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응원단' 붉은악마, 퇴장 밖에는 답이 없다
[정희준의 '어퍼컷'] '순수한 축제'를 위해 내버려 두라고?
'스폰서 응원단' 붉은악마, 퇴장 밖에는 답이 없다
1995년 PC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축구팬들이 결성한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은 2년 뒤 '붉은악마'로 개칭하면서 한국축구의 '12번째 선수'로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을 주도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국가적 열광의 당당한 한 축이었던 이들은 그러나 2010월드컵을 맞이한 지금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거리응원의 성지인 서울광장에서의 응원을 포기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코엑스 옆 봉은사 앞에서 응원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붉은악마 측에 따르면 서울광장에서의 응원을 놓고 서울광장 응원의 주관사인 현대자동차와 후원사인 SKT와 만났는데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 기업이 붉은악마 측에 다른 기업이 연상될 수 있는 응원가를 부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붉은악마 회장은 서울광장 응원에 나선 대기업들의 홍보전이 너무 노골적이고 이 때문에 "순수한 축제여야 할 응원이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어" 서울광장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월드컵 응원 행사에서 이들 재벌기업들의 과열된 마케팅 전략에 붉은악마가 이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붉은악마 서울지부장도 "평소 축구발전에는 관심도 없다가 광고효과를 노리고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있어 화가 난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울광장을 "기업에 빼앗긴 꼴이 돼 너무나 씁쓸하다"고도 했다. 언론 보도도 기업체 간 마케팅 경쟁이 붉은악마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4년 전을 기억하는 나는 이러한 붉은악마의 태도가 헷갈리기만 한다.

▲ 붉은악마는 이번에도 현대자동차, 홈플러스 등의 후원을 받고 있다. ⓒ붉은악마 홈페이지
붉은악마의 원죄: 스폰서를 사랑했네

붉은악마는 과연 순수했는가. 붉은악마 자신은 대기업과의 인연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4년 전 붉은악마는 대기업 마케팅의 선봉에 선 바 있다. 서울광장을 차지한 기업 관계자도 그러지 않았는가. "붉은악마를 후원하는 업체를 상징하는 응원이 나오지 않도록 조건을 건 것"이라고.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의 처지는 결국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4년 전 월드컵을 앞두고 붉은악마는 KTF로부터 3억8000만원, 현대자동차로부터 (현물 포함) 3억8000만원, 네이버로부터 1억원의 후원금을 받은 바 있다. 여기에 셔츠와 응원도구 판매로 벌어들인 수입 1억여원까지 합해 거의 10억원을 거둬들였다. 도대체 무슨 돈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가.

붉은악마의 응원, 그리고 붉은악마의 조직 관리는 거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사무실 운영에만 1년에 1억원 이상 필요하다. 카드섹션, 휴지폭탄에 경기 당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관중석을 뒤덮는 대형 태극기도 수백만원이다. 펼치다 찢어지면 또 사야 한다. 이런 물품의 관리와 운송에도 만만찮은 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스스로의 응원에 매료되어 그들의 응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한마디로 스펙터클이다. 붉은악마는 이제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조직도 너무 비대해졌다. 2006년 당시 붉은악마는 회원수가 무려 30만이 넘는 거대조직이 되었다. 그런데 회비는 없다. (동네 고등학생들 축구동아리도 5000원, 만원의 회비를 걷는다.) 회비도 걷지 않는데 그런 거대한 응원전을 펼치니 붉은악마는 커질수록 큰 돈이 필요하게 됐다.

4년 전 너무 돈벌이에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붉은악마는 '신선언'을 내걸며 앞으로 기업 후원은 최소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붉은악마는 이번에도 현대기아자동차, KT, 홈플러스와 손을 꼭 잡고 그들의 마케팅을 열심히 돕고 있다.

사업 때문에 돈 필요하고 돈 필요해 사업 벌이고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붉은악마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종횡무진 벌이는 수많은 사업들이다. 이들은 4년 전 논란이 일자 자신들이 거둬들인 수익금 중 일부를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축구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고 했다. 그게 6억원이다.

일면 좋은 사업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붉은악마가 무엇인가. 축구대표팀 서포터즈 아니던가. 선수육성사업은 왜 벌이는가. 엄청난 후원금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라면 자신의 존재감 내지는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 한마디로 '오버'하는 거다.

