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에 묻는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당파(鐺把) <3>
2008.10.09 07:51:00
좌익에 묻는다
가장자리도 아니다(離邊)
  
  왼쪽(左翼)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자들이 있었다. 촛불은 옛 우리 할머니들처럼 간절한 소망을 조용히 뒷뜰에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비는 것이요, 횃불은 '불현당(불켠당·明火賊)'이 높이 쳐 들어 부잣집을 덮치면서 허공에 지글지글 타오르던 것이다. 전혀 다르다.
  
  4월 29일 청계 광장에서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이 가만히 촛불을 켰을 때 비웃음을 일삼던 정의의 홍길동이들이 6월 10일 전후로부터 끼어들기 시작해 6월 29일에는 완연히 촛불을 횃불로 바꾸어 버리려 했다.
  
  촛불은 후천개벽으로 가려는 길이지만 횃불은 정권 탈취를 위한 혁명에의 몸부림이다. 전혀 다르다.
  
  나는 그 무렵 두 분 어머니를 잃고 상중(喪中)이었다. 마치 분향소 제단의 촛불이었다.
  
  그때 문상을 한다고 몰려온 한 떼의 횃불이 있었다. 상가(喪家)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은 흔치는 않지만, 그 역시 우리에 옛 풍습 중의 하나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흔들어 대는 시끄러운 횃불에 있었다.
  
  '우리가 시청 광장에서 문화 행동을 조직했다!'
  
  몹시 불쾌했다.
  
  <문화행동>을 <조직했다>?
  
  조직했다?
  
  문화를?
  
  그것도 문화 행동을?
  
  조직?
  
  그들은 모두 나와 수십 년을 호형호제하던 사이다. 나는 그들을 내내 아끼며 사랑했고 그들 역시 나를 형님처럼 따랐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그들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의 미학에 위배되어서가 아니다. 그런 걸 욕 한마디로 끝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예쁘고 애리애리한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 쓸쓸한 외톨이 대중들의 소담한 촛불을 왜가리같이 악써대며 '씨팔!', '좇같이!', '죽여라!', '밟아라', '찢어 죽여라!', '때려 부셔라!'의 그 흉흉칙칙한 구정물 바다에 몰아넣고 횃불을 치켜 올렸다는 것, 그것을 또 자랑처럼 으쓱대며 떠벌리는 것.
  
  너무 추(醜)했다.
  
  '추의 미학'은 나의 대학 때 전공 분야다. '탁류의 횃불' 또한 그 무렵 내가 즐겨쓰던 민중 문학 클리셰의 하나다. 더욱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즉, '적대(敵對)와 증오(憎惡)에 가득 찬 낄낄대는 웃음'은 나의 풍자시 오적(五賊)의 시학적 근거의 한가지이기도 했다.
  
  요컨대 나의 업(業)이었다.
  
  그래서 눈을 주지 않은 것이다. 미워서가 아니다. 위선이 아니라, 나는 요즈음 어떤 미운 사람, 미운 마음도 지극히 모시건 차차차차 그 반대의 고운사람, 고운 마음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진리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 해소되어 버릴 것이라 하더라도 혐오감이 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문화 행동을 조직했다?
  
  그 뒤 며칠을 내내 기회 있을 때마다 조용히 생각해 봤다. 미움, 혐오감을 동반하지 않고 청명한 마음 하늘에 한 줄기 빛처럼 대답이 돌아왔다.
  
  '어리석다.'
  
  다시금 돌아왔다.
  
  '어리석다.'
  
  나의 책임이 없는 것 아니다. 안다.
  
  그러나 나는 그 길고 긴 독방(獨房) 이후 분명 '모심'과 '개벽'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나와 함께 가지 않는다.
  
  욕까지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횃불이 아닌 촛불을 위장하고 있었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라. 이용해 먹으려 했던 것이다.
  
  병법의 영역에서는 흔하다.
  
  그러나 문화에서는 여지없이 더러운 짓이다. 그런데 그들 자신의 말로도 '문화 행동을 조직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때 '조직'은 '사기친다'는 뜻도 된다. 내가 그랬던가?
  
  또 며칠을 혼자 있는 시간에 생각하고 생각했다. 기억을 뒤집어 한 가지 한 가지 모두 다 드러내 따져 보았다.
  
  없다.
  
  사기 친 적 없다.
  
  다시 확인한다.
  
