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고백 "널 죽인 건 내가 아니었을까"
[내 혼은 꽃비 되어·④] 자살한 성 소수자를 향한 크리스천의 사죄
기독교인의 고백 "널 죽인 건 내가 아니었을까"
2003년 4월, 청소년 성 소수자 육우당이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레시안>은 육우당 10주기를 맞아, 청소년 성 소수자와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보수 기독교계와 차별금지법을 다룬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청소년 성 소수자 육우당이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아픔과 슬픔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 내의 기독교 동아리인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이하 한기연)에도 마찬가지고, 당시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나에게도 그렇다.

동아리 신입생 모집과 이라크 전쟁 반대 금식 기도회로 바쁘던 2003년 봄 어느 날, 한기연은 성 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상의 유해 사이트 목록에서 동성애 관련 사이트를 삭제하라고 권고한 데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를 위시한 보수 기독교계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다'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동인련은 한기연에 관련 성명서를 써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연락을 받았던 한기연 간사는 당시 동인련의 요청이 사실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동성애는 정말 너무나도 죄악시되고 금기시되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의 음주 문제나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릴지언정 기독교 내부에서 논의라도 되어왔지만, 동성애는 그 이전까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게다가 한기연은 이라크 전쟁 반대 금식 김도회를 진행하고,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등 조직을 정비하고 성장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우리에게 다가온 동성애 문제는 조금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즉 '우리가 이것까지 건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사안이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답변을 미루던 중에, 동성애자 청소년 육우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우리가 우리의 존망 및 활동과 관련된 부담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그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불에 덴 듯 부끄러웠다.

육우당 10주기 '내 혼은 꽃비 되어'
① "가식적인 기독교에 깨달음을" ... 어느 10대의 죽음
② 남편 사랑 못 받은 어머니, 동성애자 아들 만든다?
③ 10대 성 소수자들 "홍석천처럼 세상에 나가고 싶다"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히 성경에 쓰여 있는데…"

한기연은 육우당의 죽음을 계기로 성 소수자 사안과 관련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동성애에 대한 내부 논의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게 됐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성애 이슈를 다루는 데 주저했다. 육우당의 죽음이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동성애는 죄인데…. 죄라고 분명히 성경에 쓰여 있는데', '아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했고, '동아리 선배들이 인간적인 감정과 반발심에 치우쳐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방향성을 잃고 너무 앞서나가려고만 한다'라고도 생각했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그래서 나는 한기연이 기획한 한기총 항의 방문에 단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한기연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절대 빠지지 않은 열혈 회원이었는데도 말이다. 반발했던 회원은 나뿐이 아니었다. 동성애 관련 활동으로 한기연을 아예 떠난 회원도 여러 명 있었다. 한 대학의 대표를 맡고 있던 선배도 숱한 논의와 회의, 1박 2일의 엠티 끝에 '한기연에서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동아리를 떠났다.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참 아픈 일이었다. 어제까지 같이 웃으며 활동하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일. 생살이 찢기는 것과도 같은, 많은 상처와 분열을 남기는 아픔이었다. 당시 나는 '대체 동성애가 뭐기에 우리 동아리가 이렇게까지 갈라져야 하나. 우리 안의 한 사람보다 동성애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 화가 났다. 활동을 잘하고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온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함께해 줄 목회자는 어디에?

이 같은 내부적인 혼란 속에서, 한기연은 한기총을 대상으로 항의 방문과 집회를 진행했다. 우리 같은 작은 기독교 단체가 거대한 한기총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었다.

