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와 맞선 택시기사 실화, 상영될 수 있을까
[황유미, 그리고 6년 ③]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온 '삼성 백혈병'
2013.03.07 07:30:00
이건희와 맞선 택시기사 실화, 상영될 수 있을까
'삼성 백혈병' 논란이 불거진 지 6년이 지났다. '삼성의 옛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일한 노동자가 유해 물질에 노출돼 희귀병이 걸렸는가'를 과학적·의학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과학적 증명이 끝나지 않았어도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는 요구는 현재까지 대부분 수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다. 논란이 처음 제기될 당시 단순한 '반기업 정서'로 보기도 했던 여론이 점점 피해 노동자들의 사연에 공감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이 동력이 돼 피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서 만화, 연극까지

2010년 출간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박일환·반올림 공저. 삶이보이는창)은 '삼성 백혈병'의 최초 피해자로 알려진 고 황유미 씨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직무 연관성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르포 작가 희정 씨는 2010년 <프레시안> 등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반올림과 함께 2011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아카이브)을 냈다. 이 책에서는 반올림의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새롭게 제보해 온 피해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삼성 백혈병 논란을 다룬 만화 2권이 나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보리)는 '삼성 백혈병' 문제를 처음 제기한 황상기 씨(고 황유미 씨의 부친)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성희 작가의 <먼지 없는 방>(보리)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남편이자 삼성전자 엔지니어였던 황민웅 씨를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옛 반도체 공장을 상세히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반올림에 따르면 두 만화를 합쳐 총 1만 권을 찍었는데 거의 다 판매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도 컸다.

피해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2010년 12월 문화창작집단 '날'은 <반도체 소녀>라는 제목으로 반도체산업 노동자, 학습지 교사, 요양보호사 등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연극을 공연했다. 당시 연극은 '사회주의 운동가'로 알려진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출연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연극 <반도체 소녀>의 한 장면. ⓒ이윤환(날 제공)

이번엔 영화다

▲ <또 하나의 가족> 티저 포스터.
최근에는 피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잔혹한 출근>을 연출하고 <용의자X>의 각본을 썼던 김태윤 감독은 약 2년 전 언론을 통해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의 사연을 접하고 직접 황상기 씨를 만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2011년부터 제작 준비에 들어간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황상기 씨의 6년에 걸친 싸움을 다룰 예정이다. 원인도 모른 채 백혈병에 신음하는 딸이 자신이 몰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진 아픔을 간직한 황 씨가 삼성에 맞서 싸워 2011년 법원 1심 판결에서 산재를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주 내용이다.

이 영화의 제작이 추진될 때부터 삼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뤄 대형 투자사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제작진은 지난해 말 '크라우드 펀딩'(굿펀딩) 방식을 통해 일반 시민 약 2000명으로부터 1억2000만 원 가까이 제작비를 모았고, 지난달 21일 '제작두레'가 시작돼 다시 1500만 원이 모였다.

약 10억 원의 제작비가 책정된 이 영화는 절반인 5억 원을 제작두레로 조달할 계획이다.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했던 굿펀딩 방식과 달리 제작두레는 모바일 결제나 현금 결제도 가능해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제작진은 보고 있다. (☞ 제작두레 사이트 바로 가기)

제작진은 또 <베를린>을 촬영한 최영한 촬영감독, 주인공인 황상기 씨 역할을 맡은 배우 박철민 씨 등이 적은 보상을 감수하면서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합류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고 있는 윤기호 PD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낮은 직급의 스태프에게는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촬영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최소한의 돈만 받고 나머지는 영화 개봉 후 성적을 봐서 지분을 받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자본이 많은 영화계에서 삼성의 부정적인 모습이 다뤄질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윤 PD는 "(영화가)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휴먼 드라마"라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삼성이 상대라고 해서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도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윤 PD는 "(같은 제작두레 방식으로 제작된) <26년>의 경우처럼 영화를 만드는데 일반 시민들이 서포터스로 참여했고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백혈병'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의 홍리경 감독이 2011년부터 만든 영상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아 5월 열리는 여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계획이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만 2년간 반올림이 싸워온 모습을 담는 한편, 희귀병과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은 "주변에서 잘 모르는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영화 안에서 풀어가고자 했다"며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방진복을 입고 눈만 내놓은 채 일하던,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익명의 피해자들이 (반올림에) 제보해 가족과 함께 싸워나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또 다른 축"이라고 설명했다.

[황유미, 그리고 6년]
①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② '글로벌' 삼성, 6년의 피눈물 닦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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