  없다.
  
  내가 그들 모두를 '까쇠(Csseur·까불고 까부수고 까발리는 마당쇠)'라고 명명한 것은 그 뒤부터다. '댓글 알바' 정도가 아니다. 까쇠의 역사는 장구하다.
  
  마타도어, 프락치, 사꾸라, 위장침입자….
  
  그들이 왜 이리 됐는가?
  
  왜 정정당당함을 잃었나?
  
  왜 불굴의 투혼을 잃었나?
  
  왜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울음을 터트릴 줄을 잊어버렸나?
  
  왜 땅을 치며 통곡할 줄도 모르게 되었나? 왜 맨날 술집에서 떡이 되도록 취해 게걸대다가 서로 쌈박질이나 하는 잡배가 되어 그 예쁜 아이들, 그 서늘한 눈빛의 젊은 여성들의 뒤통수나 치는 사기꾼이 되어 버렸나?
  
  언제부터인가?
  
  예전엔 그렇게까지 추하진 않았는데?
  
  왜 이리 되었나?
  
  지난 5년 집권 뒤부터다.
  
  돈맛, 권력 맛을 본 뒤부터다.
  
  정치는 개떡으로 하면서 만판으로 저희끼리만 즐겼던 것이다.
  
  못 속인다.
  
  이제 다 드러난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어떤 놈은 공적인 문화예산 가운데서 상당 액수를 제 개인 빛 갚는다고 인 마이 포켓 한 놈도 있다고 들었다.
  
  저희 선배 김지하가 7년 독방살이로 미치광이가 되어 출옥 후 10여 차례나 정신 병원을 드나드는데도 무슨 보상이니 위문이니 관심은커녕 다 한 번 얼굴 내미는 놈도 없고 다 한 번 겉치레 인사 여쭈는 년도 못 봤다. 핑계는 있다.
  
  연쇄 분신자살 때 자살하지 말라고 조선일보에 성토문 썼다는 것. 생명 사상 전파해서 배신자라는 거다.
  
  이젠 저희들이 몽땅 '생명과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주제에 말이다.
  
  언제 내가 저희들과 똑같은 극좌였던가? 내가 언제 조직에 들어간 적이 있던가? 내가 언제 정통 마르크스를 주장하거나 설파한 적이 있었던가?
  
  진보는 극좌가 아니다.
  
  더욱이 나 같은 몽양계 중도 진보는 극좌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스물세 살 때 이미 몽양 여운형 계로 사상 편성을 마쳤다. 저희들이 허상을 만든 것이다. 감옥 안에 앉아서도 저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나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 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 심지어 어떤 선배란 자는 술에 취해서 왈,
  
  '지하는 감옥에서 죽어 버렸어야 해!'
  
  이젠 웃음조차도 안 난다.
  
  수십 년 세월을 그랬다.
  
  나는 그들의 본질을 지난 5년 노 정권 당시에 똑똑히 알았다.
  
  더 이상 쓸 만한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조리 사기꾼이다. 한마디 말없이 다 보았다. 날치고 설치고 까불어 대는 자들의 속치마 속바지며 고쟁이 (요즘에도 그런 거 있나? 있다) 팬티 속까지 다 보아 버렸다. 털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 어느 날은 대구 갔다 와, 차 속에서 자신만만한 운동권 출신 고급 관료 둘이 대구에 좋은 골프장이 있어 골프 치러 갔다 온다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술로 홍조 띤 두 상판을 본 일도 있다. 그날은 공휴일도,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니었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아예 읽은 일도 없고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자들이 정권을 틀어쥐고 앉아 왔다 갔다 나라 경제를 몽땅 망쳤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엠비 정권을 만든 것은 다른 이 아닌 바로 그들이다. 잘 하는 짓이지! 한 스님은 왈.
  
  '엉터리 좌파 5년에 왼쪽으로 기우뚱, 깡통 우파 5년에 오른 쪽으로 기우뚱. 그 다음엔 발딱 일어나 자연히 원만한 중도가 오겠지요, 뭘!' 하하하하하.
  
  국민은 이렇게 말한다. 아는가?
  
  그러니 그들 까쇠들에 관해 이리 말하는 게 당연하고 또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허허허허허.
  
  그래, 계속하자.
  
  어떤 친구가 날더러 '레닌을 엉터리 혁명가라고 몰아세우고 신경제 정책이 예쌔닌을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마구 말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럽네.'
  