2003년 한기총 관계자와 한 면담에서 '이 기회에 교계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것은 '동성애자이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폭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뜻을 함께해 줄 단체와 목회자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함께하겠다고 나서는 목회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수많은 사안에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던 목회자들도, 유독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는 거부했다. 한기연에도 '동성애만은 건드리지 마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 조직이 절반으로 갈리고 사람들이 떠나는 등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일을 벌이는데, 단 한 명의 목회자도 힘을 실어주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우리는 이것이 한국 기독교로 인해 우리의 성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립감과 무력감은 역으로 더 많은 힘을 만들었다. 육우당이 죽은 이듬해인 2004년 6월, 한기연은 여러 신학자와 함께 '강요된 침묵. 기독교 안의 동성애, 입을 떼다'라는 이름의 강연회를 열었다. '무조건 크게, 무조건 유명하게' 행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을 죄인 취급하면서 어떠한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숨죽이고 아파도 크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동성애에 대해 쉬쉬하고, 언급도 하지 않으려는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강연회에 무려 500명 넘게 참석했다. 기독교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고, 동성애는 성서적으로도 죄가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는 데 많은 사람이 관심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립과 소외도 싶어졌다. 강연회를 빌미로 한기연은 속해 있던 모든 대학의 기독교 연합으로부터 소리 소문 없이 제명됐다. 그때부터는 관련 행사를 진행할 장소를 학교에서 대여하기조차 쉽지 않았고, 어떤 학교에서는 동문이 교목실을 통해 '동성애 행사를 하지 못하게 하라'는 압박을 넣기도 했다.

"미안해…너를 죽인 건 아마 내가 아니었을까"

한기연은 한 발씩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줄곧 소극적이었던 내 태도가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4년 4월 육우당 1주기 추모제였다.

1주기 추모제 때 느꼈던 슬픈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1년 전 있었던 한 동성애자의 죽음이 '동성애가 신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일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죽은 일'이라는 것, 나의 신앙관과 그 어떤 논쟁 이전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아프게 전해졌다.

추모제 자리에서도 많이 울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그날 썼던 일기를 찾아보니 "미안해. 너를 죽인 건 아마 내가 아니었을까"라고 쓰여 있다. 나는 정말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신념이 진심이었기에 그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너무나 괴로웠던 것 같다.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판단한 누군가와 어떤 단체들이 한 사람을 괴롭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너무나 미안하고 괴롭다.

ⓒ연합뉴스
미안한 마음은 나로 하여금 강연회를 매우 열심히 준비하게 했다. 그런데 강연회를 홍보하기 위해 캠퍼스에 포스터를 붙이면 몇 시간 안에 모두 떼어져 있었고 동아리방 문에는 우리가 없는 사이에 협박조의 낙서를 하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야말로 동성애에 대해 입을 '떼는' 것조차 힘들었다. 차라리 우리 입장에 반대하면 반대한다고 말을 하지. 아예 이런 단체와 이런 논의를 존재조차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사람들이 참 너무한다'라는 허탈감과 잔인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한기연은 지금까지도 성 소수자 운동에 꾸준히 연대해오고 있다. 매년 6월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하거나, 대학 내 성 소수자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등 성 소수자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을 적극 드러내고 있다.

2007년에는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까지 꾸렸던 교계에 대항해 한기총 앞에서 기도회를 열기도 할 만큼 동성애자들에 대한 문제는 어느덧 우리가 적극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차별금지법 입법을 민주통합당이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년 전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학가의 작은 기독교 동아리에 불과한 우리는 왜 이렇게 상처와 아픔, 고립을 겪어가면서까지 성 소수자 운동에 연대하고자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냥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신앙관과 가치관이 달라서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풍파를 겪고 있지만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고 우리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부끄러운 마음. 육우당에 대한 미안함들. 그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해주시던 상황이었다. 더 우리를 비우라는, 값싼 우리의 신앙을 내세우지 말라는, 진정한 사랑의 아픔을 바라보라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육우당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그 일을 피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됐던,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던 감사의 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기연은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단순하게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고, 진보의 길을 가자고만 생각했지만,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목회자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을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만으로는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일에는 선을 긋는다. 그것이 생명과 죽음의 일이라도 말이다. 우리의 십자가를 피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그리고 10년 전 아프게 세상을 떠났던 참 귀엽고 장난기 어리게 보였던 고 육우당, 죽어서조차 실명 거론이 망설여지는,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 육우당을 지금도 떠올려본다. 이제는 그가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식하기를, 그리고 더 이상은 그런 아픔이 이 세상에 없기를, 남과 북, 여성과 남성, 자본가와 노동자,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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