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행 급행열차 FTA! 생존 티켓을 끊으려면…
[대안은 있다]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지옥행 급행열차 FTA! 생존 티켓을 끊으려면…
2년 전 시작된 무상 급식 논쟁에서 본격적으로 불붙어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의 복지 국가 운동에 획을 긋는 저작이 탄생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이 저술한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세상 펴냄)이다. 비그포르스(1881~1977년)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집권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재무장관으로 17년간 재직하면서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의 정치경제학적 기초를 다져낸 인물이다.

이 책은 흔한 번역서가 아니라 홍기빈이 직접 저술한 책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스웨덴, 게다가 7~80년 전에 활동한 한 사람의 사상적 궤적을 좇아가는 저작을 한국인 저자가 집필하는 경우 대부분은 내용이 부실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지적 풍토와 저술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간 번역된 외국 서적보다도 더욱 내용이 풍부하고 충실하다. 먼저 홍기빈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1930년대 이래 스웨덴에서 전개된 정치경제학 논쟁과 그 배경을 파악해냈다. 단지 영어와 독일어로 쓰인 저작만이 아니라 수많은 스웨덴어 저작까지 인용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이를 위해 그는 스웨덴어도 익히는 등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언어만이 아니다. 이 책은 1930~40년대에 스웨덴 복지 국가의 구축 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논쟁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홍기빈은 마르크스와 바쿠닌, 크로체와 그람시 그리고 빅셀과 케인스, 베블런에서 하이에크에 이르는 다양한 지식인들의 정치사상과 경제 사상이 비그포르스 개인과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사고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러한 사상적 요소를 종합하는 과정에서 비그포르스와 그 동료들이 어떻게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의 정치경제 사상을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갔는지를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홍기빈이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단 한 순간도 이 책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홍기빈 자신이 지난 20년간 집요하게 파고든 '진보적 정치경제학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성과다.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회민주당

▲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그렇다면 왜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복지 국가 운동은 비그포르스에 주목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비그포르스가 80년 전 직면했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매우 비슷했으며, 그리하여 그가 제시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해법 역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매우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먼저 2008년 시작되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글로벌 대불황은 점점 더 1930년대의 대공황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위기를 어떻게 볼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이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가를 놓고 벌어지는 논의 지형 역시 1930년대와 너무나 비슷하다.

그 당시에 '자유 시장의 자동적 균형 조정'을 믿은 (신)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세력은 긴축 재정과 복지 축소 그리고 추가적 규제 완화만이 살 길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재정 위기를 계기로 "시장 논리 강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는 신자유주의 우파의 목소리가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을 지배하는 오늘날의 현실과 꼭 닮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적극적으로 맞설 만한 대항적 정치경제학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전 세계 진보 세력의 사상적, 정책적 무능력이다. 대표적으로 오늘날 그리스와 스페인의 집권 사회민주당은 신자유주의 성향의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복지 국가 해체 및 민주주의 해체에 앞장서는 마름 노릇을 하고 있다.

"담대한 희망"을 외쳤던 미국 오바마의 민주당은 어떤가? 역시 월가와 공화당에 굴복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왜 이럴까? 왜냐하면 유럽의 대다수 사회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 역시 정치경제학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홍기빈에 따르면, 진보 정당들이 무능하기는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역사상 최초로 집권했던 영국 노동당의 맥도널드·스노우든 내각 역시 '자유 시장의 자동적 균형 조정'을 굳게 신뢰하면서 대대적으로 긴축 재정 및 복지 해체에 앞장서다가 실각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독일의 사회민주당이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을 이끌던 재무장관 루돌프 힐퍼딩 역시 맥도날드·스노우든과 마찬가지 주장을 하다가 나치당에 정권을 잃었고, 나중에는 나치에게 처형당한다.

