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특별 정상회의도 '형식적 성과'에 그쳐
[분석] 실효성과 실천가능성에 의문…유럽 은행들은 패닉
2012.01.31 11:55:00
EU 특별 정상회의도 '형식적 성과'에 그쳐
30일(현지시각) 열린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서 신(新)재정협약 최종안이 합의되고, 유로존을 위한 항구적 구제금융기금을 예정보다 1년 앞당겨 출범시키기로 하는 등 몇 가지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형식적인 성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는 유로존 위기에 대한 실효성 있는 단기 대책에 대한 합의는 없고, 장기적으로 유로존 위기의 원인이 된 국가부채를 앞으로 억제하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 30일 EU 특별 정상회의는 알겔라 메르켈(가운데) 독일 총리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의 대책과는 거리가 먼 승리라는 지적이다. ⓒAP=연합
"EU 수도' 마비 사태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

이날 정상회의 개최지의 분위기부터 유로존의 앞날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벨기에의 수도이자 'EU의 수도'로 불리는 브뤼셀을 비롯한 벨기에 전역은 이날 긴축을 위주로 한 대책을 내놓은 정상회의에 대한 불만과 항의 표시로 노동계의 총파업이 단행됐고, 독일로 가는 국제선 열차를 비롯해 공공 교통이 멈춰섰다.

회의를 앞두고 유럽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물론 벨기에 등 유로존 6개국에 대해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했다. 지난 13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결코 S&P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님을 보여준 조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벨기에는 공공 부채가 많고 금융 부문이 국제적으로 노출돼 있어 유로존 위기에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된 신재정협약도 EU 조약 수준이 아니라, 2개국이 빠진 정부간 협약 수준을 극복하지 못했다. EU 주요 회원국으로 신재정협약을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해온 영국뿐 아니라 체코도 협약 가입을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신재정협약, 시행이나 제대로 될까

이에 따라 3월 초 EU 정례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될 신재정협약의 실효성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협약의 취지는 회원국들의 재정을 보다 엄격한 규제하고, 위반 국가에 대한 제재 규정을 강화해 부채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협정을 위반했다고 제재를 받는 수준이 강할수록 주권의 문제와 관계돼 있어, 정부간 결정이 아니라 의회 비준이 요구되는 등 향후 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체코가 협약에서 빠지겠다는 이유도 의회 비준에 대한 부담이었다. 독일과 함께 유로존 위기 극복의 파트너인 프랑스조차 4월 대선 전에는 신재정협약에 대한 의회 승인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뿐 아니라, 사르코지의 재선을 위협하는 사회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는 자신이 집권하면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신재정협약,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 불법화하는 것"

또한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이 협악은 궁극적으로 부채가 많은 유로존 국가들에게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0.5%로 끌어내릴 것을 겨냥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이 협약은 국가부채 비율을 60% 이내로 하기 위해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하도록 규제하는 것이지만, 부채가 많은 국가들에게는 일종의 징벌적 긴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헤라클레스나 해낼 불가능한 수준의 목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신재정협약에 대해 '케인스주의적인 경기부양책을 불법화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항구적 구제금융 기관으로 출범할 유로안정화기구(ESM)도 7월 출범시키기로 합의됐지만, 정작 '돈 문제'는 다시 논의하기로 한 점에서 보듯 유로존 위기를 잠재울 대책으로 의문시되고 있다.

구제금융 영구화하자, 돈은 누가?

ESM의 기금 규모는 5000억 유로(약742조원)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부채위기로 돈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것도 부족하다는 입장인 반면, 돈을 가장 많이 내야할 독일 등 재정 여력이 있는 회원국들은 ESM의 출범을 1년 앞당기는 대신 기존의 한시적 구제금융기금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와 합쳐서 5000억 유로로 하자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유로존 위기의 뇌관으로 불리는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은 좀처럼 타결되지 못해 이날 유럽과 뉴욕 증시의 하락세를 부추겼다. 또한 '제2의 그리스'로 꼽히는 포르투갈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이날 17%를 넘었다.

유럽은행, 위기자금 대규모 요청 채비

유럽 은행들의 상황은 더욱 다급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의 특혜성 대출을 지난달보다 두 배 이상인 1조 유로 규모로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문은 "지난달만 해도 비상 대출을 은행의 어려운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 될까봐 꺼려했던 은행들이 ECB가 무제한 채권을 매입해주는 오는 2월 29일에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은 "시장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는 2월 유럽 은행들이 1조 유로에 달하는 대출 신청을 한다면, ECB의 대출 지원은 시장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총 3조 유로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루비니, 또다시 '퍼펙트 스톰' 경고

EU 정상회의 전날 폐막된 '다보스 포럼'은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한 비관론으로 뒤덮였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내년에 유로존에 최악의 상황,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있고, 미국 재정 문제가 악화되고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이 있다며 "위기의 여파가 향후 10년간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현재의 EU 금융 시스템으로는 유로존이라는 단일통화 체제를 성공적으로 지탱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사태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그리스 지원을 둘러싼 막판 협상이 늦어도 이번 주 내에는 타결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지만, 문제는 어떤 형태로 타결되든 그리스가 사실상의 디폴트를 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리스 구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면서 독일은 더 이상의 지원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루비니 교수는 "그리스는 1년 이내에 유로존을 탈퇴하고 포르투갈의 탈퇴 가능성이 있다"면서 "3~5년 내에 유로존이 깨질 가능성이 50%"라고 말했다.

특히 루비니 교수는 "유럽에서 급진적인 개혁이 실행되고 미국도 자국의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세계 경제는 지속적으로 흔들릴 것이고 지구촌 인구의 대부분은 생활 수준 악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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