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현 정권의 연장을 바라지 않는다
[시론] 역사적 단결을 위한 제언
국민은 현 정권의 연장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결코 멈출 수는 없다.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도 아니며, "되찾은 10년"도 아니다. 이제 겨우 새로운 역사를 향해 발걸음을 뗀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당연히 겪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성장해온 시간이다. 그래서 그건 "소중한 10년"이다.
  
  삼성비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 의지 밝히지 않는 청와대
  
  정작 잘못이 있다면, 역사의 갈망으로 축복처럼 주어진 권좌에 앉고도 본래의 역사적 책무를 망각한 채 민중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해버린 자들에게 있을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삼성의 비리와 부패를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보다는 엉뚱하게도 "공수처" 운운으로 특검의 칼날을 비켜가려는 대통령의 궁전이 된 청와대는 지난 10년의 평가를 망가뜨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책임의 소재처이다.
  
  "잔혹한 승자와 절망에 빠진 패자"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한-미 FTA를 그토록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인 까닭에는 이렇게 자본과 한 몸이 된 권력의 실체가 있었던 탓일까? 역사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10년"이 오늘날 모독을 당하게 된 연유에는, 삼성의 황제와 삼계탕을 먹으면서 "권력은 이제 시장에게"라는 발언으로 자본의 정치적 주도권을 떠받든 최고 권력자의 존재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하면 과연 지나친 말일까?
  
  국가의 권력이 자본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한-미 FTA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관세의 차단기를 조절하는 자유무역에 있지 않다. 자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권력과 법과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 그 요구의 중심에 있다. 민중의 현실은 안중에 없다. 가난한 자의 절규는 언제나 법의 진압 대상일 뿐이다. 이런 현실을 위해 진력하는 최고 지도자는 과연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
  
  한-미 FTA로 미국의 거대한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환상 뒤에는, 떼거리로 몰려들어 이 나라의 경제적 운명을 좌우할 엄청난 규모의 초국적 자본의 힘은 은폐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감추고 있는 최고 권력의 기만과 탐욕 앞에서 침묵해온 정치인들, 그들은 또한 남의 나라를 파괴하고 무고한 민중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간 침략동맹에 협력한 이름과 정확히 겹쳐 있다. 이들이 바로 "값진 10년"의 의미가 이 10년을 위해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은 세력으로 하여금 냄새나는 누더기처럼 짓밟히도록 한 장본인들이다.
  
  공인의 도덕성: 자신의 사리를 위해 공익 희생 VS 공익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삶 희생
  
  그 반대편의 정치세력으로 나선 인물은 그의 인생에서 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하나라도 있는가 싶은 행로를 걸어온 것이 자꾸만 확인되고 있다. 자식들의 위장취업문제에 대해 그가 알았다면, 거기에 의도성이 있었는가를 당연이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하며, 아니었다면 사후 수습에서 보인 그 무책임성과 윤리적 불감증이 혹독하게 검토되어야 했다. 몰랐다면,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 하며 그런 일들에 대한 무지가 국가경영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했다. 엄청난 거부가 저지른 최저의 건강보험료 납부에서부터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이루 셀 수 없는 편법과 부패에 둔감한 자세는 국가 최고 지도자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주가조작 연루문제의 진상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의 힘 앞에서 이면계약서의 진위여부에 대한 수사가 어려울 이유 없다. 시간이 걸릴 까닭도 없다.
  
  요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덕성보다 능력이 우선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한 공인의 도덕성이란 그가 무엇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을 말해주는 기준이다. 자신의 사욕을 위해 공적 이해를 희생시키는 자와, 공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사적 이해를 희생시키는 사람과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능력은 이 도덕적 요구를 어떻게 구현해 나가는가로 파악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도덕성이 없는 자의 능력은 공적 이익을 언제나 자신의 사리를 채우는 목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 태도에 다름이 아니다.
  
  도덕성을 묻지 않는 지도자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말하자면 사기로 억만금을 번 자가 있다면 그런 그의 능력에 매혹당해 그 사기 실력으로 국민들을 배부르게 해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이걸 묻지 않는 국민들은 이미 그 스스로도 사기를 쳐서라도 돈을 벌면 좋다고 여기는 정신을 가진 셈이다. 그건 모두에게 추악한 선택이 된다. 고양이가 쥐를 잘 잡는다고 쥐가 노리는 생선을 그 고양이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까?
  
  또 하나의 난데없는 인물은 대한민국을 살리겠다는 비장한 어조로 나섰지만, 그가 바라는 미래는 경직된 냉전이념에 추종하는 권력의 독선과 마녀사냥의 정치가 지배하는 돌아보기도 지긋지긋한 과거의 현실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말과 몸짓은 비극적인 희극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평화를 혐오하는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다 쓰러져가는 낡은 폐가의 구석방이 아닌가 싶다.
  