홍기빈이 잘 묘사하듯이, 80년 전 맥도널드와 힐퍼딩의 정치경제학적 사고방식과 집권 이후 경제 정책은 오늘날 '제3의 길'을 외치는 영국 신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의 그것과 대단히 유사했다(제2장). 그리고 이것은 진보 개혁 세력의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혁과 개혁주의 : 유토피아의 상실

1990년대 초반 이래, 한국의 진보 운동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과거의 '거대 담론' 집착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한 작은 개혁적 과제'에 집중하자는 여러 운동들이다. 한국의 시민 단체들이 이끌어온 이들 운동은 지난 20년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서구의 진보 운동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논의를 전개한 것이 다름 아닌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었다.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당장의 생활상의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개혁 과제에는 무관심했던 무능력한 마르크스주의 좌파를 비판했다. 그리고 "궁극적 목표 따위는 없으며 끊임없는 운동이 전부"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칼 포퍼 역시 베른슈타인과 동일한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했었다(제2부).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큰 그림과 큰 비전 없이, 즉 커다란 이상(理想)과 꿈이 없이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실현 가능해 보이는 당면의 개혁 과제에만 집중할 경우, 사회 개혁이 '파편화'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개혁 운동이 서로 각개 약진하여 진행될 경우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일들이 나타난다(제7장).

이러한 일은 실제로 (선진국의 진보 운동과 마찬가지로) 한국 진보 운동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예컨대 한국의 진보 세력은 한편에서는 주주 권리 운동을 지지하고 한국은행 독립성을 옹호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개혁 진보파 경제학자의 상당수는 물가 인상(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므로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 역시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과 포퍼 그리고 기존 시민 운동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신)자유주의의 압도적인 사상적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10년 뒤, 20년 뒤에 달성하고자 하는 국가 비전의 제시 없이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당장의 생활상의 개선에 몰두하는 '생활 정치'를 부르짖는 것은 한국의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기초한 총체적인 사회적 미래상, 즉 잠정적 유토피아가 중요하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공허함 : 현실과의 연결 고리 상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한국에는–서구에서도 마찬가지지만-과거의 반자본주의 및 사회주의 담론을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그것을 계속하자는 운동이 존재한다.

이들은 여전히 '생산 수단의 사회화 또는 국유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생산 수단의 소유권이 자본가의 손에 있는 한, 그 어떤 개혁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은행과 재벌 기업의 국유화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복지 국가 운동 역시 '자유주의에 포섭된 개량주의적 기획'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종종 엥겔스의 표현에 기대어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야 말로 공상적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홍기빈이 주장하는 바이다. 포퍼와 베른슈타인, 시민 운동과 민주당 등이 '지금, 여기' 현실의 개혁에만 매몰되어 유토피아를 잊어 버렸다면, 이들은 현실과는 거의 무관한 유토피아에 대한 계몽에만 진력한다. 따라서 이들 역시 고통스런 대중의 현실적 삶의 개혁에 관해서는 무능하기 그지없다.

홍기빈은 비그포르스를 빌려 유토피아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현실과의 연관이 없는 '공상적 유토피아'이다.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비슷한 수준의 공상적 유토피아주의로 전락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또 하나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현실을 개혁해 나가는 미래 비전으로서의 '잠정적 유토피아'이다. 예컨대 1920년대 스웨덴의 현실에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그 20~30년 뒤에 실제로 달성하는데 성공한 복지 국가는 잠정적 작업 가설, 잠정적 유토피아에 불과했다.

비그포르스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런 문제들을 포착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는 몇 십 년, 몇 백 년 후에나 찾아올 유토피아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낙원이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다."

1919년 비그포르스는 '예테보리 강령'을 시작으로 산업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 정책, 그리고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역사상 최초로 창조해낸 선별적 경제 정책과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결합을 통해 달성할 잠정적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이런 기획이 잠정적인 작업 가설인 까닭은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는 중간의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징검다리가 없다면 강을 건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반자본주의 좌파들은 징검다리 없이도 강을 건너겠다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돌다리도 두드려 가며 건넌다"는 속담을 염두에 두면, 징검다리는 더욱 신중하게 두드려 가며 확인하고 검증하며 건너가야 한다. 신중한 조사와 연구와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이유이다. 말로만 과학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단 하나의 통계 숫자도 제시하지 못하는 철학적 좌파의 무능함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손문상)

케인스 복지 국가를 뛰어넘다

흔히 복지 국가를 말할 때 '케인스 복지국가'라고 말한다. 특히 전 세계 좌파는 "이제는 1970년대에 파산한 케인스 경제학을 넘어서야 하며", 따라서 "이미 한물 간 케인스 복지 국가를 논하는 것은 지적으로 진부한 일"이라고 치부한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앞서나간 복지 국가였던 스웨덴의–나아가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전체의–복지 국가를 케인스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홍기빈이 이 책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미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전개한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학은 케인스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었다.