  '대개벽이 오고 있어! 이산화탄소 하나에만 초점을 집중하려는 나팔은 비겁이야! 무관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만 아니고 더 근본적 변동이란 거야! 난 이제까지 그 공부했었었어!
  
  그런데 자네 말 고쳐!
  
  <몰아세우고>니 <마구 말하면> 따위는 나에게 적용 안 돼. '학생 때 자네보다 훨씬 더 그쪽 많이 공부한 게 나야! 레닌 자신이나 관련 사적 열권 정도는 영어로 독파했으니 몰아 세웠다 할 수 없고 사회혁명당 당수 마프노의 비극까지도 잘 알고 있으니 그 절친한 친구 예쎄닌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인과 같은 것 다 꿰뚫었어. 레닌이 신경제 정책으로 농민 착취하고 농촌 박살내자 농업사회주의자 마프노가 쿠데타 음모하다가 실패, 외국으로 망명한 과정 다 아는데 마구 말한다고 말할 수 없지. 자네가 도리어 마구 말하고 있어.
  
  '자네 왜 요즘 그렇게 날카로운가?'
  
  '허허허. 개벽의 때가 가깝다고 했잖나!'
  
  '혁명 말이야?'
  
  '혁명이 아니야! 후천개벽이야! 나 앞으로 더 날카워질런지도 몰라! 그러나 이것!'
  
  '뭐 말이야?'
  
  '좌파들이 저희만 공격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형편없는 오만이고 염치없는 자만심이야! 5년 동안 그 엉터리 짓하고 자빠지고 난 뒤 지금도 그 따위 맘뽀 안 고친다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 가만히 눈 감고 반성할 생각 안하고 마르크스-촛불이 다 뭐야? 딱지 덜 떨어진 인사들!'
  
  '걱정돼! 걱정돼!'
  
  '앞으로 한두 마디 외엔 그 애들 칠 시간도 없어! 미국과 북한이 머지 않아 대사관 교환할 판에 뭐가 어째?'
  
  '요즘 좌파는 신좌파야!'
  
  '뉴레프트가 어제 오늘 얘기야? 뉴라이트하고 똑같애! 장충동 가봐! 주물럭! 그 옆에 원조 주물럭! 그 옆에 원조원조 주물럭! 저 변두리 길가에 가 봐! 막걸리! 그 옆에 진짜 막걸리! 그 옆에 순진짜 막걸리! 그 옆에 순진짜 왕대포 막걸리! 그거 모두 한꺼번에 망하더라고!
  
  소용없어.
  
  한 놈 망하면 연쇄적으로 다 망하는 게 개량주의의 역사야! 그딴 것 갖고는 개벽세상 오는 거 못 당해! 정신 차려 이 사람아! 가까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 지 알아듣지도 못해? 아니 후천개벽 얘기할 때?'
  
  혁명이라니?
  
  아마도 오늘 이후엔 '좌파'니 '좌빠' 따위 더 입짓할 틈 없다. 새 공부하기 바쁘고 새 소식 전하기 바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좌빠'에 대해 한 네 가지 쯤은 원론적으로 정리해 두는 게 젊은 촛불들의 공부에 도움 되겠다.
  
  첫째, 유물론은 더 이상 철학 구실 못한다. 인도 철학자 사르카르(아난무르타)는 유물론처럼 오류투성이 과학은 더 없다고 개탄한다. 왜냐면 과학으로서의 유물론의 그 과학적 실증성의 근거는 감각인데, 감각처럼 잘못 판단하기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게 시각(視覺)인데, 시각조차도 '잘못 보기 쉽고', '꺼떡하면 둘로 셋으로 착시(錯視)하고!', '빛, 공기, 기온, 그늘, 속도에 따라 똑같은 것이 전혀 달리 보이고?', '망막에 이상이 있거나 망막 뒤의 내면에 탈이 생기면 금방 눈의 지각력에 변동이 오고', '병이 들거나 초비상 사태에는 눈이 넷이 된다고 말하는 정도로 해괴한 환각이 흔해 빠지는 것'이 바로 눈이라는 것이다. 다른 감각은 여기에 비교도 안 된다. 이런 감각으로부터 오는 데이터를 전적으로 신뢰해서 거기에 실증의 토대를 두는 과학이 과연 엄밀한 과학인가?
  
