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R 사고(思考)실험과 비국소성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41> 측정과 해석 ②
2008.05.01 08:03:00
EPR 사고(思考)실험과 비국소성
양자역학에서 측정의 해석에 관련해서 널리 알려진 예로서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Boris Podolsky), 로젠(Nathan Rosen), 세 사람이 머릿속에서 생각해 본 실험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실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라고 부르지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우선 전자의 짝을 만듭니다. 전자를 두 개 만드는데 스핀의 합이 0이 되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스핀이라는 것이 사실 각운동량이기 때문에 각운동량은 적절한 상황에서 운동량이나 에너지처럼 보존됩니다. 각운동량 보존이라는 성질을 이용하면 처음에 전자의 짝을 만들 때 두 전자의 각운동량의 합이 0이 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짝 중에 하나는 왼쪽으로 보내고 하나는 오른쪽으로 보냅니다. 왼쪽에서 갑순이가 전자의 스핀을 재고 오른쪽에서는 을순이가 자기 쪽으로 온 전자의 스핀을 잽니다.

갑순이가 전자의 스핀 값을 +1/2라고 얻었다면 을순이는 필연적으로 -1/2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갑순이가 만약에 -1/2 값을 얻으면 을순이는 언제나 +1/2 값을 얻게 됩니다. 두 전자의 스핀의 합이 0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일단 전자의 스핀을 재서 +1/2 값을 얻었다면 다른 사람은 반드시 -1/2 값을 얻게 된다는 것은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갑순이가 스핀을 재지 않았다면 을순이가 잴 때 어떤 값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요.

그런데 전자 대신에 빨간 구슬과 파란 구슬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두 개의 구슬을 각각 주머니에 넣어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하나씩 보냈습니다. 갑순이가 주머니를 열어보니까 빨간 구슬이었다면 을순이가 받은 주머니에는 무조건 파란 구슬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갑순이가 주머니를 열어보든 안 보든 간에 이미 결정돼 있습니다. 확인해 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거지요.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이러한 고전적인 경우와 다릅니다. 갑순이가 스핀을 재기 전에도 이미 +1/2이나 -1/2 중 하나로 결정돼 있는데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고유상태, +1/2과 -1/2 중에 어느 하나로 미리 결정되어서 온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상태가 포개져 있는 상태로 온 거지요. 포개져 있는 상태로 있는데 갑순이가 재면 그 순간 상태가 두 고유상태 중 어느 하나로 바뀝니다. 측정할 때 바뀌는 것이지 처음부터 결정되어서 오는 것이 아니지요. 이것이 고전적인 경우와 완전히 다른 점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갑순이가 측정을 해서 포개진 상태이던 것이 고유상태로 바뀌면 그 순간에 을순이 쪽으로 간 전자의 고유상태도 갑자기 같이 바뀌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두 전자의 상태가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갑순이가 측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을순이에게 간 전자의 상태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주 이상하지요. 예를 들어 갑순이는 지구에 있고 을순이는 북극성에, 아니 안드로메다은하에 있어서 전자 하나는 지구로 보내고 다른 하나는 안드로메다은하로 보냈다고 생각할까요. 지구와 안드로메다은하 사이가 엄청나게 먼데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측정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전자의 상태를 순식간에 바꿔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격을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고 부릅니다. 국소적이지 않다, 곧 한 곳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지구와 안드로메다은하 사이가 엄청나게 먼데도 지구에서 일어난 일이 안드로메다은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상하지요. 이를 세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피아르 역설(EPR paradox)이라 부릅니다.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한곳성(국소성)원리(locality principle)를 따르면 을순이 쪽의 스핀 성분은 물리적 실재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에서 제대로 기술하지 못하므로 양자역학은 완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곳성과 실재성이 양립할 수 없으므로 역설이라는 것인데 사실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을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역설이 아닌 셈이지요.

한편 비국소성을 거부하고 한곳성원리를 받아들이면 양자역학은 불완전하고 완전한 기술을 위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변수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곳성원리에 따른 이른바 숨은 변수 이론(hidden-variable theory)과 표준의 양자역학이 서로 다른 결과를 주게 되는 측정을 생각해낸 사람이 벨(John S. Bell)이고 따라서 둘은 양립할 수 없음을 지적한 결과가 유명한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이지요. 그런데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양자역학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어졌습니다. 결국 비국소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학생: 설명하실 때 정보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대로라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동시에 결정된다는 것 아닌가요?

좋은 지적입니다. 정보는 빛보다 빠르게 갈 수는 없다고 했지요. 이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지구에서 측정해서 고유상태를 결정하면 2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은하에서도 순식간에 고유상태가 결정된다니 상대성이론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국소성을 지닌 것은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에 의한 상관관계이지 통신 곧 정보전달이 아닙니다. 이러한 비국소성 상관관계를 이용해서 실제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 않지요.

사실은 최근에 양자정보(quantum information)라고 해서 관심을 많이 끌고 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별나라 여행(Star Trek)≫이라는 '공상과학' 텔레비전 연속극이 있었습니다. 영화로도 나왔지요. 먼 미래에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를 여행하는데 선장이나 항해사 같은 사람들은 어떤 행성에 도착해서 바깥으로 나갈 때 구차하게 착륙해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이동해 갑니다. "기(氣) 차라(energize)" 하면 순식간에 몸이 분해돼 이동하지요. 우리 몸은 결국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자라는 것은 원자, 결국은 렙톤과 하드론 또는 쿼크, 이런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우리 몸을 이루는 정보를 완벽하게 알면 그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구성 입자들을 똑같이 맞춰 놓으면 원리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 방법으로 몸을 훑어서 그 정보를 완전히 알면 이를 안드로메다은하에 보내서 똑같은 분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양자순간이동(quantum teleportation)이라고 하지요.

순간적으로 이동한다면 상대성이론을 위배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를 실행하려면 정보를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얽힘을 이용해서 보낸다 하더라도 정보는 반드시 고전적으로 가야 합니다. 이는 당연히 빛보다 더 빠르게 갈 수는 없지요. 따라서 양자순간이동은 상대성이론을 위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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