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못 차린 한국일보 사주들
<기자의 눈> 특혜는 당연시, 경영권 다툼에만 골몰
2002.07.18 13:30:00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한국일보 사주들
자본잠식 상태에 5천억원 규모의 부채까지 안고 있는 부실기업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에 무려 3천4백억원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어느 날 이 회사 경영진들에게 '어디 가서 돈을 좀 융통해 와라. 그러면 빚 일부는 탕감해 주고 일부는 투자한 것으로 바꿔주겠다. 또 금리도 내려주고 원금 상환 기일도 늦춰주겠다'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살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것도 파격적인 조건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너그러운 채권자들은 일반 서민이나 중소기업의 부채에 대해선 말 그대로 저승사자인 은행들이다.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특혜를 받고도 이 회사의 경영진들은 아직도 집안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촌과 조카가 계열기업의 경영권을 놓고 티격태격하느라 회생방안의 이행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이처럼 희한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부실기업은 바로 한국일보다.

***회사빚은 쌓여 가는데 사주는 수십억원 원정도박으로 구속돼**

대주주인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은 지난 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미라지호텔 카지노에서 95년 8월부터 96년 3월까지 모두 3백44만5천달러를 차용해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로라 최씨(전 미라지호텔 카지노 매니저)는 장 전 회장이 94년부터 97년까지 총 9백만달러(약 1백6억원)를 빌려 도박을 했다고 말했다.

장 전 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로 돈을 날리고 있을 동안 한국일보의 부채는 94년 2천6백87억원에서 97년 4천1억원으로 약 1천3백억원이 불어났다. 기업부채가 매년 수백억원씩 늘어나는데 경영을 책임진 대주주는 매년 수십억원의 빚을 져가며 원정도박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주주총회에서 장 전 회장은 형인 장재구 현 한국일보 회장과 조카인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의 밀어내기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대주주인 장중호 사장이 삼촌인 장재구 회장에게 한국일보 경영권을 양보하겠다며 자금을 들여와 한국일보를 회생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장 회장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메이저신문사로 꼽히던 한국일보 회장직에서 쫓겨난 장재국 전 회장은 퇴진 5개월여만에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그런데 장 전 회장의 퇴진으로 정상을 찾은 듯 보였던 한국일보의 경영권 문제는 최근 장재구 회장과 장중호 사장의 숙질간 갈등이 불거지며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일보 경영권 장악을 위한 제2차 숙질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채권단 회생방안 이후 경영권 노린 제2차 숙질간 갈등 불거져**

일단 승기는 장재구 회장측이 잡고 있다. 지난 1월말 주총을 통해 한국일보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며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을 채워놓은 것이다. 지난 16일 열린 한국일보 이사회가 장중호 사장이 요청한 주총소집건을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보류한 것도 이같은 이사회 구성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장중호 사장측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게 한국일보 현실이다. 장 사장은 장기영 한국일보 창립자의 장손으로 본인지분 34.8%와 모친 등의 우호지분을 포함해 거의 50%의 한국일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최대주주인 것이다. 한국일보가 비록 자본잠식 상태이긴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주총이 소집될 경우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장중호 사장과 장재구 회장의 숙질간 갈등은 장 회장이 한국일보 경영권을 확보한 후 채권단이 지난 6월 7일 5백억원 자금도입을 전제조건으로 완전감자 후 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부채감면 등을 결정하며 불거졌다.

특혜시비까지 불러온 채권단의 결정으로 한국일보가 살 길을 찾은 듯 보이자 삼촌과 조카가 서로 자신만이 한국일보를 회생시킬 수 있다며 경영권 장악 욕심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불거진 숙질간 갈등은 경영권 유지에만 집착했던 장재국 전 회장 때의 갈등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재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장재구 회장은 본인이 약속한 자금 5백억원을 들여와 한국일보의 명실상부한 최대주주가 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경영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소유주가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일보는 49%의 지분을 보유한 일간스포츠 최대주주다.

장중호 사장측은 지난 1월 주총 때 한국일보가 일간스포츠에 대한 의결권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장재구 회장이 계속 일간스포츠 경영에까지 간섭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장 사장측은 또 한국일보와 채권단이 합의한 완전감자 후 증자라는 안 자체가 장 회장이 장 사장의 지분을 없애고 한국일보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이대로 물러날 경우 한국일보 차기 경영권은 물론 일간스포츠에 대한 경영권까지도 뺏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장 사장측은 지난 16일 한국일보 이사회가 주총소집 요청을 보류하자 최악의 경우 ‘주총소집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내 새로운 한국일보 이사회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 모두 한국일보를 살리려는 충정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속내는 숙질간의 치졸한 경영권 다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일보 기자협의회와 노조는 한국일보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경영권을 갖더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경영정상화를 통해 정상적인 임금을 받고 경쟁력있는 신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문경쟁력엔 관심없고 경영권 향배 따른 줄서기도**

하지만 표면화된 최고경영진의 갈등이 가뜩이나 신문의 질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일보의 경쟁력을 살릴 리는 만무하다. 일부 간부들과 기자들은 이미 줄서기 행태를 보이며 인사 등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채권단은 한국일보의 갈등상황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매일 1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는 한국일보의 병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산소호흡기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시장논리에 따른 정상적인 일반기업이라면 벌써 퇴출대상이 됐을 기업의 대주주들이 경영권을 둘러싼 암투만을 계속하고 있다.

채권단이 제시한 한국일보 회생방안은 사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고경영자라는 삼촌과 조카는 현재 국민들의 혈세로 제공된 산소호흡기를 서로 갖겠다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채권단 한국일보 회생방안은 국민 혈세로 부도덕한 부실기업 살리는 것" 비판도**

“한국일보의 회생을 걱정하기에 앞서 채권단 은행들의 전환사채 및 출자전환 허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채권단의 한국일보 회생방안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왜 한국일보에만 그런 엄청난 특혜를 주어햐 하는 것인가요. 사주가 카지노에서 수십억을 하루아침에 날리는 등 족벌사주들의 방만경영으로 부실화된 부실언론사를 살리기 위해 국민세금을 투입한다는 발상은 김대중 정권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6일 한 독자가 한국일보에 대한 채권단의 회생방안을 비판하며 보내온 글이다. 한국일보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돌이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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