  또한 맑시즘은 그 출생 때부터 과학을 앞세워서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과학이면 과학일수록 실험실 운명을 못 벗어난다. 실험실이 무엇인가? 끊임없는 실험의 지속성 자체다. 어제 진리였던 것도 오늘 아침 다른 발견을 하면 오늘 저녁엔 이미 진리가 아니다. 덧없는 것이다. 항구적 과학이란 이 세상에 없다. 있다면 그것은 과학의 미신뿐이다. 맑시즘은 이제 이미 과학이 아니다. 그것을 과학으로 신봉하는 것은 곧 미신일 뿐이다.
  
  그것을 과학으로 신봉하는 것은 곧 미신일 뿐이다. 로제-슈페리가 '아래로부터의 기제(mechanism from under)'는 '위로부터의 기제(mechamism from upper)' 없이는 기제 그 자체로서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한때 우리나라 운동권에서 갈증에 물 한 모금처럼 떠받들던 '루이 알튀세르'가 정신병을 거치면서 무엇이라 말했나?
  
  '착각도 사실이다.'
  
  그는 결국 '유명론적 유물론(唯名論的 唯物論)'이라는 새로운 과학 명제에로 돌아가고 만다. 유명론이야말로 '위로부터의 기제의 고전 형태'다.
  
  둘째, 변증법은 더 이상 정확한 논리가 아니다. 생명 생성과 진화에 있어서도 변증법은 <외삽법(外揷法)>에 불과하다. 역시 좌빠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는 일찍감치 헤겔과 마르크스의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을 정면 비판하며 '정반(正反)'의 부정(否定)의 변증법을 대안으로 제출한다. 요컨대 '합(合)'이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목표인 세계사의 정상으로서의 게르만 민족국가 성립도 마르크스의 혁명 열사의 목표인 '독일이념(Deutsch Ideologie)'의 실현태로서의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것도 모두 다 '유토피아' 즉 '없는 곳'이니 말짱 허구요 망상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역사에서 증명된다. 조선 공산국의 역사상 최고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진 박일(朴一)은 북한에 가지 않고 알마티에서 내내 살다 죽었는데 죽기 전 대만 강연에서 다음의 말을 남겼다.
  
  '인류철학사에서 아직까지도 변증법을 넘어 설 논리는 나오지 않았다.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역철학(易哲學)이다. 그러나 역은 현대화되어야만 변증법을 넘어서는 논리로 될 수가 있다.'
  
  덴마크의 저 유명한 양자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태극 해석이 있다.
  
  '모든 반대되는 것은 상호 보완적이다.'
  
  영남의 수승한 동양학자 조동일(趙東一) 교수는 '상극(相剋)은 상생(相生)이고 상생은 상극이다'란 명제를 앞세워 북경대학 초청강연에서
  
  '모택동의 모순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상생과 상극의 태극을 앞세운 것은 맞았으나 상극 즉 모순의 투쟁성은 항구적이요 상생, 즉 모순의 통일성은 잠정적이라는 규정은 틀렸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동학의 생성 논리 진화 철학은 '아니다-그렇다(不然其然)'이다. 드러난 차원의 '이것과 저것' 사이의 '아니다-그렇다', 그리고 숨은 차원이 드러난 차원으로 열렸을 때 그 새 차원과 옛 차원의 생성 관계 역시 '아니다-그렇다'인 것이다.
  
  변증법과 같은 삼진법이 아니라 생성적 이진법이다.
  
  이것은 수운 최제우 이후 100년이 지나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요 정신과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정신과 자연'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한국 전통의 경락학(經絡學)에서는 이것이 그대로 생명 과학의 핵심 명제로 드러난다. 경락에는 표층과 심층이 있어 상호 생성한다.
  
  표층의 '생극(生剋·相生相剋)'과 심층의 새로운 생극 관계가 표층으로 올라와 상호 연계되는 '복승(複勝)' 사이의 교차 생성의 원리가 또한 그것이다.
  
  불교의 중관론(中觀論) 유식학(有識學) 참선법(參禪法)에 토대를 둔 것으로 알려진 뇌과학(Cybernetics)과 그 실현인 컴퓨터의 '노-예스(no-yes), 예스-노(yes-no)' 또는 '온-오프(on-off), 오프-온(off-on)'이 또한 그것이다.
  
