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참여정부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기고] 한 한국영화 애호가의 '스크린쿼터 축소 유감'
"지금 참여정부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전략적 유연성, 한미 FTA, 그리고 스크린쿼터 축소**

최근 한미 외교장관의 첫번째 전략 대화에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경과를 거쳐 이루어졌는지, 결과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협상 과정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느닷없는' 발표였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 개시 발표도 그에 못지않게 느닷없는 일이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몇 년을 끌어 온 일이지만, 한미 FTA는 본래 한미투자협정 문제가 갑자기 FTA로 전환한 것이라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 입장에서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가 김대중 정부 이래 한일 FTA에 이어 한중 FTA를 실현시켜 한ㆍ중ㆍ일 협력의 동아시아 경제협력을 목표로 내걸고 있던 터라 국가의 전략적 목표와 관련되는 정책의 변경을 이렇다 할 공론화 과정도 없이 내놓아도 좋은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일 FTA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인한 과거사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얼어붙어 있는 상태에서 진전을 보기 어려웠던 점은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동아시아 경제협력과 한미 FTA가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 서로 상충되는 점은 없는지, 정치ㆍ군사적인 측면에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미 FTA는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한국보다 먼저 FTA를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고 보이는 미국이 어떠한 의도와 전략적 구도를 가지고 나서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따져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정부가 남은 임기 내 최대 해결 과제로 삼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 해소가 한미 FTA와 배치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일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나 한미 FTA 협상개시 모두 국민이나 국회의 논의가 철저히 배제된 밀실외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차이는 있다. 앞의 것은 국민이나 국회 차원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 협상을 통해 결과만을 발표한 것이고, 뒤의 것은 이제 협상을 개시한다는 것을 발표한 데 그쳐 그나마 협상 과정에서 국민이나 국회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를 남긴 점이다.

그러나 협상을 하기도 전에 스크린쿼터 일수 삭감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똑같이 공론화 없는 외교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문가로서보다는 한국영화를 애호하는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 영화인들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마디 거들어 보기로 한다.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와 그 연관 효과**

현재 한국 영화가 스크린쿼터에 힘입어 성장한 것이며 이것이 아시아 지역 한류 열풍의 진원지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 영화 산업만의 일이 아니고 문화산업 전반의 부침과 관련되는 일이라는 점, 즉 스크린쿼터 축소와 문화산업 전반과의 연관 효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듯하다.

현재 한국 영화가 히트작의 경우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우수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본과 인재가 이 분야에 집결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정서와 감수성을 읽고 이를 자극할 줄 아는 기획자들, 이를 뒷받침하는 튼튼한 구성력을 지닌 시나리오 집필자들,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젊고 참신한 감독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의로 밤낮이 없는 고된 촬영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스탭들이 기본이다. 여기에 일부 흥행 실패에도 금전적으로 견뎌내며 좋은 작품에 승부를 걸 수 있을 만한 대자본이 결합되어 있다. 또한 전국적인 배급망을 갖춘 멀티 상영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러한 자본과 인재가 만들어내는 상품에 호응하는 거대한 관객층이 형성되어 선순환 과정을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밖의 장르들과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국 문화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의 결집처가 바로 영화산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산업이 거대한 수익을 만들어냄에 따라 뛰어난 연기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연기자들은 상당수가 기존의 TV나 연극 분야에서 충원되고 있다. 연극이 아직 흥행 상 부진을 면치 못하고는 있지만 많은 우수한 연극인들이 영화에 진출함으로써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왕의 남자'처럼 일부 영화는 연극에서 소재를 따오기도 하여 영화와 연극이 동시에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최근 영화산업의 번성은 연관 분야의 활성화를 가져오고 있다. 영화보다 앞서 한류 바람을 일으켰던 TV 드라마도 영화산업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화배우가 연기력을 키우고 대중성을 얻는 중간 통로가 TV 드라마이며 영화감독들이 TV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는 등 영화와 TV는 상호 보완관계에 놓여 있다. 나아가 영화는 문학, 연기, 미술, 음악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인 만큼 문화 분야 전반의 활성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대중음악의 우수한 작곡자들이 영화음악을 담당하고 있고 뛰어난 대중가요가 영화 주제음악으로서 영화의 맛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상세히 소개할 여유는 없지만 미술, 의상, 그래픽 등 특수효과 등 분야도 마찬가지다.

물론 스크린쿼터제로 이익을 보는 것은 영화 제작과 유통망을 쥐고 있는 대자본과 스타급 배우 감독일 뿐이며,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을 감수하는 제작 스탭, 저예산의 독립영화들은 이와는 무관하다는 비판도 있고 여론의 반감도 적지 않다. 다만 스크린쿼터 축소는 이러한 열악한 층들부터 먼저 직격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등 세계적 영화제에서 한국의 작품과 배우, 감독들이 수상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한국이란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삼성, 엘지전자의 휴대폰, 가전제품이나 현대의 자동차와 같은 상품과는 또 다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매력 있는 나라임을 외국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이와 밀접히 연관된 한 편의 드라마가 한일 관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음도 더 이상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비록 과거사 문제로 정부간 갈등이 있다고는 해도 적어도 한일 민간 교류에서 드라마에서 영화, 대중가요로 이어지는 한류 열풍은 지속되고 있다.

어떠한 기업이나 정치가도 외교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관광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엄청나다. 정부 수립 이래 대외 관계에서 대중문화가 이러한 역할을 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 영화제에서 한국의 영화인들은 작품 수상 못지않게 전 세계 영화인들의 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할리우드의 공세를 막아내고 자국의 영화시장을 지켜내며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평화와 민주적 가치의 영화들**

이러한 영화산업이 갖는 총체적 문화역량으로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이 되어 왔고 그다지 새로운 주장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한국영화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던져 온 메시지에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백만에서 천만까지 관객 동원에 성공한 화제의 작품들을 기억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우선 'JSA 공동경비구역',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은 분단의 비극을 소재로 하여 한반도평화를 희구하는 민중의 심금을 울리며 대박을 터뜨린 작품들이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 바로 한반도 주민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평화와 휴머니티의 주제를 끌어냄으로써 관객을 동원한 것들이다.

