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월급에 매일 야근' 없애고 싶다면…
[최저임금 연속 기고 ①]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올리고 일자리 나눠야
'쥐꼬리 월급에 매일 야근' 없애고 싶다면…
101만5740원.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인 시급 4860원을 받고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꼬박 일했을 때 받는 돈이다. 알바연대는 100만 원으로는 살 수 없다며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무리한 금액 아닐까? OECD 회원국의 평균 최저임금이 바로 시급 1만 원이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프레시안>은 알바연대를 통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라는 주제로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20대 아르바이트생 등에게 기고를 받아 6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미국 최저임금 논의에 불이 붙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현 7.25달러(약 8000원)의 최저임금을 2015년까지 9달러(약 1만 원)로 인상하는 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빈곤 완화와 양극화 해소가 이유다. 일각에서는 아예 10달러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다.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므로, 일자리가 감소해 오히려 취약계층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고전적 반론이 나오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 반론이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노동 시장은 재화의 유통이 아니라 인간관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장이기 때문에, 임금에 연동해 자동으로 일자리 수요가 줄고 해고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은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의 소득 증가를 불러오며, 고용 감소는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1990년대 이후 수차례의 연구 결과를 통해 증명되어왔다.

최저임금, 청년 일자리 현안

한국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제안하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청년들이다. 저임금 일자리의 확장으로 말미암은 고통이 곧 청년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변만 살펴봐도 금방 실감할 수 있지만, 통계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의 저임금 일자리 비율은 26%로 OECD 1위(2012년)를 연이어 기록하고 있다. 이 중 20대 청년층이 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0년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출범한 청년유니온의 '최저임금은 청년임금' 구호는 이 같은 현실을 잘 반영한다. 최저임금은 곧 청년 일자리 현안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최저임금 1000엔' 운동이 민주당의 선거 승리로 이어질 때,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구호 하에 최저 시급 5000원 정도의 금액이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주요 요구가 됐다. 이 요구도 부족하다고 느낀 일부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최저임금 1만 원'이 구체적인 요구로 등장한 것은 지난 대선부터다. 이를테면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청년 민생 해결의 방아쇠로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제안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2030의 표, 여기에 달렸다) '알바들의 대통령'이란 수식어를 내걸었던 기호 7번 무소속 김순자 후보도 최저임금 1만 원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물론 전반적으로 최저임금 이슈는 찬밥 신세였고, 선거의 승자는 가장 미진한 최저임금 정책인 '현행 수준 유지(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만 반영)'를 제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청년 일자리 현안의 중심에서는 '스펙 초월 취업 센터'와 '청년 고용할당제'가 아픈 청춘들에게 일방적 위로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는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실태 조사와 캠페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을 시작한 알바연대가 그 필두에 있다. 최근 알바연대가 주최하고 녹색당, 청년유니온, 청년좌파, 자립음악생산조합, <88만 원 세대> 공저자 우석훈 씨 등이 참여한 '최저임금 1만 원 토론회'에서도 참가자들 모두 최저임금이 1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왜 최저임금 1만 원인가?

물론 한국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은 여전히 다수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액수다.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물가상승률을 간신히 좇으며 찔끔찔끔 오르는 최저임금에 익숙해진 탓인지 '최저임금 1만 원'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 구호로 취급되고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찬성하는 이들도 '1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에는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이 1만 원이어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3년 현재 최저임금은 4860원이다. 이를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해 월 209시간 노동(주휴일 포함)하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01만5740원이라는 월급이 산출된다. 올해 처음으로 최저임금 기준 월급이 100만 원을 넘었다. 그래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특히 수도권 생활자에게는 한참 모자라다.

