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로 간 '달러 363톤'은 어디로…"
'재건'엔 등 돌린 美, '이라크기금' 120억불 탕진
2007.03.16 15:16:00
"바그다드로 간 '달러 363톤'은 어디로…"
120억 달러, 지폐로 2억8100장, 무게는 363톤, 지폐를 쌓은 선반이 484개….
  
  전대미문의 '대도(大盜)'를 그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소품이 아니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6월까지 뉴욕 소재 연방준비은행에서 이라크 바그다드로 C-130 수송기가 실어 나른 '이라크 재건 기금'의 양이다.
  
  미 하원 정부개혁위원회는 최근 폴 브레머 전 이라크 최고행정관 지휘 아래 이뤄졌던 '이라크 재건사업 실태조사'를 통해 한창 전쟁 통에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가 유입된 경위와 '달러 363톤'의 씀씀이를 분석 중이다.
  
  미 하원 조사를 통해 공개된 이라크 재건 자원의 규모가 일반인들에겐 비현실적인 수준이라면 이 돈이 미군 주도 연합군 과도 행정청에 의해 사용된 실태는 가히 초현실적이라 할 만하다.
  
  '보드게임' 하듯 '웃기게 써버린' 120억 달러
  
  
이탈리아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2005년 런던테러의 실행비용을 100만 원으로 추정하기도 했던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15일 인터넷 네트워크 <Z Net>에 게재한 기사를 통해 현금 120억 달러가 정확한 지출 계획과 기록도 없이 흥청망청 쓰인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폴 브레머와 연합군 과도 행정청은 이 돈을 모노폴리(장난감 돈으로 말판 위 땅을 사 모으는 주사위 게임, 우리나라 '부루마블' 게임과 유사) 하듯 써버린 것 같다."
  
  
재건사업을 수주 받은 계약자들은 트럭에 실어야 할 만큼 많은 달러를 현금으로 받아갔고 행정청에 근무한다며 월급을 보따리로 받아간 '유령 직원'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행정청 금고에선 100만 달러가 도난당했지만 누구 하나 조사를 받지 않았고 '사용처 미정'이란 항목에 배정된 돈이 5억 달러였다. 샌디에고 소재 컨설팅 회사에는 컨설팅비가 지급됐지만 여태껏 보고서 한 장 나온 게 없다.
  
▲ 하원 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라크 재건 기금 지출에 대해 변명하는 폴 브레머 전 이라크 최고행정관.ⓒ로이터=뉴시스

  브레머는 관련 청문회에서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이 이어지자 당시 이라크는 금융시스템이 마비돼 있었고 현금 경제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현금이 시급하게 필요했다고 변명했다.
  
  이에 대해 나폴레오니는 "흥청망청 써 버린 씀씀이를 보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현금 경제에 적응할 채비도 안 돼 있었던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브레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임무가 완수됐다'고 선언하는 순간 이라크 경제가 기적적으로 회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걸까?"
  
  
이라크 통화가 붕괴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조속한 달러 유입이 불가피했다는 브레머의 또 다른 변명에도 나폴레오니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화 제도가 차례로 붕괴했듯이 혼란 후 통화 붕괴는 흔히 목격되는 일이지만 "통화붕괴로 인한 통화 가치절하보다 더 위험한 것이 무리한 현금 유입"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전쟁 상황에서 유입된 현금은 군자금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브레머가 뿌린 현금뭉치들의 일부는 민병대, 갱단, 밀수업자 등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라크 통화 붕괴 우려해 달러 유입했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현금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한 브레머의 변명도 어불성설이지만 까다로운 사전 절차와 증빙을 요구했던 비슷한 전례를 감안하면 이라크 기금 사용에 대한 유엔의 승인이 일사천리로 떨어졌고 그 후 2달 도 안 돼 120억 달러가 미친 듯이 풀린 일련의 과정도 미심쩍기 그지없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이 이라크 재건기금은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미국이 쓴 전비 4000억 달러 중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걸프 전 이후 미국이 동결했던 이라크 자산과 유엔 석유-식량 프로그램의 잉여금이 바로 이 재건기금으로 전환된 것이다.
  
  미국 내 쿠바 자산이 쿠바 난민을 위한 기금으로 집행되는 데에는 10년이 넘게 걸렸고 연방준비은행의 이란 자산은 1979년 호메이니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 금고에서 썩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쟁 와중에 재건기금이 풀린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핸리 왁스만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장은 "전쟁 와중에 현금 363톤을 보내는 게 제 정신으로 내린 결정이겠냐"고 반문했다.
  
  나폴레오니는 이처럼 터무니없는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를 "무능한 정치인들이 임명한 무능한 관료들의 책임감 부족"에서 찾았다.
  
▲ 이라크 과도정부를 관리했던 미국 관료들은 미국인들의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라크 기금을 흥청망청 쓰는데에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주민들을 위해 쓰였어야 할 120억 달러는 그렇게 '모노폴리'의 장난감 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로이터=뉴시스

  브레머를 비롯한 연합군 과도 행정청 관료들은 거의가 미국인이고 미국 관료였기 때문에 미국 세금 납부자들에게 책임을 느낄 뿐 미국인들의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이라크 기금과 이라크 주민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원이 조사에 착수하자 브레머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이라크 재건 기금은 미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모아진 돈이 아니기 때문에 미 의회가 이를 추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12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했다면 이라크 주민 한 명에게 1만5000달러가 돌아갈 정도로 큰돈을 단기간에 다 써버리느라 일부 관료들은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 장교는 기금에 대한 권리가 이라크 자치정부로 넘어가기 전에 돈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675만 달러를 쓰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나폴레오니는 "미국 정부의 목적이 이라크의 빠른 재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목적이 이라크의 재건에 있었다면 과도행정청엔 좀 더 유능한 관료들이 임명됐을 테고, 120억 달러의 쓰임새는 마셜 플랜을 집행할 때 그랬던 것처럼 단 1페니까지 감시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의 목적은 오직 중동 지역 내에 미국 요새를 짓는 데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무능한 관료들의 '장난 같은' 기금 집행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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