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DJ "MB가 노무현을 죽였다!"
[김대중 평전 '새벽'·53] 유언 그리고 마지막 투쟁
2012.07.12 10:18:00
분노한 DJ "MB가 노무현을 죽였다!"
유언 그리고 마지막 투쟁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수사 기밀 발표 금지된 법을 어겨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3일)

김대중은 자택에서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비서관 하나가 황급히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이 서거했다는 소식이었다. 김대중은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은 누구인가. 민주화 여정에는 동지였지만 민주 정부로 보면 아들뻘이었다. 그가 고향 앞산에서 몸을 날렸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가 재임 중에 특검을 수용하고 분당 사태를 일으켜 큰 상처를 입고 실망도 했지만 그는 민주 정부의 후계자였다. 싫으나 고우나 김대중과 노무현은 물려주고 물려 받은 한 배의 선장들이었다. 서로의 항법은 달랐지만 가는 방향은 같았다.

김대중은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하고 또 당해도 끝나지 않았던 형극의 세월, 그 수난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왔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 동지들의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난 민주 정부 10년은 무엇이란 말인가."

장례위원회에서 추도사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김대중은 밀려오는 슬픔을 밀어내며 겨우 추도사를 썼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입니까. 당신보다 스무 살도 더 먹은 이 몸이 조사를 하다니, 이 기막힌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서거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올 것 같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 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 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김대중은 그러나 추도사를 읽을 수 없었다. 정부 측에서 반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했다. 국민장이었다. 볕이 불처럼 뜨거웠다. 살아서 후임 대통령 영전에 꽃을 바칠 줄은 진정 상상도 못했다. 미망인 권양숙을 보더니 한없이 깊게 울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버지처럼 흐느꼈다. 불행을 막지 못한 것이 자신의 죄인 양 서럽게 울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입을 벌려 울고 있는 모습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보라. 누가 그를 죽였는가.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가. 가슴을 가진 이들은 다시 일어나라."

ⓒ프레시안(손문상)
장례식장의 김대중을 보면서 모두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뙤약볕에서 두 시간, 그것도 분노와 슬픔과 허탈감이 엄습하는 '눈물의 시간'은 병든 김대중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후 김대중은 자주 울었고 그때마다 병은 깊어갔다. 주변 사람들은 불길한 생각을 했다.

6·15 남북 공동 선언 9주년 기념행사가 6월 11일 열렸다. 그날은 김대중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다. 아침부터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의료진들이 여러 처방을 했지만 몸이 계속 가라앉았다. 소파에 앉아있으면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래도 그날의 연설은 매우 중요했다. 집을 나서며 비서들에게 당부했다.

"나를 살피시오."

김대중은 예정 시간보다 늦게 행사장에 도착했다. 참석자들은 김대중이 입장하자 기립 박수를 쳤다. 흡사 사선을 넘어온 영웅처럼 반겼다. 휠체어를 탄 채로 연단에 오른 김대중은 너무도 쇠약했다. 물 컵을 들 힘조차 없어보였다. 참석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베어 물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김대중은 혼신의 힘을 다해 원고를 읽었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에 엄중 경고했다. 그것은 지난 1971년 100만 인파가 보인 장충단 유세에서 박정희 정권을 꾸짖은 것과 같았다. 그때는 사자후를 토했지만 지금은 말을 더듬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과 같은 길로 계속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연설은 끊길 듯 이어졌지만 그대로 참석자들의 가슴에 박혔다. 김대중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 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행동하면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 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 명 문상객 중 10분의 1인 50만 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를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 명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 간 화해협력을 이루는 모든 조건은 우리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공개적인 유언이었다. 김대중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이었다.

그로부터 2주 후 김대중은 6·15 선언 기념 행사위원들을 초청해서 점심을 함께 했다. 행사위원장 한명숙을 비롯 30여 명이 참석했다. 다시 그들에게 각별한 당부를 했다. 김대중은 대뜸 목이 메었다.

"내가 요즘 잠자기 전, 아내와 손을 잡고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민생경제와 남북 관계가 모두 위기입니다. 이제 저는 늙었습니다. 힘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습니다. 걱정이 많지만 저는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제가 최대한 일할 수 있도록 저희 내외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잠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김대중은 오열했다.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김대중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치, 경제, 남북 관계가 위기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10년 민주 정부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 안하면 됩니다.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면 힘이 커집니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하려고 하면 너무도 많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는 길도 있습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맙니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합니다.

투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비폭력 투쟁을 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을 동원하되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끌려가고, 여기저기서 그렇게 하면 (저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당과 보수 언론은 전직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그 반응이 뜨거웠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할 말이다."

김대중은 정치판 한 복판에 서 있었다. 마지막 힘을 풀어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후퇴에 맞서 싸웠다. 병든 몸을 던지는, 목숨을 건 '마지막 투쟁'이었다. 그렇게 민주화의 등불과 한반도에서의 햇볕을 지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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