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이 동네북인가?
[기고] 김기원 교수의 왜곡을 고발한다
장하준이 동네북인가?
영 쓰고 싶지 않은 글이 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바로 그렇다. 솔직히 이런 류의 글은 자중지란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자칫 사방에서 "누구 좋으라고 그런 글을 쓰느냐"는 비난이나 덮어쓰기 딱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장하준 교수가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 논리를 현실에 꿰어 맞추는" 데다가 "사실을 왜곡하는", 다시 말해 학자로서 기본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형편없는 인물이 될 판이다.

발단은 이렇다. <창비 주간 논평>이라는 곳에서 방송통신대학교 김기원 교수의 "장하준 논리의 비판적 해부"라는 글을 실었다. 그 글에서 김기원 교수는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가지>)에 내재된 문제점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사실의 왜곡이요, 둘째는 재벌 문제의 오해와 극단적 주주 배척론이요, 셋째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개혁 과제마저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중 둘째 및 셋째 문제는 여기에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김 교수 개인의 의견이자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니 말이다.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왜곡이 문제다

하지만 첫 번째로 지적한 '사실의 왜곡'에 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는 학자로서 기본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난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결론이 도출된 근거가 김기원 교수 본인이 장 교수의 책에 인용된 통계를 잘못 읽은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당초 김기원 교수가 <창비 주간 논평>에서 <23가지>를 비판한 해당 문장을 확인하도록 하자. 단, 밑줄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필자가 임의로 추가한 것임을 밝혀 둔다.

"첫째로, 사실의 왜곡이다. 그는 책(107, 160~62면)에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연평균 1인당 소득성장률이 1960~70년대에는 1.6%로 나쁘지 않았는데 1980년대 이후론 IMF 등의 요구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1980~2009년엔 0.2%로 나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통계를 찬찬히 뜯어보면, 이 지역은 1973~74년의 석유 파동과 그에 따른 세계 불황의 여파로 80년대가 아니라 이미 1975년부터 해당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다. 1975~79년엔 -0.4%였다.

1980~2009년 사이의 모습도 똑같은 게 아니라 1990년대 후반부터 사정이 나아져 1995~2009년의 해당 성장률은 2.3%였다. 이전의 이른바 '자유 시장 노선'이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도 말이다.

사실 그의 다른 책 <사다리 걷어차기>(241면)를 보면 이 지역의 1960년대 해당 성장률이 1.7%이고 1970년대는 0.2%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인용했던 통계와도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왜 이리 허술할까. 그건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 논리를 현실에 덮어씌우기 때문인 듯싶다. 시장만능주의를 만병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모든 환자에게 다 적용하는 꼴이다."


하지만 정작 허술한 것은 김기원 교수 자신이다. 김기원 교수가 지적한 장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241면에 게재된 '표 3.2 개발도상국들의 연간 1인당 국민총생산(GNP) 성장률(1960-1980년)'에서는 아래에서 보듯이 사하라 이남의 국가들을 두 부류로 나눠져 있다. 바로 저소득 국가들과 중소득 국가들이다.

ⓒ부키

김기원 교수는 이 중 (파랗게 표시된)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만을 인용하면서 장하준 교수가 '이전에 인용했던 통계와도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빨갛게 표시된) 사하라 이남 중소득 국가들의 1960년대 성장률 2.3%, 1970년대 성장률 1.6%를 도외시한 것이다. 이 둘을 합치면, 즉 저소득 국가와 중소득 국가의 통계를 합치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국가들의 1960~70년대 연평균 1인당 소득성장률은 보면 장하준 교수가 <23가지>(107, 160~62면)에서 '올바로' 썼듯이 1.6%이다.

요약하자면 장하준 교수는 <23가지>에서 사하라 이남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나온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그런데 김기원 교수는 그 중 저소득국 그룹만의 통계 수치를 토대로 장하준을 반박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가?

장하준은 아무나 되는 대로 두들겨도 되는 동네북인가?

처음에는 이 문제를 가능하면 조용히 끝내고자 창비 측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원고에서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기원 교수는 "통계 문제는 본인의 논지와는 상관없는 사안"이며, 단지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아래와 같이 밑줄 친 부분만 추가하겠다고 알려 왔다.