또 붉은악마는 왜 월드컵 때마다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어 거창한 선포식을 하고 음반 만들도 뮤직비디오도 찍고 그러는가. 왜 월드컵 때마다 새로운 티셔츠를 만드는가. 이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가. 이런 사업을 벌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 아닌가. 또 돈 더 벌기 위해 돈 쓰는 것 아닌가. TV를 보니 가수 싸이도 냄새나는 4년 전 티셔츠를 꺼내 털어서 입던데 왜 붉은악마는 계속 새것을 만들어 파는가. 응원 말고 뭔 사업이 이렇게 많은가.

2002월드컵부터 붉은악마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간단하게 말해 '스폰서와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배신과 싸움의 역사이기도 했다. 지금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 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 응원의 주체로 SKT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붉은악마측이 "평소 축구발전에는 관심도 없다가 광고효과를 노리고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있어 화가 난다"고 했는데 이는 SKT를 지목한 발언이다.

4년 전 붉은악마는 KTF와 손을 잡으면서 KTF와는 통신업계 라이벌인 SKT와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때 붉은악마는 월드컵에 맞춰 새로운 응원가를 내놓았는데 SKT가 윤도현을 통해 또 다른 응원가 '락버전 애국가'를 내놓자 때 아닌 '원조 응원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족발집, 떡볶이집 수준의 원조경쟁이었는데 그때 붉은악마는 SKT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SKT 입장에선 통신업계 라이벌인 KT의 후원을 받는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하는 게 지극히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 하나. 그런 붉은악마가 2002년에 손잡았던 후원기업은 어디였는가. 세상에. 바로 SKT였다.

▲ 붉은악마의 태극기 응원 장면 ⓒ뉴시스

'스폰서 응원단' 붉은악마, 이제 퇴장하시라

자신들을 내버려두라고, 자신들의 순수함만은 물들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면서 붉은악마는 왜 자본과는 그토록 굳게 손을 잡는가.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러 개의 손을. 십시일반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소박하게, 열심히 응원을 하면 될 일을 왜 대기업의 후원에 의지하려 하는가. 왜 응원과는 상관도 없는 사업을 벌여 스스로 돈이 필요하게끔 만드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 이처럼 거대한 응원단이 있는가. 어느 응원단이 이처럼 거대한 응원만 골라 하고 돈도 거대하게 쓰는가. 응원이 거대하면 그 나라 축구가 발전하는가. 붉은악마는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했는가 대기업 마케팅 발전에 기여했는가. 붉은악마는 축구발전에 신이 난 게 아니라 사업 확장에 신이 난 듯하다. 축구를 활용해 돈벌이 한 건 기업들도 있지만 붉은악마 자신도 빼놓아선 안 된다.

붉은악마는 코엑스 인근에서 응원전을 벌이기로 했단다.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은 기업 마케팅의 도구가 될까봐 코엑스 쪽으로 간다고 했는데 이것도 참 나를 황당하게 한다. 거기도 축구마케팅에 혈안이 된 현대자동차가 주관하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SKT는 안 되고 현대자동차는 괜찮다는 말인가. (하긴, 이번에도 현대차는 붉은악마 후원기업이다) 그리고 그곳은 SBS가 함께 주관하는 응원공간이다. SBS도 기업 아닌가. 붉은악마는 편식도 심하다.

특히 SBS는 이번 월드컵 단독중계 하느라 중계권료와 제작비로 1000억원을 투자하는 바람에 본전을 건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스폰서를 구하러 다니고 있다. 그러니까 코엑스 쪽도 대기업들의 마케팅을 위한 스폰서쉽으로 뒤범벅이 된 공간이다. 기업의 마케팅 도구가 되기 싫다면서 서울광장은 안 되고 코엑스는 괜찮다는 자신들의 행태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강남은 강북보다 덜 상업적인가. 나는 붉은악마만 보면 도대체 헷갈려서 정신이 다 사나워진다.

상업주의에 완전히 물들어버려 대기업 마케팅의 선봉에 선 붉은악마. 그것도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기업과는 포옹하고 다른 기업은 비난하는 붉은악마. 한국축구를 완전히 국가대표 A매치 일변도로 만들어버려 K리그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게 한 일등공신 붉은악마. 축구를 매개로 국가주의를 조장하는 집단 붉은악마. 응원동작도 한 팔이냐 두 팔이냐를 빼고는 나치식 경례와 똑같은 붉은악마. 결론은 퇴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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