이 점은 이미 스웨덴 복지 국가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인 일본의 미야모토 타로가 쓴 <복지국가 전략 : 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논형 펴냄)에서 지적된 바인데, 홍기빈의 새 책은 이 점을 더욱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스웨덴이 복지 국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가 유례없는 대공황의 나락에 빠진 1930년대였다. 스웨덴 역시 대공황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1929~1932년 스웨덴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13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나서 성장률은 10퍼센트 이상으로 솟구쳤다. 그 대단한 성공에 감동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가 스웨덴에 정책 연구단을 파견할 정도였다. 그 연구단의 일원이었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나중에 미국에서 복지 국가 논의를 주도해 나갔다.

스웨덴에서는 일찍이 케인스와 비슷한 시기에 케인스 경제학의 단초들이 발전하고 있었다. 이른바 스톡홀름 학파가 그것이다. 그런데 공급보다는 수요, 생산보다는 소비를 강조하며 대공황과 같은 '과소비' 시대에는 국가 개입을 통한 유효 수요(소비 수요) 창출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케인스의 경제학은 그로 인한 물가 인상(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케인스 경제학을 대체한 것이 바로 밀턴 프리드먼과 로버트 배로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소비보다는 생산, 수요보다는 공급을 중시하는 공급 중시(supply-side) 경제학이다.

그렇지만 비그포르스와 고스타 렌, 루돌프 마이드너 등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정책 설계자들은 케인스 경제학에 내포된 위와 같은 한계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리고 생산 및 공급 측면에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시한 정책이 바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과 '연대 임금' 정책, 그리고 '선별적 산업 정책'이다.

이들 정책은 한편으로는 보편적 복지 국가 정책과 결합되어 노동자 가족의 고용과 생계를 안정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가 계급과의 협조를 통해 스웨덴의 산업 고도화 및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에만 의존한 영국과 미국의 복지 국가 모델이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위기 속에서 쇠퇴하는데 반해, 부분적으로 케인스 경제학을 채용했지만, 독창적인 노동 정책, 산업 정책, 사회 복지 정책을 채택한 북유럽의 복지 국가 모델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비그포르스 이후 스웨덴은 성공적인 복지 국가 모델을 현실화시켰으며 수십 년 동안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선도했다.

사회민주주의 : 과연 독자적인 사상 체계인가?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중간에 있는 잡종 정도로 치부되어왔다. 사회민주주의는 뚜렷한 사상가도, 독자적인 사상 체계도 없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등을 절충하여 혼합한 절충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베른슈타인'이라는 논의 수준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지난 30년간의 논의 수준이었다. 1990년대 한 때 한국 지식인 사회를 통해 도입된 서구 사회민주주의 역시 실은 1990년대에 인기를 끈 '제3의 길'과 별로 구별되지 않는 사회민주주의, 즉 (신)자유주의로 크게 오염된 사회민주주의였다.

따라서 지식인들의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사상으로 치부되어 왔다. 홍기빈에 따르면, 마치 말과 당나귀에서 태어난 노새가 생식 능력이 없는 것처럼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튀기"인 사회민주주의는 산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홍기빈은 이 책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역설한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비그포르스와 알바 뮈르달(나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등의 가치관, 세계관에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 및 역사적 유물론을 넘어서는 과학적, 윤리학적인 뿌리와 사상 체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자유주의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 그리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모두 뛰어 넘는 독자적인 정치경제 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그포르스를 비롯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은 자유주의 및 교조적 좌파와의 정치적, 사상적 대결 속에서 이러한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해냈다.

바야흐로 복지 국가 운동의 본격적인 전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한 번 치열한 철학적, 정치경제학적 탐구와 논쟁이 불가피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간 진행될 선진 복지 국가를 향한 여정에서 많은 생산적 연구 성과와 함께 우리의 토양에 맞는 새로운 독창적인 미래 구상과 정책적 사고방식들이 탄생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복지 국가를 향한 정치적, 사상적 운동에 있어서 홍기빈의 새 책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는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출판)와 함께 <복지 국가 전략 : 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미야모토 타로 지음, 논형 출판)과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김유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을 읽기를 권한다. (☞관련 기사 : 장하준에 열광한 당신이 지지할 정당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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