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 출옥 후에도 계속되는 지옥의 나날들
[버마이야기] ⑥ 그러나 '복수'가 아닌 '희망'을 얘기한다
정치범, 출옥 후에도 계속되는 지옥의 나날들
평화로운 집이라면 많은 손님이 방문하고, 그렇게 손님이 많이 찾아 온 집에는 행운이 찾아온다고 버마 사람들은 생각한다. 과거 한국의 사랑방 문화와 비슷하게 버마 사람들은 항상 손님들을 따뜻하게 환영한다.
  
  1988년 이전 버마 시민들의 경제 상황은 스님들에게 시주를 잘 할 수 있고, 그리고 외박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8888 민중항쟁 이후에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외박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이라도 사전에 신고를 하지 않고 잔다면 벌금을 무는 등 군부의 제도가 강화되었다.
  
  1990년 이후 버마에서는 '에쏘(만나고 싶지 않은 손님, 나쁜 손님)'라고 하는 단어가 생겨났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노르웨이로 망명한 버마 가수 몬아웅(Mon Aung)이 '에쏘'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집 앞에 한 자동차가 선다.
  차에서 내린 손님은 낯선 사람이다.
  그 손님은 잠깐 따라오라고 말한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대문을 두드리고,
  잠깐 따라오라고 하는 손님도 있다.
  그 손님들은 잠깐 따라오라고 말하며 데려갔지만,
  되돌아오는 시간은 10년 이상 걸린다.

  
  이 노래는 정치범이 어떻게 체포되는지, 그리고 버마의 인권 상황은 어떤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사람을 군부에서는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 버마 활동가들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는데, 군부는 별다른 이유 없이 체포하는 식으로 폭력적으로 탄압한다.
  
▲ 1989년 이래 국가 전복(기도), 반정 프로파간다 혐의로 수감되어 있는 버마 언론인 우틴윈(U Tin Win, 79세) ⓒ마웅저

  버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보고에 의하면 88년 이후 지금까지 투옥중인 정치범의 수가 1000명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한다. 감옥 생활을 해본 버마 정치범들은 '지옥에 갔다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출옥 후에도 지옥 생활은 계속된다. 출옥한 정치범들은 더 이상 감옥에서처럼 육체적인 고문을 당하지는 않지만 군부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지만, 통화 내용을 도청하거나 우편물을 감시하기도 하고, 집 앞에 와서 감시를 하고, 우리 집에 누가 왔고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를 보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이동에 제한을 둬서 일정 구역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
  
  구직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은 이력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출옥한 정치범들에 대해 정부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범들은 일자리를 갖기가 어렵다. 이력서에 정치범으로 투옥된 적이 있다는 내용이 있으면 회사에서는 그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 전 정치범을 고용할 경우 군부에서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정치범들은 보통 장사를 하거나 개인 과외, 막노동을 한다. 그 일까지도 군부가 압력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범이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인데, 이것은 비단 정치범 혼자만의 사항이 아니다. 정치범의 가족 역시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범의 가족들
  
  90년 총선 때 선출됐던 한 의원은 92년 체포되어 98년 9월 따야와디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는 7명의 자녀를 뒀는데 사망 당시 큰 아들은 정치범으로 투옥 중이었고, 대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은 무장 투쟁을 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96년 막내아들은 강제로 징집되었는데 훈련 도중에 다쳐서 밍글라동 군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 2층에서 진료를 받던 그는 2층에서 떨어져 98년 3월 사망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가 살해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큰 아들의 아들은 현재 대학교 3학년인데 이번 9월 시위 때 학생 지도자로 나섰다. 그는 10월 말 체포당했고, 아버지와 같은 양곤 인세인(Insein) 감옥에 수감 중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과 남편이 정치 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부에서 수배령을 내려 현재 도피 중이다.
  
▲ 수도 양곤에 있는 인세인 감옥의 모습 ⓒ마웅저

  의원의 딸 둘은 조카와 오빠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또 군부는 이들 가족에게 집을 내주지 말라고 압력을 가해, 집주인으로 하여금 '다른 집을 찾아보라'며 가족들을 내쫓게 했다. 이런 일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가족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고, 수감 중인 가족을 뒷바라지하느라 너무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군부에 의해 언론이 통제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버마 일반 시민들은 알 수 없다. 외신 보도를 듣는 사람을 통해 간간히 소식을 듣는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가족은 이 한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가족들도 많이 있다. 그 가족들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생으로 버마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계속 할 것이다'고 말한다. 이들이 있기에 버마의 미래는 밝다.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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