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문국현에 사실상 '사퇴' 압력
백낙청 교수 등 7인 모임 "단합 저해는 오만이자 무능력"
2007.12.10 11:52:00
재야, 문국현에 사실상 '사퇴' 압력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시민사회·종교계 원로들은 10일 "민주개혁세력의 단합"을 강하게 촉구하며 사실상 문 후보의 후보 사퇴를 압박했다.

단일화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합' 요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시민사회·종교계 7인 모임은 이날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대선국면을 "도덕성에 대한 무감각과 상식의 실종"으로 규정한 뒤 "진실이 말살되고 수구적인 기득권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 하는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과 결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7인모임은 백 교수 외에도 김현 원불교 교무,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유경재 예수교장로회 목사, 이돈명 변호사, 청화 조계종 스님, 함세웅 신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 목사를 제외한 6명이 참석했다.

원로들은 "이처럼 진실이 말살되고 수구적인 기득권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 하는 상황에 민주개혁세력을 자임하는 모든 정당과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특히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자신의 작은 이해관계에 매달려 단합을 저해하는 사태는 또 하나의 오만이요 정치적 무능력"이라며 정 후보와 문 후보 간의 단일화가 결렬된 최근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로들은 "지금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차분히 생각해서 지혜롭게 선택할 시간"이라고 강조하며 "허위와 몰상식이 판을 친다고 지레 절망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자"고 촉구했다.

이날 모인 원로들은 후보 단일화 논의는 시한을 넘겼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듯 보였다. 백 교수는 '단일화 논의를 다시 중재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지금 시점에 새삼스럽게 단일화에 대한 제안을 하거나 중재 작업을 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단일화 방송 토론이 위법이라는 선관위 판시가 나왔고 부재자 투표(13,14일)전까지 남은 시간이 단 이틀에 불과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날 원로들의 '단합' 요구는 두 후보 중 한 후보의 사퇴 요구에 다름없는 것이다. 그 초점은 5%대 지지율에서 정체 중인 문 후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여권의 일반적인 풀이다.
차분히 생각해서 지혜롭게 선택할 시간입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연합.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투표일을 열흘도 안 남기고 입을 여는 우리의 심정은 절박하고 착잡합니다. 민주개혁세력의 후보들이 여전히 열세에 놓여서만이 아닙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너무나도 상식 밖의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곱 사람은 더러 우리 사회에서'원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만 특별한 권위나 대표성을 자임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 나라의 정치가 우리가 평생 동안 지키고자 노력해온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소망하는 충정에서 우리끼리 의견을 나누어왔고 '시민사회·종교계 7인모임'이라는 임의기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로도 민주개혁세력의 자기쇄신과 단합을 가급적 조용히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공개적으로 우리의 의사를 밝히고 국민들께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이번 대선이 도덕성에 대한 무감각과 상식의 실종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선이나 정책 문제 이전에 최소한의 정직성과 준법정신은 대통령 후보의 기본조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인했거나 입증된 사실들만으로도 이런 기본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후보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큰 이유가 민주개혁을 표방해온 정권이 국민의 신망을 잃었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참여정부는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만, IMF사태 이후 서민들의 삶이 계속 힘들어지는 현실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민심의 질책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의 분노가 민주개혁세력 전체로 옮겨왔을 뿐 아니라, 고단한 현실을 단번에 바꾸어줄 어떤 해결사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마저 키워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사 심리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분별을 봉쇄하려는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쳐대는 쪽의 많은 분들은 지난 10년간 정권 말고는 잃은 것이 거의 없는 분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줄곧 그러했듯이 경제계와 언론계, 법조계, 교육계 등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변함없이 점거해왔습니다. 이제는 정권마저 다시 잡아서 정부를 통한 국민들의 감시와 견제에서 훌쩍 벗어난 상태로 자신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한껏 향유하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생계 차원에서 실제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서민들의 저들에 대한 기대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우리가 판단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더구나 해결사로 나선 인물의 온갖 도덕적 결함이 확인되었고 부패와 비리의 더 큰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는 마당에,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들이 예의 유리한 고지들을 십분 활용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이 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의 소위 BBK 사건 검찰수사도 바로 이러한 기득권 구조의 단적인 예가 아닐지 우려합니다. 수사 내용이 극히 일부만 공개되어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하지만,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논란은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고 있으며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하여 불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사 이전에 제기되었던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고 검찰 발표만 보더라도 수사가 매우 미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가지 쉬운 예만 들더라도, 검찰은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이명박 후보 자신의 언론인터뷰, 명함, 이력 등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명함을 직접 그로부터 받았다는 지인에 대하여, 그리고 이명박 후보가 BBK와의 관련성을 스스로 인정한 수차례에 걸친 별도의 인터뷰 과정이나 내용조차 조사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특히 검찰은 이미 8월에 도곡동 땅의 소유자가 명의자와 다르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에도 그 소유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이 땅의 매매대금 일부가 역시 소유논란을 벌이고 있는 주식회사 다스로 납입되었음에도 납입의 실제주체와 과정, 내용에 대해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밖에도 비전문가의 상식으로도 문제점은 얼마든지 더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지경임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사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이며 오랜 기득권에 젖어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위협과 회유를 했다는 김경준씨의 폭로는 그 일부만이라도 사실이라면 이번 수사발표의 정당성이 처음부터 부정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행위가 됩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검찰이 수사와 기소의 독점권 뒤에 숨어서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이번 수사를 불성실하게 진행했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왜곡했다는 의혹에 대하여는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동시에 검찰의 이런 자의적 행위가 해당 후보 진영은 물론, 거대신문들과 법조계, 재계 등의 엄호가 없이도 가능했을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진실이 말살되고 수구적인 기득권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과 결연한 대응을 요구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개혁세력을 자임하는 모든 정당과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자신의 작은 이해관계에 매달려 단합을 저해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개탄할 일입니다. 설혹 그러한 분파노선이 참여정부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이는 자칫 또 하나의 오만이요 정치적 무능력으로 규정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합의 과정과 결과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많습니다. 당연히 최선의 방법을 향한 모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동은 어떻게 감동을 줄지 미리 계산해서 온다기보다, 남들이 감동을 하건 말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감동적인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가 차분히 생각해서 지혜롭게 선택할 시간입니다. 허위와 몰상식이 판을 친다고 지레 절망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십시다.

시민사회·종교계 7인모임 : 김현(원불교 교무) 박영숙(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유경재(예수교장로회 목사) 이돈명(변호사) 청화(불교조계종 스님) 함세웅(천주교 신부)


"단합 저해하면 거짓 민주세력"

원로들의 이 같은 요구는 지난 5일 검찰의 BBK 수사발표 이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여론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자 그간 정치권 내로 한정돼 있던 위기감이 소위 '민주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재야 전반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에 지난 7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제27 교수단 일동 등이 '부패세력 집권 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조직해 "부패정치세력 집권 저지를 위한 민주대연합을 이룩하고 국민의 바른 선택을 촉구하며 제3기 민주정부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한 곳으로 집중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소설가 황석영 씨가 대표로 낭독한 성명에서 "만약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여전히 분열된 채로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이들 세력을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후보의 집권이 실현될 경우 범여권 및 민주개혁 진영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책임론'의 한 축이 형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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