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떨어진 좌파, 세상으로 나올 주문은?
[2011 올해의 책]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2011.12.23 18:46:00
지옥에 떨어진 좌파, 세상으로 나올 주문은?
'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 독자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백하자면, 올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북 리뷰 섹션 담당이라고 하면, 책을 한 주에도 수십 권은 읽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매주 쏟아지는 수백 권의 책을 수박 겉핥기로 검토하고, 서평을 청탁하고, 원고를 받아내면 한 주가 훌쩍 간다. 그리고 또 수백 권의 책이 검토를 기다린다.

이렇게 책에 일상을 저당 잡히고 나면, 정작 책 읽기의 고유한 흐름이 깨진다. 애초에도 책 읽기가 생계유지와 떼려야 뗄 수 없었는데, 그런 현상만 더욱더 심해졌다. 실제로 올해는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만 잔뜩 머릿속에 담은 느낌이다. 그래서 '올해의 책'을 꼽을 때도 심드렁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돌이켜보니, 읽는 내내 '아!' 하고 몇 번이나 무릎을 치면서 탄복한 책이 있었다. 심지어 만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안 하던 메모를 하겠다고 수첩을 꺼내기도 했다. (가끔 책에다 절대로 밑줄 하나 안 긋는 기벽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렇다.) 그리고 나중에는 저자에게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는 만행을. "자극이 되는 좋은 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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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이 정도면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을 '올해의 책'으로 꼽은 변이 되려나?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다른 이들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자유주의의 탄생?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책(<신자유주의>(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이나 금융 권력의 득세를 세밀히 추적한 피터 고완의 <세계 없는 세계화>(홍수원 옮김, 시유시 펴냄) 같은 책이 있는데 왜?,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탄생>은 이런 편견으로 미리 예단할 책이 아니었다. 저자는 묻는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전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맞아! 항상 궁금했었다. 무슨 역사 법칙처럼 갑자기 '케인스의 시대'가 가고 '하이에크의 시대'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부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인가 큰 일이 있었으리라. 더구나 당시는 노동당(영국)/사회당(프랑스)이 권력을 잡고, 공산당(!)이 득세하고, 높은 조직률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른바 '복지 동맹'이 굳건할 때가 아닌가? 아무리 월스트리트와 시티의 금융 자본과 그 '하수인'인 대처와 레이건이 무섭다 한들, 한 줌도 안 된 그들이 무슨 흑마술사처럼 주문이라도 외웠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의문에 제대로 답하는 책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장석준은 이 책에서 1970년대의 칠레로, 영국으로, 1980년대의 프랑스로, 스웨덴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서 그 때 그곳에서 세계의 미래를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 간에 어떤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 전투는 때로는 피 튀기는 비극으로(칠레) 때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희극으로(영국) 계속되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신자유주의'를 되뇌는 이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좌파가 패배하고, 우파가 승리했다? 그건 다 아는 일이잖아!' 이 책은 그런 이들이야말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그 때는 인류 역사상 좌파가 가장 큰 힘을 쥐고 있었던 때였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우파에게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돌파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좌파가 패배한 과정에서 머무르지 않고 동시에 그들이 패배하지 않고자 어떤 무기를 준비하고 또 벼렸는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그 무기의 대다수는 당시에는 전투에 쓰이지도 못한 채 폐기되었다. 그러나 복지 국가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맞서고자 만들어진 그 무기는 지금이야말로 긴요하게 쓰일 시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온갖 문제를 낳았던 1970년대 이전의 그 복지 국가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에 몸담아온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진짜 이유도 바로 그 무기를 낡은 창고에서 꺼내어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개량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 아닐까?

가끔씩 터무니없이 수준이 낮은 외국의 조잡한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국내 저자의 책을 놓고 '짜깁기'라고 폄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고 싶다. 단언하건대, 당장 미국, 유럽, 일본의 독자에게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마치 극본처럼 적재적소에 등장인물을 배치하고, 사건과 설명을 요령 있게 엮는 솜씨는 이 책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익숙한 등장인물이 주는 씁쓸한 웃음은 이 책의 덤이다. 예를 들어서, 1997년 외환 위기의 주인공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미셸 캉드쉬는 20년 전에 무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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