  가치의 중심이 확고해야 : 탐욕스러운 자본과 한 몸이 된 권력을 넘어서서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분명하다. 새로운 진전을 위한 단결이다. 그건 그러나 그저 되지 않는다. <가치의 중심>이 확고해야 한다.
  
  크게 보면, 신당에서 민주당, 창조한국당, 민노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나라 역사의 진전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온 역사적 블록의 구성원들이다. 물론 각기 잘잘못이 있다. 앞에 나서지 말아야 할 자들이 있고 고개를 숙여야 할 자들이 있다. 단결 이전에 명확히 따지고 정리해야 할 바가 또한 있다. 워낙이 부족한 점들이 많으니 이런 세력들이 다 합쳐봐야 여전히 모자란 단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을 세력 앞에서 지금 누가 더 잘났는가를 따지는 일은 무망하다. 이 싸움에서 지면, 역사를 앞으로 가게 하는 일은 앞으로 매우 힘겨울 것이다.
  
  누군가는 보수 세력의 집권이 진보/개혁 세력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계기와 동력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의 민중들이 더 깊은 고통에 빠지는 것을 아파하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이다. 현 정권 아래에서도 한-미 FTA를 막아내는 일이 그토록 힘겹고 고단했다. 그리고 제대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돌아갈 판이다.
  
  이제 선택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삼성 로비 논란은 탐욕적인 자본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권력의 부패는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게 한다. 자본의 자유는 국민의 공적 이해 앞에서 멈추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자본의 존재는 도태의 운명에 처하게 해야 한다. 권력과 짝이 되어 이 땅의 도덕성과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자본은 도저히 설 곳이 없게 해야 한다. 그건 사회주의도 좌파도 진보도 아닌, 민주주의의 당연한 상식이다.
  
  한-미 FTA의 추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철저하게 정리하고, 지난 시간의 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지출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이 한 몸이 되어 밀어붙인 이 협정은 마땅히 거부되어야 하며 그로써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을 진정 새롭게 바꾸어 낼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권력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감당할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신당, 노무현 정권과 철저하게 결별하라
  
  노무현 정권은 공도 있지만, 과가 크다. 공이 30이라면 과는 70이다. 30의 공은 한반도 평화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마저도 사실은 후반기의 국제정세에 힘입은 바 클 뿐이다. 민족적 진정성보다는 권력의 정치적 선택의 비중 역시 높았다. 70에 속하는 과의 핵심에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삶을 희생시킨 것이다. 애초에 기대되었던 특권체제의 타파가 아니라 특권의 옹호로 그 역사적 사명을 저버렸다. 그래서 국민들의 외면과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권력의 현실을 연장하려든다면 누구도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신당은 노 정권과 철저하게 결별하라. 소중한 10년의 가치를 정확하게 되찾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화를 가져온 현 정권의 현실을 질타하고 거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와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민노당과 민주당, 그리고 창조한국당은 이러한 신당의 선택에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의 진전은 이와 같은 지점에서 진정한 출발점을 얻게 될 것이다. 아니라면, 역사의 진전을 위한 가치 중심의 단합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것이 아닌 단합은, 누구의 눈에도 급한 김에 편짜기 하는 얕은 수의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게다가 "소중한 10년"에 대한 모독을 불러일으킨 책임의 장본인에 속하는 세력이 아무런 반성 없이 무슨 면목으로 권력을 국민들에게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당 내부의 이른바 "친노 세력" 역시 노무현 정권 엄호가 자신들의 정치적 장래에 도움이 별반 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혹여 억울하다 해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국민의 삶이 우선이 아닌 정치는 망한다
  
  국민의 삶이 우선이 아닌 정치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더 망치려 들 수 있는 세력의 집권은 그래서 더더욱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한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자본은 날개를 달 것이며, 민생의 피폐함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부디, 이 거대한 부패와 기만, 그리고 탐욕의 현실을 돌파해서 역사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역사적 단결을 바라마지 않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현상타파이다. 그 현상타파의 방향은 국민을 위한 진정한 헌신이다.
  
  국민들은 현 정권의 연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부패한 삶의 이력을 가진 세력과 냉전의 동굴로 국민들을 끌고 가려는 세력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새로운 길을 제창하라. 국민들의 고뇌를 뜨겁게 껴안고 가는 진정성이 있다면, 이는 결코 어렵지 않다. 큰마음과 큰 생각의 정치가 현실을 바꾼다.
  
  시간이 없다 한들 마음을 다하면, 역사는 결국 응할 것이다. 최후의 일각까지 진심을 쏟으면 국민들은 마침내 움직일 것이다. 역사를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걸 믿는 자에게 승리의 신은 환하게 미소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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