"사실 그의 다른 책 <사다리 걷어차기>(241면)를 보면 이 지역 저소득국 그룹의 1960년대 해당 성장률이 1.7%이고 1970년대는 0.2%로서 이미 70년대부터 성장률이 나빠졌다. 중소득국 그룹의 경우도 70년대 들어 나빠진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인용했던 통계와도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장하준 교수의 학자로서 기본 자질을 비난한 표현들인 "사실의 왜곡", "왜 이리 허술할까"와 같은 문장들은 손도 대지 않은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통계적 사실을 올바로 인용했고, 오히려 김기원 교수 본인이 잘못 읽고 그렇게 허술하게 결론을 내린 데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받은 이후에도 말이다.

김기원 교수는 또 "(장하준 교수) 자신이 이전에 인용했던 통계와도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라는 문구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왜 이리 허술할까" 하는 인격적 비난의 표현도 그대로 <창비 주간 논평>에 실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런 식의 원고 수정은 옳지 않다는 항의에 대해 김기원 교수는 오히려 "또 오독하고 있다", "장 교수가 자료를 변조할 정도로 비양심적인 학자라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가진 적 없고, 그렇게 읽는 것은 과다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장하준 교수가 통계적) 자료를 허술하게 본다"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응하면서, "이런 종류의 논쟁은 더 이상 하면 감정싸움만 되기 마련"이니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이런 종류의 논쟁) 대신 장 교수가 (김기원 교수 자신의 글에 대해) 제대로 된 반론을 쓰는 게 어떨까"라고 권유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장하준 교수가 동네북인가?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되든 안 되든 비난과 비판을 늘어놓으면 장 교수는 그런 말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간의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기 위해 서로 간에 오간 메일을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로 보기)

왜 그간 장하준 비판에 답하지 않았는가?

김기원 교수는 일관되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들의 가난과 저성장은 자유 시장 노선의 도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의 성장률이 1975년도부터 하락한 것에 대해 "73~74년의 석유 파동과 그에 따른 세계 불황의 여파"에 원인이 있다고 밝혀 놓았다. 이들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본격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니, 이들 나라의 성장률 정체가 자유 시장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장하준 비판이다.

이어 김기원 교수는 "자유 시장 노선이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 1995년 이후부터의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의 성장률은 2.3%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와 관련 김기원 교수는 1990년대를 전후해 앙골라, 적도 기니 등 여러 나라들이 유전 개발로 산유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사실, 불변 달러화 기준으로 볼 때 국제 원자재 가격은 1980년대에 5.2% 하락한 데 이어 1990년대에도 0.4% 떨어졌으나, 2000년대엔 7.5%나 상승한 사실, 특히 아프리카의 주요 수출 항목인 광물(Minerals, ores and metals, 원유 포함) 부문을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엔 각각 1.1%, 2.1% 하락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12.2%나 상승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관련 자료)

설령 김기원 교수의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문제는 남는다. 이들 나라의 1980~2009년의 3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0.2%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1980~95년 기간에는 이들 나라가 심각한 마이너스 경제 성장 상태였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이 이들 국가에서의 심각한 저성장과 무관하다는 주장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혹시 김기원 교수는, 자유 시장 경제 노선을 이들 나라가 굳건히 믿고 따른 결과 초기의 15년간은 마이너스 성장은 겪었을지 몰라도 1995년부터는 2.3%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구현하게 되었으니 세계은행과 IMF 등이 이들 나라에 요구한 자유 시장 노선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게다가 중소득국 그룹의 성장률은 1960년대가 2.3%이고, 1970년대가 1.6%이다. 반면 저소득국의 성장률은 1960년대가 1.7%이고 1970년대가 0.2%이다. 중소득국의 경우 1970년대의 성장률이 1960년대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저소득국의 경우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기원 교수는 중소득국 그룹의 경우도 저소득국 그룹과 사정이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부키
<23가지> 출간 이후 해당 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책 외의 다른 곳에서 장하준 교수가 한 이야기들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들이 많이 나왔다. 진지하고 건설적인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을 왜곡하거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글들도 많았다. 장하준 교수가 이러한 글에 대해 어떤 기회에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하는가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 출판사가 굳이 나서서 반박을 하는 것은, 김기원 교수의 글이 다른 글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기원 교수는 장하준 교수를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는, 더구나 자기 책에 사용한 통계마저 일관성 없이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엉터리 학자로, 한마디로 학자로서 기본 소양이 의심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정작 통계를 잘못 읽은 것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한 학자의 저서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말하는 수준을 넘어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그 때문에 굳이 이 자리를 빌려 김기원 교수의 장하준 비판의 오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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