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옆에서 죽을 수 있다면…"
[심영섭-강신주-윤영호-심보선] <죽음이란 무엇인가> 대담③
2013.02.20 07:29:00
"그 사람 옆에서 죽을 수 있다면…"
예일대학교 셸리 케이건 교수가 자신의 교양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쓴 <죽음이란 무엇인가>(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가 한국 사회에도 죽음이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화두를 논하는 특별 대담회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죽음 바로 알기'가 지난 13일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다.

대구사이버대학교 교수이자 영상을 통한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사회를 맡았고,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펴냄)의 철학자 강신주, <슬픔이 없는 십오 초>·<눈앞에 없는 사람>의 시인 심보선, 존엄사 문제를 이례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는 의사 윤영호가 패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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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엘도라도
<프레시안>은 이 특별 대담의 주요 내용을 테마 별로 재구성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번째 기사 '"죽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 의 주제는 책 제목과 같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였다. 두 번째 기사는 다양한 죽음 중에서도 한국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 '자살'을 다뤘다. 그리고 세 번째 기사는 누구나 결국에는 맞게 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지, 즉 '삶의 문제'를 다룬다.

셸리 케이건은 이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을 "거대한 미스터리, 너무 두려운 나머지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날 참석한 패널들도 자신의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집착하기보다, 숙고를 통해 다시 삶에 대한 고민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편집자>


[심영섭-강신주-윤영호-심보선] <죽음이란 무엇인가> 대담
① "죽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
②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나"

ⓒ프레시안(최형락)

왜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말하지 못하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심영섭 교수는 윤영호 교수에게 "안락사, 존엄사를 주창하게 된 배경은 무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환자 스스로 죽음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방점을 찍고 안락사와 존엄사를 설명했다.

말기 암 환자들을 치료해온 윤 교수는 "끝까지 온 힘을 다해달라"는 환자 혹은 가족의 요구에 따라 1초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호흡기를 부착하곤 했다. 인공 호흡기를 단 상태에서 죽음을 맞은 환자들은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기계에 의존해 비인간적인 마지막"을 맞곤 했다.

윤 교수는 "이럴 경우, 환자는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할 수가 없다"며 "죽음에 대해서 늘 환자가 아닌 가족들이 의사와 얘기한다"고 말했다.

가족이 의사와 이야기해 환자의 죽음을 결정하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고 윤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이런 문제를 풀어가려면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과 호스피스·완화 의료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를 주장했으나 한국에선 아직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교수는 죽음의 순간에 대해 "사실상 실제 죽음 상황에 들어가면 본인은 전혀 인식을 못하게 된다.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이라며 "만약 그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서울대학교 교수 윤영호. ⓒ프레시안(최형락)

"지기 위해 피는 꽃이 되지 말라"

윤 교수는 이렇듯 죽음에 대한 '발언권'과 '선택권'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끝을 선택하지 못한다.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일들뿐이고, 삶은 그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주제는 바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 즉 삶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죽음을 맞을 수도 있을까?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을까?

철학자·문사철 기획위원 강신주. ⓒ프레시안(최형락)
강신주 박사는 이 책 서두에 인용된 프란츠 카프카의 명언,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피어날 때부터 지는 것을 생각하는 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죽음에 대해 늘 걱정하는 사람이 자신의 걱정에 매몰된 채 타인의 고통을 보지 못 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자기 관념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은 잡념을 갖게 된다는 것. 그는 "잡념을 갖지 말라고 하고 싶다. 사랑이 뭔지 행복이 뭔지 생각하라. 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강 박사는 "'내가 과연 삶을 살고 있는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여러분은 여러분이 죽을 때 '잘 갔다'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꽃이 진다고 해서 다 소중한 게 아니듯 사람의 삶도 소중한 삶이 질 때 비로소 안타까운 것"이라며 "내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강 박사는 '소중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삶을 충만하게 보내려면 나에게는 선인데 다른 사람이 악이라고 하는 것에 영향 받지 말아야 한다"며 "'나는 나'라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삶은 결국 관계의 문제

심보선 시인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시를 쓴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를 언급했다. 나짐 히크메트는 "감옥 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조각품을 만들고 시를 쓰며" 자유를 박탈당한 고통을 견뎌냈다.