그런데 나날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턱없는 수당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저임금 일자리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일단 한 번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기 시작한 이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주 44.6시간으로 세계 최장 시간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적은 임금과 긴 노동 시간. 이 한 쌍의 조건은 낮은 고용률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23.4%로 OECD 34개국 중 27위다. 스페인을 포함해 흔히 우리보다 심각한 상황처럼 비치는 유럽 대다수 국가들보다 낮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시금 일할 데 없는 이들이 저임금·장시간의 노동 조건을 스스로 택하게 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이 악순환을 끝낼 만한 위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와 다르다. 물론, 기존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대로 법정 최저임금이 5910원으로 오른다면 삶이 좀 더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극장에 가는 여유를 가지거나, 학자금 대출을 몇 개월 더 빨리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이 정도 규모의 낙관을 해보게 하는 데서 그친다. 주 44.6시간의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사회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획기적인 노동 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서는 1만 원 정도로 대폭 상승된 최저임금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노동 조건이 향상되고 실업 문제가 해결될 때라야, 불안정 노동 계층이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상황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실효성 없는 현 일자리 정책…최저임금 대폭 올리고 일자리 나눠야

한편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 접근하는 전제부터가 다르다. 노동 시간 단축은 여성, 보육에 대한 문제로 국한하고, 최저임금은 '물가 상승률 반영'과 '단속 강화'로 사실상 현행 유지에 가까운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선거 당시 공약과 취임사에서 드러나는 주요 공약은 '국민 행복 기술'과 '시장 창출', 즉 경제 성장이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다. 신성장 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이를 더 키울 여지가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고용탄성치(경제성장률 대비 취업자 수 증가율)는 0.29로 독일(0.93), 프랑스(0.47) 등보다 현저히 낮다. 경제 성장은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한 근본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한 처방이다. 고용률 70% 달성,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의 국정 과제도 그저 공(空)문구가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덧붙여 공공 부문 지출을 늘리는 정책도 일자리 문제 해결에서 부수적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세기에 비해 훨씬 복잡해진 현 사회에서, 특정한 부문에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노동 인력이 물 흐르듯 그쪽으로 향하리란 추측은 다소 순진하지 않은가.

다시 현황을 보자. 1인당 노동 시간은 길고, 일자리는 적다. 모범 답안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다. 사실 그간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총선에서도, 대선에서도 노동 시간 단축 공약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현실적 논의가 거의 없었던 까닭은 저임금 해소 정책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득 감소를 감당하는 노동 시간 단축을 받아들일 사회는 없다.

그래서 최저임금의 대폭 상승은 일자리 나누기의 선결 과제일 수밖에 없다. 1인 가구가 도시에서 충분히 생활하며 앞날을 챙길 수 있는 수준을 웃도는 임금이 기본급으로 책정될 때라야 현재의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금 일하는 이들이 덜 일해야 실업자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 이 연쇄 작용은 과로의 고통과 실업의 불행 중 택일해야 하는 현황을 개선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근로 조건이 제시되고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제공된다면, 낮은 고용률 문제도 실질적 해결의 시작을 맞이할 것이다. 20대와 50대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알바' 일자리를 두고 겨루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 '일자리 나누기'와 함께 풀어낼 것들

물론 '최저임금 1만 원' 곁에는 여러 우려도 함께한다. 영세자영업자들이 질 부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우려는 최저임금과 자영업자의 균형 문제라기보다는 높은 지가(地價)와 부당한 원하청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주장에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근거로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영세자영업자들이 원청인 대기업에 당하고 있는 과도한 착취와, 평균 소득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자영업자 비율이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대다수 영세자영업자들은 사회의 안정적 일자리 시스템에서 배제된 이들이며, 높은 지가와 프랜차이즈 본사와 맺은 부당 계약 등으로 인해 심각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세자영업자의 문제는 오히려 일자리 문제와 함께 최저임금 1만 원의 논의 속에서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다.

또한, 높은 지가는 지난 호황기의 자원이 부동산 투기에 수렴되었음을 반증한다. 잘못 축적된 자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를 맞아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며 그대로 땅에 묶여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이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결국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자원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책으로서 최저임금 1만 원은 그것이 적용 가능한 사회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부적합한 곳에 고여 있는 사회 자원을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흘러가게 할 것인가'라는 논의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요구들이 깨알같이 모여 형성하는 테이블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세대, 다양한 입장들이 모여 누적된 문제를 풀어냄과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일단 청년, '알바'들은 자리를 만들고 채우기 시작했다. 마주 앉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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