  그래서 다니엘 벨은 가라사대
  
  '컴퓨터에는 변증법이 없다'고 한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킹 시대에도 변증법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논리가 인간 행동을 전면적으로 자극할 수 있을 것인가? 유물론과 변증법이 사멸한 인간의 영적 생명 활동에서 과연 맑시즘은 무슨 불꽃을 참으로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마르크스는 우선 자본주의가 고도의 생산력으로 전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에 긍정을 표하고 나서 그 위대한 변혁의 주동적인 생산을 직접 담당한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도리어 자기 주도권을 되찾아 진정한 주인이 되는 항구적인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회 신부인 이브 깔베는 이에 맞서 그의 '마르크스에 대한 빵쎄'에서 '프롤레타리아 일회성(一回性)' 이론을 제기한다.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세계 혁명의 주체로서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것은 그가 노동 노예인 시점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듯이 산업 프롤레타리아는 세계 변혁의 실질적 주체임에도 로마 시대와 똑같은 한낱 자식 생산자에 불과한 소외된 삶을 사는 지옥에 있음으로서 혁명 주체로서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함께 가졌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그 불행한 소외 상태의 노동 노예인 한 그의 혁명 주체로서의 도덕성, 정당성이 유지되지만, 탈권하여 권력을 장악하거나 노조 합법화로 높은 임금을 보장 받을 때는 권력이나 화폐에 의해 바로 그 도덕성, 정당성은 쉽게 부패해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외 상태에서만 일회적인 것이 바로 그 혁명열이고, 결코 그것은 항구적인 정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경우,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선진사회 도처에서 흔히 보아 왔던 실례다. 우리 사회의 경우 북한의 세습 독재, 남한의 붉은 띠 두른 노조원들이 훨씬 다수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 고통, 소외를 완전히 외면하거나 정신적으로 단절되는 사태가 그것이다. 혁명, 세계 혁명과는 아득히 먼 상태로서 전태일 분신이나 동일방직 사건 때와 그 세계 변혁적 정열의 주도권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안다.
  
  결국, 마르크스 이론은 한 때의 덧없는 민중 정열의 한편 서정시였다는 결론이 된다. 노동자는 보드카 중독으로 소비에트와는 담을 쌓고 노조원은 고임금으로 부르주아 흉내 내느라 동료들에 대한 연대감으로부터 멀다. 차라리 조직, 정규 노동자 집단보다 훨씬 고수가 많고 훨씬 고통과 질곡이 심한 소외된 비정규직에서 도리어 기대할 변혁, 대 개벽의 영적 전환의 가능성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역시 잠정적이지만.
  
  넷째, 현대는 19세기 거대 공장의 시대, 그 뒤 테일러, 포트, 도요타 시스템의 시대도 아니다. 생산은 시스템도 문화도 자본주의 경영 구조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현대는 그야말로 환경, 생태, 생명의 시대다. 이런 시대 나름의 핵심적인 마르크스관(觀)이 필요하다.
  
  테드, 밴튼은 생태 맑시스트다.
  
  생태주의자답게 마르크스를 자기 나름으로 해부한다. '마르크스 사상의 기초는 그의 노동관에 있다. 그런데 그의 노동관의 바탕에는 농업 노동이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 그의 노동관은 19세기 유럽의 거대 공장의 공업 노동뿐이다. 자르고 토막 내고 붙이고 꿰매고 윤내고 기름칠하는, 그것도 여럿이 연관 작업으로 이어지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토대를 둔 교육, 선전, 조직, 행동, 혁명과 탈권 및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경영, 전쟁과 자연에의 대응, 이 모든 것이 반(反) 생명적일 수밖에 없고 대상에 대한 존중이 아닌, 경멸에 입각한다. (이 부분은 나의 부연 설명이다.)
  
  농업 노동은 이와 다르다.
  
