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세, EU 11개국 도입 합의
'유럽판 IMF' 유로안정화 기구도 '빈손으로' 공식 출범
2012.10.10 16:14:00
금융거래세, EU 11개국 도입 합의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해온 유럽연합(EU) 차원의 금융거래세 도입 방안에 일단 유럽연합(EU) 11개국이 합의했다. 9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이들 나라들은 주식, 채권,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금융거래세를 부과한다는 원칙을 수용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금융거래세 도입은 영국의 강력한 반대로 번번히 좌절을 겪었고, 이번에도 EU 조약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최소 9개국의 동의도 얻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막판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슬로바키아 3개국이 금융거래세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오른쪽)이 9일 EU재무장관회의에서 금융거래세 도입을 반대하는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과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EU조약 개정 추진할 '최소 9개국' 간신히 채워

이에 따라 금융거래세 도입에 합의한 국가는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벨기에, 에스토니아, 그리스,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등 앞서 찬성한 8개국과 함께 11개국으로 늘었다.

당초 EU 집행위원회는 주식과 채권 거래에는 0.1%, 파생상품 거래에는 0.01%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이번 회의에서도 세율과 세입의 활용 방안 등 세부적인 내용은 향후 논의를 통해서 구체화하기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금융거래세 도입을 주도한 것은 유로존 위기와 관련이 있다. 이들 나라는 유로존 지원에 가장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경제대국이다. 두 나라는 그동안 유로존 위기가 반복되지 않고, 위기가 발생하면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연합 차원에서 그동안 재정규제를 강화하는 신재정협약과 항구적인 구제금융기구를 출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재원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기 수단으로 금융거래세 도입이 추진됐다.

"우리만 금융거래세 도입하면 오히려 세수 감소" 반발도

프랑스는 EU 차원의 금융거래세 도입이 영국의 반대로 진척을 보지 못하자, 이미 지난 8월부터 독자적으로 금융거래세를 도입했다. 프랑스에 본사가 있고 시가총액이 10억 유로 이상인 기업의 주식을 살 때 0.2%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유럽국가들은 여전히 금융거래세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금융거래의 세계적인 중심지인 영국과, 유로존 위기에서 벗어나있는 EU 국가들은 굳이 새로운 세금으로 금융거를 위축시킬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이 가장 반대하고 있고, 스웨덴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유로존 회원국 중에서도 핀란드와 네덜란드, 아일랜드가 반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이미 주식 거래에 0.5%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파생상품까지 금융거래세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금융거래세는 세계화된 금융거래의 특성상 모든 나라에서 실시돼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에 찬성한 나라들의 거래소 측은 "자금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고, 거래가 위축돼 오히려 전체적인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울상을 짓고 있다.

'유럽판 IMF', 빈손으로 출범

국제통화기금(IMF)처럼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상설기구로 '유럽판 IMF'로 불리는 유로안정화기구(ESM)도 이번 회의에서 공식 출범했다. ESM은 임시 구제금융기구로 기능해온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당분간 병행 운영되며, 내년 7월부터는 역내 금융위기 확산을 막는 유일한 구제금융기구가 된다.

ESM의 이사회에는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한다. ESM 이사장을 맡은 장 클로드 융커 유럽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첫 이사회에서 "ESM 출범은 유로존의 미래를 결정할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ESM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과 지급보증 등으로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등 기존 구제금융 대상국들에 구제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히며, 최근 전면 구제금융설이 나오는 스페인도 신규 지원대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ESM이 불안한 출발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재원부터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5000억 유로(약 721조 원)의 자본금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800억 유로는 2014년까지 유로존 회원국이 경제규모에 따라 현금으로 분납하고, 4200억 유로는 회원국 정부들이 지급보증 형태로 제공한다. 따라서 당장 쓸 수 있는 재원은 EFSF의 2000억 유로에 불과하다. 4400억 유로 규모의 EFSF는 그동안 그리스 등의 유로존 재정위기국들의 구제금융으로 소진됐다.

ESM의 예정된 재원이 확보돼도 부족하다는 우려도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로존 4위 경제대국 스페인과 '제2의 스페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3위 경제대국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경우 1조 5000억~2조 유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은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정치적'으로 합의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ESM이 구제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조건도 정해야 하지만, 아직 세부 내용을 둘러싼 회원국 간 견해차도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유로존 위기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실은행들을 ESM이 채권을 매입해주는 등 직접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독일과 네덜란드 등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ESM에 대해 최고 신용등급 'AAA'를 부여하면서도 '회원국의 취약한 정치적 합의'를 이유로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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