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EU가 대통령을 뽑는다고?
[기고] 리스본 조약 비준에 관한 한국언론의 오해
2010년 EU가 대통령을 뽑는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2일 아일랜드에서는 리스본조약 비준을 위한 제2차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이튿날인 3일 발표된 최종 투표 결과에 따르면 찬성 67.13%, 반대 32.87%로 아일랜드 국민 대다수가 리스본조약에 찬성했다. 이 결과는 국민의 53.4%가 반대하여 부결시킨 작년 6월의 제1차 국민투표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5일자 주요 일간지들은 앞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모 일간지는 1면에서 "유럽 내년 정치통합 ㆍㆍㆍ EU대통령 뽑는다"는 제목 아래 아래와 같은 내용, 즉 '유럽연합(EU)이 거대한 정치적 통합체로 거듭난다', '... 경제통합으로 첫 발을 뗀 지 52년만에 EU는 정치ㆍ경제 통합체로 발전하게 됐다', 'EU는 리스본조약에 따라 회원국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선출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마치 EU가 '하나의 국가'인 듯한 오해를 하게 된다. 더욱이 그 국가를 이끌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외무관계를 총괄하는 '외무장관'까지 뽑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EU는 '하나의 국가'에 준하는 정치공동체인가? 또한 EU는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뽑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반쪽의 진실'이다.

첫째, 위 기사의 제목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내년 EU는 정치통합, 즉 일종의 '연방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지역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자유무역지대(FTA)]-[관세동맹]-[공동시장]-[경제통합]-[정치통합]의 단계의 거쳐 발전한다. EU의 경우, 2002년 단일통화인 '유로(Euro)'를 채택함으로써 사실상 '경제통합'을 달성했다. 일부 국가들과 FTA협정을 체결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EU의 지역통합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문제는 리스본조약이 발효하게 되면 과연 EU가 정치통합을 이룰 수 있느냐 여부이다. 답은 '아니오'이다. 정치통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EU 차원의 법규범의 통일, 즉 일종의 '연방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EU도 이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3년 10월 EU 회원국의 정상들은 '유럽헌법조약(European Constitutional Treaty)'(일명 '유럽헌법')에 서명하고, 비준 절차를 진행했으나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비준이 부결됨으로써 유럽헌법은 폐기되고 말았다.

그 명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럽헌법은 EU 차원의 '헌법전'을 제정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유럽헌법과 달리 리스본조약은 '헌법적 성질을 가지는 어떠한 조항도 둘 수 없다'는 대전제 위에서 제정되었다. 그 결과, 리스본조약은 기존의 기본조약을 폐지하거나 새로운 법제도를 창설할 수 없고, '유럽연합조약과 유럽공동체설립조약을 개정하는' 조약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리스본조약이 발효한다고 할지라도 'EU의 정치통합'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

둘째, 내년 리스본조약이 발효하게 되면, EU는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뽑는 것일까? 위에서 말한 근거에 비추어 보면 대답은 '아니오'이다. 리스본조약에 의해 개정된 EU조약 제15조 5항은 "유럽이사회는 2년 6개월 임기의 의장을 가중다수결로 선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용어는 영문의 'president'인데, 이를 단순히 '대통령'이라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이는 '의장'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EU는 정치통합체가 아니므로 국가도 아니다. 국가도 아닌 EU가 대통령을 둘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오역은 '외무장관'이란 표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리스본조약은 '외무장관'을 둘 수 없다. 왜? 외무장관은 헌법기관이므로 리스본조약 제정 작업의 대전제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스본조약은 유럽헌법이 도입하려던 외무장관 대신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자'(소위 'EU 고위대표자')를 두게 된다.

이와 같은 오역은 EU의 법제도와 그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다. 언론인의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특히 비중 있는 중앙일간지의 잘못된 기사 내용으로 인하여 독자들은 EU의 실체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된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이며, 또 어떻게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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