블록버스터인 '쉬리', '태풍'이나 이만큼 대작은 아닐지라도 '간첩 이철진', '동해물과 백두산', '간 큰 가족' 등도 북의 공작원이나 군인 등 북녘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그리고 탈북자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드러낸 점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은 작품이다. 여기에는 물론 정부의 지속적인 대북 정책 기조나 이에 따른 남북 화해-협력의 진전이란 여건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남북 간 화해ㆍ협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정부 관계자나 남북 관계 전문가나 TV 해설자 모두를 동원해도 영화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한국 영화들이 던지는 메시지도 남북 관계 못지않게 매우 크다. '효자동 이발사', '하류인생', '그 때 그 사람' 등은 박정희 정권 아래 독재정치의 비극이나 그에 희생된 서민들의 삶을 그러낸 작품들이다. 대박은 아닐지라도 개봉과 함께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에서 일정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독재자 뿐 아니라 그 하수인들, 정보기관의 면모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대학에서 한국 정치론 강의 교재로 써도 좋을 작품들이다.

70년대 제3세계 군사독재 정치 현실과 외세의 추악한 개입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에 비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제 한국도 독재정치를 소재로 정치적인 주제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표현의 자유의 증거를 내놓았다는 의미는 크다.

광주항쟁과 관련해서 이를 직접, 간접으로 다룬 '꽃잎', '박하사탕'은 항쟁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항쟁 진압에 동원되었던 가해자들도 똑같은 역사의 피해자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민주화의 진전이 이루는 물결은 정치 현실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흐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다양한 가치의 영화들**

이러한 영화들은 큰 주제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직접 다룬 영화들이지만, 그 밖의 수많은 영화들이 배경이나 에피소드로서 영화 전개의 곳곳에서 남북 관계나 정치 상황 등 현대사의 아픈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한국 영화의 소재나 주제들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 화해-협력의 큰 줄기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하드 폴리틱스(hard politics)의 큰 주제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문제를 다뤄 수백 만, 천 만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작품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말아톤'은 자폐증에 걸린 장애인 소년의 인간승리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오아시스'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과 사회부적응 전과자의 사랑을 다루었다. '너는 내 운명'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여성의 사랑이 중심 주제로 나오고, '왕의 남자'에서는 동성애 문제의 터부가 깨지고 있는 점에서 이들 영화는 장애인이나 에이즈, 동성애 문제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쉽게 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밖에 '파이란', '댄서의 순정'은 한국에서 위장 결혼한 중국 여성의 고달픈 인생 역정을 그리거나 조선족 소녀의 모던댄스를 통한 사랑과 성공담을 그린 작품이다. 단일의 국민 정체성 신화를 반성해 보도록 하는 데 수십, 수백의 논문이나 해설이 할 수 없는 것을 영화는 대중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 소년과 시골 외할머니 사이의 정의 소통을 주제로 예상 밖의 흥행 성과를 거둔 '집으로', 칠십 노인 간의 사랑과 육체적 섹스를 다뤄 화제가 된 '죽어도 좋아'와 같은 작품들은 잔잔한 감동을 남긴 소외된 노인 주제의 영화다. 또한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를 부각시킨 '서편제', '츈향뎐' 말고도 '왕의 남자'는 민중연희 남사당패를 소재로 해 전통예술과 영화를 접목시킨 점에서 이 장르를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대정신의 문화적 그릇으로서 한국영화**

위에 거론한 영화들은 스크린쿼터제 실시 이후 제작된 400여 편에 달하는 작품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필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들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다양한 주제를 가진 개성적인 작품들이 상영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대표적인 히트작이나 화제작들 대다수가 진보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은 그동안 한국 영화가 사회 현실에서 해내고 있는 역할이 대중 사이에서 진보적 가치를 정서적으로 소통시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여기서 일일이 예거할 수 없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평가가 높은 다수의 독창적인 감독들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개성 있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었고, 저예산의 다양한 독립영화들이 히트작들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것은 누가 의식적으로 조작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 대중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 분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검열제도의 철폐와 스크린쿼터제의 견지 정책 없이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앞에서 예를 든 흥행작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대자본과 인력을 투여한 블록버스터도 있지만, 다수는 많지 않은 예산으로 실험정신에 입각해 과감하게 기존 주제의 성역을 넘어선 것들이다. 스크린쿼터제로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흥행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영화작품 제작에 도전할 수 있었고, 여기에 호응한 관객들이야말로 바로 진보적 상징, 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소비층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역동성은 바로 영화에서 활발하게 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 지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고, 또한 창작의 자유란 점에서 한국 영화가 이러한 가치만을 지향하란 법도 없다. 중요한 점은 현 시점에서 한국 영화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대표적인 문화의 그릇이란 점이다.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따른 스크린쿼터 축소의 이유로 앞으로 늘어날 다른 상품 수출액과 비교하여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영화 매출액의 규모를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 손익계산이 순 경제적인 차원에서만도 맞는 것인지 철저히 타산해 볼 일이다(〈프레시안〉 2월 10일 이근 교수의 "한국영화는 내수산업으로 족하다는 말인가" 참조).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가 담고 있는 문화적 가치, 시대적 가치를 영화매출액만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가치야말로 참여정부가 탄생한 시대적 의미이며, 그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지지층이 아니었던가. 스크린쿼터 축소 정책이 지향하는 가치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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