심 시인은 이 '사랑'의 외연을 확대해 다시금 사회적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행복은 쾌락 빼기 고통'이라는 공식으로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이론에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논의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감옥에서는 당연히 불행의 총량이 많다. 그러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고 이는 곧 공리주의에 위배된다. 그는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역시 명백하게 불행의 총량이 더 크지만 누군가와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통해 힘든 사람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농성촌을 직접 찾고, 시를 낭송해 온 심 시인은 전국 곳곳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잊히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경찰의 진압보다도 혼자 있다는 고립감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물리적인 죽음'을 걱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죽음도 있다는 얘기다. 심영섭 교수는 이를 "우리는 물리적 죽음,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서의 잊힘, 이렇게 두 번 죽는다고 한다"는 말로 정리했다.

시인·사회학자 심보선. ⓒ프레시안(최형락)

한 청중이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일들에 연대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에 강신주 박사는 "일단 스마트폰을 깨부숴야 한다"고 답해 청중들을 웃게 만들었다.

강 박사는 친구와 만나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정작 눈앞의 친구와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었다. "세계와 소통하면서 앞사람과는 소통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던진 그는 "SNS와 블로그의 댓글이 세계와의 연결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알게 된 것 같지만, 그래도 반드시 여러분 다리로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심보선 시인은 이런 연대 행동을 "죽음과 싸우는,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이 자기에겐 시와 글을 쓰는 일이라면서,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손 내미는 모든 행동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먹을거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그들은 신문에만 나오는 노동자, 철거민,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그 개념을 넘어서는 생생한 사람들, 구체적 개인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죽음은…

이날 대담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였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할 최종의 순간을 가정하면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역으로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심보선 시인은 "웃으면서 죽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내게 중요한 사람에게 그 미소가 내 마지막 표정으로 남겨지길 바란다"며 혹시 그 사람이 먼저 떠나게 될 경우엔 그가 끝까지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신주 박사는 "더럽게 피곤하게 살다가, 죽을 때도 '어우, 죽자!'하고 잠들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안식 같은 죽음이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또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강신주 미완성 원고'를 남기고 컴퓨터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로, 스스로의 존재 의미와 필생의 작업이 그것임을 드러냈다.

사회자 심영섭 교수는 "내 바람은 소박하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고, 더 바란다면 사랑하는 사람 옆이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이과수 폭포에 가는 것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절대 통계적으로 오지 않죠. 가령 전쟁터에서 전사할 확률이 90퍼센트여도 내게는 죽거나 죽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폭포는 그 압도적인 운명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가장 명백한 시각적 은유로 느껴져요."

▲ 영화평론가 심영섭. ⓒ프레시안(최형락)

윤영호 교수는 새 세포의 탄생과 묵은 세포의 소멸로 이루어지는 생과 사의 '의학적' 장면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며 입을 뗐다. 그는 "죽는다는 것은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뜻 죽음 이후의 삶도 있을 것이란 말로 들리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죽은(변화한) 존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날 기억했던 그 사람 역시 사라진다. 그런데 이는 인류라는 전체 단위로 보았을 때 연속성을 지니는 생명의 장면"이라고 죽음의 의미를 밝혔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죽음이 다음 순간의 의미 있는 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대 시절, 해부학 실습을 했던 곳에 시신을 기증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기증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고, 거기에서 맺어지는 수만 가지 관계를 통해 우리들은 살아간다. 윤 교수는 "'죽었으니 모든게 끝'이 아니라, 각각의 탄생과 소멸이 타인의 삶과의 연관성 속에 존재한다는 의식을 갖고 산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은 자연스레 경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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