  씨 뿌릴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정성스레 곡물의 자연스런 생명 생성의 결을 모시고 따라가며 그 움직임을 존중하면서 벌레도 잡아주고 솎아주고 거름도 주어 영양을 보충하고 꼭 애기 기르듯 해서 그 열매를 따면 종자부터 챙기고 그 나머지를 먹고 또 그 나머지를 이웃과 나누고 그 나머지를 시장에 내다 판다. 공업 노동과는 사뭇 다르다. 만약 농업 노동에 토대해서 인간 생명, 자연 생태에 대응했다면 세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 후반 부분 역시 나의 부연이다. 바로 이 부연은 나의 희망사항이니 생태주의자임에도, 그의 노동관을 비판함에도 역시 그를 큰 틀에서 인정하는 테드 벤튼에게서 오늘 나의 글을 읽는 좌빠 독자들이 무언가 배울 것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말을 막 한다느니 함부로 한다고 익살 부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광장의 촛불은 거의 꺼졌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마르크스-촛불'이 거리에 켜졌었다. 그것은 상당수가 들뢰즈주의자들이었다. 이른바 '신좌파'들이다.
  
  그들은 촛불을 이용하고 있다. 저희들과 별 관련 없음에도 들뢰즈가 68년 5월 혁명에 크게 공감했던 사태를 흉내낸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는 촛불에 관한 나의 첫 인터넷신문 기고문 '줄탁을 생각한다'에 대한 들뢰즈주의자의 논평을 들었는데 거의 완전히 견강부회에다 아전인수였다. 그들은 누구일까?
  
  나는 들뢰즈에서 많은 참고를 발견한다. 특히 가타리와의 공저인 '카오스모시스'에서는 여러 가지 좋은 영감도 얻었다. 그러나 역시 허황하다. 들뢰즈 자신이라기보다 서구 사상계의 현실이 부딪힌 태생적 한계 같다.
  
  오늘은 비판하는 자리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으면 말하자. 어디 몇 가지 지적을 해보자. 이른바 3축-2축의 카오스 문화론이다.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검증과 예술적 관조가 상호 연속적으로 결합하되 철학에는 비 철학이, 과학에는 비 과학이, 예술에는 비예술이 상호 부정적으로 상승한다.'
  
  동학의 '육임제(六任制)' 원리와 조금은 비슷하다. 육임제는 다음과 같다.
  
  '사상, 교육 분야에서는 큰 책임자인 교장(敎長)-가르치는 전문가인 교수(敎授), 정치 실천 분야에서는 총괄 지휘자인 도집(都執)-부분 조직자인 집강(執綱), 문화 비판 분야에서는 구상 기획자인 대정(大正)-정보 수집과 실무 주체인 중정(中正)의 3축과 2축이다.'
  
  동학은 후천(後天)의 지극한 기운(氣運) 즉, '혼돈한 근원의 질서(渾元之一氣)'를 받아들이면서 또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생명 사상이다. 따라서 그것을 실천하는 큰 방향인 '포접(抱接)-유불선 세 가르침을 이미 제 안에 품고 뭇생명을 사귀어 이를 모두 감화, 조화, 해방시킴(包含三敎 接化群生)'의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략인 점에서 들뢰즈와의 비교는 유효하다고 본다. 더욱이 그 '3축-2축'이 동북아 한반도 전통 사상인 '천지인'과 '음양'의 상호 결합이란 점에서 유럽 후기 구조주의와의 우주관 비교는 유익하다.
  
  '혼돈에 빠져 들어가면서 혼돈에서 빠져나오는 혼돈 그 자체의 질서'라는 명제 또한 유효하다.
  
  또 유효한 것이 있다.
  
  현대 사회의 민중관이다.
  
  '카오스 민중, 대중적 민중, 잡계급 복합적 민중, 두뇌민중' 관점 또한 그렇다.
  
  그러나 영성적 생명관이 전혀 없고, 혁명보다 더 근원적인 전 문명사 대전환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몸에 관한 강조가 엄청나게 많음에도 몸에 대한 서구 해부학적 상식 이외에 몸 안에서 일어나는 그 무슨 영적 생명 생성원리는 지혜가 하나나 있는가?
  
  경락(經絡)이나 기혈(氣穴), 단전(丹田), 우주와의 관련 등이 나타나는 음양 삼관(三關) 등의 나아가고 들어옴, 오르고 내림, 육십팔괘의 각종 연관의 오묘한 우주적, 영적, 정신적, 신체적 복합 생성의 이치에 대한 언필칭 몸의 철학자 들뢰즈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의 철학은 크게 달라졌고 범박한 좌파 냄새를 훌쩍 벗고 큰 개벽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개벽은 우주에서 일어나지만 그보다 먼저 똑같은 물질인 우리의 몸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노마돌로기는 너무 일방적이다.
  
