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불법 살인만행"…가자 구호선 참사에 전세계 분노
공해상서 민간인 10여명 살해…반기문 총장 "즉각 설명하라"
2010.06.01 01:48:00
"이스라엘 불법 살인만행"…가자 구호선 참사에 전세계 분노
이스라엘군 특공대가 31일 새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 구호선에 들이닥쳐 평화운동가 10여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법상 항해의 자유가 보장된 공해상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된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전세계가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다. 유엔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됐고 대다수 희생자들의 출신국인 터키가 강력 반발하는 등 이스라엘이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됐다.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파탄을 예고하고 있고, 중동 주요 국가들에서 반 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면서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구호선에 올라 총을 겨누고 있다. ⓒ자유가자운동 캡쳐

곤봉 구타에 사격까지…해적 소탕 작전 방불

참사는 이날 오전 5시(현지시간) 무렵 일어났다. 이스라엘 해병 특공대는 당시 지중해를 항해하고 있던 국제 구호선단 6척의 가자지구 입항을 저지하기 위해 선박에 들이닥쳐 승선자들을 닥치는 대로 구타 살해했다. 배에 오르지 않은 특공대들이 총을 쏘는 장면도 포착됐다.

영국, 아일랜드, 터키, 그리스 등에서 온 평화운동가 700여 명은 전날 키프로스에서 건축자재와 의약품, 교육용 기자재 등 1만 톤 분량의 구호품이 실린 선박 6척을 타고 가자지구로 출발했다.

이스라엘은 2007년 6월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자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펴 가자 주민들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선박을 해상에서 차단한 뒤 복귀 지시를 거부하면 이스라엘 항구로 나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배가 항해하는 해역은 가자지구로부터 130㎞ 가량 떨어진 공해상으로 이스라엘이 항해를 저지할 국제법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해병 특공대들은 '자유 함대'로 이름 붙여진 배에 올라탄 뒤 만행을 저질렀다. 터키 출신의 평화운동가들이 주로 탄 선박에서 촬영되어 인터넷에 게재된 영상에는 검은색 군복 차림의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승선자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평화운동 단체인 '프리 가자 운동'은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어둠 속에서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헬리콥터에서 선박으로 내려오자마자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사태로 인해 구호선 승선자 10명 이상이 사망하고 15∼30명이 부상했으며, 특공대원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사망자가 최대 19명이라고 보도하고 있고, <AP> 통신은 9명이라고 전하는 등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구호선 운항에 관여한 터키의 한 자선단체는 15명이 숨졌고, 사망자 대부분이 터키인이라고 주장했다.

▲ 31일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중해 해상에 있는 군함에 접근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유럽 주요국들,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 소환 항희

사고가 알려지자 터키 외무부는 즉각 성명을 발표해 "무고한 민간인들을 공격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인명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드러냈다"고 강력 비난했다.

터키 외무부는 또 "공해상에서 국제법을 심각히 위반한 이번 행위는 양국 관계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현지 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학살이라고 간주하고, 이를 비난한다"면서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하마스는 아랍인들과 무슬림을 향해 전세계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아랍연맹은 6월 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22개 회원국 비상회의를 소집해 이번 이스라엘군의 발포 사건에 대한 공동 대응 조치를 논의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은 비단 중동 국가들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평가회의 참석차 우간다를 방문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스라엘에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긴급회의를 소집한다고 유엔의 외교관이 <AFP> 통신에 밝혔다.

아울러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등 서방 국가들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으며, 유럽연합(EU)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이스라엘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한편 27개 EU 회원국 대사급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평화적인 선단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낳은 비극적 결과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이러한 무력 사용은 정당화할 수 없는 것으로 이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 터키인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며 시위하는 장면 ⓒ로이터=뉴시스

미·영, 이스라엘 비난 안 해…이스라엘 '정당방위' 발뺌

그러나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고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 머물러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다.

빌 버튼 미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우리는 현재 이번 참극을 둘러싼 정황을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도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인명 사살의 비극을 개탄한다면서도 "이번 비극에 대한 최선의 대응 조치는 국제사회가 가자지구 위기에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만 내놨다.

헤이그 장관은 "이스라엘 정부에 구호 물자가 가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봉쇄를 풀 것을 요구하며 우리는 팔레스타인 인권 및 경제 상황 악화에 크게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사건이 나자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터키로의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자국민에게 당부했다. 캐나다를 방문중이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일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승선자들이 칼과, 곤봉, 심지어 실탄으로 특공대를 공격해 대응 사격을 했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이스라엘 병사들이 탑승자들을 평화적으로 해산하려고 했으나 운동가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해서 자위 차원에서 발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국제 구호선 출항 당시의 모습

그러나 나바네템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UNHCHR)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어떤 것도 공해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이번 작전의 끔찍한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팔레이 대표는 "균형을 잃은 무력 사용으로 인해 3년 이상 봉쇄된 채 생활하고 있는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결과는 명백하게 비난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 "(가자지구) 봉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을 악화시키는 많은 문제들의 중심에 놓여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지속적으로 국제법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며 "만약 봉쇄가 해제됐다면 구호물품 수송선 같은 것은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처드 포크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인권 특별보고관은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정책 결정자들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국제적인 보이콧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크 특별보고관은 "명령을 내린 정치지도자들을 포함해서 불법적인 살인행위에 책임 있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잘못된 행동에 형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스라엘은 항해의 자유가 있는 공해상에서 비무장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한 충격적인 행동을 저지른 죄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해군은 이 선박들을 이스라엘 남부의 아쉬도드 항으로 압송해 선내에 무기류가 있는지를 조사한 뒤 구호품을 가자지구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작년 6월에도 의약품을 싣고 가자지구 항구로 향하던 미국의 '프리 가자 운동` 소속 구호선을 지중해에서 저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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