늘려야 한다"며 "우리나라 소득 상위 20% 계층의 실효세율(전체 소득 중에서 납세자가 실제로 부담한 소득세액의 비중)은 5.9%로, 14.1%인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가 OECD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세목별 조세 부담률 중 소득세율 평균은 3.6%로 OECD 평균 8.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고용자 부담 사회보장세율 평균 역시 2.6%로 5.4%인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한국의 GDP 대비 조세 부담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직접세는 인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홍헌호

"재정 조달 계획 로드맵 그리고 부유층 증세부터 해야"

따라서 제시되는 대안이 부유층 증세다.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참여연대와 시민경제사회연구소는 지난해 4.11 총선 당시 과세표준 1억2000만 원(근로소득자 연봉 1억6500만 원)과 3억 원 사이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35%에서 42%로 올리고, 과세표준 3억 원 초과 구간은 38%에서 42%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을 따를 경우, 2015년 기준 소득세 3조9000억 원가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총선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도 이와 같은 방식의 소득세제 개편안을 내놨다. 그러나 두 정당 모두 연봉 3억 원 초과 구간의 소득세 증세 방안은 내놓지 않아, 과세량이 적다.

이상이 대표는 '2단계 증세론'을 제시한다. 우선적으로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득세를 박 당선인 공약 이행 수준에 맞게 올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중산층의 소득세도 늘려 보편 증세 국가로 나아가자는 게 골자다.

이 대표는 "지금 당장은 중산층에게까지 세율을 올리기란 쉽지 않다"며 "우선적으로 부유층의 세율 부담을 높이고, 박 당선인의 공약대로 '중산층 70% 복원'이 어느 정도 이뤄진 다음 중산층 증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 다양한 방식의 주장이 백가쟁명식으로 펼쳐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단체의 복지 요구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범진보진영은 소득세 증세, 법인세 증세, 부자 감세 철회 등을 통해 박 당선인의 공약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이 때문에 우선적으로 박 당선인의 재정 조달 계획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그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증세를 고민하는 수순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박 당선인이 현 재정 조달 계획의 구체안을 밝혀, 실제로 얼마나 조달이 가능한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를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오건호 실장은 "박 당선인 공약에 맞춰 증세 수준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고민해도 늦지 않다"며 "우선적으로는 현 재정 조달 계획의 실효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그 후 공약에 맞춰 증세를 고민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이번 증세 논란을 사회적 대타협 실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증세 논란이 나오는 지금이 오히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적기라는 얘기다.

이상이 대표는 "박 당선인이 조속히 증세 방안을 공론화하고, 이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정책으로 완성해야 한다"며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현 재정 조달 계획만 추진할 경우, 오히려 사회적 대타협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의 지지율이 높고 정부가 힘을 가진 정권 초반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가장 적기라는 뜻이다. 앞으로 돌아가면, 여론도, 국회도 '지금' 증세를 고민하고 있다. 결단은 박 당선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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