  어째서 유목 이동성만 강조되고 농업 정착성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내내 다른 면모에서 더블(double)이나 듀얼리티(duality) 등이 강조되는 데 비해 문명의 비전이 노마돌로기 하나로 한정되는 것은 쟈끄 아딸리 등을 통해 나타나는 유럽 근대 이후의 세계 침략과 정복주의 중독현상의 연장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유목은 물론 침략이 아니다. 자기 부정이요 극복이요 필요한 고독이며 우주에의 역동적 개방이자 자기 변혁이다. 마찬가지로 농경적 정착은 안정이요 균형이며 긍정이고 수렴이요 요청적인 호혜(互惠)이자 제 안의 세계를 향한 조용한 내관(內觀)이겠다. 양자는 모두 다 필요하고 함께 있어야 하며 따라서 그 이중 복합 문명이 당연히 요구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도시 유목은 유럽이 감당하고 쌀 생산이나 밀 생산 따위 식량과 생태계 보존과 세계의 균형은 제3세계가 감당한다는 따위 딱지 덜 떨어진 신자유주의 세계 시장주의자의 분업 논리 같은 건 아닌지?
  
  아무래도 들뢰즈 사상 역시 그 저류에 유럽이 곧 세계 자체라는 무의식적인 우월감이 이 뿌리 깊은 듯하다. 이것은 큰 장애다. 도처에 그런 유형의 아이디어들이 도깨비불처럼 번득거린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 유혹이다.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깊이 섭수(攝受)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유럽밖에 없다. 스피노자나 니체나 푸코, 프루스트에까지도 일관된 심지어 스토이시즘 접근에서도 감추지 못하는 유럽 외눈박이 인식 틀은 아마도 태생적 병증일 터이다.
  
  내가 유럽을 아는 만큼도 그는 동양을 모르지 않는가! 감출 수 없는 약점이다. 이 20세기에 불교를 전혀 새카맣게 모르다니!
  
  또 있다.
  
  치명적 약점이다.
  
  그의 5월 혁명관 역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위에 앉아있는 기성 지식인의 눈초리를 아무래도 버리지 못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신좌파 혁명에 이용해먹으려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다는 혐의를 결정적으로 지울 수 있는 신선한 기념비적 타격이 없다. 그 유명한 철학적 타격의 명인이 말이다.
  
  '어린이 되기'가 무엇인가?
  
  '여자 되기'가 무엇인가?
  
  '타자화'가 어린이, 여성을 이미 애 안에 안고 있는 주체의 대문명 개벽이라는 전제없이는 위선적 젠더 개량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타자.
  
  그 기초 경험을 통해 타자, 어린이와 여성 안에 있는 산 우주를 우선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여성성, 혼돈성이 여덟이고 남성성, 균형성과 질서가 넷인 혼돈적 질서 자체에 의한 전 인류 문명사의 근본적 대전환의 기능성을 그저 상상력만으로 과도 포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이미 68년 파리의 거리에서 그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거리의 흰 벽 위에 갈겨쓴 바로 그 낙서,
  
  '상상력이 정권을 잡아라!'
  
  한마디에서 등골이 오싹하도록 뚜렷이 봤어야 참으로 들뢰즈 아니겠는가!
  
  제 안의 음양을 보는 상상력 없이 타자되기 제스처만으로 신좌파 정권이 탄생할 수 있는가? 소수자 핍박의 문명이 실질적으로 전환하는가? 제스처로는 어림없다.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떼'를 불 지른 고등학생들이다.
  
  무엇을 생각했는가?
  
  신좌파가 그 빈 자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개량 따위로 해결될 문명사인가? 수상하지 않은가?
  
  68혁명과 들뢰즈까지 포함한 포스트모던 모험 일체에 실망한 유럽이 다 엎어버린 지 오랜 헤겔, 칸트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
  
  자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유럽 우파의 왕따를 자살이 아닌 바로 위와 같은 근원적 성찰로 맞대면 했어야 했다.
  
  그의 자살은 그의 최대의 파산이다.
  
  독일 철학자 빗또리오 훼슬러의 관념론 회귀를 단순한 비겁이라고 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들뢰즈가 대답을 못 준 데 대한 한 서툰 대답일 뿐이다. 신좌파 혁명 따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역시 개벽으로 나갔어야 했다. 혼돈 등에 대한 그의 재능이 그렇게 생각하게 한다.
  
  후기 촛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2008년 9월 5일 경이다.
  
  이제는 촛불, '마르크스 촛불'마저도 꺼졌다고들 말한다. 크게 잘못되었다. 일찌감치 국면 전환을 했어야 했다. 너무 질질 끌었다.
  
  그 시기. 너무 질질 끈다는 논평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에 관해 말을 나누는 중 한 후배가 들뢰즈 대신 네그리 얘기를 꺼냈다. 거리에 네그리의 이름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첫 느낌은 이렇다.
  
  '참으로 자본주의적이다.'
  
  끊임없이 스타를 바꾸고 끊임없이 스타일을 바꾸면서 세상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그것도 전술인가?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다.'
  
  신장개업하는 가게 앞 길가에서 숏 팬티 입은 미녀 둘이 야살스런 몸짓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그것이 바로 주목경제다.
  
  네그리 자신이 주목경제요 속도 생산이다.
  
  끊임없이 새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절벽의 허무를 느끼는가?
  
  1950년 카톨릭 좌파 행동 이탈.
  
  1954년 이탈리아 통일사회당 입당.
  
  1959년 '붉은 노트' 참가.
  
  1963년 '노동 계급'지 참가. '노동자우의(operaismo)'의 시작. '자율주의(antomia)' 운동의 시작.
  
  1967년 '노동자의 힘' 참가.
  
  그는 노동자를 지도하는 차원에서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봉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하는 차원으로, 종합과 총체성이라는 공산당의 집체주의에서의 분리와 탈구조화를 통해 노동자의 자기 가치화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1977년 당의 전위성과 수직적 역할을 부정하고 대중의 독특성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자율주의 운동의 지지를 얻는다.
  
  내용보다 그 형식에 네그리적 변신의 교훈이 있다.
  
  1979년 체포, 기소, 무장봉기 혐의.
  
  1984년 궐석재판에서 30년 징역형.
  
  1986년 4년 반 추가형.
  
  1983년 이탈리아 총선 출마. 급진당 당선. 그해 7월 석방.
  
  그해 9월 19일 프랑스로 도피. 이후 14년간의 망명 생활.
  
  1990년 '전 미래' 지에 참가.
  
  1990년 '다중' 결성 참가.
  
  1997년 이탈리아 귀국. 다시 감옥에 수감.
  
  1999년 자택연금으로 전환.
  
  2003년 연금 해제.
  
  그의 생애는 너무나 시끄럽다. 자본주의 속도 경제, 상품 경제의 장바닥과 흡사하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가 전위, 수직성, 통제력 따위를 거부하고 개체성, 독자성, 네트워크, 자율성 등의 현대적 삶의 원리에 귀의한 점에서 배울 것이 있다. 그리고 끝없이 추격과 혐의, 투옥, 도피, 망명 등의 고통을 통해 그가 '야만적 별종'이나 '제국', '네그리가 네그리에 대해' 또는 '미래로 돌아가다'와 같은 메시지를 발표하는 창의력을 잃지 않는 점에서 끝내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한 사람의 구도자요 어쩌면 고통과 어둠, 그 짙은 그늘로부터 기어 나오는 희미한 하나의 빛줄기로 보아 새 시대의 변형된 한 성자(聖者)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의 한마디.
  
  '나는 감옥에서 저술한 나의 정치적 저작들을 다시 대지 위에 서서 시작할 것이다.
  
  이탈리아로 돌아감과 함께 나는 1970년대의 반테러 입법을 통해 감옥에 수감되거나 망명객으로 떠돌며 주변화 되어버린 세대가 다시 공적이고 민주적인 삶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줄 것이다'에서 깨닫게 된다.
  
  그는 '혁명'에서 불태울 정열이 아니라는 것. 그의 정열을 불태울 화덕은 '개벽'뿐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지향을 현 단계에서 오히려 정치 혁명이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평화적 문화 혁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또 깨닫게 된다.
  
  그의 생애를 설명하고 그의 사상을 인식하게 하는 한 구절의 시를 들라면 그것은 수운 최제우 선생의 다음의 것밖에 없다는 것을.
  
  '쪼각쪼각 흩날리고 흩날림이여.
  붉은 꽃잎들의 그 붉음이로다.'
  (片片飛飛兮 紅花之紅耶)
  
  마르크스 이후 몰락 일변도의 서구 사회주의는 결국 그의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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